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친왕(完親王, 1868년 5월 31일 ~ 1880년 1월 12일)은 조선의 왕족이자 대한제국의 황자이며 추존 친왕이다. 고종의 서장자로, 영보당 귀인 이씨 소생이다. 완화군(完和君)에 봉해졌다. 한때 흥선대원군은 그를 총애하였으나 일찍 요절하였다.
영종정경부사에 임명됐고, 본명은 이선(李墡)이다.<ref name=dd>고종은 왕도수업을 어떻게 받았나? - 한국역사연구회</ref> 시호는 효헌(孝憲). 따라서 완효헌왕(完孝憲王)으로도 불린다. 그러나 통상 완화군으로 부른다.
생애 ¶
귀인 이씨와 고종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서자로, 완화군(完和君)으로 봉해졌다. 어머니 영보당 이씨는 부왕 고종이 즉위하여 입궁한 직후, 궁녀 중 처음으로 연애를 하였던 여성이다. 그러나 명성황후가 가례를 올린 뒤 입궐하면서 경쟁관계가 형성된다.
고종은 아직 명성황후와 혼인하기 이전에 궁녀 출신이었던 이씨를 총애하고 1868년에는 영보당 이씨에게서 아들이 태어나자 이를 사이에 두고 두 여인 간에 보이지 않는 치열한 다툼이 전개되었다고 한다.<ref name=dd /> 흥선대원군은 첫 손자인 완화군을 총애하였다. 또한 명성황후가 낳은 아들 둘이 연이어 요절한데다, 두 번째 아기는 항문이 없는 기형아로 흥선대원군이 준 인삼을 달여 먹였다가 아이가 신열을 일으키다 갑자기 사망하면서, 둘의 관계는 묘하게 흐르게 된다.
영종정경부사에 임명되고, 조부 흥선대원군이 완화군을 매우 총애하여 세자의 자리에 염두에 두고 봉하려 했으나, 명성황후 때문에 실패하였다<ref name=dd />. 1880년에 병을 얻어 사망했는데, 이때 완친왕을 낳은 귀인 이씨는 아들을 잃은 슬픔에 실어증이 걸려 병을 앓기 시작했다. 완친왕의 갑작스런 죽음은 명성황후의 모략이 개입되어있다는 설이 있다.{{출처|날짜=2007-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