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광무(卓光茂)는 고려의 문신, 정치인이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겸부(謙夫), 호는 경렴정(景濂亭),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높은 관직에 발탁되어<ref>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35권 전라도(全羅道) 광산현(光山縣)</ref> 간의대부(諫議大夫) 등을 역임하였다.<ref>『세종실록』 8년 병오(1426,선덕 1) 1월18일</ref>
생애 ¶
1340년(충혜왕) 문과에 급제하여 사의대부(司議大夫)가 되었다.<ref>朴龍雲, 『고려시대(高麗時代) 음서제(蔭敍制)와 과거제(科擧制) 연구(硏究)』, 一志社, 1990년</ref>
1365년(공민왕 14) 내서사인(內書舍人)이 되었다.
1366년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에 제수되었고, 뒤에 우사의대부로 임명되었다. 우사의대부로 있을 때 신돈의 심복인 홍영통(洪永通)이 별군을 시켜 좌사의대부 (申德隣)과 헌납 박진록(朴晉祿) 등의 간관을 구타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는 홍영통(洪永通)을 폐하여 서인(庶人)으로 삼고 가산을 적몰하도록 탄핵하였으나, 오히려 신돈의 모함을 받아 파직되었다.
그 뒤 사면되어 중정우사간대부 진현관제학 지제교(中正右司諫大夫進賢館提學知製敎)와 예의판서(禮儀判書)에 이르렀으며 문명이 높았다. 후에 벼슬을 그만두고 향리로 돌아와 광주(光州)에 은거하였다.
이제현(李齊賢)·정몽주(鄭夢周)·이숭인(李崇仁) 등과 교유하였다.
겸부(謙夫) 탁광무(卓光茂)는 광주(光州) 별장에 못을 파서 연꽃을 심고, 못 가운데에 흙을 쌓아 작은 섬을 만들어 그 위에 정자를 짓고 날마다 오르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았다.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이 그 정자를 경렴(景濂)이라고 이름하였는데, 이는 대개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의 호의 연꽃을 사랑하는 뜻을 취하여 그를 경앙(景仰)하고 사모하고자 한 것이다.<ref>정도전, 삼봉집 제4권</ref>
겸부(謙夫) 탁광무(卓光茂)는 광주(光州) 별장에 못을 파서 연꽃을 심고, 못 가운데에 흙을 쌓아 작은 섬을 만들어 그 위에 정자를 짓고 날마다 오르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았다.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이 그 정자를 경렴(景濂)이라고 이름하였는데, 이는 대개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의 호의 연꽃을 사랑하는 뜻을 취하여 그를 경앙(景仰)하고 사모하고자 한 것이다.<ref>정도전, 삼봉집 제4권</ref>
저서 ¶
저서로는 《경렴정집(景濂亭集)》이 있다. 권두에 경렴선생애연도(景濂先生愛蓮圖)·죽정선생탄금도(竹亭先生彈琴圖)·산도(山圖), 경서정미갑계도후(敬書丁未甲稧圖後) 2편, 경제탁씨가장(敬題卓氏家藏) 1편이 있고, 권1에 시 24수, 부록으로 원운(原韻) 31수, 권2는 고적(古蹟)·축문·선세묘갈문(先世墓碣文)·신도비명·상량문 각 1편, 봉안문 2편, 향사축문 1편이 있고, 권3·4는 탁신(卓愼)의 문집인 『죽정집(竹亭集)』으로 시 52수, 부록으로 제현(諸賢)들의 시 44수, 죽정고적(竹亭古蹟)·축문·정미갑계(丁未甲稧)·광산세고구서(光山世稿舊序) 각 1편, 권5는 탁중(卓中)의 문집인 『죽림정집(竹林亭集)』으로 시 24수, 광산탁씨세계 1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규장각 도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