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정보
염상섭(廉想涉, 1897년 8월 30일 ~ 1963년 3월 14일)은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며 예비역 대한민국 해군 소령이다.
| 이름 = 염상섭
| 현지어표기 = 廉想涉
| 출생지 = 조선 한성부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출생일 = 1897년 8월 30일
| 복무 = 대한민국 해군
| 부모 = 염규환(부), 경주 김씨 부인(모)
| 본관 = 파주(坡州)
| 복무 기간 = 1950년 12월 ~ 1953년 12월
| 최종 계급 = 예비역 대한민국 해군 소령
| 정당 = 무소속
| 배우자 = 김영옥(金英玉)
| 자녀 = 슬하 3녀
| 지휘 = 정훈장교
| 주요 참전 전투/전쟁 = 한국 전쟁
| 종교 = 불교 → 천주교(세례명: 바오로)
}}| 현지어표기 = 廉想涉
호(號)]]는 제월(霽月)· 횡보(橫步) |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출생일 = 1897년 8월 30일
1963|3|14|1897|8|30}} |
| 부모 = 염규환(부), 경주 김씨 부인(모)
염창섭]](첫째형) |
| 복무 기간 = 1950년 12월 ~ 1953년 12월
| 최종 계급 = 예비역 대한민국 해군 소령
| 정당 = 무소속
| 배우자 = 김영옥(金英玉)
| 자녀 = 슬하 3녀
해군본부 정훈국]] |
| 주요 참전 전투/전쟁 = 한국 전쟁
소설가]], 시인, 문학평론가 <br/> 중앙대학교 전임교수 <br/> 서라벌예술초급대학 학장 <br/> 한국독립당 문화예술행정특보위원 |
염상섭(廉想涉, 1897년 8월 30일 ~ 1963년 3월 14일)은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며 예비역 대한민국 해군 소령이다.
생애 ¶
1897년 8월 30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한제국 중추원 참의 염인식(廉仁湜)의 손자이며, 가평 군수 염규환(廉圭桓)의 8남매 중 셋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경주(慶州) 김씨, 부인은 의성(義城) 김씨 문중 출신이던 김영옥(金英玉)이다.<ref>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C%97%BC%EC%83%81%EC%84%AD&ridx=0&tot=1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ref> 한국 근대 문학의 선구자인 그는 일본 게이오기주쿠 대학 유학 시절 3·1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투옥됐다. 귀국한 후 1920년 《폐허》동인에 가담해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1921년 발표한 단편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 는 한국의 첫 자연주의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동인, 현진건과 함께 자연주의와 사실주의 문학을 이 땅에 뿌리내린 작가로서 큰 공적을 남겼다. 1936년에 매일신보의 정치부장, 만선일보의 편집국장을 지냈으며, 1946년에는 경향신문의 창간 편집국장을 지내는 등 신문기자로도 많이 활동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당시 해군 소령으로 임관되어 해군본부 정훈감실에서 편집과장으로 근무했으며, 1954년 서라벌 예술대학 학장으로 취임했다.
학력 ¶
* 1909년 한성사범학교 부속보통학교 수료
* 1910년 한성 보성소학교 졸업
* 1911년 한성 보성고등보통학교 수료
* 1913년 일본 도쿄 아사부 중학교 수료
* 1914년 일본 도쿄 아오야마 중학교 수료
* 1918년 일본 교토 제2중학교 졸업
* 1919년 일본 게이오 대학교 사학과 중퇴
* 1957년 대한민국 국방대학교 행정학사 3기
* 1910년 한성 보성소학교 졸업
* 1911년 한성 보성고등보통학교 수료
* 1913년 일본 도쿄 아사부 중학교 수료
* 1914년 일본 도쿄 아오야마 중학교 수료
* 1918년 일본 교토 제2중학교 졸업
* 1919년 일본 게이오 대학교 사학과 중퇴
* 1957년 대한민국 국방대학교 행정학사 3기
연보 ¶
저작 ¶
* 《삼대》
* 《무화과》
* 《취우》
* 《표본실의 청개구리》
* 《두 파산》
* 《절곡》
* 《얼룩진 시대 풍경》
* 《만세전》<ref>네이버캐스트 "만세전"</ref>
* 《임종》
* 《무화과》
* 《취우》
* 《표본실의 청개구리》
* 《두 파산》
* 《절곡》
* 《얼룩진 시대 풍경》
* 《만세전》<ref>네이버캐스트 "만세전"</ref>
* 《임종》
기타 ¶
1932년에 발표된 김동인의 단편 소설 '발가락이 닮았다'(1932)를 읽은 염상섭은 그것이 늦장가를 간 자신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 생각해 동인과 설전을 벌였다. 당대 문단을 주도했던 두 사람은 이 일로 무려 15년 동안이나 관계를 끊고 살았다.<ref>평론가 이상진, '한국 근대작가 12인…' 출간 조선일보 2004.02.25</ref> 일각에서는 염상섭의 아이가 다른 사람의 아이라는 루머가 돌고 있었고, 김동인은 그 무렵에 발가락이 닮았다를 발표했던 것이다.
관련 항목 ¶
각주 ¶
<references/>
외부 링크 ¶
{{염상섭}}
{{전거 통제}}
분류
- 1897년 태어남
- 1963년 죽음
- 대한민국의 참전유공자
- 일제 강점기의 소설가
- 일제 강점기의 시인
- 일제 강점기의 언론인
- 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
- 대한민국의 교육 평론가
- 대한민국의 군사 평론가
- 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
- 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
- 서울특별시 출신
- 대한민국의 소설가
- 대한민국의 시인
- 대한민국의 언론인
- 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타이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대한민국 해군 소령
- 대한민국의 반공주의자
- 한국독립당
- 대한민국의 자유주의자
- 보성고등학교 (서울) 동문
- 국방대학교 동문
- 파주 염씨
- 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
-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 직장암으로 죽은 사람
- 불교 이탈자
- 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서라벌예술대학교 교수
- 서라벌예술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