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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성(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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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정보
| 이름 = 황태성
| 원래 이름 = 黃太成
출생일 = {{출생일
1906|4|27}}
| 출생지 = 대한제국 경상북도 상주
직책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무역성
북조선 무역성 부상]]
| 국적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정당 = 무소속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
1963|12|14|1906|4|27}}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교도소에서 전격 사형(총살형) 집행됨.
경력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무역성
북조선 무역성]] 부상 겸 무역상 서리
| 친인척 = 생질녀 임미정, 생질서 권상릉, 외사촌 누이동생 박명란, 친척 조카 김민하
학력 = [[경기고등학교
경성제1고등보통학교]] 중퇴<br />경성 연희전문학교 중퇴
}}
황태성(黃太成, 초명은 黃泰成, 1906년 4월 27일 ~ 1963년 12월 14일)은 일제 강점기 조선의 독립운동가이며 前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무역성 부상으로 일명 황대용(黃大用)이라고도 불리었다.

그는 1963년 12월 14일을 기하여 이른바 황태성 사건으로 서울교도소에서 총살형이 집행되었다. 그의 유해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상주에 안장되어 있다.

주요 경력과 활동

* 1906년 4월 27일 경상북도 상주군 출생
* 1921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입학
* 1924년 일본인 교장 배척 동맹휴학 사건으로 퇴학에 처해짐
* 1925년 경성 연희전문학교 상과에 입학했다가 퇴학 처분을 받음
* 1927년 조선공산당 경북위원회 결성 참여. 김천 지역에서 신간회 활동
* 1929년 광주학생운동 경성지역 총지휘자로 활동하던 중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2년 복역. 출옥 후 경상북도 김천에서 재활동
* 1935년 일본 경찰에 검거. 3년 6개월 복역
* 1944년 일제 총독부의 요청으로 여운형이 조직한 조선건국동맹 전라남북도 책임자로 활동
* 1945년 조선공산당 활동
* 1946년 10월 월북
* 1948년 황해도 해주 남조선 인민대표자 대회에서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상업성 지방관리국장과 외무성 부상과 상업성 부상을 거쳐 무역성 부상 겸 무역상 서리를 역임
* 1961년 8월 30일 대한민국 5.16 쿠데타 후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과의 남북통일 협상을 위해 밀사로 남하하였다는 설이 있음.
* 1961년 12월 20일 중앙정보부가 활동중인 황태성을 체포하여 간첩죄를 적용함.
* 1963년 12월 14일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인천의 어느 산골짜기로 끌려가 총살형에 처해짐. 당시에는 6.25 남침 전쟁의 상흔이 있었던 탓에 좌익 혹은 간첩에 관련된 형량이 무거웠음.

황태성 사건

박정희는 황태성을 친형인 박상희보다 더 잘 따랐다고 한다. 박정희가 대구사범과 만주군관학교 갈 때 황태성에게 진로와 관련 조언을 구했다. 또한 박정희가 남로당에 입당할 때 황태성이 보증을 서줬다. <ref>통일뉴스</ref> 황태성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외무성 부상(外務省 副相)과 상업성(商業省) 부상을 거쳐 무역성(貿易省) 부상 겸 무역상 서리(貿易相 署理)를 지냈으며, 이후 대한민국에서 5.16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와 김종필을 만나 통일사업을 하겠다며 대남 밀사로 내려와서 외종매(外從妹)의 아들인 김민하(金玟河)의 협조를 받으며 연락을 취하던 중 들이닥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연행되어 당시 반도호텔(지금의 롯데호텔 자리)에서 조사를 받다가 끝내 사형에 처해졌다. 황태성이 사형 집행되었을 때 박정희가 황태성의 사진을 보면서 “황태성 선생도 세월은 못 이기시는구나. 많이 늙으셨구나” 했다고 한다.
황태성의 생질녀인 임미정과 그녀의 남편인 권상릉(權相凌)은 2006년 11월에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 황태성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 달라는 내용을 접수한 바 있다.

== 황태성이 등장하는 대중문화 작품==
* 김갑수 (제3공화국, 1993년) - 문화방송 드라마

각주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