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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중기

이름 오중기 (吳仲基, Oh Jungki)
출생일 1967년 7월 23일 (age(1967-07-23)세)
출생지 경상북도 포항시
최종 학력 영남대학교 철학 학사
소속 정당 {{{#1870B9 더불어민주당}}}
약력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 특별보좌관br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br영남대학교 총동문회 이사br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br청와대 선임행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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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개요

경북의 이름으로, 경북의 힘으로 일어나야만 한다. 그래야만 경북의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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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 선거 연설 中
대한민국의 정치인. 보수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경상북도에서만 10여년째 고군분투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치인이다. 문재인정부 청와대에서 선임행정관으로 일하다 2018년 2월 경북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사퇴했다.

경상북도 포항시 출신으로 대동고등학교, 영남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1967년생으로 age(1967-07-23)세의 젊은 나이가 강점으로 꼽힌다. 문재인 대통령의 두 번의 대선 동안 경북선대위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으면서 신뢰를 쌓아 2017년에는 대구경북 당직자 중에서 유일하게 청와대에 입성했다.

경상북도인동초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활동

정치 입문 전

경상북도 포항시를 대표하는 전통시장인 죽도시장에서 과일, 해산물 도매상을 하던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형제자매는 2남4녀의 육남매로 가정형편이 어려워 아들 둘만 대학의 진학하고 누나들과 여동생은 일찍이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도 중학생 때부터 집안일을 돕기위해 과일배달 리어카를 끌면서 죽도시장에서 오씨 아들로 통했으며 지금도 상인들이 반겨준다고 한다.

학창시절에는 대동중학교대동고등학교를 다니면서 6년 내내 반장을 했다. 고등학생 때 우연히 '4.19혁명론'이라는 책을 보고 선생님께 '4.19는 의거인가요? 혁명인가요?'라는 질문을 했다가 핀잔을 들었는데, 정의라는 단어가 고등학생이던 그에게 가장 소중한 단어로 자리잡았다.

영남대학교 철학과에 86학번으로 입학한 그는 '대학가서 데모하지 마라 인생 망친다'라는 소리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지만 자발적으로 데모에 참석하곤 했다. 그러던 중 집회 현장에서 본 5.18 광주민주화운동 사진 책자를 보고 우리 사회의 모순을 치열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학생회 활동, 철학과 학생회장, 문과대 학생회장을 거쳐 전대협 통일선봉대 대구경북지역대장까지 맡았다. 결국 탄압이 심하던 당시, 1990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배를 받고 7개월 가량 도망다녔으나 붙잡혀 구속되었다.잡히지 않기 위해 여장까지 했다고 한다. 몇달 후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1993년에 특별복권되었으나 전과가 남았다.

대학 졸업 후에는 상경하여 한국일보동아일보에서 일했다.

정치 활동

참여정부가 무차별 공격을 받는 것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던 그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를 계기로 역사적 사명감을 느꼈다. 동서로 갈라진 지역주의 타파가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여겼다. 김근태 전 의장의 권유로 고향인 경북 포항에서 정치에 투신한다.

2008년 포항시 북구 지역구에서 통합민주당 소속으로 총선에 처음 출마했지만 첫 여론조사에서 2%대의 참담한 지지율을 받고 낙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완주하였으나 한나라당 이병석 후보에 밀려 5.8%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쓰라린 패배였지만 이를 발판삼아 경북 지역에서 당세를 키우는 노력부터 다시 시작했다. 예컨대 그가 포항시 북구 지역위원장을 처음 맡았을 때 지역에서 당비 내는 당원이 수십명에 그쳤으나 현재는 자발적 권리당원이 1,000명 이상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그 노력은 2016년까지 총 4번의 도당위원장 당선이라는 전무후무한 결과로 돌아왔다. 지역 당원들이 민주당 경북도당의 성장에 대한 그의 기여를 높게 평가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당내 선거와는 달리 본선에서는 계속해서 고배를 마셨다. 2012년 총선에서 야권단일화를 위해 불출마한 것을 제외하고, 2014년 경북도지사 선거와 2016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시 낙선을 겪었다. 득표율이 낮아 선거비용을 100% 환급받은 적이 아직 없는데, 특히 2014년 경북도지사 선거에서는 15%에 겨우 0.07%포인트가 모자랐다.[1] 안습 2016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새누리당출신 무소속 박승호 후보에 표가 몰려 12.71% 득표에 그쳤다. 이후 2013년엔 제18대 대선 패배 이후 혼란스러웠던 민주통합당문희상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서 비대위원으로 임명되었다. 2016년 경북도당위원장 선거에서는 현역 국회의원인 김현권 의원을 누르고 도당위원장 4선에 성공했다.

2017년 1월, 문재인 전 대표가 구미시청을 방문해 박사모의 습격을 받을 때 이를 온몸으로 방어하다가 아스팔트 바닥에 넘어지기까지 했는데, 이 장면이 유튜브 생중계로 찍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영상 2017년 제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후보의 경북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았다.

2017년 8월, 문재인 정부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중 균형발전비서관실의 선임행정관으로 임명되었다.[2] 균형발전비서관이 일찌감치 사직해 공석인 상황에서 2018년 2월 1일 선포된 국가균형발전 비전 수립을 이끌었다. 직후 사직하여 2018년 2월 5일, 경북도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상북도지사 선거에 재도전하기로 선언했다.

2018년 4월 3일 경상북도지사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단수공천이 확정되었으나# 상대 후보인 이철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하지만 경북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로써는 최선의 결과, 더 나아가서는 최고의 결과를 내었다. 선거비용을 보전받은 것은 덤 이 기록은 역대 민주당계 정당 소속 경북지사 후보가 받은 득표율 최고치를 갱신한 것으로, 직전 기록은 현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인 박명재가 2006년 4대 지선 당시 열린우리당 당적으로 기록한 23.19%이다.

차후 총선이나 지선때 TK지역 공천을 계속 고집한다는 전제하에 그 지역에서 당선이 된다면, 머지 않아 이정현[3], 김부겸, 오거돈, 송철호, 장세용 등에 이어 험지에서 당선된 인간승리의 아이콘이 될 것이다.

당내 이력

선거이력의 안습한 상황과는 달리, 민주당 내에서는 나름 크고 작은 역할들을 맡아왔다. 험지에서 고생하는 만큼 당에서 역할을 맡기는 것으로 보인다.

  • 2008년~: 민주당 포항시 북구 지역위원장[A]
  • 2012년: 제18대 대통령선거 문재인 후보 경상북도 선거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
  • 2012년 5월~: 민주통합당 경북도당위원장 [A]
  • 2013년: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
  • 2013년 9월: 민주당 공천심사위원
  •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당무위원
  • 2017년: 제19대 대통령선거 문재인 후보 경상북도 선거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
  • 2017년: 문재인정부 청와대 균형발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

사건사고

경북도당위원장 경선을 앞둔 2016년 8월 4일 오후 10시 30분께 대구 북구의 한 음식점에서 민주당 지역위원회 간부에게 지지를 부탁하고 5만원 상당 음식물과 현금 50만원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되어 정당법 위반으로 1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관련기사 당세가 약한 경북지역 특성상 고생하는 지역위원회에 대한 격려 및 경비 지급 차원이었다고 해명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논란은 있을 수 있으나 당내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사려깊지 못한 행위를 한 것은 사실이다.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포항 북) 통합민주당 5,609 (5.79%) 낙선 (3위)
2014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북도지사) 새정치민주연합 189,603 (14.93%) 낙선 (2위)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포항 북) 더불어민주당 16,559 (12.71%) 낙선 (3위)
2018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북도지사) 더불어민주당 482,564 (34.32%) 낙선 (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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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선거 비용 100% 환급 기준은 15% 이상의 득표율이다.
  • [2] 사실 지역 도당위원장 정도를 선임행정관으로 임명하는건 격이 너무 약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 [3] 이분은 친박이라는 아킬레스건때문에 막말까지 해서 문제였지 비례대표에 한번 공천한걸 제외하면 호남지역만을 고집하며 끝내 당선까지 했던 사람이다.
  • [A] 정당 이름은 계속 변하였으나 이 지위를 유지한 점을 감안해 그냥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