생애 ¶
전라남도 경찰부 경무과에서 근무하면서 전남경찰교습소 교관을 겸하다가, 전남 함평군 군수가 되어 관계로 잠시 이동했다. 이후 1940년대에 다시 경찰로 돌아와 도경시로 승진하여 경찰부 보안과장을 지냈다. 1943년을 기준으로 종6위에 서위되어 있었다.
1945년 8월 태평양 전쟁 종전 시점에 경시 계급에 있던 조선인 8명 중 한 명이었다.<ref>{{서적 인용
|저자=서중석
|제목=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2)
|날짜=1996-09-01
|출판사= 역사비평사
|출판위치=서울
|장=제2장 정부수립 초기 민족주의와 반공주의의 갈등 - '소장파 전성시기' 소장파 의원들의 공세와 반공주의}}</ref> 종전을 1주일 앞두고 경기도 경찰부 회의실에서 간부 회의가 열렸을 때, 조선인 경찰로는 형사과장 최연, 보안과장 전봉덕, 성동서장 손석도 등 최고 간부만이 참석했다.<ref>{{서적 인용
|저자=반민족문제연구소
|제목=청산하지 못한 역사 3
|날짜=1994-03-01
|출판사=청년사
|출판위치=서울
|장=최연 - 친일경찰의 대부 (안소영)}}</ref> 이 자리에서는 일본 제국의 항복이 멀지 않았다는 고급 정보가 공유되었다.
|저자=서중석
|제목=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2)
|날짜=1996-09-01
|출판사= 역사비평사
|출판위치=서울
89-7696-113-7}} |
|저자=반민족문제연구소
|제목=청산하지 못한 역사 3
|날짜=1994-03-01
|출판사=청년사
|출판위치=서울
978-89-7278-314-5}} |
미군정 지역에 남아 서울중부경찰서장을 지냈고, 이후 변호사를 개업하고 법조인으로 활동했다. 1965년에 성곡언론문화재단이 설립될 때 《조선일보》 주필인 최석채와 함께 준비 작업을 맡았다.<ref>{{서적 인용
|저자=정진석
|제목=언론과 한국 현대사
|날짜=2001-06-25
|출판사=커뮤니케이션북스
|출판위치=서울
|쪽=558쪽}}</ref>
|저자=정진석
|제목=언론과 한국 현대사
|날짜=2001-06-25
|출판사=커뮤니케이션북스
|출판위치=서울
89-8499-048-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