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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



이승엽의 NPB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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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의 KBO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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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의 역대 등번호 /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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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영구결번 No.36[1]
사단법인 한국야구위원회 홍보대사
이승엽(李承燁 / Lee Seung-yeop)
생년월일 1976년 10월 11일 (age(1976-10-11)세)[2]
국적 대한민국
신체 183cm, 93kg, B형
본관 광주 이씨
출신지 대구광역시 중구[3] 삼덕동2가
가족관계 부친 이춘광[4] / 모친 故 김미자[5]/ 아내 이송정[6]/ 아들 이은혁[7], 이은준[8]
학력 대구중앙초 - 경상중 - 경북고 - 대구대[9] BR 성균관대 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BR 영남대 대학원 석사과정 졸업
포지션 1루수, 지명타자, 좌익수, 투수 [10]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95년 고졸 연고구단 자유계약 (삼성)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1995~2003) BR 치바 롯데 마린즈 (2004~2005) BR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6~2010) BR 오릭스 버팔로즈 (2011) BR 삼성 라이온즈 (2012~2017)
현직 KBO 홍보대사 BR 이승엽 야구장학재단 이사장
국가대표 대한민국 U-20 (1994) br 대한민국 (2000-2013)
등장곡 GTA & TJR-Mic Check[11][12]br엄정화 - 페스티벌[13][14]
응원가 (2012 ~ 2017)[15] 천공의 성 라퓨타 OST - 君をのせて (너를 태우고)[16]br (2014) 모자이크 - 자유시대[17]br전용 응원 구호[18][19][20]
종교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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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싸인) 링크

목차

소개


한국프로야구 역사에 길이남을 홈런타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좌타 거포중 한명으로, 전 삼성 라이온즈, 치바 롯데 마린즈, 요미우리 자이언츠, 오릭스 버팔로즈 소속의 1루수이자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선수시절 별명으로는 국민타자, 라이온킹 등이 있다.

삼성의 이만수-양준혁-이승엽 본좌라인이며, 영결라인이다. 언론상에 주로 나오는 별명 겸 수식어는 국민타자[21]이며 인터넷 상에선 합법적 병역 브로커오푼이, 그리고 일본에서 부르던 애칭이던 승짱, 국민적(敵)[22] 등이 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덕분에 디시인사이드 국내야구 갤러리에서 "중요한 순간 꼭 2점을 뽑아준다"라고 하여 "이점엽"이라는 별명을 만들었다. 또한, 슬럼프도 없이 부진하지 않고 언제나 꾸준하게 좋은 활약을 펼친다고 해서 이름에다 호를 붙여 "역시 이승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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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너희 면제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이와세 히토키를 상대로 투런 홈런을 날린 후.

하나씩 적어보자면 2000 시드니 올림픽 당시 일본과 치른 예선전에서 괴물투수로 불리던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상대로 2점 홈런을 날렸고, 동메달 결정전에서 또 다시 마쓰자카를 상대로 결정적인 2타점 2루타를 날렸다. 2006 WBC도쿄돔에서 일본과 예선을 치르며 8회에 결승 역전 2점 홈런, 2Round 멕시코전에서 결승 2점 홈런,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일본과 치른 준결승전 당시 8회에 결승 역전 2점 홈런, 쿠바와 치른 결승전에서도 1회에 선제 2점 홈런 등 2와 인연이 깊다. 마지막 은퇴 경기에서도 1회 선제 2점 홈런에 2회 연타석 홈런까지. 콩콩

또 다른 별명인 합법적 병역 브로커2008 베이징 올림픽 이후에 붙은 별명이다. 이유는 지금까지 합법적으로 후배들에게 병역 특례 티켓을 쥐어준 것만 해도 엄청난 숫자에 이르기 때문. 2000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06 WBC 4강,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로 40명 정도의 선수들에게 병역 특례를 선물로 주었다. 자신은 팔꿈치 수술로 면제가 되었지만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현하는 대인배적 면모를 보여준다. 2012년 국내로 복귀한 이후에는 기존 일본쪽에서 불리던 국민적 타자라는 걸 변형하여, 잘할 때부터 못할 때까지 처녀자리 초은하단 - 국부 은하군 은하 - 세계 - 유라시아 - 아시아 - 국민 -경상도 - 대구시민적 - 수성구민적 - 읍민적 - 면민적 - 가정적 - 개인적 - 분자적 - 원자적 - 나노적(...)[23] 타자로 다양하게 변화하며 불린다.

2000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을 침몰시킨 장본인도 다름 아닌 이승엽이였고, 2006 WBC에서 미국을 1회 초구 홈런으로 관광시킨 장본인도 이승엽이였다. 결국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로 구성된 미국에서 이승엽을 고의사구로 골라야 했던[24] 굴욕을 줬다. 일본에서 말하듯 정말 국민적인 타자.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거칠고 터프한 스포츠 선수의 이미지와는 달리 사생활도 깔끔하고 신사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다만 2000년에 풍파를 불러온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사건 때 아무런 일도 하지 않다가 뒤늦게 참여한 경력이 있어 이 때문에 이미지가 많이 깎이고 비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승엽이 선수협 파동 당시 만 24세였고[25], 나이에 비해 한국 야구계에서 비중이 지나치게 무거웠던 관계로 당시 어린 이승엽이 옳은 판단을 내리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며 특히나 당시 삼성 구단의 주장을 맡고 있던 사람은 선수협 오적으로 유명한 김기태였고, 당시 양준혁과 주먹다짐까지 벌여가며 삼성 선수들을 선수협에서 발을 빼도록 주도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26] 이승엽의 참가는 무리였다는 점 때문에 비난 여론이 그리 많지는 않다.[27] 그리고 비난하는 사람들의 주장과 달리 정작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창립 당사자들이 이승엽을 옹호했었다는 점[28]을 감안하면 다소 무리가 있는 셈. 이 후 2001년에는 결국 단독으로 선수협에 가입했고[29] 그 후로도 선수협과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 가입 당시 기사 #1#2#3

선수 은퇴 이후

  • 2018년 1월에 KBO 홍보대사로 임명되어서 2018 KBO 리그부터 홍보대사로 활동하게 되었다. 본인의 자서전도 집필해서 출간도 하였고 본인의 이름을 딴 이승엽 야구장학재단을 설립했다.

  • 2018년 3월서울교통공사의 '지하철 안전 약속 지키기' 음원 방송 캠페인에 목소리 재능 기부를 했다.[30][31]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안녕하세요, KBO 홍보대사 이승엽입니다. 오늘도 서울교통공사 종합운동장역을 이용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가 함께 타는 지하철, 무엇보다 안전하게 이용해야겠죠? 에스컬레이터에서는 걷거나 뛰지 마시고, 손잡이를 꼭 잡으시기 바랍니다. 휴대전화만 보고 걷는 행동은 매우 위험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무리한 승하차는 절대 금물입니다.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지하철 안전약속, 다 함께 지키면 안전하고 즐거운 하루가 됩니다. 재미와 감동이 가득한 스포츠! 우리 대한민국 프로야구에도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팬 서비스 논란

이승엽의 선수시절 중 가장 큰 오점으로 남을 행적
이승엽/평가#s-7 참조

이승엽에게 당한 피해자들

이승엽의 경우 유독 매스컴과 팬들의 관심이 뜨거운 선수다 보니 상대적으로 이승엽에게 기록을 허용한 선수가 지나치게 과장돼서 부풀려지거나, 반대로 이승엽 때문에 기록을 폄하당하는 등 본의 아니게 피해자가 생기게 되었다. 이하는 그 피해자 명단. 특히 그중에는 양준혁이 있다.

이승엽의 기록에 의한 피해자

  • 양준혁: 양준혁 본인이 공공연히 언급했듯이 양준혁은 이승엽에게 밀려 단 한번도 MVP홈런왕을 차지하지 못했었다. 이 때문에 다른 비율 스탯에서 항상 1, 2위를 오르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이승엽에 비해 인기를 끌지 못했고, 이는 본인에게 콤플렉스가 되어 버렸다. 이 때문인지 본인의 선수 시절을 회상할 때는 자주 본인이 2인자였음을 언급한다. 게다가 은퇴 이후엔 본인의 통산 기록 1위를 이승엽이 은퇴하기 전 상당수 갈아치워버렸다(...)

  • 심정수: 양준혁보다 더 심한 케이스. 현대 유니콘스시절 비율스텟으로는 이승엽을 능가하고 클래식 스텟으로도 손색없는 활약을 펼쳤지만 하필이면 현대는 연고지 이전등의 문제로 인기가 없었던 데다[33] 이승엽의 인기가 워낙 높다보니 매스컴에서도 심정수에게 큰 주목을 하지 않았던 것.[34] 이 때문에 사실상 매스컴의 비호를 거의 받지 못했다고 볼 수 있으며[35]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현역 당시에는 이승엽에 비해 상당한 저평가를 받았었으며, 은퇴 이 후에는 이 기록마저도 약물 빨이라는 루머에 시달려야 했다. 2003년에 친 홈런 53개는 2014년까지도 깨지지 않은 역대 단일 시즌 홈런 3위[36]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하필이면 이승엽의 56홈런과 같은 해에 세워진 기록이라 50홈런 치고도 MVP를 타지 못했다 그런 선수가 한 명 더 늘었다 주목을 거의 받지 못했다. 그래도 삼성으로 와서 홈런왕과 타점왕을 양준혁의 지원 아래 이루고 은퇴했다. 결국 같은 피해자 끼리......

  • 박병호: 이 쪽은 국거박악질 팬들과 기레기들의 비교질 때문에 저평가를 받은 케이스. 오죽 했으면 이승엽이 2014년 목동구장에서 본인도 홈런은 1개 밖에 못 쳤다며, 박병호보다 목동에서 홈런개수가 적은 사람들은 비난할 자격이 없다라고 일갈하기도 했었다. 자세한 건 목동드립 문서 참고.

  • 이종범: 이 쪽은 팬덤간의 감정싸움과 지역드립 때문에 피해자가 된 케이스. 원래 시초는 양준혁과의 비교 드립이었는데 이게 "투수는 선동렬,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 인생은 이호준"이라는 말 때문에 이승엽에게까지 번진 케이스. 주루 관련 스탯을 제외한 전 부문에서 이승엽이 우위에 있음을 볼 때 스탯만 따졌다면 싸움이 커질 일은 없었다.

  • 신윤호: 2001년 MVP는 1차 투표에서 투수 3관왕(다승&세이브포인트&승률)과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신윤호가 1위, 이승엽이 2위를 기록했다가, 신윤호와 이승엽만을 후보로 한 2차 투표에서 이승엽이 압도적으로 이겨서 이승엽이 MVP를 수상했다. 만약 2차 투표가 없이 그대로 결정났다면 신윤호가 MVP를 수상했을 가능성이 높다. 1차 투표에서 이기고도 2차 투표에서 압도적으로 패배한 것은 역시 인기도...... 근데 소속팀 LG잖아?
  • 장성호:이승엽에 밀려 골든글러브를 단 한 번도 수상하지 못했다안습

이승엽에게 기록을 허용한 경우

  • 이정민: 널리 알려졌듯 2003년 당시 기준으로 아시아 신기록이었던 56호 홈런의 희생양이 되는 바람에[37] 한동안 허용투수라는 굴욕적인 별명으로 불렸었다. 이 당시 이승엽의 홈런이 워낙 큰 이슈다 보니 이정민이 홈런을 맞는 영상은 당시 수없이 재생되었으며, 어느 한 뉴스 자막에는 "허용투수"라고 큼지막하게 나왔다.(...) 이 후에도 이승엽의 기록이 갱신될 가능성이 희박한지라 당분간 자료화면으로 영원히 고통받을 예정(...). 아니 경신할때마다 기록영상이 나오니 더 비참할지도...

  • 윤희상: 양준혁이 기존에 세웠던 351호를 갱신하는 이승엽의 KBO 통산 352호 홈런을 맞으면서 역시 피해자가 되어버렸다. 그나마 다행인건(?) 윤희상의 경우에는 이정민과 달리 기존에도 인지도가 어느 정도 있는 선수였고, 이후에도 좋은 활약을 보인데다, 56호 홈런에 비해 팬들이나 언론의 관심도도 비교적 적었던지라 아예 허용투수가 선수 본인의 이미지가 되어버린 이정민 만큼의 피해를 보진 않았다.[38] 그리고 이제는 이승엽이 홈런을 칠 때마다 통산 최다 홈런이 경신되기 때문에, 이 기록에서는 홈런을 허용한 투수가 기록을 허용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에 만족하지 않고 이승엽의 인천 마지막 경기였기도 했던 2017년 9월 1일 양준혁의 기록을 경신하는 KBO 통산 2루타 신기록(459개) 허용투수가 된다.

  • 이강철: 1995년 5월 2일 이승엽의 데뷔 첫 홈런을 허용하면서 허용투수가 되었다. 허용 투수의 조상
  • 구승민: 포항에서 롯데와의 경기 전 삼성 엘지 잠실 경기에서 엘지선수들이 이승엽과의 승부를 피하는 모습을 보여 볼넷으로 내보내 팬들의 야유를 받았고 프로야구 최초 통산 400호 홈런을 맞은 선수는 구승민 선수가 되어 피해자가 되어버렸다. 하필이면 1대 허용투수였던 이정민과 같은 롯데 자이언츠 소속(...). 이분도 당분간 팀 선배처럼 자료화면으로 영원히 고통받을 예정(...).

  • 유창식: 이승엽의 통산 400번째 2루타를 허용하면서 피해자가 되었다. 게다가 바로 이전에 정근우의 도루 기록을 허용한 전과도 있어 기아 팬들이 기록 제조기라며 까고 있다.그리고 유창식은 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을 남겼다(...)

  • 이재우: 2016년 9월 14일 대구 한화전 한일통산 600홈런을 허용하며[39] 10년 동안 TV에 나오게 되었다 허용투수가 되었다. 최형우-이승엽 백투백 홈런은 덤.
  • 송창식: 2017년 5월 21일 대전 한화전에서 한국 프로야구 최초 개인 통산 450호 홈런을 허용하면서 허용투수가 되었다 러프-이승엽의 백투백 홈런은 덤.작년 한일 통산 600호 홈런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아마도 착각일 것이다 아마도

  • 김성민: 2017년 7월 29일 고척 넥센전에서 통산 4000루타를 허용했다. 맞을 당시 아쉬워하는 표정은 덤.

  • 한현희: 2017년 10월 3일 이승엽의 은퇴 경기에서 연타석 홈런을 허용하며 이승엽의 마지막 홈런을 허용했다. 2012년 6월 29일 이승엽에게 투런홈런을 맞으며 역대 최소경기 1000타점 기록도 허용했었다.

  • 김원형: 2003년 6월 22일 이승엽의 세계 최연소 300홈런을 허용했다. 그것도 초구에(...)...

기타 피해자(?)

  • 카와시마 료: 그란도시즌을 헌납한 투수. 시즌중의 평범한 피홈런 하나에 영원히 고통받는 안습한 피해자. 근데 좀 당해도 싼(...) 것이, 혐한 의혹이 있기 때문이다. 2007년 시즌을 시작하면서, 슈트를 겨우내 연마했는데, 연습경기부터 던져보겠다더니, 제구가 아직 부족해서 데드볼이 나올 수 있는데, 마침 한국팀과의 연습경기라서 던지기에 딱이라는 말을 했다. 일본선수가 아니라 한국선수는 맞혀도 된다는 걸로밖에 해석이 안되니, 좋게 해석할 거리가 없는 발언. 단 이는 진상을 파악하려 하지 않고 한국기자가 언론에 보도한 그대로를 받아들인 해석이다. 실제로 이는 지나친 피해망상이고, 일본 국내선수에게 던져서 맞췄다간 같은 리그이다 보니 후일 껄끄러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데 맞춰도 다시 볼 일 없는 해외팀과의 경기이니 실수로 맞춰도 뒤끝이 없다는 차원의 이야기이지 혐한으로 해석하는 것은 너무 나간 이야기.

  • 조인성: 2002년 한국시리즈에 이어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도 홈런을 허용할 당시 포수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특히 이 홈런의 경우 전자는 삼성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를 견인하는 홈런이었다는 점, 후자는 이승엽이 한국 복귀 이 후 무려 10년만에 한국시리즈에 나서서 홈런을 때려냈다는 점 때문에 한동안 조인성과 이승엽을 엮는 드립이 인기를 끌었었다. 상바깥, 중바깥, 하바깥. 절정의 삼단바깥양반 심지어 352호 칠때 포수가 이 양반이었음

  • 이와세 히토키: 베이징 올림픽 당시 하필이면 준결승전에서 이승엽에게 승부의 향방을 가름짓는 결정적인 홈런을 허용하는 바람에 국내에서는 한국의 승리를 견인한 열사 李와세로 불렸으며, 일본에서는 상상을 초월한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자세한건 항목 참고.

  • 인지도에서 밀려버린 다른 동명이인들

  • 이송정: 힐링캠프에서 밝힌바에 따르면 이승엽이 본인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전제로 이송정에게 청혼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승엽의 행선지는 다들 알다시피(...). 사기결혼 ??? : 야 너네 우리 무시하냐?

  • 선동열: 이승엽에게 와도 자리없다는 독설을 했는데, 정작 이승엽은 복귀 후 나이에 맞지않는 엄청난 성적을 거둔 반면에 이 시기에 감독으로 선임한 선동열이 타어강과 함께 기아를 웃음후보에 올려놓아서 KIA 타이거즈를 망치면서 이 발언이 재조명 받아 이승엽이 좋은 성적을 낼때마다 까이게 되었다. 이쪽은 정확하게 말하면 자업자득쌤통이다.

  • 카와카미 겐신: 2005년 5월 20일의 주니치 드래곤스 : 지바 롯데 마린스(교류전)전에서 8회 2사까지 퍼펙트 게임 페이스로 호투를 펼치는 중 이승엽을 상대로 3B1S까지 몰리게된다. 안타를 맞느니 볼을 던지고 노히트 노런을 노릴 수도 있었지만 가와카미는 이미 노히트 노런 기록을 보유해서인지 퍼펙트 게임을 목적으로 스트라이크 승부를 했다가 홈런을 맞았다(해당 영상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W6EptpKggX4). 구단의 첫 퍼펙트 게임 달성은 놓쳤지만 피안타는 위의 홈런 하나뿐이며 사사구 없이 완투 승리를 거뒀고, 동시에 선발 멤버 전원으로부터 탈삼진을 기록할 정도의 보기 드문 기록을 달성했다.[40] 하지만 퍼펙트 기록을 저지 당한 것이 무척 아쉬웠는지, 훗날 이승엽이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하고 만난 경기에서 복수성 빈볼을 던졌지만, 이승엽은 이걸 극복하고 어퍼덱으로 꽂아버리는 홈런으로 화답했다(해당 영상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Tqfrk6g96rg).

  • 이시이 히로토시: 2006 WBC 1라운드 한일전에서 홈런을 헌납한 좌완 마무리 투수. 그러니까 송재우 해설위원이 "뉔" 샤우팅을 하게 만든 장본인(...)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타카츠 신고, 이가라시 료타와 함께 필승조 계투로 활약했고, WBC가 있기 직전 시즌에 37세이브를 거둬 리그를 대표할 마무리로 성장했으나, 이 시기의 이시이 히로토시는 어깨 통증을 안고 있었다. 원래 메이저리그 진출을 꿈꿨으나, 후루타 아쓰야 감독이 취임하면서 보내주겠다던 구단이 입을 씻어버려 상당히 구단측과 문제가 커졌다. 후루타 감독과도 미묘한 분위기였다는 것이 정설. 구단을 정식으로 고소하는 방안까지 오르내리던 차에 몸에도 어깨에 부상이 와버렸고, 결국 구단이 타팀 이적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수술비를 대주었는데, 이후 별반 활약하지 못하고 은퇴했다. 후루타가 그땐 이미 감독에서 쫓겨난 상태 진구구장으로 와서 이시이의 은퇴식에 참석한 것은 나름 미담. 여하간 시기적으로 이승엽에게 홈런을 내준 이후로는 커리어가 쭉쭉 망해버렸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던 이시이 가즈히사와는 다른 사람임을 주의. 후루타는 이 사람까지 포함해서 두 명의 이시이가 있으면 우승할 수 있다고 별렀으나,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고 팀을 떠났다.

  • 돈트렐 윌리스: 이시이 히로토시야 성치않은 몸으로 스스로 망가졌다곤 하나, 돈트렐 윌리스는 이시이보다도 더 처참하게 망가졌다. 2005 시즌 22승 10패 ERA 2.63사이 영 상급 성적을 냈지만, 2006 시즌을 기점으로 급격히 내리막길을 걷고 말았다. 고질적인 제구력 불안이 터져서 망가진 케이스.

  • 한신 타이거스: 지바 롯데 시절 2005년 일본 시리즈, 이승엽에게 3홈런을 얻어맞으며 33-4라는 굴욕을 당했다. 이승엽이 일본 통산 가장 많은 홈런을 친 상대팀도 한신이고, 한일통산 400호 홈런도 한신이 허용했다.

  • SBS Sports: 일본에서 뛰는 이승엽의 경기를 중계하기 위해 2006년부터 요미우리 자이언츠 홈 경기 중계권을 사들이면서 한국프로야구중계는 녹화방송 혹은 결방처리하고 요미우리 자이언츠 경기 중계만 하게 된다. 중계 첫 해부터 이승엽의 맹활약으로 인해 인기나 시청률 면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낸 것에 고무된 SBS Sports 측은 이승엽의 재계약 소식이 들리자마자 재빨리 중계권 계약을 연장했다. 하지만 이후 이승엽이 깊은 부진의 늪에 빠지면서 라인업에서 제외되다못해 심지어 2군까지 내려가는 일이 생기자 비싼 돈을 들여 중계권을 사들인 SBS Sports도 골치를 앓게 된다. 심지어 이승엽의 부진이 극에 달했던 2008~2009년에는 이승엽은 나오지도 않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경기를 중계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그 와중에도 한국프로야구 중계를 해주지 않자 이에 뿔난 한국프로야구 팬들은 가루가 되도록 SBS Sports를 깠고 KBO 또한 한국프로야구 중계 이따위로 할꺼면 중계권을 회수한다라는 말들을 들었다.

  • 최준석: 2015년 지명타자 골든글러브 수상이 유력했으나 이승엽의 이름값에 밀려 골든글러브를 받지 못했다. 성적으로 보자면 최준석이 우세했기에 논란의 여지가 많다.

  • 타이론 우즈: 98시즌에 당시 기준 역대 최다 홈런 기록을 경신(42홈런)하며 MVP를 딴 상태에서 이승엽의 인기(사실은 국뽕 기자들의 되도 않는 트집)에 밀려서 골글 수상에 실패했다. 이외에도 이승엽에 필적하는 기량을 과시했던 그를 견제하기 위한 우즈존의 피해를 엄청나게 받았다. 결국 한국 시절에는 광활한 잠실구장+우즈존 탓에 전반적으로 이승엽에 밀리는 기록을 찍었지만, 일본에 가서잠실을 탈출해서 우즈존이 사라지고 포텐이 터지면서 이승엽을 이기게 된다.

  • 기시 다카유키: 일본시리즈에서 이승엽에게 시리즈 내내 굴욕을 당하여 한 동안 세이부 팬들의 뭇매를 맞아야 했다.

은퇴 투어

2017년 10월 3일 오후 5시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삼성의 마지막 경기 종료 후에 은퇴식을 열었다.출처. 화려한 은퇴식을 위해 경기 시작 시간마저 오후 2시에서 5시로 바꿨다.

KBO와 10개 구단이 합심해, 이승엽의 마지막 원정 경기에서 은퇴 투어 행사를 진행했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이승엽을 위해 구단이 준비한 선물.

구단별 선물 목록은 다음과 같다.

파일:보문산 소나무 분재.jpg
한화 이글스는 대전 보문산[41]에서 채취한 ‘소나무[42] 분재’를 선물했다.

파일:화령전 운한각 인두화.jpg
kt 위즈정조의 초상화가 있는 수원화성행궁 화령전운한각을 그린 인두화(인두로 나무를 새겨서 그리는 그림)를 선물했다. 인두화에는 ‘수원 시민 일동’이라고 적었다. 때마침 이승엽의 생일인 8월 18일(선수 등록일 기준)에 행사가 열려 관중들의 생일 축하 노래도 함께 선물했다.

파일:고척돔 잔디.jpg
넥센 히어로즈는 이승엽의 등번호(36)가 황금색으로 찍힌 넥센 유니폼을 액자에 넣어 전달했다. 홈구장인 고척 스카이돔에서 떼어낸 잔디를 액자 배경에 사용해, 야구장 일부를 선물한 첫 사례가 됐다.

파일:여행용품.jpg
SK 와이번스는 이승엽의 등 번호를 따 숫자 ‘3’과 ‘6’을 새긴 여행가방 두 개[43]를 선물했다. 가방 안에는 그물침대·폴라로이드 사진기 등 여행용품을 가득 담았다. 경기 전 SK 와이번스 프런트 측에서 촬영한 영상에, SK팬들이 은퇴 이후 이승엽 선수가 가족들과 여행을 다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한 것을 어느정도 반영한듯. 또한 이승엽의 선수 시절 플레이 사진들이 담긴 디지털 액자 또한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준비를 했다.

파일:백자 달항아리.jpg
두산 베어스는 퓨처스리그 홈구장이 있는 경기도 이천시의 특산품인 도자기와 캐리커쳐를 선물했다. 도자기에는 이승엽의 좌우명이 새겨져 있고, 캐리커쳐는 두산의 홈 경기 이벤트 중 하나인 "허슬두데이" 행사에서 팬들에게 한정 수량으로 증정하는 굿즈에 그려져 있는 캐리커쳐 도안과 같은 그림체이다.

파일:순금 잠자리채.jpg
롯데 자이언츠는 2003년 56호 홈런을 잡으러 사람들이 잠자리채를 들고 모인것을 기념하며 황금 잠자리채를 선물로 주었다. 이분직접 전해줘야..

파일:무등야구장 의자.jpg
KIA 타이거즈는 1995년 5월 2일 이승엽의 홈런 타구가 떨어진 광주 무등야구장 ‘외야석 관중석’을 선물했다. 이 홈런은 이승엽의 프로 데뷔 1호 홈런이었다. 당시 중계 화면이 없어서 KIA 구단은 이승엽에게 확인한 타구의 위치와 비거리(110m)로 낙구 지점을 추정해 좌석을 떼어냈다고 한다. 하지만 선물한 무등야구장 외야좌석은 1995년당시 좌석이 아닌 2004년에 무등야구장 리모델링을 할 때 교체한 의자로 추정되며, 홈런을 쳤던 1995년 당시에는 등받이가 없는 초록색 의자가 설치되어 있었다.삼갤글보도자료95년 무등야구장 외야 모습(이승엽의 무등구장 홈런 동영상) 다만 '홈런왕의 첫 시작'이라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로 주었다는 의미가 있다. 그럴거면 낡은 야구공 하나 주워서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 1호홈런볼이라고 기증하지 그랬어

파일:누비자 자전거 모형.jpg
NC 다이노스는 누비자 자전거[44] 모형을 전달했다.

파일: 메이플 목각 조각품.jpg
LG 트윈스는 이승엽의 응원가[45]가 내장된 목각 기념패 스피커를 선물했다. 이승엽이 사용하는 배트를 만드는 캐나다산 하드 메이플로 만들었다고 한다.

파일: 순금 액자.jpg
마지막으로 삼성 라이온즈는 이승엽의 역대 홈런 중 베스트 5를 기념하는 순금 액자를 선물했다.
잘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희 구단에 돈이 없잖아요

트리비아

  • 팬서비스와 관련하여 한 야구팬이 올린 제보가 있었는데 1998년 통영공설운동장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당시 19살이었던 제보자는 경기 전에 몸을 풀고 있던 이승엽을 발견하고는 이승엽에게 다가가 사인을 요청했는데...이승엽에게 돌아온 대답은 "저리 가라, 이 새끼야"(!!!). 20여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아직까지 마음 속에 큰 상처로 남았다는 이승엽의 폭언에 가까운 대답을 듣고 풀이 죽어있던 제보자에게 근처에 있던 양준혁이 다가와서는 대신 이승엽의 사인을 받아줬다고 한다. 해당 영상 이 제보로 인해 이승엽에 대한 까임의 강도는 훨씬 더해졌으며, 2018년 현재도 이승엽의 기사마다 "저리 가라, 이 새끼야"라는 조롱성 댓글이 항상 따라다니고 있다.

  • 개그맨[46] 김제동과 과거 대구구장 장내 아나운서 시절부터 친분을 쌓아서 유명 스포츠 선수인 자신의 결혼식 사회를 수많은 연예인들을 다 뒤로 밀어 버리고 당시 듣보잡이던 김제동에게 부탁할 정도였다. 김제동은 이것을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고마워하며 자신의 결혼식 사회를 꼭 이승엽에게 맡길 것이라고 했다. 근데 결혼을 해야 말이지. 다만 워낙 방송에서 김제동이 이승엽과 친분이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다 보니 김제동이 이승엽 이야기를 하면 '또 이승엽 팔이 하네.'라고 악플이 달릴 정도가 되자 이승엽을 언급하는 횟수는 줄어들었다. 다만 친분은 여전해서 2012년 한국시리즈가 끝난 직후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서 이승엽을 섭외할 수 있었다. 2017년 이승엽 은퇴식 때도 김제동이 사회를 보았다.

  • 등번호 36번은 장종훈이 썼던 35번에 1을 더한 것으로, 장종훈을 뛰어넘는 타자가 되겠다는 다짐으로 36번을 달았다는 설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원래 이승엽이 달고 싶어한 번호는 경북고와 청소년 대표팀에서 쓰던 27번이었지만, 삼성에서 27번은 타자가 받는 번호였기 때문에 투수로 입단한 이승엽은 원래 투수가 받던 번호인 36번을 받았다. 그래서 이승엽 이전에 삼성에서 36번을 달았던 선수는 모두 투수. 이승엽에게는 등번호 선택권이 없었기 때문에 본인은 별로 애착이 가지 않는 번호였는데, 36번을 달고 1997년에 MVP를 받고 나서야 정이 들게 되었다고 한다. 출처1 출처2

  • 잘 알려진 기록은 아니지만 한국 프로야구 1호 무관심 도루(무관심진루:Indifference advance) 기록자다. 야구 규칙에 무관심 도루와 관련된 조항이 있긴 했지만 그 판정을 내려야 할 기록원들이 판정하기를 주저하여 무관심 도루를 주는 경우가 없었다. 이유는 판단의 기준이 애매하기도 하지만 선수 개개인의 연봉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성적에서 일부를 헛된 기록으로 만든다는 게 기록원들로서는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2년부터 이승엽에게 시범케이스로 1개 적용된 것을 시작으로 이듬해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했다. 첫 피해자(?)가 하필이면 이승엽이 되긴했지만 덕분에 진기록을 하나를 추가한 셈이다.

  • 홈런을 치면 라지에타가 터지고 백인천매우 좋아한다 카더라.(...)

  • 이승엽은 간첩도 안다. 한국 사람이라면 당연히 아는 인물이라는 의미로 쓰는 말이긴 한데, 문제는 진짜 간첩이 본인 입으로 이렇게 말했단 거다. 그래서 한동안 개그 소재로 쓰이기도 했다. 해당 기사.

  • 2003년,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세우고 시즌 종료 후, 12월 18일, 해피투게더에 직접 출연했다. 같이 출연한 도전자들은 장나라, 윤도현인데 제일 쉬운 5번 자리를 뽑았다. 그런데 저번 주와 마찬가지로 짧은 노래임에도 계속 틀리는 바람에 진도를 더럽게 나가지 못했고 이대로 실패하면 노래도 못 부르고 쓸쓸히 돌아가야 했지만 마지막 시도에서 장나라 파트의 가사가 기적적으로 맞았고 비로소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또한, 어느 방영분에서는 전화로 쟁반 맞을 사람을 선정하는 찬스 도우미로 나서기도 했다.

  •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야구의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4번 타자로 등장해 결승 홈런으로 일본을 격침시켰는데 이후 일본을 향해서 사과(?)를 했다. 그런데 정작 일본인들의 반응은...... "왜 우리가 이승엽에게서 사과를 받아야 하지?" 라는 반응. https://blog.naver.com/kwon7749/30035006851

  • 2013년 6월 23일 LG 트윈스전에서는 난생 처음으로 시타를 맡았다. 그 이유는 암에 걸린 아버지가 이승엽의 팬이라며 이승엽 선수가 시타를 맡고 자신 아버지가 시구를 하게 해달라고 사연을 보낸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였다. 이날 만큼은 승빠, 승까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폭풍감동이라며 이승엽을 칭찬했다."저리 가라, 암 새끼야"(!!!) 해당영상

  • 2012 시즌 후 SBS 프로그램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아내 이송정과 함께 게스트로 출연했다. 때마침 힐링캠프 MC가 김제동이어서 섭외에 기꺼이 응한 듯한다.

  • 라이센스 문제로 이승엽의 본명을 야구게임들이 못쓰고 있다. 때문에 장남식, 이태산때 처럼 간혹 본명대신 게임내에서 쓰이는 이름이 별명대신 불리고 있다. 이런 이름중 가장 유명한건 이영웅과 이국민. 누가봐도 국민타자 또는 국민영웅에서 따온 이름인듯 하다. 그러다가 프로야구 매니저에서는 2014년 4월 10일, 마구마구에서는 4월 16일 업데이트로 이승엽 선수카드가 본명으로 전환되었다.

  • 1999년 이승엽이 당시 한국타자 최초로 50홈런을 돌파하자 MBC '성공시대'라는 프로그램에서 이승엽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진 적이 있다.[47] 이때 이승엽이 양준혁은 이미 타격기술이 최정상에 오른 선배인데도 한밤중에 타격연습을 했다는 일화를 말하며 자신이 가장 많이 본받은 선수로 양준혁을 뽑았다. 당시 집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그 방송을 보던 양준혁은 자신의 유니폼을 입은 대역배우가 한밤중에 배트를 휘두르며 연습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놀랐다가 이후 이어진 이승엽의 인터뷰를 보며 상당히 뿌듯해 했다고 한다.[48]

  • 한창 주가를 달리던 1999년 말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그 노래도 여러모로 레전드(...). 문제의 노래가 바로 거리의 시인들이다. 뮤직비디오 중간에 뒷골목에서 학생들을 괴롭히는 불량배들을 혼내 주는 청년 역할로 나온다.

  • 2014년 5월 이건희 당시 삼성그룹 회장이 의식불명의 상태에서 누워있던 도중 병실에서 이재용 부회장과 가족들이 TV로 야구 중계를 보고 있던 도중 이승엽 선수의 홈런 소식을 전하던 캐스터의 홈런~~~!!!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고 한다. 그 때문에 이례적으로 대표이사가 와서 이재용 부회장의 감사인사를 구단측에 전했다. 해당 기사 덧붙히자면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 두사람 다 야구광이다. 이재용 문서 참고.
    후에 이 기적(?)을 두고 각종 드립들이 성행했는데 그 중의 백미는 승청가. 출처는 여기. 또한 대내외적으로 국민OO라는 별명이 많이 쓰이는 만큼 국민화타(...), 국민 제세동기라는 별명도 생겼다.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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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야구 선수로는 최초로 교과서에 실리게 됐다. 진로와 직업이라는 교과서로 오랜 기간 다양한 연령층의 팬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이승엽 선수의 인터뷰를 통해 프로야구 선수의 삶과 직업으로서의 모습 등 정보를 제공하고자 기획했다고 한다.#

  • 2014년 8월 24일 베이브 루스의 예고홈런에 맞먹는 예고홈런이 나왔다. 해당 기사 이날 경기 전 자신을 만나길 소원하던 시각장애 학생 공민서 군에게 큰 선물을 선사했다. 이승엽은 경기 전 이날 시구자로 나선 공민서 군의 시구 도우미로 나섰다. 이후 사인을 해주는 등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다. 공민서 군은 이승엽에게 "이날 경기에서 꼭 홈런을 쳐달라"고 부탁했고 이승엽은 그 약속을 지키며 공민서 군에게 소중한 추억을 선사했다.

  • 이번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종목에서 해설자로 발탁되었다!! 선수시절의 경험담을 잘 엮어 좋은 입담를 보여줄 수 있을지 벌써 뭇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 2017 시즌후 은퇴 시점을 잡고 있는듯 하며, 그안에 프로통산 2000안타를 달성하는 것이 목표. 해당기사 시점까지 통산 안타는 1757개. 그리고 2016년 9월 7일, 대구 KT전에서 역대 8번째로 2000안타를 달성했다.

  • 삼성 선수 답지 않게 삼적화의 희생양이 되지 않은 흔치 않은 선수다.

  • 국민타자라는 별명은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90년대 후반 IMF로 실의에 빠졌던 국내에서 엄청난 홈런 레이스로 분위기를 살렸고, 주요 국제 대회에서 중요한 순간 한 방을 쳐낸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은 삼성팬을 넘어서 90년대를 버텨낸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까지. 그는 야구인을 넘는 야구인이었다. 게다가 그는 무리하다 싶었던 그 역할을 지금까지 훌륭하게 수행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흠잡을 데 없는 자기 관리로 본받을 만한 스타의 모습을 아직까지도 보여준다. 하지만 동점인 상황이승엽에게 끝내기 호무란 맞고 상대팀 팬이 죽도록 스트레스 받았다 카더라

  • 2015년 초, 중학교 교과서에 이승엽의 인터뷰가 실렸다. 삼양미디어의 '진로와 직업' 교과서에 나온 각계 직업 종사자 17명 중 한 명으로 뽑혀 실린 것으로 관계자에 따르면 '학생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생각에 이승엽을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

  • 2015 WBSC 프리미어 12 개막전에서 일본 선수들과 통역 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오랜 일본 경력만큼이나 일본어 실력도 수준급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2015 시즌 이후 2년 36억에 FA 계약을 체결하였고 2017 시즌 이후에 은퇴를 하겠다고 미리 예고를 했다.

  • 2015년 12월 3일, 현역 프로야구 선수로는 최초로 동상이 모교인 경상중학교에 세워졌다. 기사

  • 2016년 성우로 깜짝 데뷔했다. 대구 도시철도 2호선대공원역(대구) 안내 방송을 맡게 된 것. 안내 방송은 2월 25일부터 열차 내에 방송되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안녕하세요. 삼성라이온즈 이승엽입니다. 이번역은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가 있는 대공원역입니다. 내리는 문은 오른쪽입니다. 야구장에 오셔서 힘찬 함성과 뜨거운 열정을 함께하시기 바랍니다."
  • 2017년부터는 안내방송이 중단되면서 원래 성우로 회귀했다.

  • 2009년에 서울의 에스콰이어 빌딩을 293억원에 구매해 건물주가 되었다. 당시 대출을 통해 샀으며 2014년에 모두 대출금을 모두 상환했다고 한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대부분이 일부 금액은 본인 돈으로, 나머지 액수는 대출을 받는 식으로 건물을 구매하는 일이 자주 있는데, 연예인(특히 아이돌이나 배우 등 비주얼로 활동하는 쪽)이나 운동선수는 직업 특성상 근무수명이 매우 짧기에 미리 노후를 대비하는 차원. 임대료 연금 비슷한 케이스로는 서장훈이나 효린이 있다.

  • 경북고 학생들의 증언에 의하면 학교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는 모습이 자주 발견된다고 한다. 단순히 놀러오는 게 아니라 모교 야구부 후배들이 성적이 좋지 않을 때 애정(?)어린 설교(??)도 제법 한다고.[49]

  • 술담배를 하지않기로 유명하다.[50][51] 또한 흡연을 하는 선수들에게 담배피지 말라는 조언을 많이 하기도 한다.

  • 燁(빛날 엽)이라는 한자가 일본에서 자주 쓰이지 않아 어려워서인지 일본어 위키백과에서는 '엽' 부분만 가타카나로 표기한 '李承ヨプ'이란 표기가 표제어로 되었다. 북한 정치인 리승엽도 똑같이 표기한다.

  • 2016년 시즌 종료 후 이 팀의 코칭스태프 개편에 따라 한때 함께 뛰었던 형님분은 감독되고 동갑내기 친구분먹성좋고 든든한 아우 그리고 독일에서 1년간 뛰다 돌아온 아우가 코치로 오면서 본인이 느낄 심적 부담이 가볍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평소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잘 안하기로 한 김응용당시 삼성감독은 당시 이승엽 선수의 한시즌 아시아 최다홈런을 눈 앞에 두고 있던 시점에서 만약에 이승엽이 기록을 세운다면 하이파이브를 하겠다고 기자들에게 얘기한 적이 있었다 이승엽이 56호 홈런을 치고 이승엽선수와 하이파이브하려고 앞으로 나왔는데 이승엽은 김응용 감독을 못보고 그냥 지나쳤다고 한다. 그러길래 평소에 하이파이브좀 하시지...

  • 취미로는 인터넷 장기 라고 한다.

  • 현역 프로선수로 활동하면서도 석사학위를 따낼 정도로 학구열이 높은 야구선수다. 이승엽/선수 경력 문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으로, 고3 시절에는 한양대학교로 진학하려 했으나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프로 진출을 하는 쪽으로 선회한 적이 있다. 이후에는 아들이 대학진학을 했으면 하는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어드리고자, 프로 데뷔 4년차인 1998년에 대구대학교 행정학과에 진학한다. 2002년에 대구대 학부 졸업과 동시에 성균관대학교 스포츠마케팅학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한 후 수료했다. 2005년에 영남대학교 스포츠과학대학원 체육학 석사과정에 입학하여 2012년에 졸업했다. 프로야구선수들은 일반적으로 공부와 담을 쌓고 야구만 하는 경우도 많으며, 고졸 야구선수들 중에는 군 문제 때문에 입영을 늦추고자 대학에 이름만 걸어두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이승엽의 경우는 군 문제와 전혀 무관한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대학 진학을 선택했으며, 프로선수로 활동하면서 석사과정까지 마치는 학구열을 보여주어,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공부하는 야구선수'의 귀감이 되고 있다.

  • 프랑스의 축구선수 지네딘 지단과 비슷한 면이 있다. 지네딘 지단과 이승엽은 각각 소속팀인 유벤투스 내지 레알 마드리드삼성 라이온즈에서도 전설급의 활약을 선보였으며 국가대표팀에서도 각각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조국의 우승을 이끄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었다는 점에서 유사하며 마지막 은퇴 경기에서도 전설적인 활약을 펼치고 떠난 것까지 매우 유사하다. 이승엽이 은퇴하자 삼팬들은 망했어요를 외치고 있다. 러프나 구자욱말고 20홈런을 넘게 칠수있는 선수가 이승엽밖에 없는것 올해도 이승엽은 홈런을 24개나 쳤다 반응들도 은퇴하기 아깝다는 반응. 안그래도 식물타선인데 은퇴하면...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국민타자라는 수식어와 함께 20여년간 전 국민적인 스타로 여겨졌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비해 TV출연횟수는 많지 않았다. 예능 출연프로그램이라곤 결혼직전 서세원쇼 밖에 없었으며, 결혼후에도 윤도현의 러브레터로 스타가 된 김제동의 고정출연 예능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대부분 나왔다. 공중파 방송으로 해피투게더(KBS 2TV)-쟁반노래방, 일밤-불가능은 없다, 힐링캠프(SBS) 등에 게스트로 출연하였으며, 다큐멘터리로는 성공시대, SBS 스페셜 등에 출연하였고 종편은 2017년 12월 7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하였다.

  • 현역 시절에는 SNS를 하지 않았으나, 은퇴 후 본인 인스타그램 계정을 오픈하여 SNS를 시작했다. 이승엽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은퇴 후 골프나 일상생활 등 본인의 근황을 자주 올려주는 편이며, 후배 구자욱이 본인의 게시물에 댓글을 달자, "인스타할시간에 스윙해라 난 은퇴해서 하는거다 ㅋ" 이라고 답글로 쓴소리를 해주기도 했다. 역시 국민타자라는 수식어 답게 계정이 오픈된지 1달도 안되는 시점에서 팔로워수가 1만명을 돌파했다.

  • 원년 OB 베어스 어린이 회원 출신이다. 출처. 다만 나중에 삼성 어린이 회원으로 갈아탔다고 한다. 어린시절 박철순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이승엽의 어린시절 우상이자 롤모델이 박철순이었고, 박철순과 같은 투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

  • 향후 삼성 감독직도 고려하는 듯 하다. 허나 삼성 팬들은 대선수의 명성이 깎이는 것을 우려하는지 부정적이다.

  •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국기 전달자로 나왔다. 올림픽 출전 기록(2000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2008 베이징 금메달)도 있다.

  • 한때 야구팬들에게 국민타자라고까지 불렸던 불멸의 슈퍼스타였지만, 은퇴 후 현재는 그 칭호를 인정하는 팬의 수가 급속도로 줄고 있다. 다름 아닌 팬서비스 때문으로, kbo 역대 최악급의 팬서비스로 인해 현재 이승엽 관련 기사는 죄다 희소성 드립이나 사인 관련 언급이 댓글을 점령할 정도로 이미지가 떨어져 있는 상태. 물론 본인의 자업자득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다만 현역 은퇴후에는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를 중심으로 팬서비스를 받았다는 후기가 올라오면서 잘해준다는 소문이 도는편. 그래도 여전히 비판을 받고 있긴 하다.

  • APBC에 주장 완장을 달고 출전하는 구자욱이 36번을 달려고 원 주인인 이승엽에게 허락 받으러 전화를 걸었는데, 안 달면 가만 안둔다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그리고 폭망

  • 2018년 8월 16일, 4시 30분부터 5시 40분까지 능인고등학교 학교 체육관에서 특별 강의를 했다.능인고등학교에 특강을 온 기념으로 본인의 두번째 수능을 능인고등학교에서 치뤘다는 TMI와 함께, 학생들의 질문을 추첨으로 뽑아 답변을 하고 본인의 친필 싸인볼을 총 12명에게 전달했다.
대략적인 질문과 답변 내용은 아래와 같다.
- 야구를 그만 둔 이유는 후배들과 한국 프로야구를 위한 것이고 현역 시절, 누구보다 열심히 해왔으며 그만큼 힘들었던 시기를 다시 보내기 싫기에 다시 야구를 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 야구를 하면서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냐는 질문에는, 자신의 마음을 건드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도중에 포기하고 싶기도 했다고 말했다.
- 운동으로 성공하는데에는 재능과 노력,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
- 본인에게 삼성 라이온즈는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질문에는 본인의 꿈이었던 구단이며 앞으로 지도자가 된다면, 삼성 이외의 유니폼을 입을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가족관계

  • 아내는 고등학교때 부터 모델로 활동했었던 이송정(1982년생). 2001년, 이승엽(당시 만 25세)이 앙드레 김 패션쇼 무대에 서게 되었는데 이때 만난 모델 이송정(당시 만 18세)을 보고 대시했고,[52][53] 1년 간의 열애 끝에 대학교 1학년이던 2002년에 결혼했다. 당시 중앙대 연극학과에 재학중이었기에 엄청난 반대가 있었다고.[54] 레알 도둑놈이다 팀 선배인 이 분은 결혼마저 밀린다. 굉장히 아름다운 미모의 소유자에다 동안이다. 현재 두 아이의 엄마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인데 스포츠스타 부인 중 가장 출중한 미모를 자랑한다는 평이 많다. 남편은퇴인터뷰가 남편보다 조회수가 높다. 여담으로 이승엽이 아내를 부를때 "애기 엄마"라고 부르는데 이송정이 집사람, 와이프라는 말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 아들로는 이은혁, 이은준이 있다. 여담으로 첫째인 은혁이는 야구보다 축구를 더 좋아한다고 한다. 아이 욕심이 있어서 인지 셋째도 가지고 싶고 딸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55]

  • 약혼 후 파혼 경험이 한 차례 있다. 동갑내기의 서강대를 졸업한 재원과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고 신문에까지 보도될 정도의 사이였으나, 무슨 이유에서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 모친인 김미자는 2007년 1월 6일에 향년 58세로 사망했다. 김미자는 2002년에 뇌종양을 진단받고, 5년이나 투병했지만 끝내 숨지고 말았다. 이승엽은 평소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을 항상 가슴에 품고 다녔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은퇴식 때도 현장에서 상영된 과거 동영상에 모친의 얼굴과 목소리가 등장하자 오열하기도 했다.



말말말


뜨거운 아시아의 대포에 뜨거운 혼을 담았다. 이 노래여 전해져라, 홈런 이승엽
(熱きアジアの大砲に 熱き魂を収めた この歌よ届け, ホ―ムラン李承燁)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응원가

아아아 이승엽 삼성의 이~승엽 아아~아 이승엽 전설이 되어라
삼성라이온즈시절 응원가

당신(이승엽)은 나쁠 때도 좋을 때도 거인(요미우리)의 4번 타자입니다. 모두를 끌어가는 선수이니 괴로울 때도
분할 때도, 잘 되지 않을 때도 한 명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모두가 뒤에서 지지해 주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말을 걸어와 주세요. 당신은 반드시 할 수 있습니다.
ㅡ 현 요미우리 자이언츠 간판 타자 아베 신노스케가 이승엽에게 보낸 쪽지.[56]

바로 지금. 이 위대한 순간의 증인이 될 수 있어 행복합니다!
2015년 6월 3일 포항 롯데전에서 KBO리그 최초 개인통산 400홈런을 쳐낸 후 정우영 캐스터의 멘트. 52초부터.

'''"1995년 5월 2일 통산 첫 번째 홈런, 7806일의 기다림! 담장을 넘었다는 600번째 외침! 이제 대한민국에도 600홈런 타자가 있습니다! 전설로에서 전설로 가는 600호 홈런을 쏘아올린 전설의 타자 국민타자 이승엽, 우리는 이승엽의 시대를 함께 살았습니다!"
ㅡ 김민수 SPOTV 캐스터(9월 14일 이승엽의 한일통산 600호 홈런 후 멘트)

홈런 하나 치고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예전엔 안 그랬거든요. 하나를 쳐도 더 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그래서 더 노력할 수 있었죠. 이젠 달라졌더라구요. 홈런 하나 쳤다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 이제 정말 은퇴해야 하는 구나'하고 느끼게 됐습니다. 이제 홈런 하나로 만족이 되더라구요. 됐다고 하는 순간 나태해지는거라 생각합니다. 나태한 모습으로 시간을 끄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은퇴 시기를 참 잘 잡은 것 같습니다.
ㅡ 은퇴 시즌인 2017시즌 22호 홈런을 친 뒤 인터뷰에서

이승엽 삼성와도 자리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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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

삼성 올래?
류중일

이승엽은 본인의 마지막 경기에서도 역시 이승엽이었습니다.
-이승엽이 마지막 홈경기 첫타석 투런 홈런을 치고 난 후 공격 이닝을 마무리 할 때 MBC SPORTS+ 한명재 캐스터가 남긴 멘트

우리 세대의 타자!
우리와 함께 데뷔했고
우리와 함께 웃었고, 울었고,
기뻐했고 슬퍼했던 타자입니다.
우리 세대의 선물을
오늘 우리는 우리 가슴속에 새깁니다.
정말 우리에게
이 많은 추억을 안겨줘서 고맙습니다.
당신은 라이언 킹이 아닌
우리에게는 베이스볼 킹이었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당당했고
자신 있는 선수였는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당신의 땀과 눈물,
그리고 그 가치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보고 계시죠, 듣고 계시죠,
당신이 함께한 역사는
당신이 어디에 있든
우리 가슴에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이승엽
한명재 캐스터의 은퇴식 클로징 멘트

연도별 성적

  • 타자 기록. 붉은색은 리그 1위 기록, 푸른색은 신기록을 뜻한다.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석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 타점 득점 도루 사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5 삼성 121 411 365 .285 104 29br(2위) 1 13 174 73 55 0 37 .458 .354
1996122 504 459 .303 139 32br(2위) 6br(2위) 9 210 76br(3위) 57 4 39 .477 .345
1997126 577 517 .329br(2위) 170br(1위) 37br(1위) 3 32br(1위) 309br(1위) 114br(1위) 96br(3위) 5 55 .598br(4위) .391
1998126 568 477 .306 146br(3위) 32br(3위) 2 38br(2위) 296br(1위) 102br(2위) 100br(1위) 0 83 .621br(1위) .404br(3위)
1999132 614 486 .323 157 33br(5위) 2 54br(1위) 356br(1위) 123br(1위) 128br(1위) 10 124 .733br(1위) .458br(1위)
2000125 544 454 .293 133 33br(2위) 0 36 br(4위) 274br(5위) 95 108br(1위) 4 87 .604br(5위) .404
2001127 574 463 .276 128 31br(3위) 2 39br(1위) 280br(1위) 95 101br(2위) 4 108 .605br(2위) .412
2002133 617 511 .323br(3위) 165br(2위) 42br(1위) 2 47br(1위) 352br(1위) 126br(1위) 123br(1위) 1 104 .689br(1위) .436br(2위)
2003131 596 479 .301 144 23 0 56br(1위) 335br(1위) 144br(1위) 115br(1위) 7 111 .699br(2위) .428br(3위)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석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 타점 득점 도루 사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4[[치바 롯데 마린즈|치바br롯데]]100 382 333 .240 80 20 4 14 150 50 50 1 45 .450 .328
2005117 445 408 .260 106 25 2 30 225 82 64 5 34 .551 .315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석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 타점 득점 도루 사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6요미우리143 592 524 .323br(2위) 169 30br(4위) 0 41br(2위)322 108br(4위) 101br(4위)5 61 .615br(3위) .389
2007137 583 541 .274 148 29 2 30271 74 84 4 39 .501 .322
200845 170 153 .248 38 4 0 8 66 27 21 1 17 .431 .324
200977 257 223 .229 51 9 0 16 108 36 33 1 33 .484 .327
201056 108 92 .163 15 1 0 5 31 11 13 1 15 .337 .280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석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 타점 득점 도루 사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1 오릭스 122 432 394 .201 79 20 0 15 144 51 28 0 32 .365 .257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석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 타점 득점 도루 사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2삼성 126 556 488 .307150br(4위) 28 2 21br(5위) 245 85br(5위) 84br(3위) 6 63 .502 .384
2013111 483 443 .253 112 24 0 13 175 69 62 3 32 .395 .298
2014127 548 506 .308 156 30 0 32br(4위) 282 101br(5위) 83 5 40 .557 .358
2015122 522 470 .332 156 28 1 26 264 90 87 2 46 .562 .387
2016142 623 542 .303 164 32 2 27 281 118 91 5 73 .518 .380
2017135 614 472 .280 132 30 5 24 244 87 65 1 53 .517 .347
KBO 통산br(15시즌) 1906 8270 7132 .302 2156br(3위) 464br(1위) 28 467br(1위) 4077br(1위) 1498br(1위) 1355br(1위) 57 1055 .572br(1위) .389
NPB 통산br(8시즌) 797 2969 2668 .257 686 138 8 159 1317 439 394 18 276 .494 .324
개인 통산br(23시즌) 2703 11239 9800 .290 2842 602 36 626 5394 1937 1749 75 1331 .550 .372

주요 기록

1999년
  • 대구 현대전, 최연소 통산 100홈런
    • 만 22세 8개월 17일, 상대 투수 3회 정명원, 기존 - 한화 장종훈, 23세 5개월

2000년
  • 인천 SK전, 최연소-최소경기 통산 500타점

2001년
  • 대구 한화전, 최연소 통산 200홈런
    • 만 24세 10개월 3일, 상대 투수 8회 김정수, 기존 - 한화 장종훈, 28세 4개월

2003년
  • 대구 SK전, 세계최연소/최단 경기 통산 300홈런
    • 만 26세 10개월 4일/1075경기, 상대 투수 8회 김원형, 기존 - 한화 장종훈, 32세 5개월 26일, 1565경기
  • 한 시즌 최다 홈런 한국 최고기록(56개)
2006년
  • 8월 1일 일본 도쿄돔 한신전, 한/일 통산 400홈런 달성
2012년
  • 5월 8일 사직 롯데전 한/일 통산 2,000안타 달성[57]
  • 6월 29일 대구 넥센전 최소경기 1,000타점 달성
  • 7월 29일 목동 넥센전 한/일 통산 500홈런 달성
2013년
  • 6월 14일 최연소/최단기간 개인 통산 350홈런
    • 만 36세 11개월 27일/1320경기, 상대투수 5회 찰리 쉬렉, 기존 - 삼성 양준혁, 40세 1개월 18일, 2057경기
  • 6월 20일 개인 통산 최다 홈런(352개)
2015년
  • 6월 3일 포항 롯데전 한국프로야구 최초 400홈런
2016년
  • 8월 24일 통산 최다타점(1,390타점)
  • 9월 7일 최고령, 최소경기 KBO 통산 2,000안타
  • 9월 14일 대구 한화전 한/일 통산 600홈런 달성
2017년
  • 5월 2일 통산 최다득점(1,300득점)
  • 5월 21일 통산 450홈런
  • 7월 29일 통산 4,000루타
  • 9월 1일 통산 최다2루타(459 2루타)
  • 10월 3일 대구 넥센전 역대 최초 은퇴 경기 홈런 & 연타석 홈런

영광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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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6월 22일 세계 최연소 300홈런을 기록한 순간.

파일:external/weekly.chosun.com/2120_55_02.jpg
2003년 한국프로야구 홈런 신기록 (56호) 달성. 2014년 현재까지도 한국프로야구동양인 단일시즌 최다 홈런 기록이며,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야구에서도 2013년 블라디미르 발렌틴이 깨뜨리기 이전까지 최다였다. 3루베이스를 돌고있는 이승엽을 축하해주는 코치는 류중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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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3일, 그의 고별전에서 연타석 홈런을 치고 들어오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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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4번 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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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사진은 2017년 10월 3일 은퇴식 당시 모습.
  • [2] 음력 1976년 윤8월 18일.
  • [3] 이 문서에서는 제법 오랫동안 수성구로 되어 있었지만 이는 출신 초등학교인 대구중앙초등학교가 현재 수성구에 있기 때문에 잘못 작성된 듯하다. 운동부는 집 가까운 학교가 아니라 종목에 따라서는 멀리 있는 학교를 다니기도 한다. 그리고 대구중앙초는 원래 중구(현. 2.28기념중앙공원 자리)에 있던 학교다. 이승엽의 재학시절은 물론, 졸업 후 6년 후인 1995년 폐교될 때까지 중구에 있었다. 이후 2003년 만촌동에서 재개교함으로서 수성구에 있는 학교가 된 것이다. 실제로 이승엽은 중구 동인동4가 출신으로 프로 입단 후 신인시절까지도 동인동에 거주했다. 중구청 홈페이지의 중구 출신 인물에도 올라와 있다. 수성구는 출신고교 소재지이자 현 거주지이다.
  • [4] 1943년생. 전남 강진 출신.
  • [5] 1949년 전남 해남 출생. 2007년 1월 6일 별세.
  • [6] 1982년 9월 22일 서울 출생. 자식들에게 매우 엄하다고 이승엽 본인이 말한 바 있다.
  • [7] 2005년 8월 12일 일본 치바 출생.
  • [8] 2011년 5월 16일 일본 오사카 출생.
  • [9] 행정학과. 프로야구선수 생활을 하던 1998년 입학, 2002년 졸업
  • [10] 입단 당시에는 투수를 겸업하였다. 근데, 프로에서는 등판을 하지를 않았다.
  • [11] 등장곡에 후! 하는 가사가 있는데 팬들은 하! 라고 외친다.후!하!후!하!
  • [12] 그 전까진 김진표의 아직 못다한 이야기(feat.BMK)를 썼었다.
  • [13] 은퇴 시즌인 2017년 6월 중반부터 은퇴경기까지 이 곡을 사용했다.
  • [14] 사족으로 99년도에 한국프로야구 1시즌 최다홈런을 경신하던 당시의 등장곡이다.
  • [15] 새로운 응원가가 생겼는데 어째서인지 공식 홈페이지에는 너를 태우고 버젼과 자유시대 버전이 모두 올라와 있다. 두 응원가를 모두 쓰는 듯 하다.
  • [16] 아아~아~ 이승엽~ 삼~성의 이~승엽~ 아아~아~ 이~승엽~ 전설~이 되어라~ 이미 전설인데? 팬 공모로 만들어진 응원가. 고려대학교응원가 '들어라 보아라 그리고 기억하라'도 같은 노래를 쓴다. kt 위즈도 같은 곡을 쓰는데 kt는 앞부분, 이승엽은 뒷부분이므로 멜로디는 겹치지 않는다. 여담으로 이승엽의 마지막 타선에서 한명재캐스터와 양준혁 해설의 대화에서 이 곡도 영구결곡해야 할 것 같다고 느낌을 밝혔다.
  • [17] 삼성 이승엽 삼성 이승엽 날려버려 날려버려 이승엽~(x2) 난나나 나나나나 나나나 홈런 난나나 나나나나 나나나 Hey(x2) 2014 시즌 내내 레전드 응원가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특유의 경박함(...)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까였고, 결국 이 시즌을 끝으로 사라지면서 또 다른 응원가 흑역사 확정. 다만 이승엽에게 어울리지 않을 뿐, 응원가 자체는 괜찮다는 평도 많다.
  • [18] (둥둥) 이! (둥둥) 승! (둥둥) 엽! (둥둥) 홈런! 일본 진출 전에는 이 전용 구호가 사용되었고, 국내 복귀 후에는 앞의 응원가가 나오기 전에 타석에 서면 응원단장 주도로 실시한다. 현역 중에서는 LG이병규, LG시절의 조인성, 두산의 외인 선수였던 우즈와 함께 전용 응원구호 보유 선수(더 있으면 추가바람). 평상시 누구때문에 조용하기로 유명한 삼성팬들의 데시벨이 이때만큼은 정말 올라간다.
  • [19] 과거에는 양준혁도 응원가가 아닌 전용구호로 응원을 했었다. 다만 이승엽과는 달리 전주가 구호 사이에 들어가는 방식.
  • [20] 치바 롯데 마린스 시절에는 정광태의 힘내라 힘을 응원가로 사용하였다. 날려버려~ 날려버려~ 날려라 이승엽~ 날려버려~ 날려버려~ 날려라 이승엽(이승엽 호무란!*4)~영상보면 날 자를 발음을 잘 못해서인지 나려버려라고 부른다
  • [21] 그러나 최근 프로야구 선수들의 팬서비스가 논란이 되면서 과거에 팬들을 벌레보듯 했던 이승엽의 행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당시 이승엽은 "사인을 해주면 자기 사인의 희소가치가 떨어진다"는 역대급 발언을 했고 여기에 기반해 국민타자 대신 국민희소성이라는 조롱섞인 별명으로도 불린다. 이에 "이승엽을 국민타자라고 부를수 있는가?"를 두고 이승엽의 팬과 야구팬들 사이에서 설전이 오가고 있다.
  • [22] 야갤에서는 여기서 파생해 읍민타자, 읍민적이라는 별명으로 부른다.
  • [23] 사실 이건 2ch 유저의 글이 원본이다. 최근엔 더 작아져서 힉스적 까지도 내려간다(...). 잘하면 갤럭시 타자가 되기도. 갤럭시가 은하인데
  • [24] 하지만 이후 타석에 들어선 최희섭이 쓰리런 홈런을 날려버렸다. 이거최? 아니지
  • [25] 다만 그보다 불과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은 김재현, 심정수 등이 선수협에 참가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할 부분이다.
  • [26] 게다가 삼성그룹은 무노조를 경영정책으로 내세워서 기업을 경영하는 걸로 유명하다.
  • [27] 실제로 선수협을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던 삼성 구단에서는 그 당시 이미 국민적 스타로 떠오른 이승엽에게 갖은 회유책을 썼으며 이승엽 본인도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모르겠다"라고 선배 선수들에게 울면서 통화했다는 기록도 있다.
  • [28] 절친한 선후배 관계였던 양준혁의 옹호야 그렇다 치더라도, 심지어 그 강병규조차도 이승엽에게 선수협과 관련해서는 어떠한 비난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 [29] 다만 이 당시에는 이승엽이 사실상 삼성 구단과 짜고 가입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있었지만 선수협은 이 후 이승엽을 얼굴 마담으로서 활용했었고, 앞서도 말했듯 선수협 당사자들은 이 당시의 이승엽을 비난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 [30] 서울 지하철 2호선 종합운동장역, 서울 지하철 3호선 양재역에서 방송된다.
  • [31] 관련 영상(유튜브)
  • [32] 또한 2018년 5월 5일 어린이날 KIA 타이거즈 vs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도 일일해설자로 나선다.
  • [33] 오죽 했으면 2003년, 이승엽과 라이벌 구도를 유지하며 대부분의 기록에서 무쌍을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KBO 올스타전에 팬 투표로 못뽑혀 감독 추천 선수로 참가하는 굴욕을 겪었었다.
  • [34] 사실 지금의 심정수에 대한 평가도 현역 시절보다 오히려 은퇴 이후에 더 좋아졌다고 봐야 한다. 현역 시절에는 이승엽에 묻혔다가 오히려 은퇴하면서 당시의 기록들이 재발굴 되고 재평가 되었기 때문.
  • [35] 오죽하면 은퇴 직전 도박 사건이 터졌을 때 심정수가 범인이 아니라고 스스로 밝히기 전까지 해명기사를 제대로 쓰는 기자조차 없었다.
  • [36] 사실 1, 2위 기록이 모두 이승엽의 03년도 56호, 99년도 54호라 개인으로 따지면 2위.
  • [37] 홈런 맞은게 딱히 굴욕이라고 하기도 힘든게 이정민은 홈런을 맞을 당시 베테랑이기는 커녕, 프로 2년차 대졸 신인에 불과한 25살된 어린 선수였을 뿐이다.물론 이승엽도 28살이라 엄청많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고졸 신인출신이라 9년차였다. 거기다가 하필이면 이날 이정민은 프로 데뷔 첫 승을 거뒀었다. 때문에 첫 승이라는 소중한 기록은 묻혀버린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축하 대신 이승엽의 들러리로 한동안 언론매체에 의해 격하당해야 했다는 점은 그야말로 비극이라 볼 수밖에...
  • [38] 그리고 그 다음해 '불알타' 사건 때문에 역대급 임팩트로 그 이미지가 되어 너무 주목(?)이 되어서 타자 김문호와의 관계만 한국 야구팬들에게 각인이 되는 바람에, 이승엽과의 관계는 전혀 언급이 없는 수준이 되었다. 사실 그 해 윤희상이 부상으로 1년간 선수 생활을 못 하게 된 건 불알타 사건이 아니라 그로부터 한달 뒤 송광민의 타구를 손에 맞아서 손뼈가 부러진 비극 때문이었는데, 야구팬들은 심지어 그 시즌 아웃을 불알타 사건 때문인 것으로 잘못 기억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윤희상이 등판할 때 타자로 송광민이 나오면 별 반응 없는데, 김문호만 나오면 잠깐동안 여러 야구 커뮤니티가 난리난다 방망이 휘두르지 마라, 양심 있으면 삼진 당해라 등등 불알타 사건은 검진 후 치명적 부상(전치 2주)이 아니었던 것으로 밝혀졌고, 오히려 운동선수에게 손뼈가 부숴지는 부상이 실제 1년만 쉰게 다행일만큼, 잘못하면 선수생활을 접을만큼 훨씬 심각한 것임에도 윤희상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건 큰 주목이 안 되고, 몇년째 그 사건만 계속 주목 된다. 차라리 허용투수 이미지가 낫겠다
  • [39] 포크볼을 던졌는데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 [40] 출처 : 위키백과 가와카미 겐신 항목
  • [41] 이승엽은 한화 소속이 아닌 선수로는 홈런으로 대전구장 외야 뒤쪽의 보문산 정상을 넘긴 유일한 선수다. 대전구장에서 보문산 정상까지는 직선거리로 2600m. 공이 그 거리를 비행하려면 비거리 115m짜리 홈런을 23개 이상 쳐야 한다. 이승엽은 대전에서 28차례 담장을 넘겼다.
  • [42] 대전의 시목
  • [43] ‘은퇴한 뒤 가족과 함께 두 가방을 들고 즐거운 여행을 하라’는 뜻이라고 한다.
  • [44] 누비자 자전거는 창원 시민을 위한 공공 자전거의 이름으로 자전거 도시 창원의 상징물이다.
  • [45] 아아아~ 이승엽 삼성의 이승엽♪ 아아아~ 이승엽 전설이 되어라♪
  • [46] 김제동은 실제로 개그맨이 아니지만 개그맨으로 상당히 많이 알려져있다.
  • [47] 여담으로 '성공시대'에 출연할 당시 만 23세로, 이 프로그램 전체로 통틀어 봤을 때 최연소 출연자였다.
  • [48] 이런 이야기는 사실 과거 다른 유명 야구인들에게도 흔히 있는 이야기이긴 하다. 재일교포 스포츠인의 신화이자 위대한 야구인인 장훈과 한때 같은 팀에서 뛰었던 백인천 역시 밤에 자다가 목이 말라 숙소에 있는 식당에 물을 마시러 갔다가 장훈이 불 꺼진 식당 구석에서 방망이를 휘두르는 걸 보고 "장이형, 뭐하우?"라고 하자 "오늘 훈련할 때 좀 스윙이 안 좋아서 잠깐 연습한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당시 최고의 타자였던 그가 자신의 위치에 자만하지 않고 꾸준히 연습을 한다는 걸 알고 크게 감명을 받아 자신도 더 노력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 [49] 증언이라기보다는 경북고 문서에 기록된 부분을 인용.
  • [50] 사실 야구선수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활동량이 적고 관리를 잘 하지않는 특성때문에 다른 운동선수에 비해 흡연율이 높다. 야구선수 중에 흡연을 하는 선수는 생각보다 많은 편이다.
  • [51] 이 부분은 일본 최고의 타자인 스즈키 이치로와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 [52] 당연한 말이지만 고등학생이라서 노린 게 아니고, 알고보니 고등학생이었다고 한다.
  • [53] 이승엽이 자기를 미드필더라고 했는데 "아 그렇구나"라고 믿었을 정도로 야구를 몰랐었다고 한다. 중견수가 영어로 미드필더인 줄 알았던게 아닐까[60]
  • [54] 결혼 생활 때문에 캠퍼스 생활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지만 어찌어찌 졸업은 했다고 한다. 인터넷 강의를 듣다가 이승엽을 따라 일본을 간 후 중앙대와 자매결연을 맺은 니혼대학교에서 1년 반 정도 학교를 다니며 졸업장을 땄다고.
  • [55] 둘째 아들의 이름이 '은엽'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승엽의 마지막 올스타전 시타자로 나왔을 때 입은 유니폼 마킹은 '이은준'으로 되어 있었다. 아마도 개명을 한 듯.
  • [56] 중간 중간 어휘가 어색해 보이는 건 국내 언론에서 일본어 원문을 잘못 번역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쪽지를 받을 이승엽에게 진심을 전하고자 하는 아베 신노스케가 서투른 한국어 실력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직접 적었기 때문에 다소 어색해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그때...잠시 눈물 좀 닦고
  • [57] 기록의 50%이상을 KBO에서 기록한 선수기준으로 네번째. 현재 국내 최고기록은 양준혁의 2318안타.
  • [58] 8회 들어서면 결승타로 본인의 소속팀에게 승리를 주는 경우가 많았다.
  • [59] 이승엽의 모교. 선수 시절에 후배들 격려하려 곧잘 찾아왔고, 요즘도 종종 나타나서 운동장에서 농구(?!)하고 간다는 소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