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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

변화가 없습니다



본명 김견명(金見明)
자(字) 회연(晦然), 일연(一然)
호(號) 무극(無極), 목암(睦庵)
시호(諡號) 보각(普覺)
출생 1206년 6월 11일 (음력)
사망 1289년 7월 8일 (음력)

1206년 ~ 1289년


소개

고려시대 승려삼국유사(三國遺事)를 편찬했다. 속명은 김견명(金見明). 자(字)는 회연(晦然), 일연(一然)인데, 이중 일연을 법명으로도 사용했다. 호는 목암(睦庵)이다.

경상북도 경산시 출생. 공교롭게도 원효대사와 동향이다. 원효대사도 압량군 출신으로 압량은 오늘날의 경산. 그래서 일연 본인도 삼국유사에서 원효에 대해 '원효의 살아온 내력과 학문이며 업적은 모두 당나라 승전과 행장에 실렸으니 여기서 언급할 필요는 없다'고 썼을 정도. 대신 '이 나라에서 전하는 한두 가지 특이한 일을 적어 둔다.'고 썼다. 현재 경산시에는 일연의 이름을 딴 도로 일연로가 존재하며, 경산시는 자기네 도시를 일연, 원효, 설총 같은 세 성현, 삼성현이 태어난 고장이라고 부른다. 이들의 이름을 딴 원효로, 설총로, 삼성현로가 있다.

1214년 9세에 전라남도 해양(海陽)(현재 광주광역시 인근) 무량사(無量寺)에 대웅 밑에서 학문을 닦다가 1219년 승려가 되었다. 1227년 승과에 급제해서 이 후 22년 동안 비슬산 대견사에서 초임주지를 지냈다. 1237년 삼중대사, 1246년 선사, 1259년 대선사가 되었다. 1261년 왕명으로 선월사 주지가 되어 목우의 법을 이었다.

1268년 운해사에서 대덕 1백여 명을 모아 대장경 낙성회를 조직, 그 맹주가 되었다. 1277년 운문사 주지가 되어 왕에게 법을 강론, 1283년 국존으로 추대되고 원경충조의 호를 받았다. 1284년 경상북도 군위의 인각사를 중건하고 궁궐에서 구산문도회를 열었다.

살아생전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군위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집필하여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삼국유사는 한국 고대 신화와 설화 및 향가를 집대성한 책으로, 현대에서도 고대사를 연구하는 데 삼국사기와 더불어 가장 귀중한 자료이다.

1248~1251년 해안사 팔만대장경 제작시 남해분사도감에서 참여하였다,

미디어에서

징기스칸 4에서 한글판에서만 등장한다. 능력치는 정치는 72, 지력은 86으로 능력치를 보면 문관형 타입이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에서도 언급된다.

시험 출제 유형

"일연은 삼국유사를 편찬하였으며 불교적 색채가 강하다"는 내용의 선지가 자주 나온다. 삼국유사를 김부식의 삼국사기로 바꿔서 출제가 종종되며 단순암기식으로 공부하는 수험생들은 단골로 틀리는 문제다. 생각없이 외우지 말고 제목을 이해하면 전혀 헷갈릴 일이 없다. 삼국유사의 '유사'는 '전해져 내려오는 역사'라는 뜻이고 삼국사기의 '사기'는 '역사를 기록한 책'이라는 뜻이다. 제목만 봐도 김부식이 편찬한 관찬사서가 삼국사기이고 일연이 저술한 야사가 삼국유사일 거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다.
내용면에서도 삼국사기와 비교하는 문제가 출제되는데 삼국사기는 신라 계승의식을 표방하고 유교적인 색채가 강하다면 삼국유사는 고조선 계승의식이 엿보이며 불교적이다. 역시나 서로의 내용을 뒤바꿔서 문제가 출제되는 경우가 종종 있으므로 기억을 해둬야 한다. 이 역시 각각의 시대적 배경과 특징을 이해한다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삼국사기는 문벌귀족 세력이 집권할 당시 편찬된 관찬사서다. 고려의 입장에서는 이전 시대의 왕조인 신라를 계승하였다고 주장함으로써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것이 당연하다. 반면 삼국유사는 원 간섭기에 저술되었다. 외세의 침탈에 시달리면서 민족 의식을 고취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민족의 뿌리인 고조선을 계승했다는 의식이 나타났다고 이해하면 된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이승휴의 제왕운기 역시 고조선사를 다룬 것과도 연결지어 생각해두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