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 다이노스 No.18 | |
박석민(朴錫珉 / Park Sok-min) | |
생년월일 | 1985년 6월 22일[1] (age(1985-06-22)세) |
신체 | 178cm, 88kg |
출신지 | 대구광역시 동구 |
학력 | 대구율하초 - 경복중 - 대구고 - (대구사이버대학교) |
포지션 | 지명타자[2], 3루수, 1루수[3]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2004년 신인드래프트 1차 지명 (삼성)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 (2004~2015)brNC 다이노스 (2016~현재) |
군 복무 |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6~2007) |
등장곡 | 카쿠다 노부아키 - よっしゃあ漢唄[4] |
응원가 | 삼성 시절: 하늘 - 웃기네[5][6][7] br 타카피 - 케세라세라[8]br신해철 -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9] BR 현재: 하늘 - 웃기네 br 타카피 - 케세라세라[10] |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 ||
{{{#ffffff 2005}}} | {{{#ffffff 2011}}} | {{{#ffffff 2012}}} |
{{{#ffffff 2013}}} | {{{#ffffff 2014}}} |
2012년 한국프로야구 페어플레이상 | ||||
김선우(두산 베어스) | → | 박석민(삼성 라이온즈) | → | 박용택(LG 트윈스) |
2014, 2015년 한국프로야구 3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 ||||
최정(SK 와이번스) | → | 박석민(삼성 라이온즈->NC 다이노스[11]) | → | 최정(SK 와이번스)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65번 | ||||
정성훈(1996~2002) | → | 박석민(2004) | → | 박병일(2005)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5번 | ||||
김대익(2004) | → | 박석민(2005) | → | 이여상(2006)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번 | ||||
박정환(2000~2007) | → | 박석민(2008~2010) | → | 김선민(2011)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8번 | ||||
정홍준(2006~2010) | → | 박석민(2011~2015) | → | 심창민(2016~ ) |
NC 다이노스 등번호 18번[12] | ||||
홍성용(2014~2015) | → | 박석민(2016~ ) | → |
삼성 라이온즈 역대 주장 | ||||
최형우 BR (2013~2014) | → | 박석민BR(2015) | → | 박한이 BR (2016) |
NC 다이노스 역대 주장 | ||||
이종욱 BR (2015~2016) | → | 박석민BR(2017)[13] | → | 손시헌 BR (2017~2018) |
NC 다이노스 역대 주장 | ||||
손시헌 BR (2017~2018) | → | 박석민BR(2018~)[14] | → |
목차
(동료들에게) 이기려 하지 말고 즐기자고 했습니다.[15]
소개 ¶
NC 다이노스의 개그맨 브로콜리 내야수. 주 포지션은 3루수다. 1차 지명을 받은 연고지 출신 유망주였으며, 데뷔 초에는 크게 빛을 보지 못하다가 상무에 입대한 후 타격 재능이 꽃피기 시작해 2000년대 후반 노쇠한 삼성 타선의 리빌딩을 이끄는 젊은 중심 타선의 한 축이 되었다. 그때부터 팬들 사이에서 브로콜리 헤어스타일, 적절한 허세, 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다양한 몸개그 등 확연한 캐릭터성으로 인해 채태인과 함께 삼성의 새로운 개그 아이콘으로 급부상했었다.
삼성 팬들에게 평생 삼성에서 함께할 프랜차이즈로서 사랑받았지만 2015 시즌 종료 후 FA를 선언하며 원소속팀과의 협상 결렬 후, 2015년 말 총액 최대 96억에 NC로 이적했으나... 현재는 먹튀 그 자체. 이젠 3루수 노진혁한테 줘야할듯
데뷔 시절 ¶
대구고등학교 시절부터 고교 정상급 타자로 주목을 받았으며, 2004년 삼성 라이온즈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하게 된다, 당시 포철공고 포수 강민호와 저울질하다가 김한수의 대체재로 뽑았다고 한다.[17] 그만큼 당시 삼성이 박석민에게 기대했던 것은 공격보다 수비였으며 실제로 대수비요원으로서 1군 생활을 시작하게 되나 기대만큼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프로 첫 홈런은 2004년 5월 20일 대 KIA전에서 고우석을 상대로 기록하였다. 간간히 1군에 올라올 때마다 뜬금타를 터트리면서 타격 면에서도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덕분에 2004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포함되기도 했다. 2005년 4월 29일에는 1군에 복귀하자마자 선발 출장하여 당시 기아의 마무리였던 신용운을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치기도 했다.[18]
2008 시즌 ¶
2008년 시즌 초반 선동열 감독이 구상했던 양심크 트리오가 각각 부진, 시즌 아웃, 방출로 인해 중심 타선이 무주공산이 되었으나, 그 공백을 최형우, 채태인과 함께 잘 메워 냄으로써 본격적인 주전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후 세 명 모두 신인 치고는 준수한 활약을 보여 2008년 삼성 타선의 세대교체가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19]
2008년 KIA와의 경기에서 한두데의 위엄을 수립. 15회말 유동훈에게서 사구를 얻어 출루한 후 채태인의 안타성 타구에 맞아 그대로 아웃, 팀도 패배.
팀내에서 최형우와 함께 단 둘만이 전 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0.279, 홈런 14, 타점 64를 기록하였다. 실질적인 첫 1군 풀타임 출장인 걸 감안하면 좋은 성적으로 평가된다. 다만 18개의 실책으로 인해 박기혁과 함께 실책 공동 1위에 오른 것은 안습.
여담으로 7월 4일 대구 홈경기에서 이범석이 9회 2사까지 안타를 한 개도 허용하지 않은 가운데 인생주루를 선보이며 3루쪽 내야안타를 때려서 노히트노런을 저지한 경험이 있다. 당시 3루수는 김주형.[20]
2009 시즌 ¶
선구안과 타격 포텐이 폭발하기 시작한 시즌 그러나 아쉬운 부상
2009 시즌 목표치[21]에 부상으로 아쉬운 성적을 기록. 게다가 2008년 경기 도중 2루를 향해 슬라이딩을 하다 다친 왼손 중지 부상으로 인해 유리몸 기질이 발동하기 시작해서 자주 2군을 들락날락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6월부터 살아나면서 박석민이 홈런을 치는 경기는 이긴다는 공식 성립. 그리고 마침내 데뷔 이후 처음으로 한 시즌 20홈런을 넘겼다. 이 해 20홈런 이상을 친 타자들 중 김상현을 제외하면 타석당 홈런 비율이 가장 높은 타자로 잔부상만 조심한다면 내년부턴 40홈런도 노릴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잔부상이 많고 먹성을 주체 못해[22] 체중관리가 잘 안 되는 등 아쉬운 점도 상당히 많이 지적 받았다. 타고난 파워 덕분에 시즌 개인 최고 홈런기록을 세울 수 있었지만, 부상으로 인한 기복이 컸던 것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아직 가다듬을 곳이 상당히 많은 편이며,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된다는 평가를 받았다.
타석당 사사구 비율이 급등하여 리그에서 가장 선구안이 좋은 타자로 발돋움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시즌이라고 할 수 있다.
2010 시즌 ¶
잔부상으로 시즌 초반 2군에 갔다 오기도 하였지만, 그리도 2008년 이후 다시 규정타석에 들어서면서 데뷔 이후 첫번째로 타율 3할(0.305) 및, 출루율 0.440(2위)을 기록하였다. 한때 출루율 부문 1위를 호시탐탐 노리며 이대호의 7관왕을 위협하기도. 다만 손가락 부상 때문에 작년에 비해 15개로 줄어든 홈런이 약간 아쉬운 편이지만 그래도 3번과 5번을 왔다갔다 하면서 좋은 성적을 유지해 주었다.
유난히 1루 악송구를 많이 범해 채태인의 가랑이를 찢어지게 했으며,(…) 양준혁의 은퇴 선언 및 손가락 부상의 악화로 인해 7월 말부터는 지명타자로서만 출장하여 시즌 끝까지 수비보다는 타석에만 전념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행히도 그가 지명타자로 출장하면서 생긴 3루수의 공백은 면제로이드로 인해 각성한 조동찬이 잘 메워 주었다.
2010년 8월 13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4회말 2사 상황에서 강봉규가 안타를 기록할 때 2루 주자로 나가 있었는데, 3루를 돌아 홈으로 달려오면서 막판에 포수 신경현의 태그를 피하다가 신경현과 홈 대치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이에 심판은 결국 박석민을 바로 아웃시켜 버린다.(...)관련 포스트
2010년 10월 13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스코어 5:5이던 11회말 2사 만루에서 끝내기 결승 안타를 쳤다. 그리고 상대 투수 임태훈은 멸망했다.[23]
끝내기 안타 치고 세리머니(…)꽃돼지 스트립쇼 박석민은 이 날 대타 지명타자로 출전하여 3타수 1안타 1볼넷 1타점을 기록했다.
박석민은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16타수 3안타 3볼넷 3사구(死球) 2타점 2득점, 타율 .188, 장타율 .250, 출루율 .409를 기록했다.
박석민은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9타수 3안타 1홈런 1볼넷 4사구(死球) 2타점 1득점, 타율 .333, 장타율 .667, 출루율 .571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박석민은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25타수 6안타 1홈런 4볼넷 7사구(死球) 4타점 3득점, 타율 .240, 장타율 .400, 출루율 .472를 기록했다.
2011 시즌 ¶
2010 시즌 후 투수 정홍준이 방출당하면서 18번이 비게 되었는데, 때마침 18번을 달고 싶었던 박석민은 이 번호를 차지하게 되었다.
작년에 그토록 말썽을 피웠던 손가락 부상이 호전되면서 다시 주전 3루수로서 나서기 시작하였다.그리고 각성효과가 끝나버린 조동찬은 이 해 제대로 삽을 펐었지
5월 6일까지 .277의 타율을 기록했다. 타율은 다소 아쉽지만 볼넷을 많이 얻어낸 점은 고무적. 그러나 장타율이 다소 낮고 홈런이 2개 밖에 없으며 실책이 벌써 3개째이다.
개그 본능은 여전했다. 5월 6일 LG 트윈스 전에서 상대 투수 한희의 공에 맞자 배트 들고 한희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문제는 박석민이 해서 전혀 진지하지 않았다는 거. 사실 화가 난 것은 절대 아니었고, 다소 침체된 팀의 분위기를 끌어오려는 작전이었다. 더불어 한희에게 전화로 직접 사과까지 했다. 해당 경기에서 벤치 클리어링 직전까지 제구가 안되던 한희는 직후 영점이 잡혔다. 역시 삼성 라이온즈의 분위기 메이커 박속닌!박석민 인터뷰
이 날 수비에서도 개그를 선보였는데 멋진 다이빙캐치 후에 공이 글러브에 들어갔는지 모르고(...) 두리번거리다 1루에 악송구를 하는 바람에 주자를 불러들였다.
이후 5월 17, 18, 19일 넥센과의 3연전에서 3연속 결승타를 때려내며 회복의 기세를 보였다.
5월 19일 넥센전 결승타를 치고 나서 사진이 찍혔는데…….
6월 8일 롯데를 상대로 투런 홈런을 쳤다. 치고 나서 던지라는 인형은 안 던지고 손목 보호대를 던져 준 뒤 인형을 상대로 부유수유를 시전했다.(…)
http://mlbpark.donga.com/bbs/view.php?bbs=mpark_bbs_kbo&idx=835027&cpage=1
http://mlbpark.donga.com/bbs/view.php?bbs=mpark_bbs_kbo&idx=835027&cpage=1
6월 22일 자신의 생일에 5타수 5안타 6타점 4득점 2홈런(투런 쓰리런)이라는 흠좀무한 성적을 거두며 팀의 5:19 승리를 견인했다. 혼자 다해먹는 브콜돼 두 홈런이 1, 2회에 터트려 승기를 확 기울여놓고 시작했다는 점에서 박석민의 역할이 매우 컸고 덕분에 경기 MVP에 선정되었다. 인터뷰에서 비가 와서 우천중단이 됐을 때는박첨지 긴장했다고 말하기도. [24]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16타수 5안타 3볼넷 1사구(死球) 2타점 1득점, 타율 .313, 장타율 .438, 출루율 .450을 기록하였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하였다.
2012 시즌 ¶
WAR 2위, 리그 최고 타격의 3루수
2011 시즌 후 왼쪽 중지 두번째 수술을 했다. 수술을 하더라도 상태가 호전될지 미지수였으나 상당히 호전되었다. 본인 말로는 이제 중지손가락을 구부릴 수 있을 정도[25]라고 한다. 손가락이 나으며 타격감도 상당히 좋아졌다.
최형우가 시즌 초반 극도의 부진에 빠진 상황에서 4월 한달동안 0.344의 타율과 5개의 홈런을 날리며 이승엽과 함께 삼성의 중심타선을 지탱했다. 1번 배영섭과 4번 최형우가 슬럼프에 빠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류중일 감독은 9번 김상수를 1번으로, 5번에서 좋은 타격감을 유지하던 박석민을 2번으로 전진배치한다. 박석민은 2번 타순에서도 맹타를 휘둘렀지만 박한이가 부상에서 회복될 때까지의 임시직이라고 한다. 박석민 본인도 5번을 선호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최형우의 슬럼프가 길어지자 최형우가 5번으로 내려가고 박석민이 4번을 치게 되었다. 결국 최형우가 2군으로 내려가고 나서는 이승엽이 4번으로 가고 박석민은 3번을 치게 되었다. 최형우가 1군으로 복귀한 이후는 최형우를 이승엽 뒤에 세우지 않겠다는 류중일 감독의 뜻에 따라 박석민 - 이승엽 - 강봉규 - 최형우 또는 최형우 - 이승엽 - 박석민의 타순을 따라 3번 또는 5번 타자로 나서다가... 최종적으로는 4번으로 고정되면서 삼성의 중심 타선은 3번 이승엽 - 4번 박석민 - 5번 최형우가 되었다.
5월 25일 팀(삼성 라이온즈) 통산 3600번째의 홈런을 기록했다.
6월 7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2사 주자 2루 상황에서 이범호의 평범한 3루측 땅볼을 잡았는데, 원래 이 상황에선 2루 주자가 진루할 필요가 없으므로 태그아웃 상황이지만 포스 아웃 상황으로 착각해 3루 베이스만 밟고 공수교대를 위해 덕아웃으로 들어가는 본헤드 플레이를 범했다. 기록은 3루수 실책. 투수 탈보트와 동료들이 급하게 소리를 질러 2루 주자가 3루로 가는 선에서 그쳤지만 공수교대가 될 상황이 2사 1, 3루라는 위기 상황이 되고 말았다. 다음 타자 최희섭이 플라이아웃 되어 망정이지... 팬들 반응은 '역시 개그맨' vs '채태인이랑 다를게 뭐냐'로 나뉘는 중. 다를게 많지
6월 뜨거운 타격감을 자랑하며 삼성의 1위 등극에 크게 기여하여 각종 월간 MVP를 휩쓸고 최정과 나란히 3루수 KBO 골든글러브 유력후보로 부상하였다.
8월 21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대구 홈경기를 결장할 예정이었다. 이유는 나고야에 있는 어느 병원에 주사 맞으러 간다는 이유로(...)...[26] 그 날 홍성흔에게 홈런 2개와 5실점을 내준 상태에서 9회말 3-5까지 따라잡은 이후, 류중일 감독은 2아웃 2루에서 박석민을 대타로 내서 그냥은 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헛스윙 삼진으로 끝나고 말았다.
2012년 페넌트레이스 기록은 타율 .312 138안타 23홈런 91타점. 타율과 안타, 타점에서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페넌트레이스에서의 활약에 힘입어 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도 4번 타자로 출장했지만, 5차전까지 14타수 1안타(타율 0.071)로 지독한 부진을 겪었다. 더군다나 5차전부터는 6번 타순으로 밀려나는 굴욕까지 겪었다. 한국시리즈에서 박석민의 타격이 부진했던 이유는 한국시리즈 대비 훈련을 하다 갈비뼈에 실금이 가는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타격 밸런스가 깨져 타격감이 좋을래야 좋을 수가 없었다. 다만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5차전에서 압박 수비로 2루 주자를 3루에서 잡는 활약을 하는 등 수비에서만큼은 정말 제몫을 다했다.
팀이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앞선 11월 1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스코어 1:0으로 앞선 4회초 1사 1루에서 투런홈런을 날리며 부진에 마침표를 찍고 유종의 미를 거두며 여러모로 2002년의 이승엽과 비견되었다.[27] 이 홈런은 근소하게 앞서던 삼성 분위기를 완전히 가져오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으며, 삼성은 여세를 몰아 볼넷 3개+ 적시타 2방 4타점을 묶어 시리즈 세 번째 1이닝 6득점으로 SK를 완전히 도륙내며 스코어 7:0으로 승리했다. 이날 박석민은 4타수 2안타 1홈런 2타점 1득점을 기록했다.
박석민은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 1, 2, 3, 4차전은 선발 3루수 겸 4번타자, 5, 6차전은 선발 3루수 겸 6번타자로 출장하여 18타수 3안타 1홈런 3볼넷 1사구(死球) 3타점 2득점, 타율 .167, 장타율 .333, 출루율 .318을 기록했고, 팀은 2년 연속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 격전지인 3루수 부문에서 최정과 2년 연속 선의의 경쟁을 펼쳤지만 결국 수비율과 홈런 등에서 앞서고 20-20을 달성한 최정에게 아쉽게 밀렸다.사실 최정도 박석민 이상의 활약으로 커리어 하이를 찍었기에 받을 만했다. 아무튼 최정과 함께 리그를 대표하는 차세대 3루수로 인정받을 만큼 성장했다.그리고 떠오르는 신흥 자석남 이를 위로라도 하듯(?) 페어플레이상을 수상했는데 수상소감에서 '제가 받을 자격이 있나 잘 생각해 보았는데 정말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개드립을 치면서 역시나 개그 본능을 보여주었다.
2016 시즌 ¶
이적 후 첫 시즌에서 3할-30홈런-100타점을 달성하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또한 플레이오프에서도 결정적인 홈런 두 방으로 팀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행을 이끌었다. 그러나 정작 한국시리즈에서는 13타수 무안타의 눈이 썩는 타격을 보여주며 팀의 4대떡 스윕패에 큰 기여를 했다.
플레이 스타일 ¶
허구연: 야구 잘하는 선수들이 참 영리한 선수가 많은데 그중에서도 저는 박석민박속닌이 정말로 영리한 선수인거 같아요br 한명재: 천재과에요br허구연: 예. 그렇습니다. 예사로운 선수가 아니에요
자타가 공인하는 천재형 타자
출루율 기반의 생산성이 뛰어난 타자
출루율 기반의 생산성이 뛰어난 타자
기본적으로는 눈야구를 기반으로 한 OPS형 타자이다. 2009년이후 갑자기 OPS 1.0을 기록하며 타격에 소질을 보였다. 통산 출루율이 4할을 넘으며, 풀 시즌을 소화했을 때 20홈런 이상은 보장되는 장타력을 지니고 있다. 컨택 또한 뛰어나 통산 타출장 3-4-5의 아름다운 비율 스텟을 자랑한다.WAR도 거의 KBO 탑급이여서 공헌도가 가장 높다. 다만 고질적인 손가락 부상을 비롯해 잔부상이 많기 때문인지 컨디션의 기복이 있고, 이로 인해 누적에서는 비율에 비해 아쉬운 기록을 남기고 있다. 방망이를 돌리고 몸을 터는 등 유독 요란한 루틴동작 역시 몸의 고질적인 부상들 때문에 통증을 털어내는 과정일 정도로 몸 상태가 그리 좋진 못한 편. 그럼에도 매시즌 3-4-5를 찍을 정도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 외에 특이한 타격폼으로도 유명한데 이 역시도 얼핏보기엔 기괴한 폼이지만 오히려 타격의 정석을 충실히 지킨다며 이종열이 극찬한 바가 있다.
KBO 리그의 대표적인 배드 볼 히터인 병규옹에 밀려 그다지 잘 언급되지는 않지만, 박석민도 만만찮은 배드 볼 히터다. 특히 컨디션이 만렙일 때는 그 어떤 공도 희한하게 갖다맞춰 안타를 많이 만들어 낸다. 바깥쪽 빠지는 공을 당겨친다거나 몸쪽 공을 밀어치는 장면에서는 허구연 해설조차 기겁할 정도. 물론 타격감 바닥일때는 선풍기질만 해대지만... 그리고 선구안도 좋은편이여서 볼넷도 많이 얻고 출루율도 매우 높다. 2010년에 시즌 말 잠깐 출루율 1위를 기록하며 이대호의 7관왕을 위협했으며[28] 2009~2016시즌중에서 2011년을 빼고는 매년 출루율 4할 1푼을 넘겼다. 2013년까지 통산 BB/K가 0.74 정도로 양호한 편. 그러니까 좋게 말하면 자기만의 스트라이크존을 괴랄하게 넓게 가져가는 눈야구형 타자다(...) 대부분 풀스윙으로 일관하는 풀스윙 히터이나 의외로 밀어치기에도 능하다.
펑퍼짐한 몸 때문에 오해할 수 있지만 젊었을 땐 민첩한 수비실력을 자랑했다. 특히 해설위원 이순철과 허구연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 모습이었다. 가히 공수를 가리지 않고 삼성 라이온즈 내야의 코어라고 부를 만 했으나 NC 이적 이후에는 여러 차례의 부상과 노쇠화가 겹치며 수비는 크게 망가져, 2018년 기준으로는 더이상 수비를 잘 한다고 불러주긴 힘들고 소속팀에서도 주로 지명타자로 출장하게 되었다.
타순은 2008~2009년까지는 주로 4번, 가끔 5, 6번에 기용되다 최형우의 포텐셜이 폭발한 후로는 3번이나 5번으로 나온다. 포지션은 데뷔 초기에는 2루수[29]였지만 현재는 주로 3루수이며 가끔 1루수. 막 제대했을 때는 타격면에선 합격점이었지만 같은 포지션의 조동찬에 비해 떨어지는 수비가 문제였다.[30]당시 수비력만으론 리그 하위권인데다 그전의 삼성 3루수는 역대 최강의 수비를 자랑하던 김한수였기 때문에 더욱 비교되는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일취월장하여 3루 수비는 리그 최고 수준에 달하는 정도가 되었다.[31]아이러니하게도 어려운 수비는 잘하는데 쉬운 수비는 잘 못한다. 가끔 글러브에 공이 낄 때도 있다. 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때 수비시 투수용 글러브를 끼고 경기에 나섰다. 투수용 글러브와 내야수용 글러브의 크기 차이를 생각하면 참 희한한 일. 2015년 현재 웹이 막힌 큰사이즈의 내야수 글러브를 사용중이다. 사실 막힌 웹은 무조건 투수용이라는건 우리나라 사회인야구에 주로 있는 편견이고 일본의 경우는 내야수들도 막힌웹의 글러브를 많이 사용한다.은퇴한 양키스의 유격수 데릭 지터또한 커리어 내내 소위 바둑판웹이라고 불리는 디자인의 글러브를 사용한것으로 유명하다.
고칠 점 ¶
풀스윙을 할 때 배트를 놓쳐 배트가 '날아가'버리는 경우가 잦다. 카메라맨 쪽으로 날아간 적도 있고 상대 투수 쪽으로 날아간 적도 있다. 자칫하면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을 연출한다. 이런 위험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상대팀 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인다. 팀킬도 한다. 2011년 6월 21일 경기에서 오넬리의 투구에 삼진당하면서 놓친 배트가 오넬리에게 날아가는 바람에 오넬리는 당황, 박석민은 헉, 신경현은 알밤 + 예끼니미 X발를 시전하는 장면이 잡혔다. 다행히 배트가 오넬리 정면으로 날아가지는 않았지만 매우 위험했던 상황.영상 그리고 다음날 차우찬에게 똑같은 상황이 발생했다. 고의는 아니고 다행히 배트는 빗나갔지만. 다행히 빗나갔기에 '역시 브콜돼' 소리를 듣는데 그쳤다. 하지만 박석민이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왼쪽 중지 부상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2010 시즌부터 수비할 때 중지에 테이핑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타격할 때 중지와 약지를 테이프로 감아 하나로 묶어 타석에 들어선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타격할 때 순간적으로 왼손에 힘이 빠지면서 배트를 놓치는 것. 중지를 총 두 번 수술해야 한다는데 2010 시즌 끝나고 한 번 했었고 2011 시즌이 끝나고 두번째 수술을 했다. 그 결과 100% 정상은 아니지만 상당히 호전되었다. 2013 시즌까지도 휴식일을 잡아서 일본에 주사를 맞으러 갔다. SNS에 올라온 글로 보아 히쓰마부시(장어모듬덮밥) 팬인 것 같다. 갈 때마다 먹는다
중심타자의 숙명(?) 비슷하게 포스트시즌에 매우 약한 모습을 보인다. 2012 KS 6차전에 2점 홈런, 2013 KS 7차전에 6:2로 도망가는 쐐기 적시타를 제외하고는 별 활약이 없었다. 2014년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도 타율은 1할대극초반에 머물렀다. (그래서 삼성이 최정 정도로 제시했을지도...) 이러한 점은 팀이 바뀌어도 그대로 였고, 2016년 플레이오프에서 2개의 홈런을 때려내긴 했지만[32], KS에서는 무려 13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며 완전히 말아먹었다.
별명 ¶
몸개그, 홈런타자 등 확실한 캐릭터 요소 덕분에 차세대 별명의 신의 후계자로서 손색이 없는 선수다.
- 박속닌: 2005년 코나미컵에서 이름자인 석민을 속닌이라고 듣고(그렇게 불렀단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렇게 들었다)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홈런왕 박속닌입니다'라고 올려놓은 것이 시초. 재일동포 고지행이 박석민을 이렇게 불렀다.
- 브콜돼: 2008 시즌 중 난데없이 파마머리를 하고 등장했는데, 머리 밴드 위로 뭉툭하게 솟아오른 파마머리를 보고 마치 브로콜리와 비슷하게 보인다고 해서 그의 몸매(...)와 함께 브로콜리 + 돼지 = 브콜돼로 불린다. 가장 널리 알려진 별명이며 다른 별명들의 베이스가 된다.
브로콜리 돼지 너마저
- 허콜돼: 허세 쩌는 브콜돼. 스스로 말하기를 야구를 안 했으면 의사나 변호사가 되었을 거라고.
- 힙콜돼: 힙합스타일의 모자 착용 및 동작을 취하는 셀카로 인하여 생긴 별명.
- 버클돼: 2008 시즌 중 특유의 루틴 동작을 하던 중 허리띠가 튕겨서 풀리는 상황이 발생.
- 볼매: 브콜돼 관련 기사가 뜨면서 박석민이 기자들에게 이왕이면 '볼수록 매력'을 줄여서 '볼매'라는 별명을 밀어달라고 요청. 이에 대해 한대화 당시 삼성 수석코치는 정신병자라고 하면서 혀를 끌끌 찼고, 수많은 야빠들은 볼수록 매를 번다며 볼매도 나름의 별명으로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하여간에 본인은 볼매라는 별명을 제일 좋아한다고 한다.
그런거 없고 넌 영원한 브콜돼이자 개그맨
- 꼬부기: 이 별명이 생긴 이유는 간단하다. 2012 시즌에 올라온 저 사진 때문.
- 퇘가놈, 박그분 : 주장인데도 팀을 버리고 야반도주했다는 이유. 박석민이 당연히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 삼팬들이 많았으나 FA이적으로 차세대 엔전드의 길을 걷자 바로 금지어로 등극했으며 박석민 팬은 퇘리타로 격하되었다.
두산팬 : 우리가 한 번 당한 적이 있어서...더불어 브콜돼 이놈 대구로 오기만 해 봐라고 잔뜩 벼르는 중. 하지만 예상이 무색하게 첫 대구 원정에서 삼성팬들이 기립박수로 반겼다.[33] [34] 꽤나 오랜 시간 이후 당시 삼성 스포츠단의 지원금이 정유라 지원으로 인한 지원금 축소 의혹으로 계약금차이가 너무 컸다는 것과 친정 팀에 대한 애정을 종종 드러내는 것으로 인해 재평가되고 있다. 혹자는 괜히 오버해서 안먹어도 될 욕을 먹었다고도 하는 편.
- 즙전드, 즙가놈 : 골든글러브 시상식 때, 나오지도 않는 눈물을 억지로 쥐어 짰다고 하여 붙었다.
야구 관련 ¶
원래 장갑을 끼고 타격하였으나 어느날 장갑을 끼지 않고 맨손으로 공을 치는 즉시 각성하여 이후 계속 맨손 타법을 고집하였다. 그 탓에 손에 부상이 와서 이리저리 방법을 강구하다 결국 맨손 타법을 버리고 장갑을 다시 장착하였다. 그러나 얇은 수술용 장갑을 써보거나 장갑의 손가락 부분을 자르는 등, 배트와 살이 맞닿는 부분을 최대화시켜뒀다.
양준혁, 김동주, 김태균, 최형우만이 가지고 있는 통산 3-4-5(타율-출루율-장타율)를 노리는 타자로 4와 5는 달성했지만 타율이 0.296으로 조금 부족하다. 참고로 이대호도 박석민과 비슷한 3-4-5 직전의 성적을 가지고 있는데, 타율과 장타율은 되는데 통산출루율이 3할9푼대로 통산 4할을 노리고 있다.
자칭 야구천재. 6살 때부터 동네 야구부 형들에게 야구를 배웠으며 자신은 '야구를 시작하기 전부터 야구를 잘했다'고 한다(…). 이 말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양준혁 앞에서 하고 있으니 역시 허콜돼. 하지만 천재인 것은 사실인 듯. 이범호와는 대구고등학교 야구부 선후배인데 대구고 감독이 이범호가 노력형이라면 박석민은 천재형이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35] 2009년에 세상에 이런 일이에 방송된 45년간 야구를 본 할아버지에게 PD가 2회 WBC 때 맹활약하던 이범호 고교시절 이야기를 부탁했는데 이 할아버지께서 이범호도 잘 했지만 질문과 상관없는 박석민은 진짜 천재라고 수 차례 말했을 정도. 덕분에 허세에 관련된 이야기도 많은데 고졸 신인이던 2004년에 1군 무대에 올라가자마자 김응용 감독에게 코치도 거치지 않고 오재영에게 강하다면서 내보내달라고 졸라서 펜스 직격 2루타(!)를 꽂은 적이 있다. 그리고 덕아웃에 들어오자마자 잠실구장을 욕하면서 넘어갔어야 선발고정이라면서 김응용 감독이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는 전설이 있다.|#쳤으니 망정이지 못 쳤으면 원산폭격행
한화 이글스에게 유달리 강하다. 한화 상대 타율이 자신의 통산 타율보다 1할 가까이 높은 3할대 후반이다. 2009년에는 9개나 침으로서 한화 마운드 방어율 상승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사실 한화 상대로 어느 타자가 약하겠냐만은 특히 한화의 에이스 류현진에게는 크보에서 가장 강한 타자이다. 2008~2009 2년간 對 류현진 성적이 15타수 5안타 4홈런 6타점 4볼넷이다. 박석민을 메이저로! 2009년에는 류현진한테 홈런 3개를 빼앗았을뿐만 아니라 그 중 2개는 한 경기에 친 것이었다. 그래서 한화 팬들은 다른 어떤 강타자보다도 박석민을 제일 무서워한다(…) 디시인사이드 한화 이글스 갤러리에서 한나쌩(한화 나오면 쌩큐) 혹은 칰나쌩 선수로 대부분 박석민을 지목했다. ???: ㅂㄷㅂㄷ
한대화 전 한화 감독의 손을 잡고 난 날 경기에서는 맹타를 휘두르는 징크스를 갖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한대화 감독은 박석민만 보면 도망가기 바쁘단다. 그런데 뛰는 한대화 위에 박석민이 있다고, 어느 날은 박석민이 안보여서 안심하고 대구구장 원정 감독실로 쓰는 임원회의실에 들어갔더니 거기서 박석민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박석민은 얼른 한대화 감독의 손을 잡고 도망갔고, 그 날도 대박을 터뜨렸다(...). 이 때가 2012년 6월 13일. 이 날 박석민은 1회 좌전안타와 2번의 사구를 기록, 4타수에서 3번 출루했다. 이 징크스 일화가 실린 기사가 난 6월 14일에도 손을 잡는데 성공했는지 그날은 4타수 4안타 2홈런 4타점을 기록했다(...).
고교 때부터 등번호 18번에 상당한 애착을 갖고 있다. 2010년에 18번을 달려고 했으나 군대에 입대 예정이었던 정홍준이 안 가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그러다가 2010 시즌 후 정홍준이 방출되면서 18번을 달게 되었다. NC로 이적 후 기존에 18번을 달던 신인투수 배재환에게 동의를 구한 후 18번을 계속 달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 본인의 차에 18번을 단 피규어가 다수 자리잡고 있고, 핸드폰 번호도 0018, 집도 18층에 살고 있다. 2017년 시즌 시작과 동시에 1년밖에 타지 않은 차를 바꾸면서 차량 번호도 18이 3번이나 들어가는 번호를 타고 있다. 2018년에는 커리어 하이로 2017 시즌 부진을 털 수 있을까
크보 공인 지남철인 최정에게 은근히 묻혀서 그렇지 박석민도 그에 못지 않게 몸에 맞는 공이 많은 편이다.펑퍼짐한 몸매 때문에 딱 맞기 좋은 체형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주전으로 도약하기 시작한 2008년부터 5년 연속 두 자리수 몸에 맞는 공을 꾸준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2012년에는 마침내 사구왕 최정을 넘어 27개 몸에 맞는공(!)으로 신흥 사구왕에 등극했다!!! 이로써 23홈런 27사사구로 나름 20-20 클럽 가입?[36]
그는 몸에 맞는 볼과 관련한 해프닝 직후 홈런을 친 일이 두 번이나 있다. 2009년 6월 24일 대구 한화전 8회말 공격 때 한화 브래드 토머스가 던진 볼이 박석민의 오른쪽 발 쪽으로 날아왔다. 박석민은 그 순간 볼이 자신의 발등에 맞았다면서 1루에 출루했다. 그러나 실제 볼은 박석민에게 맞지 않았다. 실제 볼은 포수 옆 그라운드를 맞고 한화 이글스 포수 신경현의 목 부분으로 튀었다. 이에 한화 이글스 코칭 스태프가 심판에게 항의를 하였고 결국 볼 카운트에 볼 하나가 늘어난 것으로 정정했다. 다시 타석으로 돌아온 박석민은 토머스의 볼을 타격하여 중견수 쪽 담장을 넘어가는 1점 홈런을 기록했다. 2번째 일화는 2009년 8월 16일 대구 KIA전 8회말 공격 때의 일이다. KIA 타이거즈 투수 곽정철이 박석민의 몸 쪽으로 볼을 던졌는데, 이 볼이 박석민의 팔꿈치 쪽으로 날아왔다. 박석민은 역시 볼이 자신의 팔꿈치 보호대 부분에 맞았다고 심판에게 이야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실제로 이 볼은 팔꿈치에 맞지 않고 포수 뒤로 빠져 나갔다. 다시 타석으로 돌아온 박석민은 곽정철의 볼을 통타, 왼쪽 담장을 넘어가는 1점 홈런을 기록했다. 이 일화는 2009년 12월 25일 MBC 스포츠플러스가 방송한 《프로 야구 결산 특집 - 야구는 야구다》의 코미디 에피소드 부분에서 〈소탐대득 - 작은 것(몸에 맞는 볼)을 탐하다가 큰 것(홈런)을 얻게 됨〉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출처 : 위키백과 박석민 항목
...뭐 이쯤되면 몸에 맞는 공조차 박석민에게는 개그.
박한이 처럼 타격 준비 자세가 있다. 타석에 들어서면 먼저 배트를 2번 휭휭 돌린 뒤 배트를 뒤로 돌리고 한 번 돌리고 배트를 흔든다.(트리플 악셀)
자타공인 KBO 최고의 개그맨으로 유명하지만, 특히 타석에서 헛스윙을 할 경우 그대로 한 바퀴 돌아버리는 동작이 유명하다. 팬들은 통칭 트리플 악셀이라고 한다.
3할을 치는 프로선수라 해도 3번 나가 한번 치는 수준인 걸 고려하면 헛스윙에 이렇게 주목하는 점도 이상하지만, 박석민은 유독 헛스윙폼으로 유명하다.
다수의 움짤이 포함된 상세 내용은 박석민/몸개그 참조. 야구선수 문서에 몸개그 항목이 분리되어 있다니.... '다수의 움짤'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항목에 들어가고 싶다면 반드시 와이파이를 켜고 들어가거나 웹으로 접속하자. 데이터가 엄청나다.
야구 외 ¶
2009년 12월 31일에 2살 연상의 여성과 결혼을 했다. 아 양신 사실 결혼 전에 이미 동거를 하고 있었고, 아들도 결혼 전에 낳았다. 아들 이름은 준현. 하라는 야구는 안 하고 2013년 현재, 박석민은 예비 학부모이다. 설마 장어덮밥을 좋아하는 이유가....?
아들 사랑이 꽤나 지극한 편. 홈런을 치면 주는 블레오 인형 대신 손목보호대를 던진다. 인형이 아니라 더 비싼 손목보호대를 던지는 이유는 아들 준현이가 인형을 더 좋아해서 집에 갖다주려고. 홈경기 때는 샤워도 안하고 바로 집에 가서 아들과 같이 목욕한다고 한다. 아들이 실제로 대구 홈경기 때 박석민의 손을 잡고 대구구장에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당시 유니폼에 적힌 등번호는 박석민의 18번이었고 이름에는 박석민 Jr.이라 적혀 있었다.
홈런친 줄 알고 폼 잡다가 펜스 맞는 안타가 되자 똥줄나게 뛴 적이 있다. 그 덕에 1루타 기록(...) 이 때문에 경기가 끝나고 구단 자체 벌금을 냈다고 한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 게다가 이때는 아직 1루까지 항상 전력질주하는 모습이었던 그분이 현역으로 뛰고 있던 2010년이었으니... 그리고 2012년에는 나지완이, 2013년에는 전준우가 홈런 설레발의 계보를 잇는다.
2013년부터 류현진이 뛰는 팀인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주전 3루수이자 류현진의 팀동료 겸 절친 후안 유리베의 이름을 따서 자신을 박리베로 불러달라고 했다.근데 그 유리베는 2015년에 애틀랜타로 트레이드되었다. 아~그러다 몇 게임 안 뛰고 또 뉴욕 메츠로 갔다. 그 이후에는 클리블랜드로 갔다.
연도별 성적 ¶
역대 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2004 | 삼성 라이온즈 | 23 | 29 | .103 | 3 | 1 | 0 | 1 | 3 | 2 | 0 | 3 | .188 | .241 |
2005 | 52 | 81 | .198 | 16 | 3 | 1 | 0 | 4 | 7 | 1 | 10 | .283 | .259 | |
2006 | 군복무(상무 피닉스 야구단) | |||||||||||||
2007 | ||||||||||||||
2008 | 126 | 416 | .279 | 116 | 27br(2위) | 1 | 14 | 64 | 65 | 2 | 73 | .385 | .450 | |
2009 | 97 | 295 | .285 | 84 | 17 | 0 | 24 | 62 | 63 | 0 | 71 | .416 | .586 | |
2010 | 112 | 356 | .303 | 108 | 18 | 0 | 15 | 64 | 58 | 3 | 91 | .440br(2위) | .480 | |
2011 | 128 | 457 | .278 | 127 | 24 | 3 | 15 | 86br(4위) | 74 | 3 | 72 | .374 | .442 | |
2012 | 127 | 443 | .312br(4위) | 138 | 19 | 3 | 23br(4위) | 91br(2위) | 79br(5위) | 2 | 99 | .433br(2위) | .524br(5위) | |
2013 | 117 | 396 | .318 | 126 | 24 | 0 | 18 | 76 | 61 | 4 | 75 | .425br(4위) | .515br(4위) | |
2014 | 110 | 356 | .315 | 112 | 21 | 0 | 27 | 72 | 77 | 0 | 66 | .419 | .601br(5위) | |
2015 | 134 | 448 | .321 | 144 | 25 | 0 | 26 | 116 | 90 | 3 | 102 | .441br(3위) | .551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출루율 | 장타율 |
2016 | NC 다이노스 | 126 | 427 | .307 | 131 | 20 | 0 | 32 | 104 | 77 | 2 | 72 | .404 | .578 |
2017 | 101 | 319 | .245 | 78 | 15 | 0 | 14 | 56 | 43 | 1 | 63 | .369 | .423 | |
2018 | 103 | 318 | .255 | 81 | 14 | 1 | 16 | 55 | 40 | 1 | 54 | .360 | .456 | |
KBO 통산br(13시즌) | 1357 | 4341 | .291 | 1264 | 228 | 9 | 225 | 853 | 736 | 22 | 851 | .404 | .503 |
역대수상 | |
연도 | 수상내용 |
2014년 | 골든글러브 3루부분 |
연도 | 수상내용 |
2015년 | 골든글러브 3루부분 |
보유 기록 | |
한경기 최다 타점(9타점) | 2015년 9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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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스포츠서울 창간일과 생년월일이 같다.
- [2] 2017년부터는 잔부상과 대상포진 등으로 사실상 지명타자 자원으로 분류되고 있다.
- [3] 2017 WBC에서 1루수를 잠시 맡았고, 삼성 시절이였던 2008~2011 시즌에도 잠깐이나마 1루수를 본적이 있다.
- [4] kt 위즈 오정복의 응원가와 같은 곡을 사용중이다. 치바 롯데 마린즈의 나카무라 쇼고도 이 노래를 응원곡으로 쓴다.
- [5] 나! 나! 나나나나! 나나나나나 박석민 짱!. 전주부분을 개사한 것이다.
- [6] 하늘이 사망한 이후부터 쓰이지 않고 있다...가 한국시리즈부터 본인의 요청으로 부활했다.
- [7] 롯데 김상호와 곡이 같다만 사용한 부분이 다르다. 김상호 항목 보고 가수와 곡 제목이 다른데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웃기네가 Venus를 번안한 곡이며 Bananarama 곡 역시 중간에 박석민 응원가에 해당하는 멜로디가 있다.
- [8] 날려버려 날려버려 삼성 박석민~ (어이!) 날려라 날려 삼성 박석민~ (어이!) 날려버려 날려버려 삼성 박석민~ (어이!) 날려라 삼성 박석민~ 워어~어어어~ 날려~라 박석민~ 워어~ 어어어~ 날려라 삼성 박석민~ 2014 시즌에 추가된 응원가. 현재는 앞에서 언급했던 웃기네의 원작자 로티플스카이가 사망한 이후 쓰이지 않으면서 이 응원가가 정식 응원가가 되었다가 현재는 웃기네와 같이 쓰이고 있다. 기존 응원가가 좋다보니 처음엔 반응이 좋지 못했으나 지금은 그럭저럭 호평을 받고 있다. 단적인 예로 이때 같이 바뀌었던 이승엽 응원가는 한시즌도 채 못가고 팬들의 반발로 용도폐기되고 흑역사화가 된것만 봐도..
- [9] 워어어어어 박석민 워어어어어어 최!강!삼!성! 승리요정 박석민
- [10] 삼성때 응원가에서 삼성을 NC로 바꾼 것외에는 동일하다. 박석민 본인이 삼성 시절 응원가를 그대로 써 주기를 희망했고 삼성 구단도 흔쾌히 승낙.
유일하게 임가놈의 응원가를 피했다. - [11] 2015년 성적은 삼성에서 기록했지만, 골든글러브 시상식 전에 NC로 FA 이적하는 바람에 공식 기록에는 NC로 되어 있다.
- [12] 홍성용의 kt 위즈 이적 이후 배재환이 18번을 달려고 하였으나 박석민이 배재환의 동의를 얻어 18번을 달게 됨.
사실 배재환이 선동열을 닮아서 배동열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어서 18번을 달려고 했지만, 박석민의 영입으로 실패(?)하게 된 것관련기사 - [13] 8월말 교체.
- [14] 6월 5일 교체.
- [15] 2016년 KBO 플레이오프 2차전 인터뷰에서.
- [16] 공교롭게도 지금은 삼성 라이온즈로 소속이다!
- [17] 그런데 이후 찾아온 2004년 신인드래프트 당시 강민호를 뽑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정식을 선택한 것을 생각하면 과연 삼성이 강민호를 지명하기를 원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아리송한 지명 결과를 낳았다. 물론 당시 삼성은 발전 가능성이 농후한 유망주 포수보다 진갑용을 대신할 즉전감 백업 포수를 원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긴 하지만
그리고 삼성팬들은 오늘도 삼성의 강민호를 부르고 있다그리고 삼성의 강민호는 실현되었다!!. - [18] 참고로 신용운은 바로 다음 날인 4월 30일에도 심정수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음으로써 이틀 연속 패전투수가 되고 만다. 자세한 사항은 신용운 항목 참조.
- [19] 이때까지 거의 김인식 감독 수준으로 유망주들을 박대했던 선동열 감독이 직접 키운건 당연히 아니었고 김응용 前 감독이 진작부터 밀어주던 양아들이었다. 박석민은 물론 채태인, 최형우의 기용도 감독 외에 사장과 프런트의 입김이 들어가 있었다.
- [20] 그리고 9년 후, 김주형은 생애 첫 출전한 한국시리즈에서 또다시 답이 없는 뇌수비로 KIA 팬들의 뒷목을 움켜잡았다. 다행히 양현종의 투혼으로 후속 타자들을 범타로 돌려세워 한국시리즈 역사에 길이 남을 대참사는 면했다.
- [21] 한 영상인터뷰에서 2009시즌 목표를 0.315 홈런 32개라고 말해 한대화 코치에게 정신병자라는 소리를 들었다(…) 박한이에 이어 공식 정신병자 2호.
- [22] 스스로 밝히길 배고플 때 못 먹으면 돌아버린다고 한다.
- [23] 박석민은 내야 땅볼을 친후 살기 위해 1루로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했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고..
카메라가 손시헌을 비춰서 - [24] 이날 타 구장 경기는 모두 취소되고 대구에서도 두 번 중단되었다.
- [25] 수술 전에는 중지손가락을 제대로 구부리질 못했다. 평소에도 손가락에 붓기가 있는데, 경기 후에 붓기가 심해져 중지 두번째 마디가 보통 때의 두 배까지 붓기도 했다.
- [26] 그러고는 19시경에 대구구장에 도착했다.
- [27] 반면 이 해의 이승엽은 2002년의 마해영+양준혁 포지션.
- [28] 당시 홍성흔이 시즌 아웃된 후 이대호의 7관왕을 저지할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혔었다.
- [29] 2004년 한국시리즈 9차전 선발라인업 키스톤이 조동찬-박석민(!)이었다. (참고로 아래 움짤에서 18번 투수는 박석민이 아니라 박석진.) 물론 이 키스톤이 선발출장한 이유는 수비보다도 당시 상대 선발이었던 오재영을 겨냥한 좌투수 저격 라인업의 의미가 더 컸었고 결과적으로 이날 삼성의 수비는......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br파일:external/lh3.googleusercontent.com/2004%252520KS.gif
- [30] 사실 3루수에서도 그의 천재성이 엿보이는게, 원래 2루나 유격수를 보았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그냥 '아 포지션변경하기 힘든 것을 천재성으로 극복했구나'하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2루와 유격수 수비와 3루수비는 스텝부터가 다르다. 유격수나 2루수는 좌우 양 옆으로 움직여야 하지만
좌우로 스텝을 밟는 게 아니라 전력질주로 뛰어가서 잡아야 하는 유격수도 있었지만 말이다3루수비는 앞뒤로 움직여야 한다. 당장에 에이로드가 절대 유격수만 고집하시는 분하고 양립이 안 되어서 3루로 전향했고, 그 때의 3루수비를 기억해보자. 멀리 갈 것도 없이 유격수에서 이 분을 제쳐내지 못하고 3루로 정착한 케이팝 모델 x스머신을 떠올리는 것도 있다. 황재균도 처음에 3루수비는 개판이었다. 다만 당시 수비코치이던 염경엽이 기초부터 다시 가르쳐 지금에 이르른 것.물론 그 개판인 수비도 이 팀 팬들한테는 굉장히 예쁘게 보였을 거다뭐 황재균을 사온 이유가 이대호의 수비를 감당못하고 1루로 보낸 거 였지만. - [31] 3루수로서는 나무랄 데 없을 정도로 수비가 좋아졌지만, 1루수로서는 아직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특히 1루수로서 가장 중요한 포구에서 실수가 좀 잦은 편이다. 11년 채태인, 조영훈, 모상기가 부진할 당시에는 삼성의 차기 1루수 부분에 대한 우려가 크던 상황이었으나 12년은 국내복귀를 선언한 이승엽이, 13년과 14년은 각성한 채태인이 1루를 맡아 공수양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15년 부터는 어느 머리 큰 전설적인 신인왕의 컨택능력을 가진 중장거리 히터 스타일의 초대형 군필신인이 등장한 덕에 박석민이 억지로 1루를 맡을 필요가 없어졌다. 박석민의 아쉬운 수비와 원래 3루 대체제로 생각했던 조동찬이 시즌아웃 이후 경기를 전혀 뛰지 못하는 상황임을 생각할때 삼성입장에서는 천만다행인 셈.
- [32] 9타수 2안타 2홈런
- [33] 물론 여전히 온라인 반응은 안 좋은편. 일부는 박수친 팬들을 비난했는데, 이유는 우리 팀 투수를 생각하지 않는다고.
- [34] 다만 이 경기에서 1회 말이 끝났을 때 삼성은 7대1로 이기고 있었다! 직관 간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끝난 경기인데 예전에 삼성에서 뛰던 선수가 왔으니 반갑다고 박수나 쳐 준 것. 박석민이 이 경기에서 솔로홈런을 쳤을 때도 마찬가지로 그거 한 방에 뒤집는 것이 불가능한 점수차였기 때문에 삼성팬들은 홈런을 맞았음에도 기분 좋게 일어나 박수갈채를 보냈다. 덕분에 이날 삼성 선발이었던 윤성환은 상대 타자가 자팀 팬들에게 기립박수를 두 번이나(한 번은 자신의 피홈런으로!) 받는 것을 마운드에서 지켜봐야 했다.
- [35] 4년 선후배라 같은 팀에서 뛴 적은 없다.
- [36] 사구왕 최정도 4년 연속 20사구를 꾸준히 기록하고 있지만 이정도로 독보적으로 몸에 맞지는 않았다.
- [37] 주요 장면 영상에서 헬멧 뒤통수의 번호가 이지영의 등번호로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