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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열


문서,프로젝트=나무위키 프로게이머 프로젝트)
前 스타크래프트 1 [[프로게이머]]
前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매니저
現 아프리카 TV 파트너 BJ



닉네임 NaDa 이윤열
이름 이윤열(李允烈)
로마'자 이름 Lee yun yeol
생년월일 1984년 11월 20일 (age(1984-11-20)세)
신체 181cm 68kg
혈액형 B형
출생지 경상북도 구미시
거주지 대구광역시
학력 선산고등학교br인하대학교 컴퓨터 공학
소속 IS(2001~2002.12)brKTF 매직엔스(2002.12~2003.12.23)br위메이드 폭스(2003.12.24 ~ 2010.9.16)broGs(2010.9.17~2012.1.15)brcompLexity Gaming(2012.1.16~2012.6.20)brAzubu (2012.6.20 ~ 2016.1.25)
가족 관계 아내, 딸, 2남 1녀 중 막내
병역 상근 예비역 만기 전역.
종족 테란
ID NaDa
경력 상금 $322,478.72 USD (₩362,065,000)[1]
데뷔 2001년 Game-i 입단
별명 천재테란br머신br수달brbr테란의 황태자[2]
소속 방송국 개인 방송
유튜브 유튜브 채널
트위터 트위터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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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경력

브루드 워 오프라인 개인 리그 우승, 준우승 상금 총합 : 2억 2천 420만원 + $ 22,500

스타크래프트 : 브루드 워

우승 기록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Reebok 2002 KPGA TOUR 2차 리그 우승자br( 우승 상금 : 600만원 )
2002 KPGA TOUR 1차 리그br임요환 이윤열 Pepsi Twist 2002 KPGA TOUR 3차 리그br 이윤열
Pepsi Twist 2002 KPGA TOUR 3차 리그 우승자br( 우승 상금 : 800만원 )
Reebok 2002 KPGA TOUR 2차 리그br이윤열 이윤열 Stout/Baskin Robbins 2002 KPGA TOUR 4차 리그br 이윤열
Stout/Baskin Robbins 2002 KPGA TOUR 4차 리그 우승자br( 우승 상금 : 800만원 )
Pepsi Twist 2002 KPGA TOUR 3차 리그br이윤열 이윤열 Stout MSLbr강민
2002 Panasonic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자br( 우승 상금 : 2,000만원 )
2001 SKY배 온게임넷 스타리그br박정석 이윤열 2003 Olympus배 온게임넷 스타리그br서지훈
IOPS 스타리그 04~05 우승자br( 우승 상금 : 2,000만원 )
EVER 스타리그 2004br최연성 이윤열 EVER 스타리그 2005br박성준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 우승자br( 우승 상금 : 4,000만원 )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br한동욱 이윤열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br마재윤brDaum 스타리그 2007br김준영
2006 International e-Sports Festival 우승자br( 우승 상금: $ 10,000 )
대회 창설 이윤열 2007 IEF br 김택용

개인 리그

팀 단위 리그

  • 2003년 네오위즈 피망 컵 프로리그 준우승
  • 2004년 SKY 프로리그 2004 2R 우승
  • 2005년 MBC 무비스 MBC GAME 팀리그 준우승
  • 2005년 SKY 프로리그 2004 그랜드 파이널 준우승

스타크래프트 2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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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문구
골든마우스, 금배지를 모두 보유한 단 2명의 게이머 중 하나.[10]
브루드 워 양대 개인 리그(OSL, MSL) 총합br6회 우승, 4회 준우승을 기록한 테란 플레이어

스타크래프트 종목에서 활동할 때에는 위메이드 폭스 소속이었으며 안기효의 뒤를 이어 주장으로 임명되었다가 스타크래프트2로 전향하면서 전상욱에게 물려줬다. oGs 소속으로 활동하다가 2012년 1월 계약만료 후 2012년 2월 16일 북미 게임단인 compLexity Gaming에 입단했다.[11].

최초의 골든 마우스 달성 및 브루드 워 케스파 공식전 다승 2위[12]를 기록했다.

최초로 금배지를 수상받은 플레이어로 알려져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최초의 MSL 3회 우승은 이윤열이 맞긴 하지만 MSL 배지가 처음 만들어지게 된 것은 2006년 경이며 은배지는 이후 2007년 경에 제작되었다. 원래 MSL 금배지 자체가 마재윤의 MSL 3회 우승을 기념하기 위해서 제작된 것이 시초였다. 이후 2007년 MBC게임에서 1회 우승자를 위한 은배지를 새롭게 제작하였고 동시에 3회 우승자를 위한 금배지 또한 수여하게 되었다. 3회 우승자인 이윤열과 최연성도 이 때 금배지를 같이 증정 받았다.

2012년 6월 19일 컴플렉 시티 홈 페이지를 통해 자신의 은퇴 소식을 알렸다. 사대천왕이나 서지훈급의 레전드 게이머들은 모두 소속팀에서 은퇴식을 치른 반면, 나머지 4대천왕 임요환, 홍진호, 박정석과 달리 친정팀이 공중 분해되어 이윤열을 송별할 단체가 없는 상황이어서 은퇴식이 아예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나 2012년 7월 3일 tving 스타리그 2012 레전드 매치 이후 온게임넷에서 은퇴식을 약소하게나마 치뤄주었다.[13] 앞으로 S.CULTURE라는 의류 쇼핑몰에서 모델을 하고 향후 e-sports 게임'단에서 'MJ'라는 팀의 단장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최종 목표는 CEO라고. 그리고 제대 후 여자 친구와의 결혼 계획을 밝히기도 하였다. 청소년 시절에서 20대의 나이가 되어 떠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올드 팬들은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은퇴 후에 MJ Team의 단장을 맡기로 했으나 취소되었고 상근으로 입대 전에 아프리카TV에서 스타1 방송을 하며 조용히 보내는가 싶다가 Azubu의 스타크래프트2 팀 매니저로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2년 GSL 시상식에서 핫식스와 함께 공로상을 받았다.

2015년경에 e-sports 관련 교육 강사로도 활동했다.[14]

상세

임요환-이윤열-최연성으로 이어지는 3대 테란 중견. 임요환 이후 혜성 처럼 나타나 뛰어난 컨트롤과 빈틈 없는 운영으로 천재라는 별명을 얻으며 최강자가 되었다. 당시 주로 쓰이던 맵인 '로스트 템플'에서 높은 승률을 기록했으며, '로스트 템플에서 앞마당 먹은 이윤열을 이길 방법은 없다'는 말 까지 나왔을 정도. 이 '앞마당 먹은 이윤열'은 스타판에서 하나의 격언 처럼 쓰였다.

1차 전성기 당시 벌처로 상대를 신나게 흔들어 정신 못 차리게 만든 뒤, 쌓아둔 무시무시한 숫자의 탱크 부대로 상대를 휩쓸어 버려서 토네이도 테란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게임 외적인 별명은 수달. 이윤열이 핸드폰 광고를 찍었는데 그 핸드폰 모양이 조개(...)처럼 생긴데다 스샷 중 핸드폰을 가슴에 가져간 모양이 보노보노처럼 보여서 그렇다. 그런데 보노보노는 해달. 그래서 이윤열이 패배하면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견훤이 "수달이가 죽었어!"라고 외치는 동영상이 가끔 올라왔다.

포모스에서 온게임넷 방송사 해설인 엄재경MBC GAME 방송사 해설인 이승원을 모아 놓고 인터뷰를 했는데, '모든 면에서 봤을 때 가장 강력한 선수는 누구라고 생각하는지'라는 질문에 둘 다 이윤열을 지명하기도 했다. 특히 이승원 해설은 초기 geMBC 시절 부터 엠겜과 역사를 함께했으며 MSL 최고 커리어(우승 3회, 준우승 3회.)를 기록한 이윤열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로스트사가 MSL 8강 5세트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이승원 해설 답지 않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몰입했고, GSL 4강에 이윤열이 진출하자 결승에 진출하면 피켓을 들고 응원을 가겠다는 트윗을 남기기도 했다.

첫 등장부터 실력은 대단히 뛰어났으나 아직 어린 나이[15]였기 때문인 지 심리 면에서 다소 문제가 있었다. 여러 인터뷰에서도 말할 때 어버버하며 수줍어하는 모습은 당시 최강자에겐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수 년간 소년가장이었으나, IS 부터 팬텍 EX 시절 까지 이윤열은 단 한 번도 팀의 주장을 맡은 적이 없다.

임요환 보다 외모가 딸렸다는 점도 있고,[16] 방송 대회에서 처음으로 벌어진 임요환 이후 '최강자 교체'였기에, 각종 팬덤(특히 임빠) 뿐 아니라 관계자들에게까지 욕을 먹을 정도였다. 그가 고등학생이던 때 방송사 게시판이 '이윤열을 죽여버리고 싶다', '이윤열의 재미 없는 플레이가 스타리그를 망치고 있다'는 글로 도배되었을 지경.

당시 이윤열을 까던 레퍼토리는 훗날 최연성, 마모씨, 이영호가 듣던 것과 별 다르지 않다. '이기기 위한 플레이만 한다' '기계적이다', '최강은 이윤열일지 몰라도 최고는 임요환이다', '감동은 없다' 등. 그래서인지 이윤열은 방송에서 괜히 되도 않는 빌드를 시도하다 지거나 하는 일도 있었다.[17]

그럼에도 불구하고 택뱅리쌍 시대 이전까지 커리어 측면에서는 비교할 선수조차 찾기 힘든 대단한 프로게이머였다. 리그 간 공통맵도 없던 시절에 온게임넷 스타리그, MSL, 겜TV 스타리그를 동시에 우승하여 붙여진 그랜드슬램이라는 타이틀은 비록 겜TV 스타리그가 폐지되면서 이윤열 이후로 언급되지 않았으나, 그러한 현실적 문제를 제외하고 보더라도 양대리그 동시 우승조차 이영호(2010) 이전까지 나오지 않았다. 양대리그 각각 3회 우승 기록 또한 이영호가 이를 따라잡기 전까지 유일했으며, 끝내 타이 기록으로 남았다. 준우승까지 포함하면 양대리그에서 총 10회의 결승 진출을 했으며 이는 스타크래프트 역사상 유일한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한 때 천식으로 군 면제를 받는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사실과 다르다고 본인이 인터뷰에서 군 관련 질문을 받을 때 마다 언급했으며, 스포츠Q 인터뷰에서는 공군 입대를 고려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스2 전향 이후 상근예비역으로 근무했다.

플레이 스타일

오랜 전성기를 구가한 게이머였던만큼, 이윤열은 자신의 게임 스타일을 유연하게 변화시키면서 정상급 플레이어의 자리를 고수했었다.

1차 전성기인 2002년~2003년 초반의 이윤열의 게임 패턴은 앞마당을 먹고 6팩을 돌리며 적절한 병력이 갖춰졌을 때 특유의 타이밍 러쉬를 감행하여 상대와의 힘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이었는데, 이 시절의 이윤열을 상징했었던 문구가 바로 앞마당 먹은 이윤열이었다. 이윤열이 이름을 알린 계기가 된 맵인 로스트 템플은 상대 진영과의 거리가 지상과 공중 가까운 위치, 지상은 멀고 공중은 가까운 거리, 지상과 공중이 모두 먼 거리 등 모든 양상이 다 나올 수 있는데, 이윤열은 이 맵에서의 승리를 통해 상대와의 거리와 병력 상황, 자원 상황을 보고 상대보다 자신이 강한 타이밍이 언제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이러한 이윤열의 질주에 제동을 건 사람이 바로 최연성. 이윤열이 특유의 타이밍 러쉬로 상대를 썰고 다닐 때 그는 '빌드 최적화'에 더 심혈을 기울였고, 이 빌드 최적화를 통해 싸우기도 전부터 이미 상대에게 우위를 가져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이후 이윤열을 왕좌 자리에서 밀어내고 자신의 시대를 열게 된다. 자신의 무기인 타이밍을 극복한 상대가 등장하자 이윤열은 게임 스타일을 바꾸게 되는데, 이게 후기 이윤열을 수식하는 단어 중 하나인 프리스타일. 즉, 장점인 자신의 타이밍 감각은 그대로 살리면서 좀 더 다양한 패턴의 경기 운영을 보여주며 이후로 꾸준히 정상급 게이머로 활동하게 된다. 필요할 때는 거침없이 올인 전략을 사용하기도 하고, 정형화된 빌드보단 상대를 어떻게든 쥐고 흔들려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 시기가 이 시기.

기본기는 신인 시절부터 선수 생활 막바지까지 꾸준하게 뛰어났는데 2003~2004년에 이미 400에 가까운 APM과 240 전후의 EAPM을 가지고 있었다.[18] 요컨대 03년도에 이미 09년도 수준의 APM을 가지고 있었다는 소리다. 이로 인해 컨트롤도 잘했고 물량도 엄청났으며, 다전제 판짜기에도 능했었다. 타이밍 감각에도 뛰어났기에 목동저그를 무너뜨릴 수 있었고 프로토스전에서도 대단히 강력했다. 게다가 날빌까지 적절하게 섞어 쓸 줄 아는 게이머였기에 2007년 초반까지 정상급 게이머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특히, 이윤열의 가장 뛰어난 재능은 바로 독창적인 병력 운용에 있었다. 특유의 손빠르기가 따라잡힌 순간에도 다른 테란과 차이를 보인 것은 바로 이윤열이 만들어내는 이질적인 타이밍과 독특한 전술적 능력에 기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외에 선구자적인 측면이라면 자원 최적화가 있다. 이윤열이 최적화의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하는 것이 이 때문인데, 아마추어로 이름을 날리던 1.07 시절부터 이미 앞마당 확보 이후 6팩토리 자원 최적화로 당시로서는 혁명적이게도 자원을 전혀 남기지 않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어느정도는 그 자신의 높은 APM에 기반한 퍼포먼스였음은 감안해야 하지만.

다만 자원 최적화와는 다르게 초반 빌드 최적화에는 약점이 있어서, '빌드 구상과 판짜기'를 잘 하는 몇몇 상대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였다. 최연성은 전술한 대로 이윤열의 독주를 끝낸 최악의 천적이고, 삼신전 시절 박태민에게도 특유의 판짜기에 고스란히 말려들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놀라운 전투력으로 전적에서는 5:5를 이루었으나 패러다임에서는 밀렸다고 볼 수 있다.[19] 컨트롤보다는 빌드를 중요시하는 강민과도 호각지세를 유지했다. 그리고 빌드 운용과 심리전을 무기로 하는 마조작에게도 더블스코어 이상으로 매우 약했다. 삼신전 이후에는 지나친 SK테란 고집이 슬럼프의 또다른 이유로 지적받기도 하였다.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에서도 기묘한 테테전 역전승을 자주 거두기는 했으나 초반 빌드 싸움에서는 매우 밀리는 모습을 보인 것도 이러한 이윤열의 약점을 반영하는 것이라 볼 수 있겠다.

등장

경북 구미 출신으로 본래 초등학교 시절(3학년 부터 시작)에는 정구 선수였다. 집안이 가난해서 다섯 식구가 한 지붕아래 산 적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고. 정구 선수가 된 이유도 맛있는 것을 마음껏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경기에만 올라가면 떠는 바람에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고 최고 성적은 구미시에서 대회에서 거둔 3위. 그러다 중학교 2학년때 천식이 발견되어 더 이상 운동을 하면 위험하다는 말에 운동을 포기하고, 친구와 함께 PC방에 가서 만난 스타크래프트가 이윤열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스타크래프트에 재미를 붙인 이윤열은 곧 구미를 제패했고, 서울과 부산에서 열린 여러 대회에 참가한다. 하지만 우물 안 개구리였고, 대부분의 대회에서 1,2라운드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이 때 이윤열이 만난 선수가 게임아이에서 우라싸야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한소령이라는 게이머로, 리플레이가 없던 시절 이윤열의 스승이 되었다.

방송 경기 데뷔는 2000년도 iTV 고수를 이겨라에 출연해 최인규를 격파한 것으로, 이 때 이윤열은 나이스가이라는 길드에 소속되어 있었다. 여기서 승리한 날 길드채널이 이윤열을 찾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는데, 이 때 방송경기 승리의 짜릿함을 느꼈다고 한다.

실력이 날로 성장한 이윤열은 충남대 서버를 제패하고 게임아이로 채널을 옮겼고, 여기서 상위 랭크에 오르며 게임아이 팀에 입단 제의를 받게 된다. 이윤열은 온라인에서 펼쳐진 입단 테스트에서 전승을 했고, 서울로 올라가 PC방에서 홍진호와 김종성을 이기며 송호창 감독과 계약을 했다. 2001년, 이윤열은 게임아이 주장원전을 포함해 각종 군소대회에 참여하며 인지도를 높였다.

이윤열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게 된 계기는 2002년 ghemBC(現 MBC게임)의 종족최강전이었다. 기본적으로 5전 3선제로 진행되는 종족 최강전에서 이윤열은 무시무시한 승률을 거두었고 이때의 풍부한 5전제 경험은 개인 리그 상위 라운드에서도 커다란 힘이 되었다. 이때 까이던 소스 중 하나가 이재훈, 주진철에게 당한 0:3 패배였지만 나중에는 다 갚아버렸다.

이 일로 MBC 게임에 애정이 깊어졌는지 종족 최강전에 출연하던 시절에는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챌린지 리그와 종족 최강전의 일정이 겹치자 '나를 키워준 겜비씨를 택하겠다'며 예선에 참가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이 시절에는 방송사들이 협력 체제를 구축하기보다는 자사 리그를 띄우려는 경향이 있어서 스케줄에 있어서 양보를 하지 않았기 때문.[20]

전성기

전성기는 커리어상으로 볼때 3차례나 된다. KPGA, 스타리그, 겜TV 스타리그를 우승하며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던 시기를 제 1기, 2004~2005년의 삼신전을 제 2기, 그리고 신한은행 스타리그에서 2연속 결승에 진출, 신한은행 마스터즈 우승까지를 제 3기로 말한다.

KPGA 2차 리그에서는 홍진호에게 0:2로 밀리다 3:2로 리버스 스윕하며 역전 우승, 3차 리그에서는 일주일 뒤에 반대쪽에서 당시 임요환을 꺾을 정도의 실력자였던[21] 박정석에게 3:0으로 압승했다. 4차 리그에서의 조용호는 목동저그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는데, 임요환을 다전제에서 꺾었고[22] 신예 테란 트로이카로 이름을 날리며 4강까지 진출한 김현진을 꺾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윤열은 1경기 아케론에서 벙커링, 3경기는 초반 러쉬, 5경기는 땡스팀이라는 극단적인 수로 3:2 우승에 성공한다. 하지만 이 결승에서 2, 4경기는 중후반 운영이었는데 다 져서[23] 파나소닉 스타리그에서는 조용호의 우세를 점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이후 파나소닉 결승전에서 이윤열이 다른 방법으로 목동저그를 격파하는 해법을 가지고 나오게 된다. KPGA 4차리그 결승에서 날빌 위주로 준비했다면, 파나소닉 결승에서 이윤열이 가지고 나온 해법은 '타이밍'이었다. 당시 거의 모든 선수들과 해설진이 저그맵 아방가르드에서 조용호의 우세를 점쳤는데 이윤열은 소수의 병력으로 우선 진출한 뒤 조용호의 추가 가스 멀티를 미리 차단하여 목동 저그를 완전히 격파해버렸고 3:0으로 압승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GhemTV 3차 스타리그에서 강도경을 3:0으로 완파하며 그랜드 슬램이라는 업적을 이룬다.

첫 전성기는 강민이 등장하면서 끝났다고는 하나, 끝났음에도 여전히 탑클래스의 승률을 유지하는 강력한 테란으로 오랜기간 자리매김했다.[24] MSL로 개편된 후에도 스타우트배에서 전태규에게 0:2로 밀리다 역스윕을 하며 결승까지 올라갔고, TG삼보에서는 승자조 결승까지 올라갔으나 전승준을 달성하기 위해 달리던 홍진호에게 패해서 패자조 결승으로 내려가고 거기서 패자조를 다 뚫고 올라온 최연성에게 또 져서 3위로 리그를 마쳤다. 이윤열을 최강자 자리에서 완전히 끌어낸 것은 최연성이었다. 센게임 MSL에서 괴수 대격전, 머머전이라고 불리우는 당시 최고 수준의 테테전에서 최연성은 이윤열을 3:2로 격파하고 자신의 시대가 왔음을 알린다. 이윤열은 이 결승 후에 자신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한 탓인지 눈물을 보였다.[25] 훗날 <아듀! MBC게임>에서 회고하길, 센게임 MSL 결승전은 내가 스타크래프트의 왕이 될 수 있던 기회라며 아쉬워했다. 2004년 초, KT-KTF 프리미어 리그 결승전에서 임요환을 꺾으면서 이윤열이 임요환 팬덤에게도 인정받았기 때문에, 만일 센게임 MSL에서 시대가 바뀌지 않았더라면... 하고 아쉬워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후 스타판의 역사가 본좌론으로 재편되며 팬덤들 사이에서는 잊혀졌지만, 이윤열은 이 시절을 천추의 한으로 남겨두었고 센게임 MSL 결승전이 열린 4월 18일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한동안 아이디를 Remember 4.18로 쓰기도 했다.

그러다 2005년 초, 최연성이 슬럼프에 빠지자 이때를 계기로 이윤열, 박태민, 박성준의 이른바 삼신전[26]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이때 당시 열리던 개인리그는 2차 KT- KTF 프리미어 리그, IOPS배 스타리그, 당신은 골프왕배 MSL이었는데 이들은 이 리그들을 사이좋게 갈라먹으며 3파전의 양상을 띈다. 이윤열은 박태민을 준결승에서 리버스 스윕한 후 박성준을 아이옵스배에서 3:0으로 제압했으나 당신은 골프왕 MSL에서는 박태민에게 2:4로 패했고, 프리미어 리그에서는 박성준이 박태민을 제압했다.[27] 이윤열은 2차 프리미어리그에서 3위를 차지한다. 그 외에도 MBC무비스배 팀리그와 2004 SKY 프로리그 그랜드파이널 모두 결승전에 오르며 양대 결승+양대 팀리그 결승이라는 경악스러운 기록을 세우나 아이옵스 스타리그만을 우승하는 것에 그친다.

아이옵스 스타리그 우승 이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까지 약 1년 반 동안 최악의 슬럼프에 빠지는데, 이 시기 양대리그에서 모두 오프라인 예선으로 떨어지면서 4대 테란에서 밀려났다.[28] 그 부진의 원인으로는 2005년 7월 18일에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잃은 것이 가장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5 후기 프로리그와 2006 전기 프로리그에서 연속으로 다승왕을 땄다. 최악의 슬럼프에 프로리그 다승왕이라니 흠좀무

이후 2006년에는 오영종과의 결승에서 승리하고 골든마우스까지 최초로 수상하며 스타 프로게이머 사상 가장 영예로운 게이머가 되지만 이윤열이 결승까지 진출하며 만난 상대들의 당시 테란전 성적이 모두 30% 이하라 희대의 천운 우승이라는 폄하를 받기도 했다. 한때 이것 때문에 '천운열', '이운열'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래도 결승전이 접전을 보여준 명경기라 어느 정도 인정은 받고 있으며 무엇보다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테란이 프로토스에 처음으로 우승한 것이여서 여러모로 의미가 크다.[29]

특히 5경기는 이윤열 클래식이라 하여 드랍 쉽 견제 이후에 들어가는 타이밍 러쉬가 성공한 경기인지라 명경기로 꼽는다. 역대 명경기하면 한 번쯤은 나올 정도.[30] 오영종은 원팩 원스타를 잘 막았음에도 상대 체제를 파악한 이윤열은 엔베와 터렛을 생략한 5팩 타이밍 러쉬로 한방에 끝내버린다. 무엇보다 한방의 교전에서 탱크는 세 마리씩 드라군 밀집지역을 포격하고, 벌쳐로는 탱크에 달라붙는 질럿 제거가 완벽했다. 시종일관 오영종 유리를 외치다가 벙쪄버린 해설진이 백미. 이후에 이윤열은 이 대회를 회고하며 자신의 최고의 대회라고 하고, 노력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31]. 사실 골든마우스가 만들어졌을 때, 수상자는 박성준, 최연성, 임요환 중에 나올 것이라 생각했지[32] 양대 PC방까지 떨어진 이윤열이 탈 거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결승에 올라오는 과정 자체는 천운이라 까이긴 했지만 결국 결승에서 명승부 끝에 우승을 차지했고, "이 영광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바칩니다."라는 수상소감은 큰 감동을 주었다. 하지만 얼마 후 같은 맵 타우 크로스에서 박영민에게 패해서 기분이 묘했다고.(...)[33]

이후 다음 시즌에서는 마재윤을 만나는데, 8강 박명수, 24강 박영민을 제외하면 결승에 갈 때까지 테란만 만났다. 이때는 테란전은 최고 수준이었으나 토스전은 5할이 채 안되는 승률이어서 결승 진출이 힘들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으나, 8강에서 박명수를 잡고 4강에 갔다. 하지만 테란맵이 많아 비난받았다. 롱기누스 2, 리버스 템플 때문. 이 시기 이윤열은 12월 랭킹 사건으로 인해 철저하게 '구세주' 마모씨를 상대하는 '악역'으로 스토리가 짜여 있었기 때문에 4강에 오른 변형태한동욱 역시 저그를 무너뜨리고 왔음에도 다른 테란들이 받은 욕의 몇 배를 더 얻어먹어야 했다. 스갤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달빡이들과 마빡이들이 싸웠다.

마재윤에게 질 때는 경기 전 팬 카페에 쓴 일기에서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입니다."라고 했다가 패배하여, 이 시합은 일명 벼베기 관광이라고 불리게 되었고, 이윤열의 별명으로 가 쓰이게 되었다.[34] 단순히 패배했기 때문만은 아니고, 4경기 막판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고개를 푹 수그리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기 때문. 스갤러들은 이를 벼 세레모니라 불렀고 여기에서 라는 별명이 확정.

이윤열 본인도 가장 기분나쁜 결승전으로 꼽는데, 경기 전에 결승에 벌써 10번 오르는 선수가 인터뷰에서 저...저는 설로 남고 싶슾셒슾니다라고 했기 때문이다.(...)[35] 경기 내용도 발렸고. 맵이 1,5경기가 롱기누스, 2경기가 네오 알카노이드에 3경기는 리버스 템플이었는데 이는 모두 다 상당한 수준의 테란맵이었기 때문이다.[36] 그럼에도 패배하는 바람에 사상 최악의 결승전이 되고 말았다. 특히 3경기에서는 결승전인데 커맨드가 먹히며 "이제는 앞마당 먹힌 이윤열이네여"란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2주 후에 이윤열은 신한은행 마스터즈에서 새로운 테테전 최강자로 떠오르던 변형태를 꺾고 결국 마모씨에게서 승리를 거두면서 3차 전성기의 대미를 장식했다. 마재윤이 3.3 후로 맛이 갔다는 평도 오가지만[37] 저그전 스페셜리스트인 한동욱을 이겼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다지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당시 마서스가 쓰던 장판파를 후반 운영으로는 막을 수 없다 생각한 이윤열은 즉흥적인 빌드 위주로 경기를 준비해와 승리한다. 이 때가 마지막 전성기라 볼 수 있다. 마재윤이 계속되는 테란맵 때문에 같은 패턴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진실은 저 너머에... 이윤열의 즉흥적인 빌드 위주 판짜기는 KPGA 4차에서도 이미 조용호를 상대로 등장한 바 있는데, 신한 마스터즈는 일종의 데자뷰였다. '무난히 흘러가면 이긴다'는 생각에 조용호가 목동저그에 취했다가 날빌에 패한 것과 마찬가지로, 마재윤도 자신이 만들어낸 승리 공식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이윤열의 찌르기에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쇠퇴기

그 뒤 달도 차면 기운다고, 전성기 이후 2연속 그랜드 광탈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으며, 이후의 곰TV MSL 시즌4에서는 광탈을 피하기 위해 조지명식에서 탑시드였던 후배 박성균에게 첫 진출한 신인을 자신의 상대로 지명하도록 사주했다. 다만 이걸 가지고 그렇게 까이지는 않았는데 우선 올드들이 대대로 몰락하던 시기이다보니 이윤열을 응원하는 사람이 늘었던 것도 있으며, 2번이나 광탈을 하다보니 이제 좀 올라가야지! 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이후 곰TV MSL 시즌4 8강에서 박성균에게 4:0으로 처참한 관광을 당했다. MSL 8강은 5판 3선승제라서 3:0 이상이 불가능 하지만 박성균은 3:1로 이윤열을 이기면서 자신이 진 한 경기마저 다 이겨 놓고 마치 일부러 다 꼴아 박는 듯한 양상을 보여 4:0 관광 경기라고 평한다.[38] 이 사건은 이윤열이 경기 당일날 아침에 "1경기 져주는 거 알지?"라고 박성균에게 말한 동영상이 유포되면서 더 유명해졌다.[39]

다음 대회인 Arena MSL 2008에서는 32강에서 첫경기에서 프영호에 1경기에서 패했지만 패자전에서 이병민, 최종전에서 서경종을 연달아 꺾고 16강 진출. 16강에선 진조작에게 2:1로 패하며 탈락.

다음 대회인 Clubday Online MSL 2008에선 김동건을 격파하고 8강에 진출하지만, 8강에서 당시 기세가 올라있던 육룡 중 한 명이었던 윤용태에게 3대 0으로 스윕당해 탈락. 그것도 건물 하나 못 부수고 무기력하게 무너진 관광이었다. 그리고 이윤열의 스타2 전향으로 처음이자 마지막 양대리그 다전제 0:3 패배가 되었다. 하지만 거의 까이지 않았던 이유는 같은 시대 활약하던 최연성, 조용호, 강민은 물론이고 이후에 강자로 떠올랐던 서지훈, 전상욱, 이병민 조차 개인리그 32강도 못올라왔기 때문이다.

로스트사가 MSL 2009에서도 투혼을 발휘하여 8강에 진출하였으나 8강 상대는 테란전 최강자이자 역시 육룡 중 한 명인 허영무. 결국 끝까지 분전했으나 3:2로 패배했다. 하지만 당시 팬들 대다수의 의견은 이윤열이 엄청난 선전을 했다는 것이다. 사실 어떤 올드게이머가 당시의 허영무에게 단 1경기라도 따낼 수 있겠으며, 당시 테란전 최고의 포스를 뿜어내던 허영무에게 5전제에서 이길 수 있는 테란은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예상을 무시하고 완벽에 가까운 경기력으로 1세트를 가져갈 때만 해도 정말 그가 4강에 갈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올드팬들이 많았다는 후문. 결국은 허영무의 날빌에 두 세트를 내리 내주고, 날빌로 복수하며 한 세트 따라가지만, 긴장한 탓인지 마지막 세트에서는 초반부터 흔들리며 끝내 무너지고 만다. 패배 후에 눈물을 보이는데, 본 리그 진행중에 꾸준히 인터뷰에서 '우승이 목표다'라는 말을 하고 다녔을 정도로 간만에 불타오른 모습이었기에 여러모로 안타까웠던 장면. 이 무렵 프로리그에서도 잠깐이나마 살아난 모습을 보이며 한참동안 쓰였던 별명이 바로 '살아있는 전설'.

안타깝게도 이 허영무와의 분전은 이윤열 최후의 불꽃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프로리그 100승을 달성하기 전까지는. 이후에도 프로리그에 간간히 모습을 보이며 아직은 안죽었다는 것을 종종 보여줬지만 스타2 전향으로 인해 스타크래프트 1에서 이어지던 이윤열의 전설은 끝을 맺었다.

이영호에 밀려 퇴물 취급받던 2008년도에도 양대 개인 리그 8강에 모습을 자주 보이고 택뱅리쌍이라는 세력 구도가 정형화되어가던 2009년에 퇴장했다. 2002년 최전성기를 누리고 2007년 초반까지 테란 원탑을 지켰다는 점을 보면 역대 최고로 꾸준했고 롱런 한 선수라고 할 수 있다. [40]

은퇴 후

상기한 대로 2012년 6월 19일에 은퇴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설마 싶었는데 # 이렇게 돼버리면서 빼도박도 못하게 되었다. [41]

누구와는 달리 범죄를 저지른 것도 없으니 은퇴 후에 방송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의 의견이 없지만, 온게임넷의 마지막 스타리그 당일날 현장 관람을 안하고 아프리카 방송을 한 것에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 복귀선언을 할 예정인지 아프리카TV에서 피어 온라인 게임 방송에 출연을 결정했다.

이후에는 스타1 방송을 종종 하고 있다. 물론 게임을 오랜 기간 접었다보니 기존의 스타1 BJ들에 비해 딱히 실력이 뛰어나진 않은 편.

아주부 공식 홈페이지의 개인 스트림 채널을 통해서도 간간히 방송을 하고 있다. 딱히 방송이라기보단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즐기고 있는 게임을 묵묵히 내보내는 중. 스타2 캠페인이라든가, 리그 오브 레전드라든가.

2013년 6월 기준으로 아프리카 tv에서 개인 방송을 하고 있다. 주로 리그 오브 레전드나 스타크래프트 1을 하는데 일반 아프리카 tv BJ들처럼 마이크와 여러 BGM 등을 사용하며 떠들썩하게 방송하는 중. 다 좋지만 옛날 벼팬들은 가급적 보지 않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조금 안타까울 수 있다.

2013년 7월 16일, 신병 교육대에 입소했다. 5주 훈련 후 고향인 구미시에서 상근예비역으로 복무.

팀이 해체된 상황이라 별 상관은 없지만 아주부에서 매니저로 일했던것은 자신과 맞지 않아 상근 입대 시점과 비슷한 시기에 그만뒀다고 한다.

상근 예비역 전역 후에는 아프리카 tv BJ 활동을 시작했다.이에 대한 반응은 철구와대봉 김봉준급은 아니라도 김택용과 더불어 스타1에서 레전드로 기억되고 있음에도[42] 별창이라 해도 할 말 없을 정도로 별풍선에 다양한 리액션을 하는 이윤열을 보고 격세지감을 느꼈다 한다. 거기에 한때는 아무리 김봉준이 스타 방송을 진행하면서 실력이 늘었다지만 그 후 실력을 봤을 때 과거보다 더 떨어졌다고 해도 될 정도로 실력이 정체됐음에도 이윤열만 만나면 이긴 적이 꽤 있다. 그래서 격세지감의 느낌이 더 커졌다. '복면 스타왕'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피쉬 서버 래더를 뛰었는데, 너무 자주 졌다.

그래도 스타로 얻은 인지도 때문인지, 신지민 덕후 대표로 박초아 덕후로 나온 최군과 함께 AOA의 아프리카 방송에 함께 출연했다. 여기서 지민 덕후임을 여실히 증명했다. 하지만 이윤열도 고민 끝에 대놓고 지민에게 새뮤얼 L. 잭슨을 닮았다고 말했다. 이에 지민은 이윤열에게 "그만해"라고 반말했다.

흑역사가 생길 뻔했는데, 진영수가 여는 스타크래프트1 리그에 경솔하게 참여한다고 했었다.이로 인해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같은 올드 게이머이자 레전드인 최연성은 인터뷰에서 마레기의 아프리카 tv 진출에 거센 비판을 가했고 송병구도 최근 인터뷰에서 전 프로 아프리카 BJ들의 프로답지 못한 행동에 일침을 가했다. 아프리카로 넘어간 오영종도 리그 이외에는 마레기를 철저히 배제하고 어떻게든 엮이지 않으려고 했었는데,[43] 이윤열이 이런 행동을 했기 때문에 올드 게이머들의 체면을 제대로 구겨버렸다는 말을 들은 것.

당시 커뮤니티의 반응 또한 16명의 리그 참가자들 중 유독 이윤열에게만 매우 크게 실망했다는 내용이 대다수였다. 레전드급 선수인 그가 리그를 망치는데 일조한 조작범의 리그에 명단을 올린 것에 대해서 팬들이 많이 실망하기도 했지만, 이윤열의 이름이 크게 부각되었기 때문에 다른 전 프로게이머들 중 맹비난을 받는 표적이 된 것. 이러한 여론이 일자 이윤열은 직접 입장을 밝혀 팬들에게 사과하고 참가 의사를 철회했다. 진영수가 조작 이후 자신의 행동에 대해 반성하고 열심히 살고 있는 듯하여 격려하는 의미로 참여하겠다고 했던 것이지만, 그 생각이 짧았음을 인정하고 사과하였고, 앞으로 조작에 가담된 선수가 리그를 연다면 절대 출전하지 않겠다고 한 것. 이윤열의 참가 철회로 이 논란은 마무리되었다. 결정적으로 진영수가 반성의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한참 후에 드러났기 때문에, 이윤열이 참가 의사를 철회하지 않았다면 현역 시절 스갤에서 까인 건 애들 장난으로 느껴질 정도의 비난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2015년 8월 22일, 염보성에게 이새끼 베슬 관리 잘하네라는 소리를 들었다(...)영상 염보성은 노인성 답게자기는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잡아뗐으나, 영상이라는 너무나도 확실한 증거 때문에 결국 다음날 태세 전환하며 이윤열에게 500개의 사과풍을 쐈다.

아프리카 tv 방송을 하다가 시청자가 별풍선을 많이 쏘면 유닛 성대모사를 했는데, 유튜브 시청자가 성대모사를 하지 말라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2016년 2분기 이후로 스타크래프트1 유즈맵랜덤타워디펜스를 주력으로 밀었다. 자칭 랜타디 프로게이머(...). 안타깝지만 사실상 이전의 실력은 소실되었고 레더 C~D정도로 보여지고 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2017년부터 레더 방송을 자주 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강민, 차재욱과의 합방에서 밝혔듯이 ASL 대회 본선까지는 노력하면 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 본선에 올라가서 안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게 싫다고 말하며 의욕이 없음을 밝혔었다. 하지만 재미로 참여하게 된 아재리그에서 사실상 아재 리그 꼴지나 다름없는 차재욱에게 연패를 거듭하며 전적이 0:3으로 밀리기 시작했고, 이는 젊은 BJ들에게 지는 것과 달리 더 자존심 상하는 것으로 여겼는지 그때부터 열심히 연습하기 시작했다. 다시 래더를 시작한 직후에는 커리어가 있다보니 피지컬은 여전하지만 상황 판단이 아쉬운 경기가 많았다. 2007년도에 멈춘 듯한 구시대적 SK테란 시전과 평범한 토스전이 래더 연습 초창기에 자주 보여서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하지만 예전 실력은 어디 안 갔는지 실력이 상승했다. 레이트 메카닉를 못하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김성현에게 강의를 사기도 하고, 2017년 2월 22일에는 김성현과 합방을 통해 1:1 과외식으로 현재 메타를 교육받았다. 이후에는 래더C를 거쳐 B까지 달성했다. 올드 게이머들은 보통 래더C를 겨우 겨우 찍지만 같은 래더C와 게임을 해서 유지하는 것은 어려워하는게 대부분이었는데 C를 돌파해서 B까지 갔다는 것은 현재 젊은 스타1 bj들과 게임 내적으로 경쟁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44] 이런 모습이 보이기 때문에 팬들은 내심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를 기대하며 ASL 시즌3 예선을 기대했다.

선수 시절엔 천재적인 상황 판단 능력과 빠른 손놀림으로 이른바 e스포츠의 전설이었던 이윤열이지만, 이영호이제동을 비롯한 쟁쟁한 프로게이머들과 자웅을 가리기에는 전성기 시절 엄청난 연습량을 바탕으로 대결을 하더라도 이길 확률은 희박하다.

4월 1일 ASL 시즌3 서울 예선에 참가하여 8강(4라운드)에서 박성균을 만나 0:2로 져서 탈락하였다. 4월 2일 부산예선에서는 같은 조에 전프로가 한 명도 없는 행운을 얻었으나, 래더B 이상이라고 알려진 아마추어 고수 저그 문기호에게 결승에서 1:2로 져서 탈락했다.여담이지만 이 문기호는 선수경력도 없었던데다 2017년 4월 기준 만 20세에 상근 예비역이라지만 현역병 신분이었다.(...) 문제는 정작 이윤열을 꺾고 올라온 문기호도 정작 24강에서 맥없이 관광 2패로 광탈했지만... 하지만 와이고수같은 스타1 커뮤니티에서는 경기 이전부터 문기호가 이윤열의 강력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예견하는 사람이 많았을 정도고 같은 래더b라고 해도 문기호가 더 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단순히 실력없는 뽀록 아마는 아니었다는 것. 그러나 방송 오프무대의 중압감은 pc방 예선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과거 asl 본선에 올라온 아마추어들 대부분이 제 실력을 전혀 발휘 못하고 맥없이 지는 것이다. Pc방 예선이라면 아마추어들에게 이런 부담이 덜하기 때문에 제 실력이 잘 나와서 전프로들을 잡는 경우가 왕왕 있다. 신상문은 시즌2 예선에서 포스네임 김범성에게 져서 못올라왔고 그 외에도 pc방 예선에서 아마 고수에게 지는 사례도 있으니 이윤열 혼자 유일하게 전프로인데 아마에게 진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된다.

2017년 6월부터는 거의 스타를 하지 않고 배틀 그라운드만 플레이하며 방송하는 중. 사실상 배틀 그라운드 프로게이머라고 봐도 무방한 수준(...)

2018년 6월 17일 전태규 인터넷 방송에서 이윤열 자신이 비트코인으로 2억을 손해봤다고 털어났다. 문제는 바로 다음에 정부를 비판하며 이런거 좀 만들지 말라며 정부가 비트코인 투기를 조장했다는 식의 발언을 한거였다.[45]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비트코인을 만들거나 비트코인 선물거래를 만든 적이 없다. 오히려 18년 초 지지율 하락을 감수해가며 피나게 규제했었는데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이윤열의 발언은 씁쓸하게 다가오고 있다.[46]

2018년 7월 21일부터 8월 4일까지 기뉴다와 함께 스타 프로게이머 서든데스 대회를 진행한다
총 21명의 스타 전 프로게이머들이 참가한다. 7명씩 3조로 나누어 각조 1위 2위가 결승에 진출하고 와일드카드로 각조 3등중에 점수가 제일 높은 한 사람이 진출한다. 즉 결승전도 7명이서 한다. 맵은 1경기 벽없는 빨무 2경기 가스없는 빨무[47] 3경기 섬빨무 이며 서든데스로 실시한다. 즉 넥서스나 커맨드센터 해처리(레어 하이브 포함) 중에 하나라도 파괴되면 그 선수는 아웃.
오래 버티는 걸로 순위로 점수계산도 하며 또한 상대방 본진 파괴한것도 점수계산에 포함된다
그리고 각 맵마다 밤어타워 규칙도 있다. 예를 들면 2경기 가스없는 빨무 같은 경우에는 성큰 20개 제한. 센터벙커 불가. 터렛 캐논은 하나만 가능 등의 규칙이 있다.

다른 선수들과 전적 관계

이윤열/라이벌 문서 참조.

관광

실력은 말이 필요 없이 임요환을 잇는 본좌로 뛰어난 프로게이머였지만 한편으로는 역시 임요환과 마찬가지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어지간해서는 GG를 선언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서 이래저래 게임 내적으로 험한 꼴을 많이 당했다. 스타판 최고의 관광명소라고 불리기도 할 정도. 자주 회자되는 것들만 추려봐도 아이우 관광, 원기옥 관광[48], 알 포인트 밀봉관광, 리템 커맨드 관광, 1킬 관광, 오리지날 관광 등 참으로 다양하다. 별도의 항목을 개설해도 될 정도다. 마재윤에게는 결승전에서 커맨드센터까지 먹히는 굴욕을 당했다. 김택용에게는 슈퍼파이트에서 당한 스카웃 관광과, Daum 스타리그 2007에서 김택용의 유닛을 겨우 하나 Kill한 '1킬 관광'으로도 유명하다. 이때 조지명식 에서 김택용과 이윤열이 서로 도발하며 김택용은 다시 스카웃을 뽑아준다고 했고 이윤열은 핵을 날리겠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김택용이 패스트 다템으로 무난하게 승리했다.

물론 이중에는 이윤열이기 때문에 관광으로 희화화되는 경우도 많다. 다른 게이머가 했으면 웃음거리도 안 되지만 유명 게이머이기 때문에 까가 많아서 이야기가 자주 되는 것. 예를 들어 이윤열도 신조작을 상대로 전진배럭으로 1킬 관광을 보낸 적이 있지만 네임벨류가 떨어지는 신조작은 잘 언급되지 않는다. 이제동이 패배할 때마다 무소유니 자동문이니 하면서 까이는 거랑 비슷.

하지만 그만큼 버텨서 이긴 경우도 많았다. 대표적인 게 대 이재훈전(그 유명한 50게이트 사건 때의 일이었다.)이나 신 개마고원에서 한승엽 선수와의 장기전 등이며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3에서는 탈락 위기에서 이학주, 이재호, 이성은을 상대로 계속해서 믿을 수 없는 역전극을 선보인 바가 있다. 박성균과의 블루스톰 3경기 역시 놀라운 역전극. 이승원 해설이 해설하면서 눈물이 다 날뻔한 경기로 꼽기도 했다. 철의 장막에서 벌어진 팀플에 출전했을 때에는 팀 동료 안기효가 엘리되었는데도 혼자 버티면서 물량을 모은 뒤 타이밍 러쉬로 임요환의 본진을 급습해 초토화시킨 다음 박태민까지 물리치며 희대의 역전극을 만들어냈다. 이 대역전패로 인해 임요환-박태민 팀플은 스갤의 3대 개그팀플 중 하나로 까이고 있다. 철의 장막 문서 참조.

기타

한때 다전제에서 강력한 게이머로 유명했다. 게임 외적인 멘탈은 이리저리 흔들리는 게이머였지만 게임 내적으로는 매우 단단한 선수. 선수 생활 말기 윤용태에게 셧아웃 당하기 전까지 공식전 셧아웃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49] 더욱이 리버스 스윕의 대가로 유명했다. KPGA 2차 결승에서의 홍진호, Stout배 4강에서의 전태규, IOPS배 4강에서의 박태민 등 이윤열을 궁지로 몰아넣고도 최후의 순간까지 나오는 끝을 알 수 없는 저력에 밀려 패하는 경우가 많았다.[50] 리버스 스윕 3회로 가장 많은 기록을 세운 선수이다.

테막 선수들을 많이 만난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2나 선수 생활 말기에 진출한 개인리그에서 대진운이 따라준 것으로 인해 이윤열은 대진운빨이다라고 비난하기도 하는데, 사실 전성기 시절에는 오히려 대진운이 나쁜 축에 속한 선수였다. 조지명식에서는 기량이 하락한 2007년 말 이후를 제외하면 항상 실리보다는 명분을 추구했던 선수인지라 어지간한 우승자급 선수들을 죄다 불러모으기로 유명했다. 파나소닉 OSL 우승 후에 열린 올림푸스 OSL에서는 임요환, 박경락, 이재훈과 조를 편성했고, IOPS 스타리그 우승과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2 우승 후에는 최악의 천적이었던 최연성을 자기 조에 데려오기도 했다. 곰TV MSL S2에서는 최연성, 이승훈, 박성준, 곰TV MSL S3에서는 김택용, 최연성, 이영호와 같은 조가 되었다. 구룡쟁패 듀얼 토너먼트에서는 강민, 차재욱, 마서스와 같은 조가 되었고, 아이스테이션 듀얼 토너먼트에서는 전상욱, 강민, 서경종과 같은 조였다. 2007 3차 듀얼 토너먼트에서는 박모씨, 마서스, 고인규와 같은 조가 되었다. 특히 하부리그에서 강민, 마서스와 자주 만나면서 리그 흥행을 염려하는 관계자들을 가슴 졸이게 만들었다.

투나SG(SG패밀리), 팬택부터 시작해서 위메이드 폭스까지 오랜 기간 동안 소속팀의 유일한 희망이던 선수였지만, 언젠가부턴 주전경쟁에서 밀렸고 지금은 전태양이 소속팀의 에이스가 되었다. 이병민박성균, 더 나아가서는 전태양의 스승이다. 박성균 결승전 때는 박성균보다 오히려 그가 장렬한 표정을 짓고 있기도 했었다. 이병민은 이윤열과 함께 있던 팬택 시절만 해도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주었고, KTF 매직엔스로 이적한 이후에도 꾸준히 활약했으나, 김철 감독 부임 이후 김철 감독의 미움을 사 소리없이 은퇴해 버렸다. 전태양의 경우는 입단 이후부터 이윤열과 박성균의 집중지도를 받았으나 한동안 꽃을 피우지 못하다가 언젠가부턴 이제동, 송병구를 잡아내고 이영호와 대등한 경기를 할 만큼 선전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기복은 좀 있다.

04-06년까지는 그야말로 팬택의 등불, 희망으로 원조 소년가장이었다. 스폰서 팬택과 위메이드조차도 결국 이윤열을 보고 스폰을 한 것을 생각하면 스타성과 성적 모두 이윤열에게 달려있었다. 07 후기리그 이후로는 후배들이 자리를 차지했지만 이윤열의 스타성이 위메이드의 인수 계기임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위메이드 폭스의 모든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2005년에는 팀플+개인전 최소 2경기를 뛰었고, 2006년 전기리그 팬택이 거둔 6승 4패 중에 5승이 이윤열의 하루 2승으로 이루어낸 성과였다. 가장 유명한 혹사로는 2004 그랜드 파이널+아이옵스 스타리그+2차 프리미어 리그+당신은 골프왕 MSL+MBC 무비스 팀리그를 한 기간에 소화해낸 것이 있다. 참고로 프리미어 리그를 제외한 모든 경기가 결승전에 올랐으며, 프리미어 리그는 4강전. 선수의 혹사란 개념이 없던 시기인데도 송호창이 이윤열을 너무 부려먹는 게 아니냐는 질타를 받을 지경이었다.[51] 단기 혹사로는 박성준, 장기혹사로는 이윤열. 하지만 이후 이제동이영호의 근 몇년 동안의 눈부신 혹사(...)로 인해 소년가장 이윤열은 많이 퇴색되었다.

또한 같은 팀에 있다가 KTF로 이적한 이영호 역시 이윤열의 제자라고 주장하는 팬들이 있었으나, 이윤열이 직접 "이영호 선수에게는 가르친 게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이영호의 증언에 의하면, 직접적으로는 배운 게 없긴 하지만 어깨너머로 게임 내에서의 센스를 배울 수가 있었다고. 그래도 제자라 부르기엔 좀 모자라긴 하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의 판단력, 빌드 조립으로 상대를 완전 묶어놓고 관광보내는 이영호와 뛰어난 기본기와 동물적 감각으로 게임하는 이윤열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다. 오히려 빌드보다는 병력운용으로 승리를 가져가는 이윤열과 비슷한 플레이 스타일은 박성균. 그나마 이것도 같은 팀이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흔적에 가깝고, 정작 이윤열 본인은 이영호도 박성균도 자신의 제자는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팬택 연습생 시절의 이영호가 만든 빌드를 이윤열이 배워 경기에 쓰기도 했고, 박성균에게 토스전을 많이 배운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가르친 게 없는데 제자라는 말을 들으면 본인들이 기분이 나쁠 것이니 자제해달라며 그런 식이라면 자기도 아이디얼 스페이스 시절에 임요환에게 배운 것이 있으니 임요환의 제자라고 말했다.[52]

2008년 6월 14일 프로게이머 최초로 공식-비 공식전 합산 1000전을 달성했고 1000전째 경기에서 당시 KTF(현 KT) 소속이었던 배병우를 상대로 오델로에서 승리했다. 당시 빠르게 테크트리를 확보한 뒤 앞마당 뒷 언덕 지역을 막고 시즈 탱크 드롭을 감행하는 독특한 전략을 들고 나왔는데 재경기 판정이 내려져서 전략 노출의 위기에 몰렸지만 같은 전략을 다시 한번 작렬시키면서 승리.

총 전적 1000전까지의 기록은 627승 373패(승률 62.7%)였다. 한때 세종족전 공식전 승률 모두 6할대였지만 2008년 이후로 승률이 급감하면서 현재 테란전과 프로토스전이 5할 후반대로 내려온 상태. 결과적으로 공식전 통산 승률은 50% 후반대를 기록했다.

역대 다전 1위로 총 전적 1157전 708승 449패 (61.2%). 공식전 최다승, 최다 우승 등의 기록을 꽤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으나 프로리그의 경기수가 엄청나게 늘면서 결국 이제동에 의해 최다승 기록이 깨졌다. 최다 우승 기록도 이영호에 의해 따라잡혔다. 준우승 횟수까지 포함하면 양대 리그 커리어는 더 위지만 이영호에게 있는 WCG 금메달이 없다는 이유로 종종 커리어 관련해서 키배가 벌어진다. 이 부분에서 이윤열-이영호 두 사람 시대에 공통으로 있었으며 본선보다도 더 치열한 선발전이 있는 WCG 우승의 평가가 왔다갔다 하지만, 아무래도 공식 리그로 대우받아 왔던 개인 리그 2회 준우승의 저명도가 더 높다. 결국 남는 것은, 이영호가 앞서는 10%의 승률과 프로리그 다승왕, 이윤열이 우세한 준우승 기록 중 어떤 쪽에 무게를 실어주는가이다.

또한 이윤열의 전성기 일부는 프로리그가 존재하지 않았고 프로리그는 자신의 실력 외 팀원의 실력에 따라 더 많은 승리를 얻을 기회가 있었고, 또 이윤열이 현역이던 시절 프로게임팀의 환경은 이영호가 현역이던 시절에 비해 훨씬 더 열악했기 때문에[53] 일부 불리한 측면도 있다. 반면 이윤열은 이영호에 비해, 대표적으로 iTV 랭킹전, 겜TV 스타리그, 총 2회 개최되었던 프리미어리그와 같이 현재는 비공식 대회가 된 대회에 더 많이 참가할 수 있었으며 이영호와 직접 비교할 수 있는 리그로 남은 것은 WCG 정도에 불과하다.[54] 더군다나 이영호는 MSL 우승 - 온게임넷 스타리그 8강 - 4강 등 여전히 꾸준히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도중 스타판이 갑작스럽게 문을 닫은 점도 고려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결국 시대와 환경이 판이하게 다른 두 선수를 직접 비교해서 다른 쪽을 까내리는 짓은 무의미하다. 애초에 이 논쟁은 개인리그 이야기하다가 프로리그 끌어오고, 공식 리그 이야기하다가 비공식 리그 끌어오고, 커리어 이야기하다가 환경 이야기 끌어오고 등등 논쟁을 위한 논쟁으로 비화되는 것이 절대 다수이며 이 문제는 양 선수가 같은 시대, 같은 환경, 같은 리그, 같은 조건을 가지고 활동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론이 날 수가 없다.[55] 두 선수 모두 한 시대를 상징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선수이니, 무의미한 논쟁에 시간 낭비하지 말고 각각의 선수와 팬덤을 존중해 주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주요 활동/스타크래프트1

2009년 프로리그

2009년 12월 28일 그동안 한번도 출전하지 못했던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에서 최초로 출전이 결정되었다. 상대는 또 홍진호. 벙커링 및 몰래팩토리가 모조리 막히며 무력하게 패배했다. 다른 팀원들이 전원 승리해서 팀은 승리했지만 그 때문에 더욱 패배가 두드러지는 안습한 일이.

2010년 프로리그

3월 7일 선봉출전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투혼에서 상대인 고강민을 절묘하게 잡았다? 역시 테막 고강민. 하지만 2세트에 나온 김대엽에게 패배. 그래도 프로리그 97승을 달성하였다

4월 17일, eSTRO와의 경기에서 팀이 1:2로 뒤져있는 상황. 상대는 이영호에게 통산 100패를 안겨준 신대근인데...

이겼다! 신대근의 뮤탈리스크를 '발키리'로 잡아버리고, 심지어 마인대박까지 터져주는 운까지 작용해주었다. 이게 다 올드의 귀환을 바라는 염원이 담긴 투혼의 가호!

4월 26일, STX SouL과의 에이스 결정전에서 등장했다. 상대는 구질라. 그러나 김구현이 셔틀을 하나 보내서 4질럿을 본진에 드롭하자, 전선에서 벌처가 전부 본진으로 달려갔고, 그 틈을 타 질럿들이 시즈탱크에게 붙어, 완벽하게 전선이 밀려버렸다. 이후, 김구현의 리콜이 여러 번 작렬하면서 결국 GG. 애석하게도 여전히 98승이었다.

6월 16일 프로리그 화승 OZ와의 3경기에서 세트스코어 1:1 상황에서 출전해 구성훈과 맞붙었다. 초반 위험을 잘 버텨내고 탱크와 골리앗으로 상대의 앞마당 지역을 조여버려 진출로를 막아버린 다음 멀티의 우위와 병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드랍쉽 싸움에서 계속 이득을 거두며 잉어를 그물로 옴짝달싹 못하게 묶었다전성기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이로써 프로리그 통산 99승 달성. 1승만 남았었다.

6월 26일, 프로리그 이스트로전에서 1:0으로 팀이 이기는 가운데 2세트에 출전해 신재욱과 맞붙었다. 이윤열은 2팩토리 타이밍 러쉬를 준비하며 드라군으로 압박하는 신재욱에게 시즈탱크 1기만 보여주어 2팩토리임을 숨겼고, 이에 속은 신재욱은 앞마당을 먹으며 리버를 준비했다. 그리고 시즈탱크 3기를 모아 들어간 이윤열의 타이밍 러쉬에 GG. 마침내 프로리그 100승을 달성했다.

그리고 7월 12일, 삼성전자 칸과의 경기에서 2세트에 출전해서 삼칸테란의 당시 새싹을 짓밟았다. 드랍쉽 운용과 기동성 그리고 발빠른 타이밍까지 마치 이윤열의 전성기 시절 테테전을 보는 듯 했다.

이제는 스타2로 전향하게 되면서 다시는 프로리그에서 그의 경기를 볼수 없게 되었다.

2010년 개인 리그

2010년 2월 5일 양대리그 예선에서 광탈해버리는 수모를 겪는다. 온게임넷(대한항공)예선에서는 첫경기를 잡았지만 2, 3경기에서 역전패를 당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타

7월 13일 e - 스타즈 헤리티지 매치 A조 첫 경기에서 강민비범한 경기력을 보이며 가까스로 강민을 이겼다. 가까스로

7월 14일 e - 스타즈 헤리티지 매치 A조 두번째 경기, 이번에는 박용욱을 상대했으나 정말 비지땀 뻘뻘 흘려가며 간신히 잡았다. 이쯤되면 은퇴한 강민과 박용욱의 현역 복귀를 재촉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뭐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결국 4강전에서 임요환마저 꺾고 결승에 올라갔지만 결승에서 기다리고 있던건 운명의 상대 . 다시 벌어진 곡물록에서 1경기를 가볍게 이겼지만 결국 2, 3경기 모두 베이며 패배하고 준우승에 머무르게 되었다.

여담으로 결승전 이전 인터뷰에서 다시 한번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웃음)이라는 멘트를 날렸으나 또 패배. 역시 그는 영원한 벼라는 것을 증명했다. 이쯤되면 즐기는 수준(…).

그리고 블리즈컨 2009에서는 조병세를 이겼으나 , 에게 져서 탈락했다.

2016년 2월 20일 KT GIGA 레전드 매치에 출전해 기욤과 홍진호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여기서 벼봇춤을 또 췄다.

은퇴설

2009년 말 느닷없이 은퇴설의 주인공이 되었다. 자신의 미니홈피에 세로드립으로 떠나기전 마지막 대회 라고 써놓은게 알려졌는데 그 뒤에 출연한 뒷담화에서 그 당시 실제로 95%까지 은퇴를 생각했었다고 고백했다.

2009 IESF 전설의 귀환에서 홍진호를 잡고 3:1로 우승했다.

IEM 시범 경기 뜬금 GG 사건

2010년 8월 21일(한국시간으로) 이윤열은 독일 IEM에서 스타크래프트2 번외 경기에 참여하고 있었다. 1경기를 지고, 2경기를 이긴 상황에서 3경기가 시작되었는데 경기가 시작된지 얼마 안가 갑자기 뜬금없이 GG를 치고 나가버렸다. 모두들 황당해하면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말이 많았는데 팀리퀴드에서는 KeSPA가 이윤열이 스타2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이윤열에게 연락해 그만 두라고 한 것이라고 밝혀 논란이 되고 있고, 이에 국내 언론사에서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기사를 썼으나 관련기사 최초에 이 기사의 내용에서 경기 중단 원인을 네트워크 문제라고 적었다가 스타크래프트2에서 네트워크 문제가 발생하면 화면에 안내문이 뜨는데 그런 안내문이 없었다는 반론이 제기되자 현지에 예정된 다른 행사 참여 때문이라고 기사 내용을 바꿔 기사의 신빙성을 의심하게 하고 있다. 이제는 포모스마저 언론플레이의 마수에 놀아나다니...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ESL 홈페이지의 VOD 제공란에는 한때 아래와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Update: There will be no VoD of the match, since Kespa didn't officially allow NaDa to play a showmatch.

이 말을 해석하자면 KeSPA가 NaDa(이윤열)의 시범경기를 허가하지 않아 VOD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ESL 측의 VOD 재전송 등에 KeSPA가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유력한 증거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더 의심을 살 만한 것은 이 멘트마저 얼마 후 삭제되었다. 하지만 이미 기사화되어 증거는 남아 있다. 관련기사를 참고하시라.

결국 이 문제는 표면적으로는 흐지부지 넘어갔지만 이후 이어진 이윤열의 소양교육 불참과 포모스가 제기한 유명 프로게이머 스타크래프트2 전향설# 등과 연관되며 e스포츠 팬들 사이에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1년 가까이 지난 2011년 7월에 팀리퀴드와의 인터뷰에서 오해가 있다며 더이상 이야기 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다만 이 경기를 계기로 스타크래프트2로의 전향을 마음먹게 되었다고.

스타2 전향


포모스에서 톱스타 프로게이머 3명이 스타2로 전향한다는 기사가 떴다. 사진의 실루엣으로 추측한 선수는 임요환, 박성준 그리고 이윤열. 박성준은 이미 공식적으로 전향을 선언했고, 임요환은 서기수의 채팅으로 스타2를 하고 있는 것이 알려지도 했다. 시범경기에서 스타2를 플레이하긴 했지만 팀의 주장을 맡고 있는 이윤열이 팀을 나가 스타2로 전향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했는데 2010년 9월 17일, 이윤열이 스타2로 전향할 것을 밝혔다. 위메이드 폭스 측에서는 필사적으로 잡으려고 했으나 본인의 의사가 확고해서 잡을수 없었다고 한다. 아마도 IEM 시범경기 뜬금 GG사건 이후로 결심을 한것으로 보인다. 고로 주장 자리는 전상욱이 물려받게 되었다.

GSL 2시즌부터 스타2 리그에 진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그의 새로운 도전을 지켜보자. 기사의 3인 중 마지막 남은 1인이었던 임요환도 기존 소속팀 SK텔레콤과 재계약 하지 않고 스타2로 전향했다.

벌써 KeSPA언플이 시작되는 건지 영예로운 프로게이머에서 상금사냥꾼이 되었다는 기사 따위가 나오고 있다. 친 KeSPA 성향의 언론들이나 스타크래프트1 e스포츠의 기득권을 계속 가지고 싶었던 진영에서는 이윤열을 e스포츠판의 물을 흐리는 배신자로 규정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잘못 건드려도 한참 잘못 건드린 셈이다. 이윤열의 스타크래프트2 전향을 폄훼하려는 그들의 행동은 자신들의 이득과 맞지 않으면 이윤열 정도의 드높은 위상과 기록을 가진 선수조차 언론과 KeSPA에서 언제라도 헌신짝 취급할 수 있다는 그들의 야비한 본성만 깊이 각인시켜주고 말았다.

최고의 올드게이머이자 e스포츠의 아이콘 중 한 명이고, 그대로 이 판에 남아있었으면 공군으로 복무할 것이 확실시되고 한 해 2억 5천[56]까지 받던 역대 최고 커리어를 가진 선수가 공군지원까지 사실상 포기하고,[57] 시드도 없고 예선을 통과한다는 보장도 없이 다른 선수들과 똑같이 부대껴 64강 토너먼트를 생고생하며 뚫어서 우승해야 겨우 상금 1억을 타는 GSL에 참전하겠다는 선언을 가리켜 언론들이 '돈과 기득권을 위한 선택'을 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어떤 면으로 봐도 도저히 상식적이지 않다.

어쨌든 이윤열은 임요환에 이어 예선을 뚫고 GSL 시즌2 본선에 진출해 앞마당 먹은 이윤열은 스타 2에도 통한다는 듯이 시종일관 막강한 물량으로 상대 선수들을 제압하고 8강에 올라 임요환과의 대결을 기다리고 있다. 참고로 2008년 마지막 대결 이후 2년만의 대결이다.

결승전에서 누굴 만나길 기대하냐는 질문에 임요환이라고 대답했는데 8강에서 만난게 유일하게 아쉬운 점. 그래도 이 판에 있으면 몇번이고 다시 격돌할테니 전초전으로 생각하면 될거 같기도 하다. 그래도 역시 황제 VS 천재가 8강에서 이뤄진건 조금 아쉽긴하다. 당시 이윤열은 점퍼를 벗으면 이긴다는 설이 있을정도로 gsl에서 점퍼를 계속 벗으며 올라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임요환과의 경기에서도 점퍼를 벗었지면 패배했다(...)

KeSPA의 전격적인 은퇴 처리

그리고 2010년 10월 5일. KeSPA는 공시를 통해 이윤열을 은퇴시킨 후 아마추어로 강등시키며 자신들이 e스포츠 협회가 아니라 스타크래프트 게임단 협회임을 만천하에 인증했다. 물론 이윤열이 계약 만료 후 팀과의 계약이 없는 상태이니 프로게이머 자격상실이 구단과 선수의 합의하에 가능할 수도 있지만, 장재호, 박준, 윤덕만 등의 위메이드 폭스 소속의 워크래프트3 선수들이 은퇴하거나 팀에서 나오는 일도 없이 스타2 리그에 참가할 수 있는 것과 비교해 보면 이윤열과 같은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를 KeSPA가 유무형의 압력으로 틀어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였다가 팀을 떠나 이미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자격이 없는, 스타2 전향을 선언한 선수들 중 장민철, 서기수, 박성준, 정종현 등은 프로게이머로 검색되고 은퇴 공지도 없었던 상황이었다(단, 김원기는 과거에 이미 자격을 반납한 사례가 있으니 검색될 일이 없다.). 그런데 이윤열에 대해서만은 유독 속전속결로 은퇴 공지가 나오고 다른 은퇴선수들과는 달리 KeSPA 홈페이지의 DB도 속전속결로 지워버린[58] 이유는 무엇일까? KeSPA의 손아귀를 빠져나온 이윤열을 자기들의 권한으로 아마추어로 격하시킨 것은 이윤열에 대한 보복과 동시에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들을 자기의 손아귀에 장악하기 위한 성격이 짙어 보인다.

당연히 협회는 그동안의 업보 플러스 이번 건으로 또다시 나노 단위로 까이고 있다. 이제는 개념머리 싹 틀거라는 기대를 하는 사람 따윈 없다. KeSPA는 다음 날 해명기사를 통해 본인의사에 의한 은퇴라고 해명하였고 최근 은퇴한 다른 선수들의 DB들도 부랴부랴 숨겼으며 어떤 커뮤니티에는 직접 관계자가 나타나 해명까지 하는 등, 이윤열에 대해서 감정적인 일처리를 한 게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묵인하고 상당 기간 프로게이머로 놔두고 있었던 GSL 참가자들이 있는 것을 보면[59] 이윤열에 대해 즉각적인 처리를 한 것이 정상적인 일처리라고 보기는 많이 민망하다.

평소에 선수의 자격 조건 관리와 기록 관리를 개판으로 하다가[60] 유독 이윤열에게만 빠릿빠릿한 일처리를 한 것은 괘씸죄라는 명시적인 증거는 없을지언정 사서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일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61] 그간 KeSPA가 선수들의 자격관리와 기록에 대해 취해온 안이하고 부실한 관리태도와 스타크래프트2를 배척하는 KeSPA의 태도, 그리고 다분히 감정이 섞인 것으로 인식될 수 있는 이윤열에 대한 KeSPA답지 않은(…) 재빠른 일처리는 e스포츠 역사 안의 부끄러운 에피소드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어떤 UNN에서는 가뜩이나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윤열의 은퇴처리에 대해 "규정에 대한 이해가 떨어져서 프로게이머 자격을 잃는 모습은 좋지 않아 보인다."라는 병크를 날려 능욕한 것.링크 이 사실에서, 권력과 언론이 결탁하면 사람 바보 만드는 것 정말 순식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향한 선수들이 먹을 이유가 없는 욕들을 먹고, 게다가 그 욕들을 그 중에서 가장 지명도가 높았던 이윤열이 앞장서서 다 먹고 있는 광경 때문에 이윤열의 팬들을 비롯한 e스포츠 팬들의 분노는 갈수록 활활 타오르고 있었는데...얼마 안 있어 임요환이 스타2 전향을 선언하며 이윤열을 비롯해 먼저 희생한 후배들의 뒤를 따라가며 "나는 스타1을 그만두고 스타2를 하는 것이지 프로게이머를 그만두는 것이 아니다."라고 선언하며 이제 병크 날리던 KeSPAUNN들은 임요환에게도 '배신자' 운운하기 시작했다. 남은 것은 스타크래프트2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 뿐.

기타

조용호가 CYON MSL에서 우승을 차지하기 전, KTF 소속으로 우승을 차지한 유일한 게이머였다. 임대이긴 했지만. KTF는 그분의 팀이라 그런지 조용호 우승 이전에는 강민, 박정석 등 그 어떤 게이머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위메이드에서 그를 소재로 한 윤열베어라는 테디 베어 상품을 만들었으나, 그의 별명과 연동되어 벼베어라 불리며 비웃음만 당하는 중이다(…). 그래도 워낙 귀엽게 나와서 그 팬들에게는 인기가 있는 듯.

팀리퀴드 양덕들은 이윤열의 몸매에 반해서 250페이지짜리 쓰레드를 써질럿다 Nada's Body

화장으로 떡칠된 얼굴에 커다란 귀걸이를 한 이윤열 사진이 퍼지면서 거기에 각종 공주캐릭터나 여자연예인의 몸을 합성해 만든 윤열공주라는 짤방이 스갤 2대 혐짤로 등록되었으며 윤열공주라는 구호는 이유없이 타 갤러리를 공격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김풍내일은 럭키곰스타라는 작품에서 이름만 등장한다(여고생이 항상 얼굴을 가리는 피켓에 적힌 이름). 스타판은 이상하게도 카메라가 관중을 비추면 여성 팬들이 피켓으로 얼굴을 가리는 전통 아닌 전통이 있는데, 그것을 풍자하기 위함인 듯 싶다. 사실 카메라가 피켓을 든 관중을 중심으로 비추기 때문에 피켓으로 얼굴을 가리는 것 뿐. 생각해보면 명색이 전파를 타는 방송인데 얼굴이 적나라하게 나가는 것도 썩 유쾌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근데 사실 네이버 연재전 김풍의 홈페이지에 연재됐을 당시 위에 서술된장면에는 이윤열대신 임요환이 들어가있었다. 뭥미?

인하대학교 컴퓨터공학부에 04학번으로 특례입학을 하였지만 정작 학교에는 거의 나오지 않았...었지만 언젠가부터는 학교에서 종종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스타2 리그 경기가 없을 때는 학교에 나오는듯.

MBC게임 개인리그 통산 100승 달성 기록을 가지고 있다. [62][63]

스타크래프트 개인 리그 10-10 클럽 달성 기록을 가지고 있다.[64]

2009 아발론 온라인 MSL 2009 조지명식에서 놀라운 댄스로 NDS를 차지했다(세레모니상). 벼봇춤 시즌2. 2pm 의 노래에 맞춰 한층 더 손발을 오그라들게 만드는 아름다운 춤을 선보였고 회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한동안 손발을 펴지 못했다. 하지만...그 날 2PM의 'Again & Again'은 조지명식 등장음악으로 세 번 나왔는데, 그나마 이윤열이 가장 나았던 것 같다. 안 그랬으면 세레모니상을 줬을 리가...아무튼 리그는 광탈했다.(...)[65]

2009년 7월 4일 토요일 LG 트윈스vs두산 베어스전 시구를 했다. 김현수바보미소로 맞이해주며 악수도 청했다. 근데 스타대결 이벤트는 LG팬과 같이...

2010년 2월 3일 보도자료를 통해 대한항공 호주편의 CF에 같은 팀 소속저그 김준호(동명이인 개그맨과 혼동하지 않길 바람.)와 출연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대한항공측의 캐스팅 이유는 차기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스폰서가 된 대한항공이 이를 홍보하기 위한 것과, 20~30대층에게 여행의 로망을 어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2월 5일 진행된 대한항공 스타리그 예선에선 탈락해버렸다...

그리고 켠김에 왕까지의 희생양으로 선택받았다. 그는 그곳에서 말 그대로 지옥을 경험했다.(...) 자세한 건 켠김에 왕까지 항목 참고.

강민의 올드보이 7화에서 위메이드 폭스 10인 중 유일하게 강민에게 졌다.

쇼핑몰 사업으로 나다몰을 열었으나 폐쇄되었다.

인터뷰를 참고하면 oGs에 소속되어 있기는 하지만 합숙을 하지 않고 따로 생활하는 중이라고 하는데, 팬카페 등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프로게이머 생활 연장 등을 위해 학업에 시간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팀리퀴드에서 한 인터뷰에 의하면 학업 등의 이유로 하루에는 5-10게임정도로 연습량이 매우 적었다고 한다. 방학동안이나 대회가 가까워지면 연습량을 크게 늘렸다는 듯.

아프리카TV 개인방송에서 2015년 11월에 7살 연하 대학교 동기와 결혼을 한다고 밝혔다. 2015 HOT6 GSL Season 3 결승전 이후 아프리카TV 서수길 대표는 결혼식이 11월 9일에 진행되며 스타크래프트 II 공허의 유산 국내 공식 런칭행사와 함께 코엑스 D홀에서[66] 진행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그리고 해당 결혼식은 아프리카TV와 트위치를 통해 글로벌 생중계되었다.
결혼식 후 반응은...망했어요 이윤열 님이 아내 님께 평생까임권을 선물하셨습니다! 스타크래프트 사에 큰 족적을 남긴 선수지만, 인륜지대사라고 불리는 결혼에까지 스타를 끌어들이는 건 무리수였다. 월요일 저녁 7시 쯤 진행되어 지인들이 참석하기 어려웠을 것은 물론 모든 절차를 생략하지 않고 그대로 진행하여 행사 참석자는 물론 온라인 시청자들의 불만을 불러 일으켰다. 아내분은 무슨 죄입니까 결혼식은 친척의 경우만 하더라도 모든 과정을 다 지켜보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참석자들은 결혼식보단 공허의 유산 행사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강제로 모든 과정을 지켜봐야 했으니 반응이 좋을 수 없었다. 트위치로 지켜보던 해외 유저들도 욕을 섞어가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게다가 이윤열은 스타2와는 관련도 없이 생활하고 있고, 개인 방송도 스1만 하면서 무슨 이유로 공허의 유산 발표회에서 결혼식을 하냐는 부정적 반응도 주를 이루고 있다.
여담으로 블리자드는 이윤열에게 별풍선 10000개행사비를 쐈다(...) 덤으로 이윤열 등장 시 나온 Nuclear Launch Detected와 결혼식 내내 웃음을 못 참던 신부는 덤 결혼식에 블리자드의 사장인 마이크 모하임이 직접 축전을 보내왔다. 그래도 유명 프로게이머의 결혼이었기에 검색어 순위에 올라오며 많은 관심을 받았었다.

결혼을 할 때 숨겨진 5세의 딸이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의 반응은...[67]

2017년 9월 28일 강민과 함께 방송을 하면서 이 문서를 보았다. 그리고 둘이 웃었다.

2008년에 개그콘서트 직관을 갔다가 카메라에 잡힌 적이 있다. 옆에는 박성균, 박세정, 뒤에는 안기효.

파나소닉배 엄재경 사건

이윤열이 최초로 진출한 온게임넷 스타리그였던 파나소닉'배 스타리그 8강에서 이윤열과 조용호가 맞붙게 되었다. 여기서 이윤열은 드랍 쉽 전략을 꺼내들었고 이것이 막히자 빠르게 GG를 선언했는데[68] 경기가 끝난 후 중간 광고 시간에 해설 위원들의 잡담이 그대로 송출되는 사고가 있었다. 이때 김태형 해설위원은 '윤열이는 전략이 안먹히면 GG를 너무 빠르게 치는 경향이 있어'라고 말했고, 이에 대해 엄재경 해설 위원이 쟤가 저래서 인기가 없는거야라고 발언해버려 이 한마디에 커뮤니티가 쑥대밭이 되어버렸다. 아무래도 온게임넷 스타리그 위주 스토리 텔링을 만들던 엄재경 입장에서는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스타였던 임요환의 자리를 위협할만한 선수가 온게임넷 스타리그가 아닌 외부에서 온 게이머였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추측이 있는데, 엄재경같은 경우는 '내 생각일 뿐이며, 윤열이가 앞에 있었어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어쩌면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까인 최초의 선수가 아닐지.

논란

이윤열은 프로게이머 가운데서도 전성기 시절 특히안티가 많은 것으로도 유명했다. 이윤열같은 최고 인기 선수라면 팬도 많으니 안티도 많은건 당연하겠지만, 이윤열은 안티가 많아도 너~무 많다. 이윤열은 순한 이미지에다가 게임 외적으로 별다른 문제를 일으킨적이 없는데도[69] 안티가 심하게 많은 것은 두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다.

첫째는 이윤열이 스타급 선수들을 많이 이겼기 때문이다. 데뷔 초부터 임요환이후 최강의 테란이라는 이유로 임빠들에게 견제를 받아왔으며, 홍진호를 꺾고 우승했다는 이유로 콩빠들에게도 까였고, 박정석에게 강하다는 이유로 등빠들에게도 까였다. 게다가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2에서 오영종의 가을의 전설과 우승을 막았다는 이유로 오영종 빠와 백만프로토스빠들 까지 적으로 돌렸다. 게다가 2006년 12월 케스파 랭킹 사건[70]+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3에선 찌질파이트로 인해 마서스의 마빡이들까지도 이윤열을 신나게 깠다. 이겨도 까고 져도 까면 어쩌라는 거야? 이로인해 스타크래프트 커뮤니티를 통틀어 주인공 자리에 올라본 적이 별로 없는 선수이기도 하다.

이윤열은 임요환 유니버스에 의한 누가 포스트 임요환인가에 대한 논쟁에 가장 크게 희생당한 선수이다.[71] 2006년 이후로 본좌라는 떡밥이 스타크래프트 커뮤니티에서 최고의 큰 이슈가 되던 시절처럼 한때는 포스트 임요환 떡밥이 커다란 이슈였다. 이윤열은 임요환이 건재하던 시기에 등장했고, 같은 종족인 테란이라는 점과 임요환의 자리를 위협할 정도의 커리어와 막강한 실력을 가진 탓에 임요환 유니버스를 무너트릴 수 있는 위협적인 선수로 인식 되었다.
그러므로 악질 임빠들의 증오를 가득 살 수밖에 없었다. 이로인해 어떻게든 까기 위해 이윤열 경기에는 감동과 재미가 없다. 오로지 승리를 하기 위한 기계같은 플레이만 한다라는 악의적인 말에 무척이나 시달렸다.

이 점을 의식한 탓인지 2003년 초반의 이윤열은 자신의 플레이를 하기 보단,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빌드를 올려 게임을 하기도 했다. 당연히 승률이 떨어졌다. 결국 이윤열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임요환이 침체기에 이르러 2004년 초반에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임요환마저 결승전에서 꺾어냄으로써 인정을 받긴 했지만, 최연성이 이미 급격히 성장하고 있었으며, 최연성은 임요환의 제자를 자처하여 임요환의 팬의 지지를 많이 받고 있었다.

그뒤 이윤열은 '본좌결정전'이나 다름없던 센게임배 MSL 결승전에서 최연성에게 패하는 바람에 오랫동안 본 실력과 업적에 비해 오랫동안 과소 평가를 받아왔다.

이윤열이 안티가 많은 또 다른 이유는 '벼멸구'로 대표되는 악질 팬덤 때문이기도 하다. 즉, 빠가 까를 만든다에 해당하는 케이스. 이윤열의 악질 팬덤 벼멸구들은 2006년 이윤열이 골든 마우스를 수상하자 갑자기 나타나 스갤등지에서 정도가 심하게 찌질댔고, 때문에 이윤열은 별 다른 잘못이 없는데도 신나게 탈곡 당해야 까여야만 했다. [72] 하지만 이윤열에게 안티가 많았던 것도 대략 2007년 ~ 2008년 정도까지의 이야기고, 이윤열이 올드 게이머임에도 성실히 활동을 이어가자 이윤열의 그 많디 많던 안티도 서서히 줄어갔다. 덧붙여 벼멸구들도 점차 박멸됐다.

여기서 계속 묻히고 있는 사실은 이 시기의 마레기빠들, 통칭 마빡이들도 무시무시한 악질도를 자랑했다는 것이다. 다른 악질 팬덤이 다 그렇듯이 서로 물고 뜯을 상대가 없으면 크게 성장하지 못한다. 다만 2006년 신한은행스타리그 시즌 3에서 마레기가 이윤열을 이겼기 때문에 악질이란 말이 나오지 않다가 딱 일주일 후 3.3 혁명이 일어나 둘의 싸움이 무의미해졌기에 악질도에 대한 이야기가 크게 부각되지 않은 것 뿐이다. 대조적인 것은 벼멸구라 불리는 이들은 점차 사라졌으나 마빡이들은 오랫동안 세력을 유지하다가 마프리카를 통해 구제불능임을 확인 완료했다는 것.

연봉 및 인센티브 논란

어느 선수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길었던 전성기에 비해 선수 생활 외적으로 원하지 않은 방향의 굴곡이 많았다. 그 중 하나가 연봉 논란인데 2004년 창단한 팬택 앤 큐리텔 큐리어스 팀의 스폰서 팬택은 이윤열에게 역대 최고의 연봉 계약을 약속했고, 언론에 3년 6억, 즉 연봉 2억이라는 액수가 공개되었다. 그런데 이후 이윤열의 연봉이 1억 2천밖에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팬들의 공분을 샀다. 이 때문에 한때는 송호창 감독이 이윤열의 연봉을 뜯어간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리고 2006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2 우승 당시 우승상금 4천만원 중에 20%를 코칭 스탭에게 인센티브 명목으로 부여한다고 해서 말이 많았다. 이 시절 다른 팀들은 오히려 우승하면 상금의 100%를 인센티브로 추가로 지급하던 것과 대조적. 기업 스폰서가 선수의 상금을 뜯어가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다.

KPGA 투어 리그 금배지 논란

이윤열이 이룬 커리어에 대해 가장 많은 흠집이 가해지는 것은 바로 'KPGA 투어' 리그에 대한 논란이다. 이윤열은 KPGA 투어 리그에서 2차, 3차, 4차 투어의 우승 기록이 MSL 우승 기록으로 편입되어 금배지를 받았으나, 이 전에 프링글스 MSL S2에서 MBC 게임이 이윤열과 임요환을 우승자로 인정하지 않은 바가 있다.[73]

KPGA 투어에 가해지는 비판은 'MBC게임이 인정한 적 없다가 임요환을 초대 우승자로 세우려고 인정한 거다' '온게임넷 스타리그에 비해 KPGA 투어 리그는 위상이 떨어지던 대회였다' 등이다. 이것이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KPGA 투어는 온게임넷 스타리그에 비해 우승 상금이나 인지도 면에서 떨어졌다.

또한 KPGA의 인정 과정에서 본좌론이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 또한 꾸준하다. 요약하자면 마씨의 팬덤이 마씨의 스타판에서의 마씨의 위치를 정의하기 위해 만들어낸 본좌론은 팬들의 숫자를 고려한 대단히 정치적인 것이었고 여기에 본좌론을 지지한 선수의 팬덤으로써 당시에 스타판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임요환을 선택하였다. 임요환과 마씨 사이의 연계성을 잇기 위해 MSL의 바로 이전 대회였던 KPGA 투어를 본좌론의 프레임 안에 끼워넣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본좌론 떡밥을 뒤늦게 장사에 이용해먹기 위해 MBC게임이 프링글스 MSL S2에서 한 번 부정했음에도 임요환과 이윤열을 우승자로 내세운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MBC 게임'이 'KPGA 투어 리그'를 '전혀' 인정한 적이 없다고 보기는 힘들다. 당장 1회 MSL인 Stout배에서 4차 KPGA 투어의 우승, 준우승자였던 이윤열과 조용호는 시드를 받았기에 KPGA 투어와 MSL간의 연속성은 증명된 것이며, 조 추첨식에서도 이윤열은 3회 우승자로 소개되었다. 그리고 결승전에서도 이윤열의 결승 진출을 4연패 도전으로 포장했다. 또한 당신은 골프왕 MSL에서도 이윤열을 6번째 결승 진출이라고 하는 등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바였다. KPGA 투어가 온게임넷 스타리그에 비해 명백히 인지도와 규모 면에서 떨어진 것은 사실이나, 당대의 KPGA 투어의 경우 최소한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양대리그로 인식받고 있던 것 또한 사실이다.[74] 당장 최연성만 해도 MSL의 3회 우승을 달성하고도 마씨와 같이 스타판의 역사를 개편하는 일이 없었던 것은 최연성 스스로가 '임요환의 제자'를 자처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MSL이 당시로써는 온게임넷 스타리그에 비해 인지도가 비교적 마이너한 리그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프링글스 MSL S2에서 단 한번 인정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전에 우승 기록이 전혀 인정받은 적이 없다는 식으로 운운하는 것은 곤란하다.

또한 2002~2003년에도 온게임넷 스타리그와 겜비씨 KPGA 투어를 '양대 리그'라고 부르며, 이것이 이윤열에 관련된 것만이 아닌 일반적인 용례임도 다수의 기사에서 확인된다. 2002년 11월 25일 게임자키 기사, 2003년 6월 21일 전자뉴스 기사, 2003년 7월 5일 전자신문 기사 등등. 따라서 적어도 2002년부터 '양대 리그'라는 개념이 생겨나 유통되었음은 부정할 필요가 없다. MSL 주최 측에서 KPGA투어를 MSL과 연결 짓지 않았더라도, 양대 리그의 한 축은 온게임넷 스타리그였고 한 축은 KPGA투어에서 MSL로 바뀌었다고 설명하면 MBC GAME을 욕할 거리는 될 지언정 이윤열의 커리어를 깎아내릴 이유는 되지 않는다는 말. 뿐만 아니라 프링글스 MSL 시즌2 이후 많은 비난을 받고 방침을 수정한 이래 MBC GAME의 폐국 시점(아듀! MBC게임)까지 MBC게임은 KPGA투어의 역사성을 인정했다.[75]

아울러 또 다른 KPGA 우승자인 임요환의 커리어에서 KPGA 우승 경력을 빼야 한다는 말이 과연 이윤열만큼 많이 나오는가를 생각해 보면, KPGA를 양대 리그에서 빼야 된다는 주장 또한 이윤열의 커리어를 깎아내리기 위한 정치적 공세임을 부정하기 힘들다. 겜TV-MBC GAME의 위상이 온게임넷보다 떨어지며 2006년 이후 본좌론에 의해 MBC GAME의 위상이 비정상적으로 올라갔다는 주장 또한, 그런 식이면 스타판에서 2006년 이후에도 실제로는 MBC GAME의 위상은 온게임넷보다 낮았지만 여론몰이가 만든 거품이었을 것이니 이후 MBC GAME에서 우승한 모든 프로게이머에게 '양대 리그 우승 경력'과 같은 말을 써서는 안 될 것이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없다. 애초에 저 논리대로라면 택뱅리쌍으로 묶어서도 안 될 것이, 김택용은 스타리그 한정으로는 보다도 커리어가 떨어진다. 우승은 커녕 결승 진출조차 못 했으니까.[76][77] 2010년 이후 MBC GAME의 연이은 삽질로 임이최마 대신 임이박동이라는 말을 쓰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지금은 누가 그런 말을 기억하던가?

어찌됐든 스갤과 같은 곳에서 까임용 떡밥으로는 적절했기 때문에, 간혹 우승자 경력 등에 MSL 배지 대신 골프공(...)을 그려넣은 짤방 등이 돌아다니는 경우도 있다. 동명의 리그인 골프리그 KPGA에 빗대어 프로 골퍼라고 까는 것인데 유머로만 받아들이자.

방송 출연

스타 골든벨

서지수, 홍진호, 서지훈, 박정석 등 다른 게이머들도 종종 출연해왔던 스타 골든벨이라 그 영향으로 출연한 듯. 방송에서 다소 긴장한 모습을 보이자, 정종철이 "이윤열은 마우스를 쥐면 편안해할 것"이라고 드립을 치는 모습 정도가 부각됐다.

그러나 프로게이머 폄하 발언이라고까지는 해석하기 어려운 장면이라서 정종철이 그닥 까이거나 하진 않았다. 애초에 정종철 자체가 게임에 관심이 많은 인물이고 연예인 게임단의 창설멤버이기도 했으며 여러모로 게임에 많은 관심을 가져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벼친소

2009년 2월 28일 MBC의 예능 프로그램 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스친소)에 이혁재의 후배(이혁재는 인하대 출신)로 이윤열이 출연하여 소녀시대와 소개팅을 했다. 이혁재가 말하길 원래 촬영일에 경기가 있는데 소녀시대가 소개팅 상대란 소리에 후배에게 맡기고 바로 뛰어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배는 처참하게 관광패.(…)

시작부터 커피샵에 들어가 마린 흉내를 내는 미션에 걸려 굴욕을 당하는 것으로 프로그램은 시작되었다. '나는 마린이다 두두두두'(…) 그러나 정작 소녀시대 및 진행 MC 및 주 시청자인 10대 여자애들은 스타에 별 취미가 없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반응을 보여 더 굴욕.

내 손좀 어떻게해봐..

그리고 장기자랑 시간에 보여준 로봇춤으로 추가 굴욕을 당한다. 양동근의 노래 '골목길'의 로봇춤 안무를 시도한 듯 한데... 현실은 시궁창 여기서 왠지 "윤열아 이게아닌가"라는 자막이 나와 MBC에 이윤열 별명이 벼인 걸 아는 사람이 있음을 알림과 동시에 굴욕을 증폭시켰다. 이 춤은 일명 벼봇춤으로 명명되어 콩댄스에 이은 새로운 전설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이은 코너 4인용 식탁에서는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해 테이블이 철수되는 굴욕을 당했다. 그냥 당해도 안 억울한데 왠지 수영이 살짝 간만보고 다른 방으로 가버려서 더 굴욕.(…) 마지막 선택의 순간에서는 갑자기 예능인 붐이(이 프로그램에선 일명 코봉도사로 통한다.) 이윤열은 16강에서 그칠 것이라 농담을 던졌으나 이혁재가 이윤열이 16만명 넘는 팬클럽도 지닐 정도라고 하자 바로 8강 진출 축하드린다고 급변했다.(...) 재미를 위해 웃자고 한 얘기였지만 이 농담은 정말 실현되어서, 붐의 저주로 회자되게 된다.[78] 탈락 예언 말고도 붐은 "연봉이 4억인데 PC방비만 3억" 그럼 가수는 노래방비만 3억이냐?, "30년 전에 유행하던 춤을 추고 있어요!" 같은 스타팬, 특히 벼빠라면 기분이 상할만한 거친 농담을 거침없이 내뱉었고, 그럴 때마다 벼는 여물어갔다.

이렇게 이윤열은 아무리 생각해도 헤어날 가능성이 없는 굴욕 방송을 진행했으나...마지막에 구애했던 유리, 수영 커플에게 선택받아 1일 데이트를 하게 되는 대반전을 연출했다.(…) 이때 유리의 대사 당신의 모니터 & 키보드가 되고 싶어요. 윤열오빠~♡ 저도 내일부터 스타크래프트 시작할래요 ^ㅁ^(…) 이로서 이윤열에겐 천운이 따른다는 것이 다시금 증명되었다.

이 방송 방영 이후 스갤은 폭발했고 수많은 스갤러들이 소시갤을 털러 갔다. 그리고 은 수많은 스타팬들의 증오를 사게 되었다. 글자가 같다는 이유로 한순간 네이버 이 털리고 붐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이민호 갤러리가 털리는 괴사태가 벌어지기도. 붐의 망언 덕분에 스갤러들은 이윤열의 부친상 이후 4년 만에 최초로 벼빠와 벼까가 하나될 수 있었다. 또한 스갤러들은 이 방송을 벼친소로 칭하며 벼친소의 방영일을 추수감사절로 지정해 추모하였다. 다만 붐 측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항의를 게시판 도배와 같은 옳지 않은 방식으로 표현 것은 잘못이다. 이후 스친소 측은 이에 대해 사과문을 게재했으며, 이윤열 측에서도 괜찮다는 공식 의사를 밝혔다.

문제의 스친소 방영 이튿날, 이윤열은 프로리그에서 임진묵에게 대역전승을 거두는데, 이를 중계하던 김철민 캐스터 이하 중계진은 "이윤열 선수가 붐을 일으키고 있는 거에요 붐을!!" "임진묵 선수가 경솔했어요!!" "마치 로보트같은 강인한 모습!!" "스치면 소멸이에요, 스친소에요!!" "gee gee gee gee 받아내나요?!" 등의 어록을 쏟아내며 그야말로 드립의 향연을 보여 주었다. #

그리고 벼봇춤은 플래쉬로 만들어져서 보고 있는 사람의 손발을 오그라트리는 마의 영상으로 화했다. 1분간 보고 있으면 주화입마가 오는 영상. 그리고 마침내 새로운 스동갤의 관문으로 등극하였다.

이후 아프리카에서 방송하면서 저 춤에 대한 썰을 풀었는데, 스친소 출연 제의를 받고 장기자랑으로 뭘 할지 생각하다가 SKT 이효민 코치의 추천을 받고 DJ.DOC 백댄서였던 사람에게 춤을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79] 당시에 팝핀댄스가 유행이라 그걸 배우고 싶었다고 한 것이 양동근의 골목길 춤. 그러면서 춤을 가르쳐 준 사람이 주의 사항을 알려줬는데, 시선처리가 불안정하니 모자를 쓸 것과 정장을 입으라는 것. 그러나 저걸 다시 볼 수 있다면 알겠지만 모자는 안 썼고, 옷도 장례식장 정장 느낌이어서 긴장했던 것이 이런 사태를 불렀다고 한다. 본인도 저거 보면 토할 거 같다고 한다

한편 2015년 최군의 인터넷 방송에서 AOA 지민의 요청으로 또 한번 추기도 했다. # 처음엔 소녀시대 앞에서 추더니.. 이건 뭐 걸그룹들 앞에서 순회공연하는 것도 아니고

출발 드림팀

2010년 10월 10일에는 구미 E스포츠 홍보 대사 자격으로 KBS 출발 드림팀에 출연했다.

과거 프로게이머를 개무시했던 초창기 드림팀과는 달리 앞의 인터뷰에서 구미를 대표하는 스타 프로게이머라면서 나름 포장해줬다. 장애물 레이스에서는, 너무나 조심스럽게 플레이를 한 까닭에 2분 가까이 장애물에서 고전하다가 힘이 빠져서 떨어졌다. 인터뷰등을 포함해 드림팀 방송시간동안 단 4분가량 나왔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 긍정적으로 비춰지긴 했지만, 하필 이 편에서는 달인이 드림팀에서 활약한 첫 회였기 때문에 팬들과 시청자들에게 달인과 비교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다른 게이머들도 두명정도 출전했지만 두 사람 다 E스포츠계에서도 인지도가 너무 낮은 선수들이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안습.

이후 2016년 3월 13일 방영된 10 대 100 히어로즈 vs 미니언즈 편에 다른 게임 현역 프로게이머와 함께 1번 더 출연했다. 4초컷을 당하였다... 그나마 홍진호는 발언에서 2초 컷을 면했다.#

임빠

최고의 전성기 시절 임빠들에게 폭풍처럼 까여서 달빠 중에도 임요환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윤열은 임까인 달빠들조차 인정하는 임빠다(…). 최연성의 임빠 포스가 너무 강해 묻혔지만 인터뷰에서도 항상 '요환이 형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가겠다'라고 말하는 등, 항상 임요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돌아온 스타 뒷담화에서도 존경하는 인물로 임요환을 가장 먼저 생각할정도로,임요환을 상당히 존경한다.

더 지니어스:게임의 법칙

6월 28일 방송분, 10회차 녹화분에서 홍진호의 게스트로 참여한다. 해당 제목의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선수였었기에,[80] 꽤나 기대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리저리 휘둘리고 칩을 빨리 소진해버리는 바람에 홍진호에게 큰 도움 주는 정도가 아니라 홍진호를 탈락 위기로 몰아넣었다.(...) 홍진호 우승의 최대 걸림돌은 이윤열이었을 지도... 홍진호가 방송 내내 지략가로 활약하면서 프로게이머의 인식을 드높였던 것과 달리, 이윤열은 이리저리 해메면서 그런 인식을 박살낸 셈이다(...)

그리고 방송 중간중간 이윤열에 관한 자막이 여럿 나왔다.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나 '앞마당에서 대기중'등등 제작진중에 스갤러가 있는듯 깨알같은 재미를 주긴 했다..

그나마 데스 매치였던 전략 윷놀이에서 홍진호를 도와 생존시켰다. 이때 그나마 데스 매치에서조차 졌으면 이윤열은 콩빠들과 스덕들에게 역적 취급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윤열이 '천재 테란'이라고는 하지만 쑥맥 기질도 있고, 어버버한 일면도 있는데[81] 이는 분명 정치력과 인간관계 능력이 중요한 '더 지니어스'에 어울리는 성격은 아니다. 그런 이윤열을 무리하게 초청한 홍진호의 잘못이라는 시각도 있다. [82]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

7월 9일 방송분에서 홍진호, 강민과 함께 게스트로 참여하였고, 8개월간의 회사원 생활 등의 은퇴 근황을 이야기했다.

별명 혹은 관련 문구

  • 겨울의 사나이: 겨울 시즌에 유독 강해진다고 하여 붙여진 별명. 실제로 이윤열은 커리어의 대부분을 겨울 시즌에 쌓았다. 대항마(?)로는 박성준의 여름의 사나이가 있다. 오영종전어도 있다
  • 수달: 얼굴이 보노보노와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것. 하지만 사실 보노보노는 해달이다. 포모스에서 진행한 30문 30답 박태민의 인터뷰에 따르면 본인은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별명은 아니라는 듯했으나, 박태민이 이윤열과 만났던 2005년경 이야기고 김정민의 스팀팩에 나왔을 때 따르면 나중에 수달을 찾아보고나서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 싶습셉습: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 3의 결승전 사전 인터뷰에서 '전설로 남고 싶습니다'라고 해야되는데 발음이 새서 '전설로 남고 싶습셉습니다.'라고 한 말실수에서 나왔다. 싶습셉슾, 십습셉습이라고도 한다. 반드시 생리하겠습니다.
  • 토네이도 테란: 토네이도처럼 상대를 휘몰아쳐서 승리를 얻어내는 모습으로 붙여진 별명.
  • 천재테란 : 데뷔 당시, 어린 나이에 출중한 실력과 훌륭한 게임 센스를 보여주어 붙여진 별명. 프로게이머 사이에도 이윤열의 재능과 관련된 일화가 전해질 정도다.
  • 머신: 전성기 시절 일반인들과는 다른 무지막지한 생산력과 빠른 멀티 태스킹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붙여졌다. 사실 초기에는 비하적인 의미였다. 안티들 사이에서 최강자들이 으레 듣고는 하는 '기계적인 플레이'라고 까는 바람에 붙여졌던 별명. 이것이 삼신전 시절에 '신'으로 끼워 맞추다보니 긍정적인 의미가 돼버린 것이다.
  • : 마재윤과의 대결 직전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입니다."라는 발언을 했는데 졌다. 그 뒤로 다른 모든 별명을 제치고 이윤열의 아이덴티디가 되었다.(…) 추후 티빙 스타리그 이벤트 레전드 매치 때 엄재경이 '벼는 언제, 어떻게 생긴 별명인가?'를 계속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 살아있는 전설: 별명이라기보다는 칭호에 가깝다. 거의 모든 올드게이머들이 전멸하는 상황에서도 데뷔 10년차가 된 이윤열만은 MSL 시드를 따는 등 개인 리그에서 올드게이머들 중 박성준과 더불어 분전하는 모습에 MSL 중계진 및 언론에서 부여한 칭호.
  • 불사조: 살아있는 전설과 마찬가지. 단, 이것은 엄재경 해설 위원 등의 온게임넷 중계진 쪽에서 시작되었다.
  • 벼닉스: 벼 + 불사조(피닉스) 의 합성어.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벼라는 별명과 피닉스라는 찬양을 합쳐 부른다. 스1에서의 롱런은 스2에서도 여전한데, 2011년부터 치러진 정규 GSL투어에서 2012년 HOT6 GSL Season 2까지 총 9번의 대회에서 모두 최상위리그인 코드S에 출전했다. 이윤열 외에 9회 연속 코드S에 출전하는 선수는 임재덕김영진, 정종현 뿐이다. 이후 임재덕이 10회 연속 코드 S 기록을 세워 GSL에서는 코드 S 10연속 진출한 선수를 위해 '임재덕상'을 만들었다. 이윤열도 커뮤니티에서 부르는 별명 중에서는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다.
  • 앞마당 먹은 이윤열: 별명이라기 보단 관련어.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거의 격언처럼 쓰이며[83] 앞마당만 먹었는데도 무시무시한 생산력을 보여주며 로템에서 무적의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나온 말. 전성기에는 '물 만난 고기', '이길 수 밖에 없는 상황' 정도의 의미로 쓰였다. 네이버 완성검색어에도 나온다. 또 야구 기사에도 나왔다. ["올 포스트시즌에서 '선취점 먹은 샌프란시스코'는 전성기 시절의 '앞마당 먹은 이윤열'이나 다름없다"].
  • 테란의 황태자: 예전에는 이윤열 하면 절대적으로 쓰였던 말이지만 지금은 팬들이 싫어해서, 특히 임요환하고 비교하는 것 같다면서 묻혔다. 지금은 간간히 쓰이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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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NaDa 경력 상금.
  • [2] 황제는 임요환 왕자는 김정민.
  • [3] 4강에서 기욤 패트리에게 0:2패배
  • [4] 4강에서 임요환에게 1:3패배
  • [5] 4강에서 임요환에게 0:2패배
  • [6] 1승어드벤티지로 0:1로 시작.
  • [7] 리그 챔피언 쉽에서 박성준에게 0:2패배
  • [8] 승자 결승에서 박태민에게 3:2 승리
  • [9] 아마추어 참가자인 문기호에게 패배.
  • [10] 나머지 한 명은 이영호.
  • [11] 장민철과 마찬가지로 슈로엣 코만도의 개인 지원을 받았었다.
  • [12] 1위는 이제동.
  • [13] 사실 방송사에서 은퇴식을 치뤄준다면 MBC 게임에서 치뤄주는게 맞았겠지만 엠겜마저 없어졌으니...
  • [14] 국비 교육 과정 중 e-sports 마케팅 전문가라는 과정에 이윤열이 강사진 중 한명으로 소개되는 배너와 해당 교육 과정 페이지에도 이윤열이 소개되었는데, 이후 이윤열이 참여하지 않는 지 수정되었다.
  • [15] 데뷔 때는 학생이었고 지방에 살았기 때문에 방학이면 서울로 올라와 대회에 참가하곤 했다. 그래서 방학테란이라고 불리기도.
  • [16] 안티들 사이에서는 보쳉이라고 불렸다. 당시 한국 생활을 하는 중국 출신 방송인 '보쳉'과 닮았다는 이유로 붙었다. 더욱 안타깝게도 2002년 당시의 풋풋한 고등학생의 모습은 사라지고 이후 심각한 역변은 최강자(?) 송병구조차 능가하게 되면서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키는 임요환보다 조금 큰 편이라 불행 중 다행.
  • [17] 이와 유사한 사례로 이제동을 꼽는 경우도 있다. 2008년~2009년 이영호의 각성 전까지 가장 많은 커리어를 쌓는 활약을 보였는데도 마빡이들과 이제동에게 진 선수들의 팬덤에게 갖은 폄하를 받았다.
  • [18] 블리즈컨 2008에서는 EAPM이 260이 나오기도 했다.
  • [19] 삼신전 이후 더욱 강력해진 저그전을 선보인 최연성이 심리전과 정제된 빌드를 앞세워 이윤열같은 손 빠르기가 없음에도 박태민을 무난하게 압살해버린 것과 대조되는 부분.
  • [20] 이로 인해 이윤열은 온게임넷 측의 배려로 차기 시즌 챌린지 리그 시드를 받게 된다.
  • [21] 즉 양대리그 동시 결승 진출이다. 그리고 이 당시 기준 임요환은 절대 토막이 아니었다.
  • [22] 이 패배가 바로 임요환의 유일한 스1 저그전 공식전 5전제 패배이다. 비공식전은 슈퍼파이트에서 마xx에서 졌던 것 등이 있지만.
  • [23] 공교롭게도 종족은 서로 바뀌었지만, 중후반 운영으로 두 세트를 내주고 초반 빌드 위주의 승부수로 나머지 세 세트를 따서 이긴 것은 빅파일 MSL 4강의 이제동과 이재호의 대결이 연상되는 부분이다. 재주를 부리는 사람 따로, 실속을 얻는 사람 따로
  • [24] 02, 03, 04년 연속 트리플 60 달성. 덧붙여 MSL로 한정할 경우, KPGA 2차부터 당골왕까지 3위 이내에 못 들었던 시즌은 SPRIS배 한 번 뿐이었다는 경악스러움을 보여준다. 4강 이상 진출 7회에, 6회 연속 4강 이상 진출, 4회 연속 결승 진출, 3회 연속 우승 등 MSL 관련 기록은 이 시기에서 삼신전 사이에 집중되어 있다.[* MSL에서의 4강 이상 진출은 당골왕이 끝이다. 06~07년 온게임넷에서 2연속 결승 및 마스터즈 우승으로 활약할 때 MSL에서는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개인리그에서의 진짜 마지막 모습은 MSL에서 08년 초 곰4 8강진출, 08~09년 클럽데이, 로스트사가 2연속 8강진출로 보여주었다. ] 스타리그 광탈은 자주 했지만 이쪽은 광탈을 안 해본 게이머가 없으니 넘어가자
  • [25] 이때 가장 회원수가 많던 안티 카페도 폐쇄됐다고 한다.
  • [26] 이윤열은 '머신', 박태민은 '운영의 신', 박성준은 '전투의 신'.
  • [27] 이 시절 개인리그를 갈라먹은 세 게이머는 모두 각자 우승한 리그에서 상대 두 명을 모두 꺾으며 우승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윤열이 우승한 아이옵스 스타리그에서는 4강에서 박태민에게 리버스 스윕 후 결승전에서 박성준에게 셧아웃승, 박태민이 우승한 당골왕 MSL에서는 16강에서 박성준에게 2:1 승리를 거둔 후 결승전에서 4:2 승리, 2차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박성준이 리그 챔피언십에서 이윤열에게 2:0, 통합 결승전에서 박태민에게 3:2로 승리했다.
  • [28] 2005년 4대 테란은 임요환, 최연성, 이병민, 서지훈.
  • [29] MSL 기준으로는 이미 KPGA 3차리그 결승전에서 이윤열이 박정석에게 3:0으로 셧아웃승을 거둔 적이 있다.
  • [30] 사실 이는 골든마우스 수상의 상징성 때문일 수도 있다. 진짜 명경기는 1세트의 타우 크로스 혈전. 서로 100%의 경기력으로 부딪힌 끝에 오영종이 이겼다. 5세트의 경우 막판 오영종의 발컨 한방이 결정적이었다. 오영종은 저 5세트 경기를 생각하면 자다가도 이불을 발로 찬다고.(...)
  • [31] 그런데 이영호는 팬택에 있던 시절, "매일 서든어택만 하면서 놀다가 한 번 본 빌드를 그대로 복사해서 응용까지 해내며 대회에서 우승했다"며 이윤열이 천재였다고 회고한다. 이영호가 2006년에는 팬택에 있었으니, 우승했다는 대회는 신한2일 확률이 높다.
  • [32] 이중 박성준은 2008년에 정말로 골든마우스 수상을 하게 된다.
  • [33] 공교롭게도 자신의 최대 라이벌인 강민도 그동안의 개인리그에서의 부진을 이겨내고 프링글스 MSL 시즌1 준우승을 시작으로 MSL에서 3연속으로 4강에 진출하는 등 이윤열과 함께 부활하였다.
  • [34] 이 결승의 경우 커맨드 관광과 엄전김 중계 트리오의 명언에 더해 패배로 고개를 숙이는 모습, 일명 벼 세레모니로 인해 희대의 개그 결승전이 되었다.
  • [35] 전용준 : 이윤열 선수도 한 말씀 끝으로!! 이윤열 : 전 전설로 남고 싶셉습니다.식스센스입니다 꼭,(귀척) 뿌우 (>ㅅ<) ('ㅅ ' ) ( ' ㅅ') ('ㅅ ' ) ('ㅅ') 반드시 생리하겠습니다.
  • [36] 정확히는 알카노이드만 테란맵이고 롱기누스는 저그 압살맵, 리버스 템플은 극상성맵. 테란이 저그에게 상성상 우위인 점과 당시 프로토스는 4강에도 겨우 올라오는 처지였던 탓에 테란맵이라는 이미지가 붙은 것이다. 물론 결승전 1주일 후부터는 그런 말도 쏙 들어가게 되지만.
  • [37] 이것은 마빡이의 불필요한 쉴드다. 3.3의 임팩트가 크긴 했지만, 실제로 심각하게 맛이 가기 시작한 것은 그 후에 MSL에서 벌어진 흑열사의 참교육이성은과의 다전제 이후라고 보는 것이 정설이기 때문이다. 3.3 이후에도 이성은과의 경기 이전에는 팔진도와 같은 저그가 불리한 맵에서 뛰어난 하이브 운영을 선보이며 테란을 격파한 경기를 보면 수긍하기 어렵다. 허나 그런 강한 모습도 마조작 스스로 말아먹고 말았다.
  • [38] 하지만 이윤열은 배틀을 준비하면서 탱크로 자리잡고 기다리는 상황이었기에 박성균이 때려박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이었다. 이승원은 중계하면서 눈물이 날 뻔했던 경기로 꼽았다.
  • [39] 이 경기는 후일 접스타 의혹을 받게 된다.
  • [40] 이윤열과 비슷하게 롱런한 케이스로 2005년에 데뷔해서 2010년까지 김택용과 프로토스 최강자 자리에서 군림했고 2012년에 스타 1 리그가 끝날 때까지 현역으로 활동했던 송병구가 있다.
  • [41] 사실 '나다몰' 홍보와 팬서비스 차원에서 2011년경에 아프리카 tv로 스타2 방송을 한 적이 있다.
  • [42] 이는 전태규도 심하긴 하다. 사실 철구나 김봉준이 아무리 현역으로 활동하던 시절 전도유망했다지만 김택용과 이윤열에 비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니까 저 철구나 김봉준이 과격한 리액션을 하면 불쌍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김택용, 이윤열은 현역 시절 우승 상금만으로도 꽤나 벌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그런 리액션을 하면 충격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 [43] 그나마도 아프리카 방송시절엔 다른 전 프로들과는 달리 조용하게 방송했으며그 반대급부로 시청자가 적긴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방송을 그만두고 다른 직장에 취업해 새 인생을 시작했다.
  • [44] 물론 최상위권 스타1 BJ들은 스폰빵이나 다른 컨텐츠를 하느라 래더를 열심히 안 한다. 그런 BJ들은 B를 찍고 나서 래더는 거의 안하는 편이긴 하지만 래더S를 찍는 미션이나 래더 랭킹 1위 달성하기 미션이 걸리면 그걸 쉽게 해내곤 한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B만 겨우 찍은 이윤열은 갈 길이 멀었다고 할 수 있다. 전 준 프로인 BJ 샤이니나 오프 대회에서 아쉬운 모습을 자주 보인 홍구도 1위 찍는 걸 아주 가볍게 할 정도이다.
  • [45] http://m.kmib.co.kr/view.asp?arcid=0012450637&code=61121111&cp=nv
  • [46] 실제 상당수의 코인 투자 실패자가 정부 때문에 망했다거나, 혹은 정부가 투자를 조장하고 우리를 속였다고 자기합리화를 하는게 현실이다
  • [47] 가스는 본진에 없고 센터에 있다
  • [48] 알카노이드에서 김원기 당시 이스트로 선수에게 깨졌던 경기인데, 한 가지 어이없는 것은 이 패배가 이윤열이 알카노이드 시리즈에서 당한 유일한 공식전 패배라는 것이다. 이 맵에서의 이윤열의 전적은 와이고수 전적기준 13승 1패. 비공식전 합쳐도 슈퍼파이트에서 마모씨에게 당한 1패 외에는 없어서 16승 2패다. 이 정도면 나다노이드 뭐 이런 식으로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인데, 그 원기옥 관광 한 경기의 임팩트가... 이 때문에 승수는 이윤열보다 적음에도 알카노이드에서 가장 강한 게이머는 김준영이라는 평가도 있다.(9승 0패) 따지고 보면 김준영은 알카노이드 외에도 섬맵의 특성을 가진 모든 맵에서의 승률이 최고 수준이긴 하다. 하지만 어찌됐건 이윤열은 이 맵에서 가장 많은 승리를 챙겼다.
  • [49] 비공식전은 몇 번 있다. 이재훈, 주진철, 홍진호 등. 강민에게 스타우트배 결승전에서 당한 것은 승자 어드밴티지 1승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0:2 패배.
  • [50] 여담이지만 '성준모의 GG후 토크'에서 밝히길 IOPS배 4강에서 박태민은 무조건 3:0으로 끝내는 시나리오를 준비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3경기에서 이윤열에게 패해버렸고 결국 역전패를 당했다고.(...)
  • [51] 사실 송호창의 이윤열 혹사 논란은 경기 외적으로, 그러니까 각종 행사에 이윤열을 끌고 다녀서 연습할 시간까지 부족하게 만들었기 때문.
  • [52] 다만 굳이 따지자면 좋아했든 싫어했든 올드팬들이 가졌던 임요환-이윤열 사이에 대한 감정에 비해 이윤열-이영호는 길지 않은 기간 동안 같은 팀에 있었다는 것 이외에 엮을 것이 별로 없기는 하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임요환-이윤열은 2005년 스니커즈배 올스타리그에서 경기 중에 서로 채팅 치면서 놀았다(...)(40분 10초부터). 이윤열이 꾸준히 임요환에게 감사하다는 태도를 보여온 것도 올드팬들에게는 잘 알려진 사실.
  • [53] 정수영이 선수들을 빠따로 쳤다느니, 송호창이 이윤열을 대놓고 굴리고 푸대접했다느니 하는 것은 2007년 이후의 스타판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말이다. 외려 이런 면에서 비교되어야 할 선수는 FA 문제로 열악한 대우가 드러난 이제동이겠지만 이제동조차 화승 OZ에서 전기고문을 당했다느니, 한상용에게 맞았다느니 하는 것은 내부인이 부정한 유머거리에 불과하다.
  • [54] 물론 이윤열과 비교하면 수는 적겠지만 이영호의 시대에도 곰TV 클래식, 실내 아시아 경기대회 등 비공식대회 자체는 꾸준히 열렸고 이영호도 타이틀을 꾸준히 쌓아왔다. 애초에 그런 식이면 양대리그 밖의 WCG도 커리어에서 빼야 한다. 공식리그 전적 이야기할 때는 WCG 이야기하다가 비공식 리그 이야기하자면 이윤열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말을 한다면 전형적인 내로남불에 불과하다.
  • [55] 이런 비생산적인 논쟁의 결말은 '포스'라는 해괴한 단어로 인정 여부를 결정 지으려했던 본좌론의 말로에서 짐작할 수 있다.
  • [56] 3년간 7억 5천. 하지만 실제로 받은 연봉은 1억 8천 정도라고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 출연 당시 본인이 직접 이야기 했다.
  • [57] KeSPA가 스타크래프트2를 배척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스타크래프트2 선수로 활동하려면 프로게이머 자격을 내놔야 한다. 더욱이 공군 에이스는 지금 스타크래프트2 선수들을 받을 계획조차 없다.
  • [58] 2010년 10월 5일 검색시 그 전날 은퇴한 하이트의 김학수와 9월 30일 은퇴한 정종현. 이재훈 등의 다섯 명의 은퇴 선수들의 DB는 그대로 프로게이머 란에 남아있는 것을 보면 적어도 KeSPA의 선수 기록관리는 평소에 매우 허술한 편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윤열만은 마치 승부조작자들의 DB를 즉시 삭제한 것처럼 공지가 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선수 검색기록에서 DB를 전격적으로 삭제시켰다. 진기록, 명기록에서의 소속은 위메이드로 그대로 남겨두었을 만큼,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그리고 10월 6일에야 다른 은퇴선수들의 DB도 삭제시켰다.
  • [59] 대표적인 경우는 임요환이나 신상호 등.
  • [60] 모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신분을 밝힌 KeSPA 직원에게 협회가 주최한 워크래프트3 리그의 기록은 왜 없냐고 물어봤더니 '공인리그가 아니라서 공식기록에 넣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그 후 곧바로 자신들이 공인 리그로 인정하는 스페셜 포스 리그의 기록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역관광당했다.
  • [61] 그리고 이번 일로 은퇴 프로게이머의 DB를 비공개 처리하는 협회의 처리방식이 도마 위에 올랐다. 팬들의 의견은 은퇴선수의 기록도 분명한 역사인데 왜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느냐는 것인데, 사실 그 말이 맞다. 다른 프로스포츠만 보더라도 은퇴선수의 기록 자체를 비공개 처리하고 진기록 명기록 같은 자투리 쪽에나 남겨두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 [62] 통산 125승 88패
  • [63] 유일하다. 2위는 99승을 기록한 이제동.
  • [64] 스타리그 본선 14회, MSL 본선 18회 진출
  • [65] MSL의 '팀별 프로리그 최상위자 1인 예선 면제/2패 탈락 예선 강등'이라는 희대의 병크로 인해 예선으로 바로 떨어졌다. 문제는 이 일로 이성은, 이윤열 등을 비롯한 MSL에서 볼거리를 만들어내던 선수들이 대거 탈락했다는 것. 결국 팀별 예선 면제의 부작용이 불거지며 이 제도는 다시 원래대로 환원되었다. 하지만 이윤열은 이후로 예선을 뚫지 못했다.
  • [66] 원래는 악스 코리아에서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장소가 변경되었다.
  • [67] 이 점 때문에 상근 예비역이 나온 것일 수도 있고 즉 이 말은 혼인 신고를 이미 한 상태에서 식만 못 치르다가 뒤늦게 치렀다는 것일지도...
  • [68] 이윤열은 데뷔 초에는 GG가 빠른 선수였다.
  • [69] 대표적으로 임요환의 각종사건이라거나 최연성의 이중계약 사건, 그리고 마서스....
  • [70] 전적상으로 볼때 조작범이 1위를 차지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뜬금없이 이윤열이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이윤열은 이 해 2006 e스포츠 진흥대상을 수상한다. 설마 이걸 예상한건가?, 협회에게 그런 안목이 있을리 없지.
  • [71] 그리고 그러면서도 끝끝내 살아남은 선수이기도 하다.
  • [72] 2007 스갤 어워드의 찌질이 항목에 등극한 '머신'도 벼멸구다.
  • [73] MBC게임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내용은 아니다. 다만 리그 출전 선수를 소개하는 MSL 광고 포스터가 있었는데 여기에 KPGA 투어 우승자인 이윤열과 임요환에게는 MSL 우승 엠블럼이 존재하지 않았다.
  • [74] 물론 '온게임넷 스타리그 > KPGA'라는 인식은 여전했다. 이런 의식은 프링글스 MSL에 이르러서야 본좌론 떡밥으로 양대리그란 말이 튀어나오며 '온게임넷 스타리그 = MSL'이라는 인식이 확고히되었다.
  • [75] 당장 마지막 MSL인 ABC마트 MSL 엔딩에서도 KPGA 투어 당시 우승자들이 나와 KPGA 투어를 MSL의 전신으로 인정하였다.
  • [76] 골든마우스 보유, 도 우승은 1회 뿐이지만 결승 진출을 4번이나 했는데 반해 택은 4강 3회가 스타리그 커리어의 끝이다. 아니, 심지어 뱅도 허덴에게 밀리는 게 스타리그 커리어다. 허영무 2회 우승, 정명훈 1회 우승 4회 준우승.
  • [77] <del>토스 안 만나고 우승했다는 이유로 희대의 천운 우승이라고 까이는</del> 한동욱의 온게임넷 스타리그 커리어보다도 밀리는 게 김택용의 온게임넷 스타리그 커리어이지만 김택용의 브루드 워 오프라인 개인 리그 우승, 준우승 상금의 총합은 전체 4위이며, 5위인 이윤열보다 높다.
  • [78] 이 방송 다음주 토요일은 로스트사가 MSL 8강전 이윤열VS허영무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윤열은 허영무에게 3:2로 패배했고 붐의 저주는 현실이 되었다.
  • [79] 본인은 공짜인 줄 알았는데 수강료 250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 [80] 소속팀에 해당ID를 사용하는 프로토스 유저도 있지만 넘어가자.
  • [81] 스덕들사이에서도 이윤열의 어버버한 모습은 분명 놀림감이다.
  • [82] 홍진호는 똑똑하지만 사람 대하는걸 잘 못하는 이윤열은 차선이었고, 기가 세고 잔머리가 좋은 대마왕 강도경을 더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제작진이 인지도가 더 높은 이윤열의 출연을 원했다고. 참고로 제작진이 가장 원한 게스트는 임요환. 그리고 임요환은 다음 시즌플레이어로 출연하게 된다.
  • [83] 엄옹이 방송에서 "이젠 거의 속담처럼 쓰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정말 속담처럼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