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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洪萬
이름 | 최홍만(崔洪萬) |
출생 | 1980년 10월 30일 (age(1980-10-30)세) |
십이지 | 원숭이띠 |
별자리 | 전갈자리 |
출신 | 대한민국 제주도 북제주군[1] |
신체 | 217cm[2] 161.5kg[3], B형 |
가족 | 부모님, 형 |
씨름 | LG투자증권 황소 (2002~2004) |
킥복싱 전적 | 19전 13승 6패 |
승 | 7KO 6판정 |
패 | 2KO 4판정 |
종합격투기 전적 | 9전 4승 5패 |
승 | 3KO, 1서브미션 |
패 | 3KO, 2서브미션 |
링네임 | "테크노 골리앗"[4] |
기타 | K-1 2005 서울 그랑프리 우승[5] |
소속 | 프리 |
목차
개요 ¶
씨름 경력 ¶
씨름 선수였을 때도 최상위권의 강자로 천하장사 1회, 백두장사 3회를 기록하는 등 우승경력이 좀 되는 프로씨름의 레전드 중 한 선수였다. 하지만 강호동 이후부터 시작된 기술을 배제한 힘씨름빨이라고 까이기도 한다. 굉장히 루즈한 진행으로 특히 같은 거인인 선배 김영현하고 붙으면 경기 시간이 씨름인지 축구인지 구별이 안 갔을 정도.
하여간 그 특유의 상품성 덕택에 프로씨름 데뷔조차 하지 않았던 대학교 시절부터 텔레비전 등에 나오며 엔터테이너성을 쌓았다. 218㎝에 165㎏이라는 엄청난 체구에 파란색, 노란색으로 눈에 띄게 머리를 염색하여 처음 본 사람도 인상에 남는 외모였고, 씨름에서 이기고 나면 세레모니로 춤을 춰서 테크노 골리앗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좀 더 먼저 활동한 김영현이 이미 골리앗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김영현과 비슷한 체격이면서 구분하기 위해 앞에 '테크노'를 붙인 것이다. 일반인들의 뇌리에서 차츰 잊혀져가던 씨름에 대한 관심을 간간히 지켜가는 역할을 해냈다. 처음 시작이 이런 것을 보면 본래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하여간 씨름판에서는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 올라간 듯 했으나... 차츰 씨름판이 막장이 되자[9] 다른 업계로 전향을 심각하게 고민한 듯 하다. 때마침 K-1도 한국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던 터라 고민않고 K-1으로 전향.
당시 최홍만과 LG의 팀 메이트들은 프로씨름의 사장화를 크게 우려하면서 길거리로 나가 씨름 팀 해체에 반대하는 전단지를 돌리기도 하고, 씨름선수이면서도 단식투쟁을 하는 등 나름대로 여러 활동을 벌였으나 결국 사양길로 접어든 씨름판을 살리지는 못했다. 운동을 더 하고 싶은데도 하기 힘든 상황에 닥쳐 어쩔 수 없이 다른 환경으로 전향했다는 점에서는 빅토르 안의 사정과 유사하다.
최홍만이 K-1 진출을 선언하자 씨름연맹은 최홍만을 영구제명을 때림과 동시에 그간의 타이틀 획득 경력도 모두 삭제하는 극단의 조치를 취한다. 이만기 건 때도 그랬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의 수많은 병신 협회 중 하나.
하지만 타이틀 박탈에도 불구하고 최홍만은 K-1 등에서 한국의 요코즈나로 홍보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최홍만을 아는 사람들은 그가 프로씨름 천하장사 출신인 것을 대부분 알고 있다.
킥복싱 전적 ¶
K-1 ¶
등장 신 테마음악은 영혼기병 라젠카의 OST N.EX.T - <Lazenca, Save us>
엄청나게 큰 덩치와 씨름 선수였을 당시의 경력으로 인해서 꽤 주목을 받았으며, 격투기 실력이야 어떨지 몰라도 일단 등장과 동시에 2005년 3월 서울 토너먼트에서 우승해 아시아 챔피언이 돼 버렸기에 굉장한 주목을 받았다.[10] 게다가 초창기의 대부분의 시합이 실력이야 어찌됐든 간에, 니킥과 럭키 펀치에 의한 시원한 KO 승리로 끝났기 때문에 한국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같은 해 6월 히로시마에서 프로레슬러 '그린베레' 톰 하워드를 1라운드만에 KO시키면서 '살인 니킥'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11] 또한 7월 하와이 대회에서 아케보노와 2차전을 가져 1라운드에 다운만 2번 뺏어내며 연승 행진을 이어갔다. 경기 후 관중석에 앉아있던 마이크 타이슨을 도발을 한 것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타이슨:내가 15년만 젊었어도... 사실 붙었어도 타이슨이 이겼을거다
서울 그랑프리 우승자로써 월드 그랑프리 개막전 참가 자격을 가진 최홍만은 9월의 오사카 월드 그랑프리 16강에서는 희대의 괴수 밥 샙과 난타전 끝에 빰 클린치 니킥으로 다운을 뺏으며 2-0 판정승을 거뒀다.[12] 육중한 신체능력으로 괴수 이미지를 지닌 밥샙이 더 큰 괴수에게 밀리는 점이 이색적이던 경기. 그 후로는 일본에서도 꽤나 괜찮은 흥행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11월 도쿄에서 열린 8강전에서는 레미 본야스키의 철저한 아웃파이팅에 말려들어 로우킥만 40대 정도 허용한 끝에 판정패한다. 이때 판정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하고 승자인 본야스키와의 악수도 거부하면서 비매너 논란이 있었다.
결국 최홍만은 이 경기에서 허벅지 부상을 입어 한동안 불참하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일본어 위키피디아의 최홍만 항목에서는 로우킥 부상 부위에 세균에 감염되어 사망하였다는 반달이 있기도 했다(...). 사실 경기 내용으로는 완벽히 말렸지만 피지컬 자체는 본야스키를 훨씬 능가하는 괴물이었기에 시합 도중에 본야스키의 로우킥을 맞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어께를 들썩이기도 하고, 경기가 끝난 뒤 "본야스키의 로우킥에 대미지를 입지 않았다"라고 했지만 인터뷰 이후 다리를 절뚝이며 퇴장해서 허세라는 지적도 있었다. 훗날 인터뷰에서 악수 거부 논란에 대해 최홍만은 "너무 아쉬워서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로우킥 관련해선 경기를 치를 당시 이미 왼쪽 허벅지가 부상당한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사실 이때 최홍만이 판정에 불만을 표한 것도 좀 에러였던 게, 워낙 상대 선수보다 훨씬 크고 강하니 버텨낸 거지 유효타를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이 허용한 반면 본야스키는 최홍만의 타격을 대부분 막아냈다.(물론 워낙 타격이 세서 막아도 대미지가 들어갔지만) 애초에 이건 그냥 싸움이 아니라 (KO가 안 나온다면) 기술적으로 점수를 따내서 비교하는 격투기이기 때문에 확실한 본야스키의 승리가 맞다.
이후 2006년 2월 '프레데터' 실베스터 터카이를 상대로 두 차례 다운을 뺏고 피 튀기는 난타전과 체력 고갈로 고전한 끝에 판정승을 거뒀다.[13] 2006년 6월 서울에서는 슈퍼 파이트 초청 선수로 참가, K-1 2005 월드 그랑프리 챔피언인 세미 슐트에게 판정승을 거두는 이변을 일으켰다. 우주괴수 슐트의 무난한 KO승이 예상되었으나 최홍만이 예상 외로 선전을 보이며[14] 슐트가 등을 돌리는 장면까지 나오게 만들며 선전했다. 다만 판정에 대해서는 논란이 크게 일었다. 유효타와 전박적인 경기 운영에 앞서나가던 슐트가 잦은 클린치로 인해 감점을 받았기 때문에 연장이 예상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슐트의 세컨은 거세게 항의했고[15] 승자인 최홍만과 한국 관중들조차도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처음에는 최홍만의 승리에 환호가 나오다가 경기장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이에 대해서는 흥행 안되는 절대 강자였던 슐트의 상승세를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K-1측의 견제였다는 의견이 대세이다. 최홍만 역시 경기 후 인터뷰에서 무승부가 가장 적절한 판정이었을거라며 자신의 판정승에 홈 어드밴티지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인정하였다.
2006년에도 이렇게 상승세를 끌어 나가다가 전년도 8강 진출자 자격으로 월드 그랑프리 16강에 진출해 제롬 르 밴너와 대결, 연장까지 갔지만 내내 얻어맞으며 끝내 판정패한다. 슐트에게는 석연치 않은 승리를 거두었고, 본야스키와 벤너에게 패했으나 K-1 최강자들을 상대로 꽤 치열한 승부를 펼치며 선전했기 때문에 발전 가능성이 높이 평가되었다. 게다가 한국에서의 흥행을 책임지는 선수였기에 K-1은 여전히 최홍만을 중용하였다. 이때까지가 최홍만의 리즈 시절. 스펙빨이라고 까는 사람도 있었으나 그래도 톱 파이터들을 상대로 판정까지 치열하게 싸우는 저력을 보여주었고, 나이도 젊은 편에 속했기에 가능성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2007년 3월 요코하마 스페셜 매치에서 그의 몰락이 시작되었다. 마이티 모에게 KO패를 당한 것이다. 시합은 최홍만이 긴 리치를 이용하여 공세를 펼치고, 모가 간간히 오버핸드 라이트로 카운터를 노리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결국 2라운드 57초 모의 오버핸드 풀스윙 라이트가 작렬했고 최홍만은 그대로 다운당하며 안드로메다로 떠나버렸다. 충격적인 첫 KO패.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최홍만이 이 무렵부터 안면타격 공포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 시합을 계기로 그동안의 최홍만의 행태, 즉 격투기를 등한시하고 한국과 일본 예능 활동에만 치중하는 모습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폭발하였다. 카오클라이나 밥샙, 아케보노를 꺾을 때까지만 해도 호의적이었던 여론이 이 시합을 기점으로 완전히 돌아선다.
2007년 4월과 8월 각각 마이크 말론과 개리 굿리지를 KO로 잡아내며 재기에 성공한 최홍만은 2007년 9월 서울에서 열린 월드 그랑프리 개막전에서 마이티 모를 상대로 리벤지에 성공한다. 요코하마에서의 패배를 의식한 듯 가드를 굳히고 로우킥을 내는 전법을 들고 나온 최홍만은 결국 우세한 경기를 펼쳐내며 판정승을 거둔다.[16] 하지만 최홍만이 모에게서 빼앗은 다운이 실은 로블로였다는 것이 드러나며 큰 논란이 되었다. 모는 판정에 큰 불만을 드러냈고 심지어 한국의 팬들 사이에서도 모에 대한 동정론이 일었다. 반면 최홍만에 대해서는 2차례에 걸친 지나친 어드밴티지와 데뷔 때부터 제자리걸음인 기량 등을 이유로 안티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당시 인터뷰. 마이티 모의 표정에서 엄청난 분노를 느낄 수 있다(...). 마이티 모가 너무 빡친 나머지 판정 결과에 대해 비디오 판독을 요구하며 재판정을 요구를 했으나 K-1측의 답변은 다운이 로블로인 건 인정하는데 니가 진 건 맞음 ㅋ이었기 때문에 K-1도 상당히 많이 까였다. 2006년 밴너와 레미의 대결 당시 판정 논란이 일자 비디오 판독을 통해 결과를 정정한 것과는 반대되는 부분.
이러한 여론은 2007년 12월 8일 월드 그랑프리에서 벤너에게 또 다시 패하면서 가속화된다. 그 와중에 연예계로 진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다가 까이기도 했다. 12월 30일 야렌노카에서 에밀리아넨코 효도르를 상대로 보여준 선전[17]으로 잠시 가라앉았으나 2008년 9월 바다 하리전과 2008년 12월 레이 세포전을 계기로 폭발하게 된다. 특히 2008 월드 그랑프리에서는 하락세가 뚜렷한 세포를 상대로 졸전을 벌인 끝에 스피드에서 농락당하며 세포의 굴욕기인 노가드[18]에 관광당하는 굴욕적인 결과를 냈다.
이 무렵을 계기로 그는 입식무대를 떠나 종합선수로 전향을 결행하게 된다. '더 이상 입식에서는 경쟁력이 없으니 종합에서 뛰어라'는 K-1 측의 권고였다.
Road FC 이전 ¶
최홍만의 MMA 데뷔는 2006년 12월 K-1 다이너마이트 2006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입식 뿐 아니라 MMA로의 진출도 시도하고 있던 K-1의 의도에 따라 이벤트성 매치에 얼굴마담으로 출전한 것이다. 상대는 나이지리아의 개그맨 겸 무술가인 바비 올로건이었다.[19] 결과는 11초 초살 KO승으로 데이터만으로는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입식에서도 잘나가고 있던 때였고 전직 씨름선수로서 차라리 MMA에서 더 강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겹쳐 "최홍만은 MMA로 진출하면 최강자가 될 것이다"라는 떡밥이 한국의 전 격투 커뮤니티를 달구기도 했다.
2007년 12월 야렌노카에서는 '마지막 황제' 에밀리아넨코 효도르를 상대로 경기를 하는 경험을 얻기도 했다. 효도르의 스피드에 밀리면서도 클린치 싸움에서 2번이나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키고 상위에서 파운딩을 날리는 등 선전했으나 결국 리버스 암바에 걸려 서브미션으로 패하고 말았다. 패배하긴 했으나 확실히 레슬링에 있어서 강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마이티 모전 패배를 일신하는 계기가 되었다.[20]
2008년 12월 K-1 다이너마이트 2008에서는 PRIDE 2006 무차별급 그랑프리 우승자 미르코 크로캅이라는 또 하나의 빅네임과 대결했다. 최홍만은 6분 내내 바디 킥과 레그 킥에 난타 당하다 결국 왼쪽 무릎에 인사이드 레그 킥을 맞고 TKO로 패했다. 첨예했던 사전 대립 각본과는 달리 거의 일방적인 경기였고 게다가 2007년 입식에서 밴너에게, MMA에서 효도르전을 시작으로 5연패를 기록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에게 호의적인 여론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이때쯤 입식 무대를 떠나 본격적으로 종합 무대로 전환을 감행한다. 그리하여 출전한 것이 MMA 역사에 길이 남을 막장 매치인 DREEM 2009 페더급 그랑프리 속칭 '슈퍼 헐크 토너먼트'였다.
2009년 5월의 2회전에서 그는 쿠바의 전직 야구 선수인 호세 칸세코를 상대했다. 올로건과는 달리 이쪽은 진짜 '일반인'으로 두말 할 필요가 없는 희대의 개그 매치였다. 게다가 1964년 생의 호세 칸세코는 이 시점에서 이미 40대 중반. 운동선수를 하기 힘든 나이에 도달했다. 프로 격투가인 최홍만으로서는 지면 죽어야 할 정도의 시합. 결과는 1분만에 최홍만의 승리로 끝났다.
2009년 10월 토너먼트 준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워크' '펑크' 미노와 이쿠히사였다. 자신의 체중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미노와를 상대로 2라운드에 체력 난조를 보이며 힐 훅으로 패배했다. 압도적인 피지컬을 가지고도 졸전 끝에 패배했기 때문에 MMA 파이터로서는 거의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시합 내용이었다. 미노와 이쿠히사는 최홍만 이외에도 많은 헤비급 선수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그의 많은 경기들은 미노와 자신이 패배한 경기 조차 워크 의혹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실력 있는 선수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다. 그런데 최홍만과의 시합에서만큼은 의혹이 전혀 없다(...).
이 시합을 끝으로 최홍만은 잠정적으로 격투계를 떠나 연예활동에 전념한다. 파이터 활동을 그만두고 일본 예능분야에서 활동 중이며, 본인은 인터뷰를 통해 2010년 하반기에 격투기에 복귀할 뜻을 밝혔다. 하지만 동년 12월 모든 격투기 활동을 잠정 중단한 상황이라고 밝혔고, 이후 격투기 경기를 뛰지 않고 있으며, 정치 활동에 사업도 하는 등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기에 격투기계로 복귀할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2014년 9월 12일 레볼루션이란 국내 대회로 복귀할 예정이었으나 펑크를 냈다. 다만 주최측이 사전 계약을 지키지않았고, 대회 일정도 멋대로 취소한 전례가 있어 마니아들은 최홍만보다 주최측을 비난하고 있다. #
ROAD FC ¶
2015년 4월 27일 국내 종합격투기 단체 ROAD FC와 계약했다. # 동년 7월 25일 일본 도쿄에서 개최되는 ROAD FC 24 대회에서 첫 경기가 잡혔으며, 상대선수로 레볼루션에서 원래 맞붙기로 했다가 엎어졌던 카를로스 도요타와 다시 맞붙었으나 1R 1분 11초만에 상대 강력한 오른손 훅에 실신하며 KO로 허무하게 패했다. 영상
이후 기자회견을 통해 패배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최홍만, 눈물의 소감 "예민해진 탓에 성급했다..경기 기억 안 나"] [최홍만 "원거리 타격전이 원래 전술..난타전 후회"]
최홍만과 로드 FC에 대한 여러 비판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최홍만 선수의 경우 사기 사건과 연루되면서 일본 방송이 취소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 두 방 맞고 쓰러진 최홍만, 이제 나오지 마라 '예견된 참사' 최홍만, 로드 FC가 경찰보다 더 알 수 없다 [로드 FC 최홍만 재기 프로젝트.."빚 갚아주겠다"] 난타전 감행 최홍만 죄 없다..화근은 로드FC 과욕
그러나 12월 26일 벌어진 로드 FC 27 중국대회에서 루오췐차오를 펀치 TKO로 화끈한(?) 떠먹여준 승리를 거두면서 부활(?)에 성공했다!(?) 물음표가 많아보이는 건 기분 탓이다.[21] 이 경기에서도 전혀 나아지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일단 상대가 신장 193㎝에 체중 110㎏에 육박하는 나름대로 거구였다곤 하나, 그 거구란 것도 최홍만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되는 정도고 MMA 전적도 아예 없는 걸 감안하면 최홍만이 전혀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경력에서도, 체격 조건에서도 월등히 앞서는데도 수세에 몰린 모습만 보여주다가 경기는 끝나고 말았다.영상.
결과는 1라운드 1분 36초만에 TKO로 최홍만이 승리. 예상대로 저돌적으로 나오는 아오르꺼러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밀려다니다가 결국 케이지를 등진 상태에서 펀치 러시를 이리저리 막아내는 상황이었는데, 이 와중에 뻗은 레프트 스트레이트가 아오르꺼러의 턱에 카운터로 들어갔고, 아오르꺼러가 그대로 실신하며 최홍만에게 안기듯이 바닥에 넘어졌다. 그리고 파운딩이라 쓰고 젖치기라 부른다로 마무리.영상. 워낙 찰나의 순간이었고 카메라도 아오르꺼러의 뒤통수쪽만 찍고 있었기 때문에 대충 보면 아오르꺼러가 열심히 밀어붙이다 제풀에 지쳐서 쓰러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22][23], 다른 각도에서 찍은 느린 화면을 자세히 보면 아오르꺼러의 턱이 순간적으로 돌아가는 게 확실히 보인다. 경기 내내 밀리다 펀치 한 방에 끝낸 셈이므로 중계진은 연신 최홍만의 펀치력이 살아났다고 칭찬했지만, 팬들의 반응은 그저 역대급 운이었거나 아오르꺼러의 맷집이 상상 이상으로 약한 게 아니냐는 쪽이 많았다. 운이 좋았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였지만 종양 수술 이후 근육이 빠져 멀대같은 허수아비 취급당하던 최홍만이라도 그 크기에서 나오는 한방 펀치만큼은 살아있었던 셈. 물론 레프트가 터지기 전까지 일방적으로 밀렸던 것이나 복싱 스킬이 부족한 점들은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점이다.어쨌거나 버릇은 고쳐줬다.
그리고 2016년 9월 24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샤오미 로드FC 033 무제한급 토너먼트 결승전에서 과거에 맞붙었던 코리안 킬러 마이티 모와 다시 겨루게 된다. 전성기 때 몸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도 마이티 모에게 KO패를 당한 전적이 있고, 승리를 한번 하긴 했지만 석연찮은 판정승이었기에 종양 수술 이후 근육이 다 빠져버린 최홍만이 아무리 나이가 불혹이지만 베테랑 헤비급인 최무배, 명현만마저 잡아낸 마이티 모의 펀치를 버텨내기 힘들거란 관측이 많다.
사람들의 예상대로 마이티 모의 펀치에 몇 차례 허용하며 위기를 맞았고, 최홍만도 나름 반격한다고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마이티 모의 펀치를 허용한 최홍만이 미소를 보였고, 곧 바로 마이티 모의 오른손 훅이 최홍만의 얼굴에 적중하면서 그대로 KO패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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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이 빠진 상태에서 이전과 비교했을 때 차이가 눈에 보일 만큼 벌크업에 성공했으나[24] 맞추질 못했으니... 이 날 마이티 모는 챔피언이 됐음에도 환호성은커녕, 박수소리 하나 나오지 않았다. 이젠 관중들도 별 기대를 안했다는 뜻이다.[25]
입식 복귀 ¶
2016년 11월 중국 PFC가 개최하는 격투기 대회에 참가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기사 입식타격은 2008 K-1 월드그랑프리 16강전 이후 2891일만이다.
ROAD FC와 계약 중이었을텐데, 어찌된 일인지 11월 6일 중국 후난의 PFC에서 입식 시합을 가졌다. 그런데 상대방과의 스펙 차이가 신장 41cm·체중 88kg... 원래 70kg에서 활동하는 선수와 시합을 가졌다. 더 충격적인 것은 졌다!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저우진펑은 K-1 max 2013 wgp 8강에서 쁘아카오와 맞붙었을 정도로 실력있는 선수이긴 하다. 그러나 체급차이를 감안하면 정말 충격적인 패배이다. 생각해봐라. 쁘아카오가 70kg에서 레전드라고 한들 세미 슐트같은 선수를 이기는 것이 상상이 되는가?
그나마 KO패 당하지는 않았지만 핵꿀밤으로 저우진펑이 잠시 휘청거린 것을 제외하면 경기 내내 한번도 정타를 먹이지 못하고 아웃복싱에 말려 로우킥과 바디를 후드려맞고 패배했다. 심지어 턱에 카운터 훅을 맞고 휘청거린 것은 덤.
사실상 격투기 선수로서 최소한의 경쟁력도 상실했음을 보여준 경기. 중국 내의 흥행을 위한 주작이라 생각하는 팬들도 있지만 저우진펑이 주작으로 푸시를 받아야 할 만큼 허접한 선수도 아닐뿐더러 정말 그렇다 쳐도 격투가로써의 최소한의 자존심을 돈과 바꾼 것이나 다름없다.
이후, 자신을 이긴 저우진펑을 위대하다 찬양했다. 관련기사 실제로 기네스북에 등록될 기록이니, 진짜 실력으로 이긴 것이라면 위대한 것이 맞다. 농담이 아니라 이제 까놓고 최홍만이 격투가로서 제대로 된 복귀할 생각이 있다면 저우진펑이 킥복싱 계의 매니 파퀴아오같은 인물이 되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다.쿤룬 파이트에선 네임드 선수니 가능성 있다 기도해라 홍만아.
2017년 11월 엔젤스에서 복귀한다고 스스로 밝혔다.
그리고 일본의 노장 우치다 노보루를 판정으로 이겼다. 우치다는 과감하게 계속해서 최홍만의 얼굴을 노렸는데, 가드와 긴 팔에 막혀 유효타를 얻지 못했다. 3라운드에 레프트 펀치로 다운시킨게 결정적인 승리의 요인. 입식경기로는 무려 10년 만에 거둔 승리.
경기에 대한 평이 좀 갈리는게 우치다가 전성기 땐 제법 잘나가는 킥복서였다지만, 이제는 너무 나이가 많아 적절한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나마 우치다전에서 보여준 안면가드가 K-1 시절보다 나아져, 킥복싱으로 재 전향한 것이 나은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평도 있다.
다만, 이젠 나이도 있고 원래부터 기본기가 좋았던 선수는 아니니만큼 일류로 돌아오기는 어렵다는게 중평.
그런데 AFC에서 12월에 경기가 잡혔음에도 불구하고 MASS Fight에서 소림사 파이터로 알려진 이롱과 다음 대전이 잡혔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는 불명이다. 이롱은 저우진펑과 마찬가지로 라이트급 파이터이다(...). 결국 프릭쇼 서커스 매치...
이롱은 국내에선 금강불괴(?)를 시전(?)하다가 실신 KO를 당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중국 킥복싱 단체 무림풍의 챔프경력이 있으며 쁘아카오나 싯티차이 등의 레전드급 낙무아이들과도 겨룬 바가 있어 저우진펑 전 때의 굴욕이 또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을 듯 하다. 룰이 괴랄한데 KO가 나오질 않으면 무승부가 되는데다가 휴식 없이 9분 1라운드제로 경기한다.
11월 10일, 경기 도중 이롱이 스피닝 킥을 차다가 로블로를 맞은 듯 했고, 최홍만이 속행 불가 의사를 밝히자 이롱의 승리를 선언했다. 이에 국내의 팬들은 마스파이트가 대놓고 편파를 한다고 비난했으나, 슬로우모션 캡쳐 결과 타격 위치가 치골이었고 이에 건오했다는 비아낭을 받았다. 게다가 경기 내내 최홍만은 유효타 제로에 저우진펑전 때처럼 이롱에게 일방적으로 로킥과 안면 펀치를 허용하며 형편없는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함 그 자체. 이제는 예전과 다르게 욕이나 악플조차 달리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 자체에서 멀어진 듯 하다.
파이팅 스타일 ¶
전성기 기준 217cm에 165kg의 신체 자체가 무기. 리치가 224cm(88인치)나 되는데 이는 현존하는 모든 MMA 선수들을 통틀어 가장 긴 것이다. 크기만큼은 최고 레벨 수준.
긴 리치 때문에 상대방이 거리를 잡기가 어렵고 안으로 파고들면 곧바로 니킥이 날아온다. 때리는 최홍만은 미들에 꽂는 느낌으로 쓰지만 맞는 사람 입장에서는 하이킥 타점으로 날아오기 때문에 빰 클린치가 허용되던 시절에는 거의 무적에 가까운 전법이었다. 키가 워낙 커서 얼굴을 치는 것 자체가 어렵고, 마이티 모에게 패배한 이후로는 맷집도 강화되었기 때문에 안면을 겨냥해서는 잡기 어렵다.
핵꿀밤, 도리도리 펀치, 오지마 킥 등 개그 기술로 악명이 높은데, 실은 리치와 파워가 워낙 사기이기 때문에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밥 샙이나 제롬 르 밴너같은 당시 K-1 최고의 멧돼지들도 최홍만과 정면으로 힘 대결하는 것은 피했을 정도다. 비록 최홍만이 수술로 근육이 다 빠져버렸다곤 하지만 160kg가 넘어가는 최홍만의 평체 무게를 실은 주먹은 어지간한 선수는 초살시킬 만한 무기다.
왼손잡이임에도 불구하고 오른손잡이처럼 왼팔을 앞으로 향하는 오소독스 자세를 썼는데,[26] 이는 타격 베이스가 없는 최홍만에게 빠르게 타격 기술을 연마시키기 위해 결정한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B급 선수들은 정확하고 강력한 왼손 잽만으로도 갖고 노는 수준이었으니 성공적인 전략이었던 셈.
하지만 스탭이 느리고 무엇보다 핸드 스피드가 너무 느려서 톱 클래스 선수들의 디펜스에는 거의 통하지 않는다. 팔이 느린 대신 다리라도 빠르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아쉽게도 다리마저 느리다.[27] 거대한 몸이 그의 강점이자 최대의 약점이 된 셈이다.[28][29] 게다가 공격이 너무 정직해서(...) 기술이 너무 쉽게 파해된다. 대표적으로 레미 본야스키와의 경기에서는 제대로 된 정타를 한번도 먹이지 못하고 3라운드 내내 레그 킥만 당하다가 끝나버리기도 했다.
격투기 선수로서는 엄청난 무기라고 볼 수 있는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긴 리치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리치를 거의 이용하지 못하는데, 이는 위에 서술된 스피드의 문제도 있지만 최홍만 본인의 격투 스타일이 그다지 리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스타일이 아닌 것도 있다. 격투기 데뷔 시절부터 최홍만은 거리를 유지하며 대미지를 누적시키는 스타일보다는 적극적으로 들어가서 큰 스윙을 날리는 스타일을 썼는데, 이는 역설적이게도 그가 본인의 리치를 제대로 이용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을 반증하기도 한다.[30] 전성기 시절에는 맷집이라도 강해서 얼굴 몇 대 맞아도 그냥 씹고 달려드는 게 가능했지만, 안면 타격 공포증 증세를 보이고 있는 지금은 그러지도 못하고 있다. 관중 및 시청자들이 볼 때 최홍만의 문제는 안면 타격을 받는 것에 대한 공포 때문인지 저돌적인 모습도 제대로 안 보여주고 있고, 거기에 반격을 당하는 것에 대한 공포도 있기 때문인지 적극적으로 거리를 유지하는 모습도 제대로 안 보여주고 있는, 말 그대로 이도 저도 아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31]
유일한 살 길은 빰 클린치 니킥인데 마사토를 위해[32] 이게 금지되어버린다. K-1은 단지 펀치, 킥의 숙련도와 스피드 대결 같은 양상으로 변했는데, 그 덕에 예전 같은 KO율을 보여주는 것이 더욱 힘들게 되어버렸다. 어찌 보면 입식에서의 부진은 룰의 변경 탓도 크다. 다만 비슷한 유형의 선수인 세미 슐트가 룰 변경 이후에도 충실한 기본기로 절대 강자로 군림하는 것을 보면 룰 탓만 할 일은 아닌 듯.
MMA에서는 여기에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더해진다. 그래플링. 종합 무대에 진출한 입식 선수들이 으레 그렇듯 최홍만 역시 그라운드에서 약점을 드러냈다.
수술 이후 근력과 맷집이 폭락하면서, 그 한대만까지 사라져버렸다. 한대를 때리지도 못하고, 때려도 상대방이 예전처럼 큰 충격을 받지도 않으며[34], 그나마 나은 맷집도 멀뚱히 선 채 맞기만 하니 별로(...). 사실상 제 2의 밥 샙인데 밥 샙은 변함없는 괴력과 근육, 고의 워크 의혹이라도 있지, 이쪽은 그냥 누가 봐도 실력. 안쓰러울 지경이다. 수술 이후에는 윗 문단에서 작성한대로 아웃복싱(...)을 하고 있는데, 아웃복싱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것만 보여주고 있다.[35]
이런 큰 KO패배가 자꾸 나올 경우 갈수록 맷집도 약해지고, 뇌에도 안 좋은 영향이 미치는 것은 당연하기에 격투팬들은 은퇴를 하는 것이 어떨까 이야기를 하지만 결국 그놈의 돈이...
현재 가장 최대의 문제점은 사실상, 근육이나 맷집이 아니라 멘탈이다. 아무리 몸을 길러봤자 케이지 안에서 겁만 잔뜩 먹고 도무지 공격을 하려는 생각을 안 한다.[36]
예능 활동 ¶
데뷔 초부터 최홍만은 예능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그래서 한국과 일본에서 방송 출연이 잦은 것이 격투기 팬들에게 까이고 있다. 한때는 음반까지 낸다고 해서 가수라고 까이기도 했다. 디시인사이드의 격투 갤러리에선 그를 凶物(흉물)이라고 부른다(…)그 동네는 원래 그렇다
2006년 경부터 연예계로 외도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격투기 성적이 시원찮게 되면서 까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2006년부터는 등장할 때 자신의 노래를 부르면서 들어오는 둥 "경기에 관심이 있기는 한 건가." 하면서 까였다. 결국 마이티 모에게 KO당하고 나서야 모든 연예계 활동을 중단했다. 한국에서만.
여담이지만 노래도 불렀다. 2006년 강수희와 듀엣으로 한 미녀와 야수(…)를 K-1 다이너마이트 2006에서 틀고 입장했다. 의외로 2008년 정식 가요무대에서 공공연하게 공연을 하기도 했다. 이후 국내 연예 활동은 중지했지만 일본에서는 오히려 더욱 활발한 연예 활동을 이어갔다.
2009년 10월에는 미노와 이쿠히사와의 경기를 앞두고 3일 전 일본 쇼프로에 출연한 것으로 알려져 엄청난 비난을 받은 적도 있다.
2009년 격투기 활동을 잠시 중단한 후 부터는 일본의 쇼프로, 영화 등에서 자주 출연하고 있다. 주로 거구를 살린 악역 겸 개그 캐릭터 역을 맡는데, 외모가 전설적인 프로레슬러 자이언트 바바와 닮은 점도 화제꺼리가 되는 등 나름대로 인기가 있다. 본인도 예능 생활이 상당히 만족스러운 모양. 소질도 이쪽 분야에 더 있는 듯 하다. 심지어 2010년에는 포켓몬스터 관련 TV프로인 포켓몬 스매시에도 출연한다(...). 일본어도 나름대로 잘하게 된 모양.[37] 시무라켄의 바카도노에도 특별 게스트로 나온 적 있고, 여러 모로 일본 연예인 다 됐다. 사사키 노조미와 사귀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2010년 3월 즈음 일본의 괴물군이라는 드라마의 프랑켄 역으로 출연이 결정되었다. 분장 모습이 너무 우스꽝스러워서 여기 저기서 대체 왜 저런 짓을 하냐는 악플이 달렸고 촬영을 위해 아예 일본에서 거주하다가 까이기도 했다.[38] 하지만 원작자는 더 없이 완벽한 싱크로라고 극찬했다.
2011년부터는 현재는 주점을 운영하면서 조용히 지내는 듯. 그러다가 태국 영화 똠양꿍 2에 나올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2013년 슈퍼맨이 돌아왔다 정식방영 6화에서 이휘재의 집에 찾아왔다. 키가 하도 커서 방 전체 잡는 화면에 얼굴이 빈번히 짤려버린다. 애기들을 같이 보는데 아이들이 무슨 조막만한 신생아 같아보이는 기현상이 일어났다...[40] 무서워하며 애들이 울까 걱정을 했는데 최홍만의 파워 애교로 서준이와 교감까지 시도하는 등 오히려 아주 잘 지낸다.
2015년 7월 런닝맨에 특별 출연하여 이광수의 등짝을 내리치거나 수영의 설득에 넘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런닝맨 내에서 힘이 가장 센 김종국을 힘으로 가볍게 제압하여 이름표를 뗐다.[41] 오죽하면 김종국이 최홍만 앞에서는 초딩같이 작아 보이기까지 했다.[참고]생각보다 힘이 별로라고 디스하는 건 덤 최홍만이니까 가능한 말 참고로 이날 최홍만이 뜯은 멤버는 김종국 한 명 뿐이고 대부분은 민호가 다 뗐다.
정치 관련 ¶
뇌하수체 종양 발견과 수술 ¶
최홍만 측에서는 거인증 의혹을 부정하고 있었지만, 몇몇 의사는 최홍만의 상태는 심각하며 이대로 놔두면 급사나 수명 단축이 우려된다면서 언론을 통해 수술을 권유했다. 처음에는 계속 이에 대해 답하지 않으며 부정했지만 결국에 군 면제 후 뇌하수체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게 되며, 얼마동안 시합을 미루고 휴식을 가졌다. 이후로는 별 문제 없이 격투기를 계속하게 되었다.
일부에서는 거인증이 맞다면 지금까지의 최홍만은 '성장 호르몬 과잉분비' 상태였기 때문에 사실상 도핑을 하고 있었던 것과 다름 없으며,[44] 이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괴력을 잃게 되었고 이후의 부진은 그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수술과 어느 정도의 연관성이 있는 변화인지는 의사의 진단이 없어 확인할 수는 없으나, 수술을 전후하여 비전문가의 눈으로 보기에도 확연히 차이가 보일 정도로 근육량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물론 뇌수술과 같은 큰 수술을 받았다면 굳이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신체적으로 부담이 많이 걸릴 것이다.
참고로 1999년도에 이미 병무청 신체검사에서 보충역 판정을 받았는데[45] 이 뇌하수체 종양으로 수술 후 아예 면제를 받았다. 여기서도 문제가 되었던 게 그가 면제가 된 시점이 공익근무요원으로 훈련소 입대를 이미 통지받고 나서 언론 주목까지 받은 뒤였다는 것이다. 사실 그냥 그 전에 수술하고 면제가 되었다면 그렇게 주목을 받지 않았을 텐데 입대가 결정되면서 그에게 맞는 특별 훈련복 제작이라던가 하는 여러 이슈들이 나오고, 최홍만 입대 후 생길 수 있는 문제[46]들에 대해서도 연예 정보프로그램 등에 얘기가 나오면서 많은 주목을 받게 된다. 그리고 최홍만 측도 이런 관심들에 "재밌고 색다른 경험을 하게 돼 기대된다. 누구나 하는 일이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군대 생활을 하고 나오겠다. 오히려 같이 생활할 훈련소 동료들에게 미안하다." 등 반응을 보이고 입대 일에도 연예정보 프로그램과 인터뷰를 하면서 입대를 하는데, 알고보니 이미 뇌하수체 종양에 대한 의사 진단서를 가지고 들어가서 제출할 준비가 되어 있던 상태였고 입소 후 사흘만에 그 진단서로 귀가 조치를 받고 귀가하여 한달 뒤 최종 재검으로 면제까지 받게 된다. 차라리 처음부터 훈련소 입소 같은 이슈를 만들지 말고 본인이 먼저 재검 신청을 했으면 훈련소 같은 곳 갈 일 없이 면제를 받을 수 있던 부분인데 관심을 끌고, 훈련소 생활을 할 마음 없이 자신이 가져온 진단서로 귀가 조치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면서도 입대할 것처럼 언론에 말한 부분에 대해 비난이 있었다.[47][48] 아마 본인도 최대한 뇌하수체 종양으로 수술을 하거나 이슈가 되고 싶지 않아서 버티다가 군입대 및 면제를 통해 어쩔 수 없이 이슈화된 것으로 보이는데, 적어도 입소 전에 재검 신청으로 해결했다거나 훈련소를 가게 되더라도 진단서도 가져가면서 훈련소 생활을 할 것처럼 인터뷰하지 않고 귀가했다면 별다른 부정적인 반응은 없었을 것이라 아쉽다.
수술 이후 대부분 근육이 없어지고 뱃살만 튀어나왔다고 욕하는데, 사실 이미 밥 샙전 때부터 튀어나와 있었다. 단, 다른 부위의 근육이 급격히 감소해서 부각될 뿐.
기타 ¶
가장 큰 의의는 2000년대 중반부터 대한민국에 격투기 붐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K-1의 로컬라이징 전략이 크게 성공한 케이스로, 떡밥과 빅매치를 적절히 섞은 후 언론으로 잘 포장하여 어필한 케이스다. 데뷔 초기 한국에서의 반응은 엄청난 것이어서 K-1이 방송에서 크게 다루어지는 등 소수 마니아들의 전유물이었던 이종격투기, 종합격투기가 메이저 컨텐츠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이는 2000년대 중반을 계기로 국내 프로 격투단체들이 창설되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한명의 스타에게 의지한 흥행이었기 때문에 그가 하락세를 그리면서 격투기 붐도 동시에 수그러들었다. 그래도 그가 데뷔하기 이전보다는 저변과 격투기 종목 팬층이 넓어진 상태이긴 하다.
K-1 마니아들은 K-1 서커스화의 주범이라면서 극도로 싫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격투기 경험이 전무한 선수가 갑툭튀해서 주최측으로부터 혜택을 받으며 상위권 강자들과 경쟁을 하는 반면, 유럽에선 선수가 넘쳐서 실력은 좋으나 지역 GP 출전권조차 못 얻을 정도로 조명을 받지 못해 마이너급으로 전락한 파이터들이 수두룩했으니 이걸 마니아들이 좋게 봐줬을리가 없다.
대한민국 언론에서는 그냥 강한 한국 파이터 정도로 내보내고 있지만, K-1 내부에서의 역할은 악역 포지션을 맡고 있으며 일부러 건방진 어조나 태도를 보이고 있다(본인 성격이 그런 것은 아니고 프로모터에 의한 것). 때문에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49]에서도 안티가 많은 상태.
본업인 격투기를 도외시하고 예능활동에만 치중한다며 쌓여온 팬들의 불만이 마이티 모 전 KO패를 계기로 폭발하였는데, 당시 인터넷에선 이런 합성 사진이 크게 유행했다.참조
하지만 그 거체와 특이한 얼굴 때문에 은근히 팬도 많으며 하라 테츠오가 그린 K-1 포스터에서는 맨 뒤에서 엄청나게 큰 주먹을 쥐고 세미 슐트의 뒤통수를 때리고있는 포즈로 북두의 권의 최종보스격인 라오우처럼 나왔다(…). 레미 본야스키와 밥 샙을 검은 콩이라고 깐 적이 있다.#, # 문제는 그 후로 본야스키와 밥 샙이 각기 분야에서 콩라인이 되어버렸다는 점에 있다(...). 최홍만의 저주 레미는 다른 선수는 다 넘어섰으나 세미 슐트를 넘지 못해서 만년 준우승자 라인에만 머무르게 되었고, 밥 샙은 본인의 괴물캐릭터를 최홍만에게 뺏겨서 TV 프로그램 출연이나 CF 등등도 죄다 최홍만이 독점하는 둥 괴물계(?)의 콩 라인이 되어버렸다. 콩의 저주
바다 하리로부터 "너무 못생겼다"며 꾸준히 까이고 있다. 바다 하리가 데뷔 초의 지나친 독설 기믹을 그만둔 후에도 정도만 약해졌을 뿐이지 못생겼다는 얘기는 계속 하고 있다. 안티들의 멸칭인 '흉물'도 바다 하리의 발언에서 유래한 것.
한때는 스모 요코즈나인 아케보노와 라이벌 구도가 있었는데 아케보노가 일방적으로 의식하고 있는 느낌이 강했다. 이는 최홍만의 홈인 서울에서 한번, 아케보노의 홈인 하와이에서 한번, 아케보노의 제 2의 홈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삿포로에서 한번, 총 3번에 걸쳐 세 경기 모두 KO로 제압하므로써 끝나게 된다. 그러나 아케보노는 3차전 패배 이후에도 이런 인터뷰를 하면서 의지의 끝을 보여주었다(...).2라운드 프로레슬링으로 해서 이길라고?
2009년 경 부터 샤킬 오닐과의 대립 구도가 생겨 2011년 경기 성사 직전까지 갔지만 돈 문제로 무산되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두 사람 다 대결을 원하고 있어서 언젠가는 성사될 듯.
2010년 말에 갤럭시 탭 구매 인증샷을 찍기도 했다(...).# 또한 아이패드 미니가 출시되기도 전에 한국의 누군가가 이미 먼저 사용하고 있었다는 제보가 있었는데 그건 다름아닌...
개그맨 조세호가 그의 성대모사를 잘 하기로 유명하다. 최홍만은 처음엔 자기 성대모사 하는 걸 굉장히 싫어해서 우연히 조세호를 직접 만나게 되자 다신 하지 말라고 경고하였는데 이후 반응이 좋자 자신이 직접 조세호에게 연락해서 계속 해달라고 부탁까지 했었다고 한다(...).
부산 경원고등학교[50] 출신이며 경원고 교사들이나 최홍만의 동창들이 타인에게 그에 대한 언급을 종종 하는 모양이다. 주로 거구로 인해 빚어진 에피소드들이다.
고교 시절 씨름 유망주이자 전례없던 거인으로 주목받고 티비 프로그램에 소개된 적이 있다. 소년 최홍만이 소변기가 너무 작아서(...) 변기칸에서 볼일 보는 모습이 나갔다. 그조차 키가 너무 커서 변기칸 위로 머리가 삐죽 솟을 정도였으니 본인도 꽤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악력을 쟀을 때 90kg이 나왔는데 손이 너무 커 새끼손가락을 사용하지 않고 잰 악력이다.
사기 혐의 ¶
2015년 5월 20일 사기혐의로 피소됐다는 기사가 나왔으며, 15년 7월 22일 최홍만의 사기 혐의에 대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다만 실제 검찰 송치 시점은 5월 말이었다고 한다.무슨 혐의??
그런데, 레진코믹스의 태양초고추장 연재 만화가인 개호주가 일본에서 목격한 적이 있다고 한다. 개호주가 또! 그러나 10월26일 오후 7시 40분 최홍만이 서울 동부지방검찰청에 출석해 사기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으며, 향후 사건의 전개에 따라 내용이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2015년 11월 13일 기자 회견을 열고 피해자들과 합의를 끝냈다고 밝혔다.
법원에서 최홍만에게 사기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형을 선고했지만 최홍만은 항소하기로 결정했다.
총평 ¶
타고난 신체적 이점으로 적은 노력으로 높은 성과를 이뤘고, 그나마 얼마 되지 않았던 높은 성과를 이용해 격투 경기의 실적보다 방송과 예능으로 더 활약하고 유명해지는 데에 더 치중했으므로 내실보다 허세가 과하다는 평이다. 실제로 격투 경기보다 방송과 광고 출연으로 수익을 올린 것이 더 많았다. 나이가 지긋한 중장년 층에게 씨름 선수라는 점이 먹혀 꽤 높은 인기를 구사했지만, 지나치게 자신을 노출하려는 행보 때문에 안티도 그에 못지 않았다. 그나마 그렇게 해서 재산이라도 축적하고 잘 지냈으면 모르겠으되, 꽤 오랜 기간 동안 돈을 벌어들였음에도 지출이 과다하여 돈이 부족한 이유로 지인들에게 거액의 돈을 빌리고 다녔고 이에 사기 혐의[51]로 피소된 탓에 엄청난 비판을 받아오고 있다.
이후 뇌하수체 종양 제거 수술 이후로 경기 실적이 크게 떨어지는 데다 자기보다 훨씬 작고 가벼운 도요타와의 경기에서 펀치로 넉아웃 당할 때도 격려보다는 악플이 훨씬 많았다. 외관상 경기 기량 자체는 뇌하수체 종양제거수술로 인한 건강 악화나 신체 능력 하락이 더 커 보이지만, 방송과 예능에 치중한 행보 탓인지 아니면 다른 문제인지 악플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누구든 유명해지면 땀흘리기보다는 얼굴만으로 돈을 벌려는 보통의 본성으로 보는 것이 무난할지도.
이분한테 나대다가 인생종료 한방이다
미디어 믹스 ¶
- 오나니 마스터 쿠로사와 초반에 언급된 일이 있고,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에서도 작중 만화잡지의 이름으로 언급된 적도 있다. 월간 최홍만.
- 그래플러 바키의 작가 이타가키 케이스케의 다른 작품인 아랑전에서는 그와 유사한 인물이 '최호만'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다만 작중 평가는 덩치만 컸지 기술은 형편없는 2류.
- 바바 야스시의 만화 공수도 소공자 코히나타 미노루에는 '천만홍'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냥 엑스트라.
- 도라에몽 정발판(신판)에서 노진구와 친구들을 괴롭히는 덩치 큰 고등학생이 "홍만"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그 밖에도 홍만이라는 이름이 이곳저곳에 등장한다.
- 동네에서 소문난 텐구의 아이 5권에서 카라스마 모미지가 오사카베 아키히메에게 텐구계의 최홍만이라고 소질을 칭찬한다.
욕이 아니고?
- Megpoid와 가쿠포이드의 듀엣곡인 aniimo라는 노래의 가사에서 Megpoid가 최홍만을 숨겼다고 언급한다. 가쿠포이드왈 숨기기에는 너무 크지 않아?
- 모바일 대전 액션 게임 터치파이터에서 본인 역을 더빙했다. 설정도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기 위해 대회에 참가했다는 심플한 설정으로 스토리와 따로 노는 캐릭터.
- 신 연예인 지옥의 최홍 대대장과 청춘병법 아미아미의 최억만은 최홍만을 모티브로 하였다.
- 레전드 오브 곡괭이에서는 '메카 홍만이'라는 보스가 나온다. 소개로는 전설 속의 거인을 모티브로 해서 만든 로봇이라고한다. 아마 최홍만의 체격이 커서 그런 설정이 붙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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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現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2] 입식 격투기 데뷔 당시 거인 기믹을 위해 7피트 2인치(218cm)로 표기하고 다녔지만 꾸준히 본인은 216cm라고 밝혔고, 라디오 스타 출연 당시엔 본인의 키를 216.5cm라고 밝혔다(본인의 키를 부각시키는 걸 몹시 싫어하는 듯 하며, 의도적으로 조금이나마 더 줄이려는 모습이다.). SBS 스타킹에 출연 당시에는 본인 입으로 217cm로 밝혔다. 해피투게더에서 재본 건 사람이 재는 거고, 단순히 책으로 머리를 눌러보는 거라 다분히 오차도 있어 보이는 데다 워낙 커서 일반인이 이런 식으로 재서 정확하게 나올 리가 만무하다. 그러니 의미 없고 또한 기계식으로든 앉은키 측정하는 것과 같은 수동식 기계로든 공식적으로 재본 적은 없다.
- [3] 2016년 9월 23일 기준 측정.
- [4] 씨름 선수 시절에 우승 후 추던 춤에서 유래했으며 씨름 선수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닉네임이다.
- [5] 카오클라이와의 결승전은 2009년 셔독이 선정한 '역대 괴상한 경기 베스트 10(10 Great Freak Matches)'에 8위로 랭크되어 있다.
- [6] 정확히는 한국 무에타이 챔피언인 이면주와 거의 동시에
물론 이면주가 누군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 [7] 나무위키에서는 격투기에 비해 씨름에 대한 관심이 훨씬 적으니, 씨름선수 시절의 상세한 전적은 추가 바람.
- [8] 키가 너무 크기 때문에 보통 집 높이로는 모든 생활이 불편하다고 하며 높이가 정말 높은 집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 [9] 최홍만의 K-1 진출, 씨름팀들의 잇단 해체 등으로 씨름판 자체가 존속 자체에 대해 위기가 팽배했고, 그 과정에서 씨름협회 내부에서 파벌 싸움이 일어나며 극한 막장 상태로 접어들게 됐다. 이 과정에서 혁신세력이었던 이만기가 연맹으로부터 영구제명을 당하기도 할 정도로 씨름판은 막장 그 자체였다.
- [10] 근데 이 토너먼트 출전 선수들과 대진표가 막장이었다. 당시 출전했던 선수들 중 (그나마)가장 강한 선수가 카오클라이였는데 최홍만과의 체중 차이가 거의 80kg 가까이...게다가 최홍만이 있는 토너먼트 블럭에서는 그 유명한 아케보노와 당시 45세였던 심판'''(선수가 아니다!) 카쿠다 노부아키, 당시 39세 스모선수 와카쇼요 등의
사실 선수라고 불러주기 좀 민망한 수준의 파이터들만있던 반면, 카오클라이의 블럭에는 수십 전 이상의 킥복싱 경력이 있는 파이터들인 호리 히라쿠와 이면주 등이 포진해 있었다. 여러 모로 최홍만 띄우기 대회라고 팬들 사이에서 적잖이 까였다. 덕분에 최홍만은 지역 대회 우승이라는 나름대로 대단한 경력을 갖고 데뷔했음에도 불구하고, 밥 샙을 이기기 전까지는 한동안 검증 안 된 서커스 파이터 취급을 받았다. - [11] 최홍만의 니킥을 맞은 머리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 [12] 밥 샙이 리치가 긴 최홍만에게 거리를 두지 않기 위해 초반부터 안쪽으로 파고들며 무식하게 펀치를 날렸는데, 최홍만이 전혀 밀리지 않고 난타로 되받아치는 게 인상 깊은 경기였다. 기술적으로 부족하기로 유명한 두 선수는 심지어 난타전 중 가드도 하지 않으며 펀치를 주고받았는데, 체력 조절을 생각치 않고 펀치를 퍼부은지라 후반에는 둘 다 체력이 완전 고갈되어서 거의 그로기 상태였다. 초반과 후반의 경기력 차이가 극명했던 경기. 그 와중에 최홍만은 긴다리와 팔로 거리를 두며 유효타를 은근히 계속 먹이는데 성공해 대미지를 줬으나, 샙은 특유의 정면돌파 후 난타를 벌이는 스타일도 자신만큼 힘이 센 최홍만에게 먹히지 않고 체력 고갈 이후 파고드는 것도 못하면서 거의 무력화되었다.
- [13] 당시 별 거 아닌 프로레슬러에게 고전했다고 까는 여론이 있었으나, 애초에 터카이는 5일 준비하고 레미 본야스키를 고전 시키며 판정에서 한 라운드를 가져올 정도의 포텐셜이 어느 정도 있는 파이터였던데다 경기 전 발목 부상이 있었다는 게 알려지며 까이는 게 많이 줄었다.
- [14] 세미 슐트는 실력이 분명 뛰어나지만 어디 가서도 안 꿀릴 무지막지한 피지컬도 겸비한 만능형 선수인데, 최홍만은 세미 슐트의 피지컬을 더욱 능가하는 세상에 얼마 없는 인간 중 한 명이므로 슐트가 여지껏 상대해 본 적이 없는 생소한 유형의 상대라 파이팅이 좀 꼬인 부분이 있다.
- [15] 루머로는 세컨 중 한명이 저지들의 스코어 보드를 뺏어서 보려고 했다고도 한다.
- [16] 1차전에서와 같은 오버 핸드가 수차례 적중했지만 이때는 쓰러지지 않았다.
- [17] 전직 씨름선수답게 표도르를 테이크다운시키는 데 성공하고 이후 파운딩을 엄청나게 날렸다. 정타는 없었지만. 파운딩을 열심히 날리다가 암바로 패.
- [18] 세포가 한창 전성기였을 무렵 사용하던 전술로, 당시에는 기량의 하락으로 거의 봉인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홍만에게 다시 썼다.
- [19] 일본에선 꽤 유명한 방송인으로 시릴 아비디에게 이기기도 했다. 유명세 덕에 비디오게임 호혈사에서 캐릭터로 등장했으며, 일본인들에게 일반인 중 최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 [20] 훗날 이 경기는 K-1의 농간으로 인해 경기 5일 전에 오퍼를 받아서 거절했다가 결국 3일 전에 오퍼를 수락하고 이틀 훈련해서 경기에 출전하게게 되었다고 무릎팍도사 출연을 통해 본인은 주장했지만 대회 18일 전인 2007년 12월 13일에 대전 확정 기사가 뜬 걸로 봐서 별로 신빙성은 없다.#
- [21] 일단 TKO이긴 한데... 상대가 쓰러지지도, 심각한 대미지를 입지도 않은 상태에서 경기를 자진 포기했다. 추후 밝혀진 바로는 어깨 회전근개 파열이었다고 한다.
이때 최홍만이 '아 뭐야~'하는 것도 들린다. - [22] 실제로 당시 캐스터와 해설도 무엇 때문에 아오르꺼러가 쓰러졌는지 파악하지 못했고 경기를 지켜보던 각종 격투 커뮤니티에서도 왜 쓰러졌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상황이였다. 리플레이를 보고서야 다들 레프트가 맞았다는걸 알아차렸을 정도.
- [23] 당시 나오던 드립들이 아주 가관이다. 돌연사(...), 밖에서 누가 사냥총으로 저격했다(...), 고혈압이 왔다(...), 아니다 당뇨다(...)
- [24] 특히 팔 근육은 아오르꺼러 전에 비하면 확실히 근육이 드러날 만큼 불어있었다.
- [25] 인터뷰에서 보여준 모습 때문에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는지에 상당히 기대를 했는데도 이 모양이기에 실망의 부분도 있고.
- [26] 보통 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와 반대로 사우스 포자세를 취한다.
- [27] 종양 제거 수술 이전에는 근육이 꽤 붙어있었던 터라 지금보다는 나았지만, 종양 제거 수술 이후 근육이 크게 줄어들면서 속도가 매우 안습한 수준으로 떨어져 버렸다.
- [28] 당연한 얘기지만 모든 운동은 그 운동에 적당한 최적의 체격이 있다. 너무 작으면 파워면에서 한계가 있고 너무 커지면 움직임이 굼뜨게 되기 때문. 최홍만 정도의 키로 정점급을 찍을 수 있는 스포츠는 NBA 정도 말고는 떠올리기 힘들다.
- [29] 세미 슐트의 경우는 논외. 최홍만과 비교하기엔 커리어, 재능의 차이가 너무나도 크다.
- [30] 물론 격투기 선수마다 자신에게 맞는 격투 스타일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본인의 리치가 상대보다 길면 인파이팅보다는 아웃복싱을 구사하는 것이 본인에게 더 유리할 수 밖에 없다. 상대는 때릴 수 없는데 자신만 때릴 수 있는 상황이 있다는 사실은 격투기 선수로선 매우 큰 무기나 다름없다.
- [31] 그래도 엔젤스파이팅에서 적극적으로 펀치를 뻗으며 러쉬를 하든 등 전성기시절의 모습을 어느정도 보여줬다.
- [32] 경량급 낙무아이들의 기량이 넘사벽으로 강했기 때문에 자국 파이터들에게 유리한 룰로 고쳐버렸다. 중량급의 세미 슐트를 견제하려는 의도도 어느 정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 룰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쁘아까오와 슐트는 복싱 스킬을 향상시킴으로써 더 강해졌다(...). 그럼 주먹질 금지? - [33] 특히 마이티 모와의 3차전에서 이런 점이 더욱 눈에 띈다.
- [34] 그러나 아직까지 펀치를 맞추지 못하는 장면만 최근 경기에 나와있기에 확실하다고는 할 수 없다. 헤비급 선수가 제대로 맞는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는...
- [35] 아오르꺼러 상대로 카운터 KO승을 거둔 적이 있긴 하지만 최홍만이 전후 경기에서 보여준 경기력을 감안했을 때 아오르꺼러가 심각한 두부맷집인 걸로...
- [36] 마이티모 3차전에서 적어도 오지 마 킥이라도 몇 번 날려줬으면 견제가 가능했을텐데, 킥을 날릴 생각을 안 한다.
- [37] 일본어는 2006년경부터 잘 하기는 했다.
- [38] 출신이 어떻든 일단 연예인으로 나선 만큼, 기괴한 분장을 마다하지 않고 연기하고 활동을 위해 해외에서 거주하는 것이 칭찬을 할 수는 있어도 잘못된 일은 전혀 아니다. 그런 논리라면 메이저 리그 활동 야구 선수나 LPGA 활동을 위해 미국에 건너가 있는 선수들도 다 까야 한다.
- [39] 그는 "항상 옆을 지켜주고 운동하는데 힘을 주던 여자 친구가 있었다. 나에게 끝까지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며 "제일 고마웠던 것이 내가 눈에 띄는 유명인이라 항상 그 친구가 앞서서 막아주고 쓴소리 해 줬던 것이다"라고 털어놨다. 최홍만은 또 "내가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해 거리에서 아기자기한 옷이 보이면 사서 입혀주며 대리만족을 했고 내가 또 십자수를 좋아해 선물하기도 했다"며 "내가 슬럼프에 빠져 운동을 잘 안 할 때 그 친구가 갑자기 밥을 함께 먹다가 밥상을 그냥 엎어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얌전했던 친구가 그러니 너무 놀랐다. 그리곤 그 친구가 '운동 안하고 처져 있으면 다시는 안 본다'고 말하고 떠났다"며 "온 몸에 김칫국물과 양념게장이 범벅이 됐고 상처를 받아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 [40] 쌍둥이의 바지가 최홍만 얼굴만 했다.
- [41] 민호가 붙잡아서 제압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일대일로 붙었어도 100% 김종국이 제압당했을 것이다.
- [참고] 이때 자막에 '이름표 떼고도 이어지는 홍만 어른의 꾸중'이라 떠서 최홍만이 더 나이가 많다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김종국이 1976년생, 최홍만이 1980년생으로 김종국보다 4살 아래다.
- [43] 경기 일주일 전까지는 경기를 치루는데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하였지만, 3~4일을 앞두고 최홍만을 포함한 대다수 선수가 메디컬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고 결장하여 큰 돈을 들인 다이나마이트 미국 대회가 망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일본에서 열었던 대회 때처럼 3~4일 전 대회 준비를 하려다가 미국 주 체육위원회의 대회 운영 방식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K-1의 병크다.(PRIDE도 미국 진출 당시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때문에 미국 주 체육위원회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국내와 일본 격투 언론들은 UFC의 K-1 진출을 막기 위한 음모다는 음모론 기사를 쏟아내었다.
UFC만 조금 봤더라도 그런 소리는 못한다 - [44] 실제로 성장 호르몬은 운동선수들이 도핑을 위해 사용하는 호르몬이다.
- [45] 키가 너무 큰 게 이유일 가능성이 크다. 2미터를 훌쩍 넘는 키이므로 규정상 당연하다. 1990년대 중반까지였다면 5급이 나왔겠지만 이 분의 아들 덕분(?)에 병역 판정 기준이 강화되면서......
- [46] 생활관 침상이 안 맞을 것이다. 화장실이 좁아서 볼일을 어떻게 볼 것이냐 등등
- [47] 실제로 나중에 재검에서 면제가 되건 다른 등급이 나오건, 귀가 자체는 이런 신경과 관련 진단서가 있으면 어렵지 않고 그 정도는 알았을 가능성이 높다.
- [48] 특히 그의 훈련소 생활에 대해 상상하면서 응원하던 대중들이나 그의 입대를 위해 특별하게 준비하던 훈련소 관계자들은 그가 2박 3일만에 금방 귀가하여 면제 판정 받은 일로 인해 바보가 된 것과 다름없었다.
- [49] 특히 2ch에서는...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50] 예정화도 이 학교 출신이다.
- [51] 돈을 갚을 능력과 의사가 없으면서도 돈을 갚겠다고 하고 빌리면 그 자체로 사기죄를 구성한다. 사기 혐의가 인정되었다는 것은 최홍만이 돈을 갚을 능력도 의지도 없이 돈을 빌렸다는 것을 법원이 인정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