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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수



한화 이글스 No.33
배영수(裵英洙 / Young-soo Bae)
생년월일 1981년 5월 4일
출신지 대구광역시 북구
학력 대구칠성초 - 경복중 - 경북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0년 1차 지명 (삼성)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2000~2014)br한화 이글스 (2015~)
등장곡 Queen 'We Will Rock You'[1]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ffffff 2002}}} {{{#ffffff 2005}}} {{{#ffffff 2006}}} {{{#ffffff 2011}}}
{{{#ffffff 2012}}} {{{#ffffff 2013}}} {{{#ffffff 2014}}}

수상 기록
2004년 한국프로야구 MVP
2004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투수 부문
2004, 2013년 한국프로야구 다승왕
2005년 한국프로야구 탈삼진왕
2004년 한국프로야구 승률왕
2004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올해의 선수

등번호 변화 일람표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5번
정회열(1999) 배영수(2000~2014) 타일러 클로이드(2015)
한화 이글스 등번호 37번
앤드류 앨버스(2014) 배영수(2015~ 2016) 김진영(2017~ )
한화 이글스 등번호 33번
최윤석(2016) 배영수(2017~ ) 현역

목차

개요

2000년대 중반 KBO리그 최고의 선발 투수
2000년대 우완 트로이카 중 한 명
현역 최다승 투수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칠성초, 경운중를 거쳐 대구의 야구명문 경북고를 졸업했다.

대표적인 별명으로는 삼성 시절의 푸른 피의 에이스,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전에서 30년 발언으로 비록 오해지만 한국에서 밉상으로 찍힌 스즈키 이치로에게 빈볼을 던져 얻은 배열사가 있다.[2] 또 한때는 "절정소년영수"에서 따온 CMB로 삼성 팬들 사이에서 불린 적도 있다. 그리고 슬러거 유저 한정으로 배포크[3]란 별명도 있다. 물론 못할 때에는 얄짤없이 배영구,[4] 더 내려가면 배민폐, 패영수, 배0승으로 격하되며 심할 경우엔 패왕[5]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다만 아래 이야깃거리를 읽어 보면 알겠지만 배영수의 부진 원인이 06시즌의 역투다 보니 삼성 팬들에게는 이래 저래 아픈 손가락이라 부진한 성적에 비해 옹호를 매우 많이 받았다. 성적과 컨디션에 상관없이 영쑤라는 별명도 자주 쓰인다.

2014년 12월 3일 2명의 선발 용병과 윤성환, 장원삼이 선발로 4명의 선발이 확정 된 삼성에게 5선발 자리는 선발 유망주에게 기회를 줄 필요가 있었고,[6] 지속적으로 더 많은 출장 기회를 얻고 싶었던 배영수는 삼성에서 한화로 FA 이적하게 된다.

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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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수가 토미존 서저리를 받기 전까지의 플레이 스타일은 140km/h 중 후반 최고 155km/h 를 기록하는 강력한 속구,[7] 평균속도 130km/h 중후반의 슬라이더130km/h 후반에서 140km/h 정도의 평속이 나오는 스플리터 [8] 로 타자를 윽박지르는 투구스타일로 존 스몰츠 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으로 평가되었다. 이닝 소화 면에서도 2004년 한국시리즈 10이닝 노히트노런을 비롯해 2005년도 최다이닝 4위, 2006년 팔꿈치 부상에도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등의 연투능력이 있는 투수로서 강점을 보였다. 투구폼도 구속을 짜내기 위한 힘을 모으는 과정이 보이는[9] 스터프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투수로 kbo 최정상급의 강속구 투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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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팔꿈치 부상을 입고 토미존 서저리를 받고 난후 구속이 10km/h 가까이 줄어들었고[10] 구위도 감소하면서 더이상 타자들을 압도할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서 2008~2011 시즌을 말아먹고 말았다.[11] [12]하지만 새로운 플레이스타일에 완전히 적응한 2012년 부터는 리그예전처럼 리그에서 탑급 선발은 아니지만 최소한 리그에서 3~5 선발까지는 가능할정도로 회복이 되었다. 그리고 그 플레이스타일을 보자면 예전보다 구속이 떨어진데 기인하여 제구력으로 승부를 보는 스타일로 40% 초중반의 비율로 패스트볼을 던지고 그 이외에 슬라이더와 스플리터를 2:2 비율로 던지고 나머지 커브나 체인지업등을 던지는 스타일로 전성기 투구스타일에서 패스트볼의 비중이 많이 줄어들고 그 자리를 슬라이더와 스플리터의 변화구가 채우고 보여주거나 카운트를 잡는 용도로 커브와 체인지업등 기타 구종이 들어왔다고 보면 될 듯 하다.[13] 그에 맞춰 투구폼도 변화하여 조금 더 구위와 제구를 잡기 위해서 박수를 치는듯한 투구폼[14]으로 예전의 투구폼보다 조금더 투구폼이 빨라졌으며 간결해졌다.[15] 하지만 과거 스터프에 의존하던 선수였던 만큼 제구파 투수로 플레이스타일이 변경되었어도 과거 플레이스타일에 영향이 있는지 경기당 기복이 심해졌다 잘 던지는 날에는 호투, 컨디션 안 좋은 날에는 엄청나게 털리는 경향이 있는게 눈에 보일 정도 다만 제구력만큼은 2005년 이후로 줄곧 리그 상위권이었다. 시즌 볼넷이 40개를 넘은 시즌이 손에 꼽을 정도.[16]

선수 경력

삼성 라이온즈 시절


영원할 것만 같았던 푸른 피의 에이스
삼성 라이온즈의 프랜차이즈 스타

입단


200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았으며[17] 1999년 11월, 팀 고졸신인 역대 최고 계약금이었던 2억 5천만 원을 받고 입단했다.[18]

입단 후~200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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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열사라는 칭호를 얻었던 2006년 제1회 WBC에서의 모습.
분명 위기상황을 맞이한건데 다들 표정이 좋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눈꼴사나웠던 이치로를 저격했기 때문이지.

파워 피쳐로 리그를 호령하던 최고의 선발투수
2000년대 삼성 팬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에이스

배영수의 최대 전성기 시절. 당시 최대 150km/h대 중반의 광속구와 140km/h를 넘나드는 슬라이더 두 구질만으로 리그를 평정했다.무엇보다 경기내내 평균 140키로후반대의 공을 꾸준히 던졌는데, 이는 당시 다른 선발들중 구속하나론 비교할만한 상대가 없었으며 최근 리그 수준을봐도 평균구속 최상위권에 랭크될만한 구속과 강인함을 지녔었다. 엄청난 기대를 받고 입단한 그는, 입단 첫 해에는 1군과 2군을 오가며 승리 없이 평균자책점 6점대를 기록하지만, 이듬해인 2001년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해 임창용과 함께 원투펀치로 활약하며 13승을 거두고, 삼성이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두었던 2002년에는 소모포어 징크스가 심하게 보이며 주춤했으나, 2003년 13승, 2004년 17승, 2005년 11승을 올리며 3년 연속 10승 이상을 거두며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특히,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기록했던 3년 연속 2점대 평균자책점을 찍기도 했다. 2006년 시즌엔 8승 9패로 비록 10승을 달성하진 못했다 하더라도, 팔꿈치 부상을 가진 상태로 평균자책점 2.92(...).[19][20] 심지어 후술한 것 처럼 2006년에는 정규시즌 내내 팔꿈치 통증을 달고 뛴 선수의 기록이 저 정도라니... 아니, 이게 사람인가?

2004년 35경기 동안 4완투(2완봉) 하면서 17승 2패 평균자책점 2.61로 다승과 승률 부문 1위를 기록하며, 선발 투수로는 1990년 선동열 이후 14년 만에 정규리그 MVP로 선정되었다.[21][22] 특히 한국 시리즈 4차전에서 10이닝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였으나, 팀 타선 또한 한점도 못내는 바람에 0대0 상황에서 연장 11회초 권오준에게 마운드를 넘겨주며 해당 경기의 개인 노히트 노런 기록은 달성하지 못하게 되었다. 경기는 연장 12회까지 가서 시간 제한[23]에 걸려 0:0 무승부로 끝났는데, 경기 중 권오준이 안타를 맞아 팀 노히트 노런도 달성하지 못하고 말았다. 안습.

2005년에는 정규시즌 동안 11승을 올리면서 147개의 탈삼진으로 탈삼진왕에 오른적이 있다. 이 활약으로 2006년 제1회 WBC의 국가대표 A팀에 승선하여 중간계투로 활약했으며, 특히 1라운드 A조 3경기 일본과의 경기에서 6회말 1사 후 봉중근을 구원하여 올라와 ⅔이닝을 잘 소화한 다음 7회말 일본의 공격 때 선두타자였던 이치로를 초구부터 141km/h짜리 속구를 엉덩이 쪽으로 던져 맞춘 것이 유명해져 배열사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2006 시즌

비극의 시작

배영수는 2006년 결국 팔꿈치 통증을 호소한다. 그리고 선뚱은 그런 그를 위해 등판을 늦추거나 하다가 시즌 말미에는 불펜진에 합류시켰다. 한국시리즈에서 2승 1세이브 1홀드를 기록한 배영수(이긴경기 모두 등판)였으나, 경기 후에는 팔꿈치가 안 펴지고 경기에 나서기 전에 진통제[24][25]주사를 맞아야 할 정도로 그의 팔꿈치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실제로 이미 시즌 말미인 9월부터 팔꿈치 통증이 심각해 한국시리즈 엔트리 승선 조차 불분명 할 정도였다. 그야말로 자신의 팔꿈치와 삼성의 통합우승을 맞바꾼 셈... 이 때 당시의 희생으로 영구 까방권을 획득해 이후 몇 년씩 부진해도 대다수의 삼팬들은 그를 욕하지 않았다. 물론 2009시즌 부진 때 멋도모르는 뉴비들은 패왕이라고 씹어댔다.

결국 한국시리즈 후에 토미존 수술을 받게 된다. 그러나 보통 선수들이 팔꿈치 인대가 늘어나거나 일부 손상된 상황에서 수술을 받는데에 비해, 배영수의 팔꿈치는 아예 끊어진 상태로 조브 클리닉 역대 최악의 상태였다고.
수술 소식을 들은 박찬호는 배영수에게 "(재활기간)2년 생각해라"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게다가 배영수는 선천적으로 간수치가 높아 예정보다 2달 가량 늦게 수술했다. 하지만 당시 감독은 박찬호의 말을 무시하고 말았는데...

2008 시즌

너무 빠른 복귀

수술 후 2007 시즌은 재활로 보냈는데, 회복이 빠른데다 팔꿈치 통증이 없어 당초 예상보다 빠른 2008 시즌 전에 복귀했다. 평균구속은 130대 후반으로 떨어지고, 변화구 위주의 피칭을 하게 되었지만 9승 8패 평균자책 4.55로 부상당했던 선수의 복귀 시즌 치고는 괜찮은 성적을 기록했다. 특히 시즌 막판 두 번의 선발등판에서 연이어 시속 140km 초반까지 구속을 끌어올리며 좋은 모습으로 시즌을 마무리 했기 때문에 내년 시즌을 더욱더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회복되지 않는 구속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던 한 해였다.#

2009 시즌

우려가 현실이 되다

잃어버린 10km로 표현하는 그의 구속을 2009 시즌 들어서도 되찾지 않자 자신감을 잃어버렸고, 성적마저 나빠지자 결국 5월, 1승 7패의 상태에서 계투로 강등되었다. 그리고 6월 11일에는 결국 2군으로 내려갔다. 7월 초 다시 1군에 합류했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자, 결국 8월 18일에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다.#

2009년 최종성적은 23경기 75⅔이닝 1승 12패 평균자책 7.26.

후일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때 배영수는 야구를 그만두려고 했었다. 하지만...#

2010 시즌

역시 부진한 시즌이였으나 포스트시즌 드디어 빛이 보였다.


3월 31일 무등에서 펼쳐진 기아와의 원정경기에서 시즌 첫 선발등판을 한 배영수는 5이닝동안 1실점만 하며 무난한 출발을 알렸다. 당시 무등구장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세경기가 모두 우천순연 되었으며, 무등구장 역시 비가 오락가락 하는 날씨가 이어졌으나 1회와 4회를 제외하면 큰 위기 없이 첫 등판을 치룬 모습에서 팬들에게 이번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다소 높이게 했다.

그리고 4월 7일 대구에서 펼쳐진 넥센과의 홈경기에서 7이닝 무실점 완벽투구를 보이며 344일만에 승리투수가 되었다. 2009시즌의 악몽을 떨쳐내는 정말 눈물의 감격투 그 자체였다. 이 기세를 몰아서 4월 13일 잠실에서 펼쳐진 LG와의 원정경기에서도 7이닝 무실점 또 한번의 완벽투구를 보이며 승리투수가 되었다. 이 때 당시 평균자책점은 무려 0.47! 하지만 이 후 문학 SK전과 대구 두산전에서 각각 5이닝 6실점(4자책), 5이닝 3실점의 내용을 보이며 다소 아쉽게 4월을 마무리 했다.

이 후 5월 1일 대전 한화전에서 5이닝동안 1실점하며 다시 승리투수를 하면서 좋은 흐름을 찾는가 했는데, 이 후 SK와 두산을 상대로 연속 5이닝 미만 투구로 조기강판되면서 강타선을 보유한 상위팀을 상대로는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5월 중순까지의 투구 내용을 보면 위의 기사와 달리 실제로 구속은 회복되지 못했고,[27] 예전처럼 묵직한 구위를 앞세운 속구위주의 투구를 더 이상 보여주기는 힘들기 때문에 기교파 투수로 변신했으나 강타선을 보유한 두산, SK와의 대결에서 다소 애매한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다. 심지어 5월 20일 대구에서 열린 LG와의 경기에서는 1⅓이닝 동안 5실점(4자책)으로 통타당하는 모습까지 보이면서 결국 계투진으로 강등당하고 만다.

계투진에서도 다소간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서 또다시 부진의 늪으로 빠지는게 아닌가 했던 배영수였지만, 여름이 되면서 구속이 오르자 반등하기 시작했다. 6월 11일 대구에서 열린 넥센과의 홈경기에서 선발 장원삼이 3이닝만에 5실점하며 조기강판되자, 4회부터 마운드에 오른 배영수는 8회까지 이닝을 책임지며 5이닝 동안 3실점의 투구내용을 보여주었다. 당시 등판에서 비록 8피안타(1피홈런)를 허용하기는 했으나, 사사구가 하나도 없으며 어느정도 살아난 구위와 날카로운 변화구로 공격적인 피칭을 하면서 효율적인 투구수로 5이닝을 책임져 준 것이 위안 삼을만한 부분이었다. 이어 6월 16일 사직에서 열린 롯데와의 원정경기에서 선발 이우선이 3이닝만에 6실점으로 무너지자, 4회부터 마운드에 오른 배영수는 3⅓이닝 동안 3탈삼진 무실점 투구내용을 보여주며 이 후 삼성으로 경기를 가져오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 역시 로나쌩 클럽 회원 이 경기로 인해 배영수는 3일 뒤인 6월 19일 대구에서 열린 한화와의 홈경기에서 선발로 복귀하여 등판했는데 5이닝 2실점의 투구내용을 보이며 괜찮은 흐름을 계속 이어나가게 된다. 3일만의 등판이었기 때문에 4회, 5회에 피안타가 늘어난 것이 아쉬운 부분이었다.

선발진 복귀 이 후 4선발 정도의 역할로써 다소 퐁당퐁당하는 피칭을 보여주다가, 7월 15일 대구에서 열린 두산과의 선발로 나온 경기에서 김상수가 5회에만 악송구와 쉬운 땅볼타구를 잡지 못하는 클러치 실책을 두 번이나 하자 '상수야 상수야' 이름 두 번 부르고 괜찮다고 고개 한 번 끄덕이고 다시 돌아가는 대인배적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이 날 경기에서는 5이닝 동안 3실점(1자책)의 투구를 보이며 시즌 5승을 올리게 되었는데, 이전의 두산전 투구보다 훨씬 양호한 내용을 보여주었기에 남은 시즌의 등판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 후 5경기의 선발 등판에서 1번의 ND와 4번의 패전을 떠안게 되는데, 8월 11일 사직 롯데전의 3이닝 7실점을 제외하면 선발로써 최소한의 역할은 해냈지만, 유난히 배영수의 선발 등판 때 상대팀 역시 에이스를 출격시키면서 타선의 지원을 여름삼성 치고는 적절히 받지 못한 것이 패를 쌓게 된 부분이기도 했다. 선동열 감독은 이후 배영수를 다시 계투로써 활용하며 컨디션 조절을 하도록 했고, 8월 22일 무등에서 열린 기아와의 원정경기에서 선발 차우찬이 3⅓이닝 만에 6사사구를 남발하며 투구수가 폭발하자 다음 투수로 구원등판해 2⅔이닝 동안 4탈삼진 무실점 투구를 하며 시즌 6승을 챙겼다. 특히 전광판에 시속 146km까지 찍히기도 했다. 진짜 잃어버린 구속 10km를 드디어 찾는 것인가...!

이어 8월 26일 대구에서 열린 두산과의 홈경기에서는 무려 1852일만에 세이브까지 기록하게 되었는데, 9회 2사 후에 피안타를 허용한 권혁을 구원하러 등판한 배영수는 첫 타자 김동주에게는 안타를 허용했으나, 다음타자인 최준석을 상대로 바깥쪽에 시속 141km 속구를 정확하게 꽂아넣으며 루킹삼진으로 팀의 승리를 지켜내는 세이브를 올리게 되었다. 이 후 시즌 나머지 5번의 선발 및 구원 등판에서는 크게 무너지는 일 없이 무난하게 투구하며, 정규시즌을 마무리 했다.
최종 성적은 31경기(선발 20경기, 구원 11경기) 119⅔이닝 6승 8패 1세이브에 평균자책점 4.74를 기록하였다.

4점대 후반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전성기 시절보다는 많이 부족한 모습을 보였지만, 시즌을 치룰수록 구속이 시속 140km대를 넘기 시작했고 구위 역시 회복하면서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으며, 아직 나이도 만 서른이 안됐으니 제 2의 전성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28]

그리고 포스트시즌에서 배영수는 시리즈 균형을 맞추고 한국시리즈의 희망을 높이는 결정적인 세이브를 올리게 된다.

팀이 시리즈 전적 1승 2패로 지던 10일 11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스코어 8:7로 불안한 리드를 지키고 있던 8회말 2사 3루 상황에서 7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1⅓이닝 17투구수 2탈삼진 무실점 을 기록했고, 한 점차를 지키는 퍼펙트한 피칭을 보여준 배영수는 시리즈 전적 2승 2패를 만드는 중요한 세이브를 따냈다, 이 경기에서 거의 전성기급 구속인 최고 구속 147km/h, 포크볼은 140km/h까지 찍어서 삼성 팬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배영수는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3경기 8⅓이닝 5피안타 5사사구 5K 3실점 3자책점 평균자책점 3.24, 1패 1세이브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는 1경기 4⅔이닝 4피안타 3사사구 3K 2실점 2자책점 평균자책점 3.86, 1패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배영수는 2010년 포스트시즌 9경기 중 4경기에 등판하여 13이닝 9피안타 8사사구 8K 5실점 5자책점 평균자책점 3.46, 2패 1세이브를 기록했다.

일본 진출 시도

2010 시즌을 끝으로 FA가 되는데, 한신 타이거즈에서 배영수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기사가 뜨기도 했으나, 한창 좋았던 시절의 배영수만 알고 있는 한신 스카우트 말이나 당시 배영수의 상태를 보면 그저 찌라시에 불과할 가능성이 99%. 그리고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스카우터가 배영수의 피칭을 보기도 했다. 과거 배영수의 가능성을 보고 이런 관심을 보이는 듯.

결국 삼성에서의 잔류를 포기하고 일본프로야구 진출을 시도 중이라고 밝혔다. 영입에 가장 적극적인 팀은 야쿠르트 스왈로즈[29]한신 타이거즈가 있으나 투수진이 전체적으로 강력한 야쿠르트보단[30] 비교적 약한 편의 한신으로 갈 확률이 높았다.[31] 더구나 타격 면에선 한신이 야쿠르트보다 좋은 편.

마침내 결정된 곳은 야쿠르트로, 등번호까지 결정되었을 정도로 계약이 거의 다 되었는데 메디컬 테스트 결과 B형 간염 보균자라는 이유로 계약이 결렬되었다고 한다.[32] 이걸 계기로 배영수는 'B형수', 'B영수'란 별명을 얻었다. 안티들은 배영수가 대구출신이고 간염 보균자다 보니 상어를 염장하여 구운 경북 대구 음식인 돔배기에 빗대 '돔배영수'(...)로 부르기도 한다.[33]

결국 삼성과 FA계약을 체결했다. 2년간 옵션 포함 총 17억원으로 계약 조항에 해외진출을 원하면 조건없이 보내주는 조항이 있다고.

2011 시즌

시즌 초반 반짝했으나, 끝이 보이지 않는 부진의 터널

작년 시즌 부활의 전조를 알리는 모습을 보였기에 팬들 또한 이번에는 부활할 것이라는 기대 속에 시즌을 시작했다.
4월 10일 문학 SK전과 4월 17일 대구 두산전, 4월 23일 목동 넥센전에서 연달아 승리함으로써 내리 3승을 거두었다. 삼성팬들에게는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5월 1일 한화전에서 8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고도[34] 팀 타선이 1점 밖에 내지 못해 패전투수가 되었다. 가뜩이나 삼성타자들이 부진한데다가, 한화 선발투수가 류현진이었는지라... 지못미. 본인은 최선을 다해 던졌기 때문에 아쉬움도 후회도 없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 날 경기는 철저히 투수전으로 진행되는 바람에 5시에 시작해 7시반에 끝나는 기염을 토했다. 타 구장엔 5회말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 곳도 있을 정도로.

5월 말까지 벌써 5승이나 올리면서 좋은성적으로 선발진에 큰 힘을 보태주고 있었으나, 6월부터 슬슬 부진하기 시작하더니 7월 말까지 이 기간에만 승리 없이 3패를 떠안게 된다. 평균자책점도 3점대 중반에서 5점대 중반까지 상승하고 말았다. 사실 이 기간 중에 QS도 2번을 기록 했으나 5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조기강판 된 경기 또한 4번이나 되었기에 본인 입장으로서도 매우 아쉬웠을 듯 하다.

그렇게 계속된 부진에 늪에서 헤매이다가 8월 7일 사직에서 펼쳐진 롯데전에서 7이닝 1실점으로 QS+를 기록하며 77일만에 승수를 추가하였고, 명투구를 선보여 팀을 위닝 시리즈로 이끌어냈다. 하지만 이 후 8월 13일 대구 기아전과 8월 23일 청주 한화전 두 번의 선발등판에서 부진하면서 작년에 이어 시즌 말미에 다시 불펜으로 이동하게 된다. 8월 말 부터 시즌 종료까지 구원등판의 기록은 7경기 등판 11⅓동안 9탈삼진을 얻으면서 단 3실점(ERA 2.38)했으며, 홀드는 1개를 추가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팀이 시리즈 전적 2승으로 앞선 2011년 10월 28일 인천 문학 경기장에서 열린 SK와의 한국시리즈 3차전, 팀이 1:2로 뒤진 8회말에 등판하여 정근우에게 안타, 박재상에게 희생번트, 최정에게 유격수 땅볼 진루타를 허용, 2사 3루에서 마운드를 내려왔다. 다음 투수인 권혁임훈을 운 좋게도 3루수 라인드라이브로 잡아내어 이닝을 끝낸 덕분에 배영수의 실점과 자책점은 없었다.

한국시리즈에서 10이닝 노히터를 기록했던 선수가 세월이 흘러 지고 있는 경기에서 구원 등판하여 3타자만 상대하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다. 배영수의 이날 성적은 ⅔이닝 15투구수 1피안타 무사사구 무실점으로, 이날 경기가 배영수의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경기가 되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했다.

20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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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26일 7년만의 10승 투수에 오름과 동시에 개인 통산 100승을 기록한 경기에서.

에이스의 재림
많은 삼팬들을 울린 원조 에이스의 부활

자세한건 해당 문서 참조.

20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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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 구단 체제 이후 최초로 8개 구단 상대 승리투수가 된 경기.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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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한국시리즈 미디어데이에서
9년만에 다승왕 수상

에이스라 하기에는 성적이 모자라지만 삼성 선발진의 한 축으로 꾸준히 뛰면서 2004년에 이어 또다시 공동 다승왕을 수상했다.

자세한건 해당 문서 참조.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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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25일, KBO 통산 120승 달성

자세한건 해당 문서 참조.

FA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다.

준수한 5선발로 활약했으나 시즌 후 FA 협상장에서 삼성으로부터 최초 2년, 최종 2+2년을 제시받고 우선협상이 결렬됐다. 무옵션에 바로 가치를 보장받은 동갑 윤성환이나 백업인 조동찬보다도 못한 대우에 실망하고 "기회를 원한다."라는 말을 남기고 FA시장으로 나갔다. 이런 상황이 안타까웠던 팬들은 지역 신문에 배영수를 위한 광고를 걸기도 했다.

결국 한화로 확정. 3년 21.5억의 값으로 결정됐다. 그 과정에서 직원이 안지만, 윤성환 등의 계약을 하는데 배영수를 1시간 동안 멍하니 기다리게 했다고 한다. 배영수 '길었던 1시간' 그리고 한화행. 하지만 작성한 기자가 기자인 만큼 걸러서 볼 필요가 있는 기사다. 그리고 이런 수법은 필요없어진 직원을 모멸감을 줘서 제발로 나가게 할 때 쓰이는 흔한 수법이라 온전히 실수라고 보는 것은 순진한 시각이다. 또 다른 기사에서는 저녁에 경산볼파크에 왔다가 허탕치고 10시에 불러서 다시 나갔다고 하니, 1시간이 아니라 몇시간씩 방치되었다고 주장했다. ['한화행' 배영수 "광야에서 기다림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안현호 단장은 '전부 1~2시간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었다. 마지막 협상이고 시간이 촉박해 개별적으로 약속을 잡을 상황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때 한화의 김성근 감독이 전화를 걸어 왔고 단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직접 찾아가서 성의를 보인 한화 이글스로 데뷔 후 14년만에 팀을 이적하게 되었다. 김성근 감독 “영수야, 야구 오래해야지”… 배영수 “예, 감독님.”

배영수가 삼성을 떠날 수 밖에 없던 이유라는 기사에서 정리된 바에 의하면, 연간 금액으로 따지면 삼성과 한화가 제시한 액수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또한 일부의 루머와 달리 배영수는 "내가 구단 측에 선발을 보장해달라는 요구를 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같은 기사에 따르면 협상 과정에서 수치심까지 느꼈다고. 배영수 CBS 인터뷰 전문 참조. 팬들이 지역신문에 낸 광고를 보고 너무 감사하고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인터뷰 내용은 이틀 전 그가 한 "누구도 원망 안한다. 정말 실수였다고 생각한다. 오해는 없다"라는 발언과는 배치되는 내용이라 그 사이에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철우 기자를 통해 "30경기"도 못나왔으니 홀대받았다는 언론 플레이를 하면서 삼성 프론트의 삽질여부와 별개로 11년, 13년, 14년 4점대 평자를 찍었는데도 묵묵히 기다려 준 코칭스태프와 팬들을 한순간에 바보로 만들어 버렸고 사이영수상까지 만들었던 삼갤은 배영수의 이름이 언급되면 반드시 30경기 이야기를 추가로 붙히는 불문율까지 생겼다. 이 후 정철우는 본인이 경솔한 기사를 썼던 것을 사과한다며 애플 베이스볼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네이버에 연재하기도 했는데 이 애플이 아무리 봐도 삼성전자의 라이벌인 그 애플을 떠올리게 해서 사과는 커녕 의도적으로 비꼬는게 아니냐는 비아냥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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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배영수는 8승 6패 ERA 5.45, 윤성환 12승 7패 ERA 4.39.
한국시리즈 배영수 3⅓이닝 3실점, 윤성환 2승 13이닝 2실점이다.
그리고 윤성환은 배영수보다 데뷔가 4년 늦었다는걸 감안해도, 팀내 토종 1선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FA 전까지는 연봉이 배영수보다 높았던 적이 없다.

12월 15일 보상선수로 정현석이 지명되었으나 선수 개인 사정과 삼성 프런트의 실책으로 인해 결국 연봉 300%의 보상금으로 바뀌었다. 자세한 내용은 정현석 문서 참고.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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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한 짤 요약.gif 식빵 한번 찰지게 잘 굽는다[35]

삼성이 버린 투수는 줍지 마라.??:어리둥절
32경기 4승 11패 1홀드 방어율 7.04

송은범과 함께 (심지어 대구원정을 피하고도) 훌륭한 먹튀로 거듭난 시즌. 그래도 주운 것 중 하나는 터졌잖아 어깨가? 아니, 팔꿈치

더불어 그렇게 부르짖던 많은 기회는 불펜알바로 원없이 부여받게 되었다. 30경기 넘게 뛰셨으니 만족하셨겠죠

송은범은 시즌 막판에 불펜전환이라도 해서 얼마정도 밥값은 해줬는데 이분은 불펜 전환을 해도 먹튀 확정.

자세한건 해당 문서 참조.

2016 시즌

FA 2년차에 속구 구속이 130km/h도 안나오는 37억 선수
한화팬들: 헤이 영쑤 플리스 퍼킹 돈 두 댓!!!

2015 시즌 후에 팔꿈치 뼛조각 수술을 받았다. 예정되는 복귀 시점은 5월이였으나, 재활이 지지부진하면서 결국 2016년 시즌을 말아먹을 것으로 전망되며 먹튀가 확정되었다. 관련 기사

재활이후 5월 20일 경희대와의 3군 경기에 등판했는데, 당일 경기에서 2이닝 2실점을 기록했다. 그런데 속구 최고구속이 131km/h, 평균구속이 129km/h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관련 기사

6월 14일 소프트뱅크 3군과 한화 2군간 교류전에서 3⅔이닝 1실점 했다. 관련기사. 이날도 역시 속구 구속이 130km/h도 안나왔다. 우완의 유희관

6월 21일 기아 2군과 경기에서 4이닝 7피안타 5실점(2자책)했다. 일단 1회 선두타자부터 2루타를 뻥뻥 맞은데다가 1루수의 수비 실책이후 희생플라이, 2루 땅볼로 2아웃을 잡고 연속 장타를 맞으며 1회부터 3실점. 강판된 후 구원으로 올라온 안영명이 4이닝 1피안타 무실점을 깔끔하게 막은 것과 대비가 될 지경.

배영수 더 추해지기 전에 은퇴해야... 이미 추할대로 추해졌다

1일 저녁 급작스럽게 1군으로 콜업되었다. 속구 구속이 140km를 넘어섰다는 소식을 들은 김성근 감독이 송은범, 안영명이 빠진 투수진에 합류시킨 것으로 보이는데, 슬럼프를 이겨낼 경우 실낱같은 가을야구에 대한 희망고문이라도 기대할만 했으나... 한번도 등판하지 못하고 1군에 등록된지 4일만에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올해 배영수의 문제는 잃은 구속 문제와 더불어 앞으로 제구력 위주의 피칭을 해야 하는데 유희관과 다르게 제구와 구위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점이다. 당장 피홈런이 많은 것은 물론 피안타율과 피장타율이 각각 3할대, 4할대 후반인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투수 본인의 자신감을 잃었다. 은퇴 드립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2군 최종성적은 7경기(5경기 선발, 2경기 구원등판), 2패(선발 1패, 구원 1패), 승률0.000, 28.2이닝, 39피안타(1피홈런), 6볼넷, 2사구, 13탈삼진, 23실점, 17자책, 피안타율 0.331, QS 1회, WHIP 1.640

이번에 미야자키 교육리그에 참여했는데, 성적이 좋지 않으면 사실상 내년에 기회는 없다고 보면 될 듯하다.[36]

고무적인 것은 교육리그에서 구속이 144km까지 상승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감독의 유임이 점쳐지는 기사가 나오는 중이라 그냥 드러누우라는 (...) 반응도 많다.

11월 12일에 미야자키 교육리그에서 인터뷰한 기사가 올라왔다. 기사에 따르면 계형철 코치가 1:1 개인지도를 하고 있으며, 불펜피칭을 1800개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시즌 후 등번호를 33번으로 변경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사실 금지어와 연관 깊다. 학창시절 은사로 포장되고 인연이 되었다지만, 살려조 못지않게 특유의 혹사 패턴에 걸려들었다. 칰금님 못지 않게 성실하게 잘 따라주었으나, 권혁과 함께 관리가 필요했던 선수를 선발과 불펜 구분 없는 하루살이 야구에 갈아 넣었던 것이 컸다. 이미 삼성의 우승에 팔을 바치고 토미존 수술을 받던 그는, 토미 존 수술을 창안한 프랭크 조브 박사가 직접 수술 결과를 점검했고 조브 박사의 제자가 집도했는데, 이리 엉망인 선수는 처음이라 평했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재활도 지나치게 서둘렀다는 이야기가 있는 선수가 이적 후에 그 따위로 굴렀으니.. 결국 2015년 팔꿈치 뼛조각 제거 시술을 받았다.

당장 일부 한화 팬들의 몸값에 걸맞는 결과냐는 반감이 있었고, 그들도 딱히 감싸줄 이유는 없기에 결과로 까서 금지어의 보위에만 신경 썼다. 이른 시기 금지어보다 먼저 와서 성실히 그의 방침을 따랐던 칰금님도 같은 경우였다. 결국 자서전에 쓸 미담은 그놈들이 금지어에게 챙겨주고 비난은 선수들이 받은 것.

2017 시즌

드디어 밥값 한 시즌
주황피로 물들이다
해당 항목 참조.

2018 시즌

헤이 영쑤 돈 내 놔
5선발도 안되니 돈 값하긴 영영 글렀다.
이젠 먹히지 않는 구위

16시즌을 통째로 날린 탓에 FA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채 5천만원 깎인 연 5억에 새로 계약을 체결했다. 본인은 더 많은 금액 삭감을 예상해 오히려 감사하단 발언을 하기도 했다.

스프링캠프에서 20대 후배들을 한식당에 데려가 원하는만큼 밥을 샀다고 해서 간만에 칭찬을 들었다. 34억은 어디서 뭐하냐는 비난은 덤 34억 서산에서 의문의 1패

그런데...감독에 의하면 시즌 초 10일에 한 번씩 던지게 할 것이라고 한다. 시즌 초 한 번 선발등판 후 2군으로 내려 휴식을 주면서 젊은 투수들을 시험해볼 심산인 듯. 올해 31번 선발로 등판한다면 송진우의 통산 최다 선발 등판 기록을 넘어 1군 통산 378번의 선발 등판이 가능하겠지만, 감독이 공헌한대로 기용된다면 내년을 바라봐야 할 듯 하다.

3월 16일 KT wiz전에 선발등판하여 4이닝 2피안타 2볼넷 2탈삼진 2실점을 기록하였다. 1회는 무사히 넘겼지만, 2회 연속 볼넷 후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고 연속 폭투로 1실점하였다. 3회에도 2루타 허용 후 폭투로 1사 3루가 되었고, 유격수 앞 땅볼 때 3루 주자가 홈에 들어와 1실점 하였다. 4회는 삼자범퇴 처리하고 송은범에게 마운드를 넘겨주었다. 아쉬운 실점 과정 탓에 감독이 송은범과 함께 실망스러웠다는 평을 남겼다.

3월 28일 NC 다이노스전에 선발등판하여 1회 박석민에 2타점 적시타를 맞는 등 흔들렸으나 그 이후로 깔끔한 피칭을 선보이며 6이닝을 소화해 6이닝 2실점으로 QS를 기록하고 서균과 교체되었다. 다만 타선이 투수 교체 후 터진 탓에 승리 투수가 되진 못했다.

4월 3일 선발 등판. 결국 팀 자체가 올해도 선발에서 파산 직전의 카드빚 돌려막기 수준이라는 현실을 감독이 깨닫고 있는 건지 전에 한 말을 뒤집고 활약이 좋은 배영수에게 5일 등판을 시키고 있다. -- 두산 시절의 감각으로 운영할수록 파탄이 날 뿐이니... -- 그리고 3.1이닝 8자책으로 완전히 망해서 패전...투수가 되었어야 하나 이미 타선은 3회까지 김원중장시환을 탈탈 털어버려 11점을 뽑아놓아 역전을 허용하지 않았고 이후 타선이 추가로 6득점을 하며 무려 17득점을 지원해준지라 ND. 시즌 2호 대첩

4월 14일, 열흘의 기간을 사이에 두고 선발로 등판, 5⅔이닝 동안 3피안타 4사사구 4K 1실점을 하며 승리를 거두었다. 1, 2회 때 두 번 연속으로 만루를 만드는 등 볼넷과 안타를 남발하며 59구 가까이 던져 5이닝은 커녕 3이닝을 채울 수 있는가 의문인 상황이었지만, 거짓말처럼 3회부터 달라진 피칭으로 나머지 3⅔이닝을 48구만으로 마무리 지으면서 올 시즌 한화 이글스 토종 선발 첫 승을 거두었다. 이날 하필이면 직전 시즌 벤치클리어링의 기억이 있고 통산 124승[37]을 노리던 윤성환이 선발이었던지라 친정팀에 더 쓴 패배를 안겼다.

4월 20일 5일을 쉬고 넥센전 선발로 등판했으나 4이닝 5자책으로 멸망했다. 정말 10일 휴식밖에 안되는 걸까...

4월 27일 1주일만에 선발 등판했는데 4회까지는 1실점으로 틀어막았으나 첫 타자에게 안타를 맞은 뒤 보크 그리고 나종덕에게 2연속 위협구를 던졌고, 2번째 공이 헬멧에 맞았고, 처음에는 퇴장 선언을 안했으나 조원우 감독의 항의 끝에 퇴장당했다. 롯데와의 경기때 부정투구 논란이 있었던만큼 논란이 쉽사리 가라앉지는 않을 듯 하다. 8회초 김태균의 동점 적시타가 터져 패전은 일단 면했다.

5월 3일 5이닝 1실점으로 나름 잘 던졌으나 이태양의 방화로 ND. 여담으로 이날 박용택에 삼진을 뽑아내며 1400K를 기록했다. 현역 최다 기록.

5월 11일 NC전에서 7이닝 2실점으로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를 기록했다. 추가로 역대 5번째 2100이닝을 달성했다. 이 역시 현역 최다. 그러나 9회말에야 김태균의 동점 투런포가 터져 노디시전.

5월 18일 LG전에서는 수비 지원을 못받고 4.1이닝 2실점 7K를 기록했다. 만루 장작을 쌓고 내려갔지만 용케 이태양이 급한 불을 꺼 실점이 추가되진 않았고, 6회 병살타로 동점이 되어(...) ND.

다만 ERA는 5.40으로 높은 편에 비해 FIP는 4.06으로 수비의 도움이나 운이 대체적으로 없었다. 결국 운빨이라는 것도 지속적일 수 없기 때문에 성적이 오를 여지는 있다.

5월 24일 두산전에서는 6.1이닝 6실점으로 대량실점해 패전 투수가 되었다. 그런데 손가락 물집이 터져 피가 났는데도 7회 1사까지 던진 거라고 한다.

5월 30일 NC전에서는 초구에 선두타자 박민우에 홈런을 맞는등 5이닝 3피홈런 4실점으로 부진했으나[38] 타선이 2회에만 8점을 뽑아내준 덕에 승리투수가 되었다. 통산 137승으로 현역 최다승 기록을 스스로 갱신했다. 선동열의 대기록 -7.

6월 5일 LG전에서는 5이닝 7실점 13피안타로 무너지며 패배의 원흉이 되었다. 경기 후반 3점을 내며 분전한 타자들의 노력이 빛을 발했다. 팬들은 2군행 보다 은퇴를 종용할 정도로 투구 내용이 매우 부진하였다. 결국 다음날(6/6) 1군에서 말소됐다.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 경기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0 삼성 25 45⅓ 0 2 0 0 0.000 6.75 59 9 24 32 36 34 1.77
2001 35 169⅔ 13 8 0 0 0.619 3.77 169 11 97 96 82 71 1.52
2002 22 81⅓ 6 7 0 0 0.462 5.53 94 13 48 63 55 50 1.68
2003 30 163⅔ 13br(3위) 5 0 0 0.722br(5위) 4.51 174 11 84 99 85 82 1.53
2004 35 189⅔br(3위) 17br(1위) 2 0 0 0.895br(1위) 2.61br(3위) 163 6 85 144br(4위) 65 55 1.25br(5위)
2005 31 173br(4위) 11 11 2 1 0.500 2.86br(2위) 148 10 59 147br(1위) 61 55 1.13br(2위)
2006 32 157⅓ 8 9 0 4 0.471 2.92 142 13 47 133 56 51 1.14
2007 1군 기록 없음
2008 27 114⅔ 9 8 0 0 0.529 4.55 127 15 41 71 59 58 1.44
2009 23 75⅔ 1 12 0 0 0.077 7.26 106 18 29 40 73 61 1.69
2010 31 119⅔ 6 8 1 0 0.429 4.74 136 11 45 64 69 63 1.45
2011 25 103 6 8 0 1 0.429 5.42 127 5 33 47 67 62 1.50
2012 26 160 12br(5위) 8 0 0 0.600 3.21 159 7 42 89 64 57 1.24
2013 27 151 14br(1위) 4 0 0 0.778br(2위) 4.71 193 9 52 101 83 79 1.53
2014 25 133⅔ 8 6 0 0 0.571 5.45 171 14 44 111 87 81 1.57
연도 소속 경기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5 한화 32 101 4 11 0 1 0.267 7.04 124 21 53 56 93 79 1.61
2016 1군 기록 없음
2017 25 128 7 8 0 0 0.467 5.06 155 17 42 86 82 72 1.44
2018 11 55⅔ 2 3 0 0 0.400 6.63 69 6 21 47 42 41 1.51
KBO 통산br(16시즌) 462 2122⅓br(5위) 137br(5위) 120 3 7 0.533 4.46 2316br(2위) 196 846 1426 1159br(2위) 1051br(2위) 1.43

완투, 완봉 기록
연도 완투 완봉
2003년 1완투 0완봉
2004년 4완투 br (1위) 2완봉 br (1위)
2005년 2완투 br (3위) 1완봉 br (2위)
2012년 2완투 br (5위) 0완봉
2014년 1완투 0완봉
2017년 1완투 0완봉
통산 11완투 3완봉

부정투구 논란

2017년 4월 27일 롯데전 일정하지 않은 키킹 동작 때문에 논란이 되었다. 잠시 멈췄다가 던지는 경우는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그들은 일정한 패턴으로 던진다. 명백히 다른 시간차로 던지는 동작은 부정투구이며 부정 투구를 떠나 타자를 농락하는 것에다 명백한 룰 위반이다. SBS 주간야구에서도 이 점을 언급했다. 이 사건을 두고 몇몇 소수의 악질팬들이 아니라고 반박난리부르스하지만 이는 더욱 더 배영수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일이다.[39] 배영수 역시 본인이 사과했지만 이는 배영수 커리어에 두고두고 남을 흑역사가 되었다. 그리고 100km 짜리 직구를 던졌다고 한다.

2017년 8월 20일 또 다시 롯데전에서 또 부정투구를 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이는 샤인볼(공의 표면을 매끈하게 만들어 던지는 것)을 시도하는 것으로 의심할 수 있는 행위이다. 규정에 의하면 로진백을 터는 행위는 스피드업 관련 규정에 따라 1회 경고, 2회부터 볼 판정을 받을 수 있으며, 현장 조사결과 허벅지에 왁스 바셀린 등이 묻어있어 부정투구임이 확인된다면 퇴장될 수 있다.


이후 MLB파크등 각종 야구커뮤니티에서는 배영수가 이전에도 이러한 행위를 했는지 찾았으며 그 결과, 롯데전 발까딱 부정투구 외에도 kt, 넥센전에서도 똑같은 방식의 부정투구 의혹이 있는 행위를 한것으로 재조명되었다. 이전 부정투구 의혹 영상들


2014년 삼성에 있을때도 똑같은 행위를 한것으로 확인되었다 [40]

배영수 본인은 매우 당혹스러워 하며 부정투구를 하지 않았고, 허벅지 유니폼에 문지른 기억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패널들 모두 영상이 증거로 남아있고, 고의성 여부를 떠나 의심의 여지를 두는 행동을 한 배영수에게 잘못된 점이 있으며 규정상 명백한 부정투구라고 강조하고 있다. 고작 유니폼에 공을 문지르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겠냐 싶을 수도 있겠지만, 부정투구에 관한 룰이 생긴 이상 행위의 의도나 경중을 떠나서 하지 않았어야 했다는 이야기.

이후 KBO측에서 부정투구가 맞으며 차후 적발시 엄중조치를 취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배영수는 몰랐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7월 12일 경기에서 로진백으로 2루심에게 지적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비슷한 사례를 2014년 8월 28일 오주원(당시 이름 오재영)선수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데, 오주원 선수가 허벅지에 공을 문지르는 것을 김응룡 감독이 보고 항의를 하여 구두경고를 받은 바 있다.

트리비아

야구 내

  • 펠릭스 호세빈볼로 얽힌 악연으로 유명한데, 2001년 9월 18일 마산 롯데에서 호세에게 빈볼성 투구로 볼넷을 준 뒤 후속타자인 얀에게 또 다시 빈볼성 투구를 계속 던져[41] 허리를 맞추자 얀이 분노, 심판이 말리고 있는 사이 1루에서 분노한 호세가 달려와 주먹으로 때린 사건이다. 입단 첫 해에는 세이콘한테 죽빵을 뒤지도록 강타당했다. 그래서 그런지 호세한테 그렇게 쳐맞고도 멀쩡했다[42]

    파일:/image/076/2013/06/25/2013062501002054200160873_59_20130625155406.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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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이 영쑤!! 돈 두댓!
    그 사건 이후 제가 야구를 잘하게 되었습니다, 예, 참교육 맞습니다 ㅋㅋ[43]

    이 사건으로 펠릭스 호세가 출장 정지를 먹자, 우용득 당시 롯데 감독대행은 다음 날 호세를 1군에서 말소하고 이 선수를 1군에 처음으로 등록한다.[44]

  • 그리고 이후 배영수가 성적이 좋아지자 호세는 "이 시대의 진정한 참교육자"라는 말과 함께 그의 죽빵을 강타한 펀치는 "참교육"으로 불렸다. 타팀 팬들이 자기 팀의 못하는 선수를 보고 죽빵을 때려달라면서 "참교육 한 번만 시켜주세요"라고 말한다. 장난인 줄 알았지만 방망이까지 들고 나와서 온몸으로 거부했던 신승현이 그렇게 됨으로써 완벽한 "참교육자"가 되어 버렸다.

  • 2013년 8월 8일 대구 한화전에서 선발 등판해 6⅔이닝 동안 3실점으로 틀어막고 승리를 추가하였는데, 이로써 배영수는 통산 112승째를 따내 김시진삼성 라이온즈에서 현역 시절 기록했던 111승을 뛰어넘어 삼성에서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둔 투수로 이름을 올렸다.

  • 2006년 WBC에서 스즈키 이치로에게 던진 공은 아예 해설이 일부러 맞춘 것 같다고 대놓고 말했지만, 그때 한창 30년 발언 덕에 이치로에 대한 반발심이 들끓을 때라 '열사' 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환영받았다. 그리고 당시 구대성과 짜고서 일부러 맞춘 거라고 후에 밝혔다.#

  • 이러니저러니 해도, 21세기에 들어선 후 삼성은 2014년초를 기준으로 7회 우승 중 6회가 배영수가 데뷔한 후 달성한 것이고, 이승엽이 떠난 2000년대 중반의 삼성의 최대 흥행카드이기도 했다.

  • 2017년 부정투구 논란이 있다. 2017년 문단 참조.

  • 구속이 나오던 시절까지만 해도 비매너 플레이를 한 선수들에게 사구를 자주 던질만큼 호전성이 강한 선수다. 펠릭스 호세와의 악연은 더 말해야 입만 아픈 수준이고, 2002년 LG와의 난투극의 주범이며, 2015년에 던진 기아전 연속 사구 등 비매너라고 판단되면 보복성이 다분한 투구를 해 왔다. 배영수 본인의 말로는 상대가 비매너를 하면 사구를 던져라 라고 선배들한테 배운 대로 해 오고 있다고 한다.

  • KBO 통산 최다 보크 기록을 가지고 있다. 11개. 폭투도 통산 3위에 랭크되어있다.

야구 외

  • 정수근과 묘하게 외모가 닮았다. 그 덕분에 예전에 부산 원정을 갔을때 부산 사람들에게 정수근으로 오해받아 싸인요청까지 받았다고 한다. 본인은 정수근으로 오해받은 덕택에 밥을 공짜로 얻어먹게 되어서 좋았다고. 그 때문에 한때 붙었던 별명이 배수근 그런데 정수근이 어떤 사람인지 안다면 정수근은 사투리를 안 쓰잖아 그 외에도 가수 은지원과 닮았다는 의견도 나온다.

  • 이대호처럼 어린시절이 상당히 불우했던 선수 중 하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이혼해서 도망치고 할머니와 누나가 함께 돌봐줬다고 한다. 그러나 2005년 4월 2일 롯데와의 시즌 개막전 때 완봉승을 챙기는 날 임종하셨다고 한다. 이 날 경기할 때 모자 챙 안쪽에다 '할머니 생각'이라고 써놓았다.

    파일:/image/109/2005/04/05/200504051752231500_1.jpg

  • 위에 기술된 부상과 재활 과정 때문에 비슷한 과정을 걸었던 전 두산 베어스의 투수 이경필이 배영수에 대해 염려하기도 했다.

  • 김응용 삼성 라이온즈 사장이 사장직에서 물러나며 한 인터뷰에서 그가 있었던 팀에서 생각나는 선수 3명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선동열, 이종범, 그리고 배영수를 꼽았다.

  • 삼성팬들은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 자신의 팔꿈치를 희생해가면서 팀을 우승으로 이끈 배영수에게 까방권을 부여해 주었으며, 이 후 토미존 수술 후유증으로 극도의 부진으로 빠졌을때도 비난의 목소리 하나없이 묵묵히 배영수를 지지해주었다. 2012년 배영수의 부활은 3년동안 영구까방권을 사용해준 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삼성팬이라면 배영수를 절대 까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을 정도. 그럼에도 배영수를 깐다면 '올림픽 금메달 이후에 야구 보기 시작한 뉴비' 취급을 당했었다. 하지만 2014년 FA 협상에서 보인 모습 때문에 상황이 달라져 신규 팬이든 올드 팬이든 배영수를 더 우선시하는 팬과 삼성을 더 우선시하는 팬들로 갈려 까방권도 퇴색되고 있으며 갈수록 배영수를 금지어 취급 하는 경우가 많은 편. 커뮤니티별로 살펴보면 삼갤에서는 그 존재 자체로 금지어 혹은 조롱거리 취급을 당하며 사자후는 04년 한국시리즈를 지켜본 일부 팬들이 배영수를 동정적인 시선으로 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경북고 진골이 삼성을 배신하고 갔다는 점 때문에 냉랭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우호적인 곳은 사사방엠팍. 사사방은 기본적으로 선수보다는 구단 프론트(+류중일)와 김성근을 더 싫어 하기 때문에 배영수보다는 삼성 프론트(+류중일)이나 김성근을 조롱하는 용도로 배영수를 언급하면 몰라도 배영수 자체를 욕하는 경우는 그 휴지통에서도 찾아보기가 힘든 편. 엠팍은 쓸데없는 키배거리를 만들기 싫어서인지 일부 삼성팬이나 한화팬이 삼성시절 배영수를 언급하거나 혹은 삼성팬이 한화로 간 이 후의 배영수를 조롱하는 글을 남겨도 서로 그러려니 하고 무시한다.

  • 2010년 12월 19일에 탤런트인 규휘(본명 박성희)와 결혼하여 현재까지 딸 2명을 낳았다. 딸바보 등극.

  • 2017년 5월 10일에 올라온 기사를 보면 아내가 셋째를 임신했다고 한다. #

  • 1981년생으로 2011년 기준 만 30살이지만, 워낙 어릴때부터 활약했던 것과 함께 손민한(빠른 1975년생), 박명환(1977년생)과 더불어 2000년대 우완 3대 에이스로 불렸던 것 때문에 노장 이미지가 있다. 그가 등판했던 4월 23일 넥센전의 선발투수는 그와 동갑이자 같은 해에 프로입단한 김성태였는데, '베테랑 배영수와 신예 김성태의 선발대결' 이라는 방송 멘트가 나오기도. 심지어 어떤 팬은 그에게 배영수 선수 이제 40살 가까이 되었지요라고 묻기도 했다고 한다. 지못미. 본인도 이에 불만이 많아서, 기자들에게 제발 자기 이름 앞에 '베테랑', '노장'이란 단어를 쓰지 말라고 부탁하고 있다. 노장이 아닐 뿐 베테랑은 맞지만. 이젠 데뷔 18년차, 나이도 36세라 노장 맞다. 자신의 전성기가 지난 2010년대 초반 전성기를 맞이한 윤성환과 동갑이다. 데뷔는 고졸인 배영수가 대졸인 윤성환보다 4년 빠르지만.

  • 개인통산 100승 달성 후 인터뷰에서 고마운 사람으로 가족 다음으로 참교육자 호세 배우 박재정을 언급했다. 배영수와 호세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인가 보다 경북고 동문으로 박재정이 1년 선배인데, 박재정이 배영수 결혼식 사회를 봐줬을 정도로 친한 사이라고.

  • 버스커 버스커의 장범준과 닮았다. 성우 엄상현과도 묘하게 닮았다. 러블리즈Kei와도 묘하게 닮았다. 이 사람또한...

  • 2013년 3월 30일 두산과의 개막전에서 오재원김현수에게 만루홈런을 맞는 개만두를 시전하였는데 그 다음 등판인 4월 7일 NC전에서 "개만두 아십니까. 저, 개만두 됐습니다. 개만두!"라고 기자들한테 말하면서 웃었다고 한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배영수의 멘탈이 어떠한지 잘 알 수 있는 일화 중 하나. 그리고 깨알같은 선배 박찬호의 디스까지 #

  • 배영수 아줌마,[45] 배영수 이모, 꽹가리 이모 등등의 별명으로 불리는 유명한 팬이 있다.[46] 직관팬들은 시끄럽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항상 배영수 유니폼을 입고 와서 꽹가리를 두들기며 응원하는 중년 여성으로 예전에는 김실을 응원하셨으며, 이 후에는 아들이 배영수와 동갑이라서 배영수를 응원했다고 한다. 삼성팬들에게 워낙 유명인사였던 지라 2014년 7월 29일 경기에서는 삼성 구단에서 이 배영수 이모를 시구자로 선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날 경기는 차우찬핵폭발 하면서 패배... 이 분은 배영수 이적 후 김상수로 갈아타셨다고 한다. 이젠 상수아지매

  • 통산 승리 5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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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롯데 자이언츠의 투수 손승락 응원가의 원곡과 같다.
  • [2] 모바일 게임인 게임빌 프로야구/2011에서도 배영수의 이름이 배열사로 나온다. 사족으로 본인의 의사보다는 고참이였던 구대성의 입김이 있었다고 한다.
  • [3] 이거 때문에 배영수가 정통포크를 던질 줄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배영수의 포크는 반(半)포크성으로 스플리터에 가깝다. 떨어지는 각도는 적지만 스피드는 빠른.
  • [4] 왠지 모르게 순박해 보이는 외모에 초년생때는 영구와 비슷한 까까머리를 하고 다닌 데다가 이름이 비슷하기도 해서인지 평상시에도 애칭으로 배영구라고 불리는 일도 있다.
  • [5] 말 그대로 王. 특히 1승 12패를 기록한 2009년이 절정이었다. 이 사람 때문이라는 변명의 여지가 있지만... 그 때 배영수는 야구를 그만두려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 [6] 배영수의 성적 자체가 선발 확정시켜 줄 정도로 좋은 편이 아니었고, 장원삼과 윤성환 둘 다 나이 30을 훌쩍 넘겨 언제 노쇠화가 와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5선발 육성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리고 선발을 육성하지 못한 것의 부작용은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으로 주전 투수들이 이탈하자 바로 나타났다.
  • [7] 특히 속구는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테일링이 걸렸을 정도다. 예를 들어 진통제를 맞고 등판했던 06년도 한국시리즈에서도 패스트볼 테일링이 걸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8] 잡는걸 보면 스플리터가 맞다. 배영수 본인도 스플리터를 던진다고 한다.
  • [9] 던지기 전에 힘을 모으기 위해 잠시 멈췄다가 투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 [10] 대략적으로 배영수 전성기의 평균구속이 145km/h 정도에서 형성되었고 최고구속도 155km/h 임을 감안할 때 2017년 패스트볼 평균속도 137km/h 최고구속 145km/h 에서 형성된다고 할때 시즌중 평균구속은 약 8km/h 최고구속은 10km/h 정도가 떨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
  • [11] 이는 플레이스타일의 급작스러운 변화로 해석될 수 있는데 팀 린스컴 의 경우에도 보듯이 갑작스러운 구속과 구위 저하로 인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플레이스타일이 먹히지 않았을 때 새로운 플레이스타일을 적용시키는데 린스컴이나 배영수 모두 제구력 보다는 구위와 구속으로 승부하던 스타일이었는데 둘다 급작스러운 구속 저하로 인해 타자들의 배트를 유도시키지 못하고 스트라이크존에 던지는 공이 맞아나가기 일쑤였기 때문에 시즌을 말아먹게 된 것 .
  • [12] 이와 같은 현상을 겪은 선수는 kbo에도 있다 바로 정민철 그도 배영수나 린스컴과 비슷하게 구위와 구속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선수였지만 데드암 증세 이후 자신의 스터프로는 상대를 압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제구력형 피쳐로 변신 2007년 2점때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다음시즌에 다시 망했지만 .
  • [13] 부상 이후로 싱커(혹은 투심)과 서클 체인지업이 추가되었으며 커브도 구사비율이 조금 늘었다, 2011 시즌에는 커터 추가도 시도했으며.# 이외에도 2008년 포스트시즌 때는 너클커브를 던졌고,# 2013년 8월경에는 너클볼까지 선보였다.#
  • [14] 정우람의 투구폼을 생각하면 될듯.
  • [15] 메이저리그에서 이와 비슷하게 투구폼을 고친 사례를 보면 잭 그레인키 가 있다.
  • [16] 배영수가 컨디션 기복이 있는 것이 이에 대한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공격적인 스트라이크존 공략으로 볼넷도 적게 내주지만 그만큼 컨디션이 좋지 않을 경우에는 스트라이크존에 들어간 공이 정타를 많이 맞으면서 털리기 쉽다는 것.
  • [17] 애초에 당시 대구상고의 에이스였던 장준관이 1999년 대구 개막전 시구자로 나서며 이미 1차지명은 장준관으로 정해져 있다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였다. 하지만 장준관이 계속 슬라이더 위주의 피칭을 했던데다 지명을 앞두고 계약금을 올리고자 미국으로 가겠다고 하는 바람에 삼성에선 배영수로 선회했다. 그리고 장준관은 모 팀으로 드래프트 지명이 되는데...
  • [18] 이 금액은 1년 후 대구상고 이정호가 삼성에 입단하며 5억 3000만원이라는 계약금에 입단하며 경신된다.
  • [19] 2007년 윤석민, 2008~2009년 봉중근, 2012년 류현진, 2015~2016년 메릴 켈리원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팀 타선 지원을 받지 못했다. (2006년 득점지원율 0.97) 무려 1점도 되지 않는다!
  • [20] 뻥뻥 터지던 삼성의 타선은 이상하게도 배영수가 등판하던 날엔 버로우탔다. 문제는 현재까지도 그런다는 거. 그러나 2013년 드디어 타선지원을 받게 되는데 이번에는 평균자책점이...
  • [21] 전체 투수로는 선동열 이후 배영수가 받기 전까지 1996년 구대성이 구원 투수로 정규리그 MVP에 오른적 있다.
  • [22] 이후로 2008년까지 매년 투수가 MVP를 수상하게 된다. 순서대로 손민한(롯데)-류현진(한화)-다니엘 리오스(두산)-김광현(SK)
  • [23] 2004년 당시에는 경기 시작 후 4시간을 넘기면 새 이닝을 시작할 수 없고 바로 무승부로 처리되는 병맛같은 규정이 있었다. 결국 2004년 한국시리즈는 이러한 규정으로 인해 무려 9차전까지 가는 등 역대 한국시리즈 중 제일 길게 간 시리즈였고, 무승부가 제일 많은 시리즈가 되었다. 결국 이러한 단점으로 인해 경기 후 4시간을 넘기면 무승부로 처리되는 규정은 2004년 한 해에만 시행되고 사라졌다.
  • [24] 흔히 대포주사라고 알려진 데포메드롤. 이 주사는 1982년 한국시리즈에서 박철순도 맞은 적이 있다.
  • [25] 그런데 대포주사에는 스테로이드 계열의 물질인 메틸프레드니솔론이 포함되어 있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로 분류되는 일반적인 약쟁이들이 즐겨찾는 계열은 아니나 소염효과가 강력해서 치료목적으로 자주 이용되던 약물이다. 하지만 염증이 자연스럽게 치유되면서 가라앉는게 아니라 부상이 그대로 남은채로 염증만 가라앉기 때문에 선수의 몸을 망가뜨린다. 그 때문에 현재는 금지되어있다.
  • [26] 정말 구속회복만 된다면 삼성은 선발 걱정할 문제가 없으니...
  • [27] 안 되는 경우와 되는 경우의 비율이 절반 정도? 자세한 건 토미 존 문서에서 수술 부분을 읽어 보도록. 임창용이 특이한 경우.
  • [28] 08, 09 시즌과 비교해봤을 때 피홈런 개수가 준 것이 부활의 가능성을 보인 요소 중 하나이다.
  • [29] 임창용의 야쿠르트행을 주선했던 매니저와 만났다고 한다.
  • [30] 주요 선발진으론 이시카와 마사노리(13승 8패), 사토 요시노리(12승 9패), 타테야마 쇼헤이(12승 7패), 무라나카 쿄헤이(11승 10패) 등이 있고 주요 불펜진으론 마츠오카 케니치(34홀드), 마스부치 타츠요시(20홀드), 오시모토 타케히코(16홀드), 임창용(35세이브) 등 리그 수준급의 투수가 넘치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주전경쟁 하기가 영 쉽지 않을 것이다.
  • [31] 어디까지나 비교적이다. 최소한 선발로는 쿠보 요시모토(14승 5패), 제이슨 스탠드릿지(11승 5패)가 있고 불펜진으론 쿠보타 토모유키(28홀드), 니시무라 켄(14홀드), 후지카와 큐지(28세이브)가 있다. 어딜가든 쉽지않다.
  • [32] 원래 배영수는 선천적인 이유로 간 수치가 높다고 한다. 그것때문에 2006년 시즌끝나고 수술을 미룬것.
  • [33] 기존 위키는 돔배기가 상어를 삭힌 경상도 음식이라 하였으나 주로 경북 대구 지역서 염장한 상어고기를 구워 주로 제사상이나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이다. 돔배기는 경북 영천이 유명하다.
  • [34] 장성호에게 맞은 투런홈런도 실투가 아니었을 정도로 좋은 볼을 던졌다.
  • [35] 참고로 저 식빵은 마운드에서 공을 던진후 본인은 삼진이라 생각하고 덕아웃으로 들어가려했으나 주심이 삼진을 잡아주지 않아 구운 것이다.
  • [36] 애초에 이 나이에 교육리그에 간다는 것 자체가 박정진처럼 마지막 기회로 찾는 경우 말고는 없다.
  • [37] 배영수의 삼성 시절 승수와 타이 기록
  • [38] 배영수가 1경기에서 3피홈런을 기록한 것은 4년여만으로 한화 오고난 2015시즌부터 처음 있는 일이다.
  • [39] 소수 악질 빠들이 해커를 예시로 반박하지만 해커는 꾸준히 같은 패턴으로 던지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 [40] 본영상 35초부터
  • [41] 훗날 배영수가 말하길 당시 슬라이더가 손에서 빠지는 바람에 그런 거라고 해명했다. 호세는 벤치에서 사인도 있고 해서 계속 몸쪽으로 던진 거고.
  • [42] 배영수가 마운드에서 날아갈 정도로 세게 맞았다. 이후 공 집어던지려다 참았다고.
  • [43] 배영수가 나중에 참교육 사건에 대해 직접 설명하면서 실제로 했던 말이다.
  • [44] 그리고 호세는 그해 KBO 역사에 남을 성적을 올리고도 '폭행사건으로 깎인 이미지'+'투표단의 용병 차별'로 여러모로 본인보다 성적이 떨어지는 타자들에게 밀려서 MVP와 골든글러브 수상에 실패했는데 공교롭게도 선수 모두 배영수와 같은 삼성 소속이었다.(다만 양준혁은 2001 시즌 LG에서 뛰다가 골든글러브 수상즈음 삼성으로 복귀하게 된다.)
  • [45] 현지 대구쪽의 삼성팬들이 부르는 애칭은 영수아지매.
  • [46] 원래는 김실의 팬이어서 실이아줌마라고도 불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