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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공화국 출범 후인 1960년 지방선거에서 사회대중당 후보로 경상북도 도의원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김영삼, 박준규 등 신민당 국회의원들과 청조회에 속하여 신풍 운동을 주도하였다.
5.16 군사정변 이후 박정희 정권이 출범하자 신민당에 속하여 3선 개헌 운동 등 박정희 정권의 독재에 비판하는 민주화운동을 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여 친야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성주군-칠곡군-구미시-선산군-군위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신현확 후보와 같은 친야 무소속 김현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후보로 대구직할시 중구-서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한국국민당 이만섭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당시 이만섭 후보는 자신이 싫으면 고생하는 유성환 후보를 찍어 달라고 했다가 정작 자신은 민주정의당 한병채 후보를 간신히 누르고 2등 당선되었다고 회고하였다. 1986년 대한민국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노신영 국무총리에게 대한민국의 국시는 반공보다 통일이어야 한다고 발언하였다가 유성환 국시론 파동으로 인해 면책특권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정권에 의해 잠시 구속되었다. 1987년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통일민주당에 입당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대구직할시 서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최운지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하자 따라갔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전국구 국회의원 예비후보가 되었다. 대법원에 의해 유성환 국시론 파동 사건에 대해 면책특권을 인정하는 취지로 공소기각이 내려졌다. 1993년 민주자유당 전국구 국회의원 김영수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에 임명되어 전국구 국회의원직을 사임하면서 국회의원직을 승계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민주연합 박준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7년 신한국당을 탈당하여 국민신당에 입당하였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국민신당 후보로 대구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문희갑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같은 해 국민신당이 새정치국민회의에 흡수되자 새정치국민회의에 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