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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현섭의 주요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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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심현섭(沈賢燮) |
출생 | 1970년 5월 6일 (age(1970-05-06)세), 경기도 수정구 |
신체 | 173cm, 64kg, B형 |
성좌/십이지 | 황소자리/하얀개띠 (경술년) |
본관 | 청송 심씨 안효공파[1] |
가족 | 아버지: 심상우, 2남 3녀 중 다섯째 |
데뷔 | 1994년: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
학력 | 서울예술대학 |
종교 | 천주교(세례명: 라파엘) |
목차
활동 내역 ¶
초창기 ¶
전성기 ¶
초창기 개그콘서트의 아이콘.
1999년 개그 콘서트의 사바나의 아침에서 추장 역을 맡아 많은 유행어를[2] 낳으며 긴 무명 생활을 마치고 스타덤에 올랐고, 봉숭아 학당의 심맹구라는 2대 맹구 역할로도 인기를 끌어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그 당시만 해도 김영철, 강성범 등과 함께 개콘과 KBS를 대표하는 젊은 개그맨이었다. 다만 그의 개그에 대해선 '웃기다'보다는 '대단하다'가 더 잘어울렸다. 각종 성대모사 및 요상한 효과음 내는 것은 발군이었지만 정작 너무 잘해서 웃는 걸 잊어버릴 때가 많았다. 이때 심현섭은 정체 불명의 대사를 읊는 게 특기였는데 그게 워낙 재미있어서 뭔 뜻인지도 모르고 따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인기 절정이었던 2000년에 일간스포츠에 연재한 자서전에서 가족사항을 공개해서 새롭게 주목받았으며, 특별히 정치 성향을 드러내진 않았고 김대중 대통령 성대모사를 하며 청와대에서 열린 어린이날 행사에 사회를 맡는 등 예전과 다름없이 활동했다. 덕분에 정치적으로 구설수에 휘말리는 일 없이 화려한 스타 생활을 지속했다.
SBS <러브 투나잇> MC 자리를 맡으면서 MC로서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으며 해당 프로그램으로 SBS 복귀를 했다 심현섭 뿐 아니라 또다른 보조 진행자 박성호 황승환 이태식 김숙은 메인 MC 이홍렬과 같은 기획사(스타밸리) 소속이었다. '김혜수 플러스유' 이후 이어진 SBS의 수요일 심야 시간대 징크스를 만회하기 위해 예전 이홍렬쇼 1기로 인기를 누린 이홍렬을 메인 진행자로 내세웠으며 당초 30~40대 부부들이 편안하고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커플쇼를 표방했기 때문에 평범한 부부가 출연하여 서로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퀴즈로 풀어보고, 부부가 할 수 있는 건강체조를 소개하는 등의 코너를 주축으로 삼았다. 그러나 시청률이 오르지 않자 퀴즈 코너는 사라졌으며 건강체조도 야한 옷차림의 슈퍼모델들과 남성 개그맨들이 짝지어 머리로 박을 깨고 퀴즈를 맞히는 것으로 바뀌어 연예인 학대 프로그램이라는 비난을 샀다. 설상가상으로 보조 진행자였던 심현섭, 황승환, 박성호 이태식 김숙이 아이디어 고갈 등의 이유로 하차한 뒤 2003년 1월 15일부터 이홍렬 단독 진행으로 변경되었으나 표절 논란을 빚게 되자 11회(2003년 2월 5일) 만에 조기종영되는 수모를 당했다.
이시기에 디즈니 에니메이션인 쿠스코? 쿠스코!의 주인공 더빙을 맡았었는데, 상당한 호평을 받았었다. 이외에도 니켈로디언의 어린이 프로그램인 수수께끼 블루의 KBS판에서 '와 아저씨'[3]라는 이름으로 진행을 맡았다.
개그콘서트 이탈 ¶
몰락 ¶
2003년에 웃찾사에서 계속 나왔지만 그의 코미디는 재미없다는 평이 대세였고 인기도 떨어졌다.
웃찾사는 개콘을 이탈한 개그맨들이 주축이 되어서 만든 프로지만, 정작 개콘 출신 개그맨들은 형님뉴스로 성공한 강성범, 난다김으로 성공한 김숙을 제외하면 성공한 경우가 없었고, 대부분이 소리소문 없이 하차한 다음 개콘으로 복귀했다.
KBS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개그맨 김기욱의 얘기에 의하면, 시사개그는 꿈도 못 꾼다고 할 정도로 지나치게 규제가 많았다고 하며, 이러니 웃찾사에서는 개콘 출신 개그맨들은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웃찾사를 통해서 스타가 된 김기욱조차도 이런 불만을 토로했을 정도면 말 다 한 거다. 여담으로 언저리뉴스를 넘겨주고 나와서는 웃찾사에서 아무 것도 못하고, 심지어 그게 계기가 되어 다중이 캐릭터를 박성호에게 빼앗기기까지 한 김준호는 이 이야기만 하면 속이 터져한다.
심현섭 본인도 친정으로 돌아오려고 시도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2004년 KBS 2TV 코미디 프로그램 폭소클럽에서 '윤도현의 러브레터'를 패러디한 '윤또현의 무비레터'를 통해 2년 만에 친정인 KBS로 복귀할 예정이었지만, '이 코너가 가수 윤도현을 비하하는 패러디'라는 네티즌들의 거센 항의에 밀리면서 종영되었다. 그는 공연 현장 반응이 좋았는데 종영해서 안타까워했다.
그의 코미디는 빠른 말빨과 애드립, 성대모사를 위주로 한 휘발성 강한 웃음에 포인트를 두는 편인데, 개그계의 트렌드가 바뀌면서 성대모사라는 장르 자체의 인기가 바닥을 치게 되었고, 아이디어 위주의 코미디가 인기를 끌게 되자 그만의 경쟁력의 사라진 것이 치명타로 작용했다. 적절한 시기에 MC로 전향하거나 트렌드에 맞춘 재치를 보여주었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 테지만, KBS를 나간 이후로는 감을 갈고닦을 방송사 무대 자체가 줄어들면서 모두 다 실패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본인도 개그 외 분야에 더 전념하면서 개그맨으로선 거의 잊혀졌다.
여담으로 성대모사와 입담으로 잘 나가던 시절에 제과업체 광고를 찍은 적이 있다. 개콘 초창기 시절 정체불명의 외국어를 구사해 인기를 끌던 것이 주목받아서 그 기믹을 이용해 광고를 만들었는데 하필이면 맡은 역할이 아돌프 히틀러. 딱딱한 독일어로 연설하던 히틀러가 과자를 먹고 부드러운 프랑스어를 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는데 결국 이 때문에 항의를 받고 광고가 내려간 흑역사가 있다.
2010년 전후의 근황 ¶
2000년대 후반, 의외로 개그보다는 정극 드라마에서 더 자주 볼 수 있었는데 몇몇 드라마에서는 약간 비중있는 조연이나 단역으로 출연했다. 재독 작가 이미륵의 일대기를 다룬 SBS-독일 합작 특집극 '압록강은 흐른다'에서 일본 장교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이와 같은 행보는 그가 드라마제작사 스타맥스의 기획이사로 재직하면서 드라마 '아내의 유혹', '가문의 영광', '압록강은 흐른다', '순결한 당신' 등의 홍보와 마케팅 업무에 참여했기 때문이며, 까메오 출연자로 종종 작품에 얼굴을 비춘 적도 있다. 예능 프로그램인 '택시(TvN)',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당시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언급했다.
2011년 종편행을 선택, 채널A의 개그시대에 출연했으며 해당 프로의 다른 OB 3인방인 최양락이나 남희석에 비해 비중이 매우 적었다. 코미디 프로그램 외에 채널A의 뉴스 및 시사프로그램에 수차례 패널로 출연하며 주요 정치인의 성대모사를 선보이기도 했다.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의외로 나이가 많으며 박명수랑 동갑이다. 그렇다고 상대적으로 데뷔가 늦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데뷔 년수도 1년 밖에 차이가 안 난다. 2018년 기준 데뷔 24년차 개그맨이다.
2010년 5월 위종양 양성 판정을 받고 수술했다.
브라운관에는 자주 나타나지 않았지만 몇 년째 라디오 프로그램에 전념하며 활동 자체는 계속하고 있다. 2010년 박준형과 함께 KBS 라디오에서 '신나는 오후4시'를 진행하였으며, 2011년부터 2012년까지는 EBS라디오에서 '대한민국 성공시대'를 진행하기도 했다. 2013년 4월부턴 TBN한국교통방송에서 평일 오후 2시에 아나운서 선우경과 함께 '심현섭 선우경의 신나는 운전석'을 진행하고 있다.
연예인 야구동호회 조마조마 야구단의 감독이기도 하며 연예뉴스에서 이와 관련된 소식으로 그의 얼굴을 종종 접할 수 있다.
2015년 2월 21일 SNL 코리아 시즌 6 2화 심형래 편의 '나는 개그맨이다' 편에 나와서 과거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 사바나의 아침의 추장 개그를 보여주며 투병드립을 시전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종영하기 전 김구라 채널에 패널로 등장. 자신의 개인기들을 선보이며 팟수들을 웃기려고 시도했으나... 결과는 지못미. 자세한 사항은 마이 리틀 텔레비전 참조. 이 날 김수용, 김경민과 함께 김구라 방 '비운의 천재 특집' 편에 출연했다. 사실 개그 커리어만 봐도 셋 중에서 '비운'과 '천재'라는 단어에 모두 가까웠던 사람은 20세기말 한국 개그의 레전드 심현섭 뿐이다. 단, 그날은 심현섭이 준비한 개그들도 기본적으로 타율 2할 미만이었던데다가, 중반부터 마지막까지 김경민의 알수없는 드립에 전체 방송 분위기가 다 말려버리면서, 김구라의 진행도 종잡을 수 없는 형태가 되었고 김경민과 김수용 모두 심현섭보다 선배이다 보니(심지어 김경민은 군대도 선배다) 그가 컨트롤도 할 수 없게 되어, 원래 항상 틀을 점잖게 잡고 시작하는 스타일의 정석 개인기형 개그인 심현섭의 희극 연기도 완전히 힘을 잃어버렸다.
초반에는 심지어 그저 선배일 뿐 공개코미디 시절 인기 커리어로는 심현섭에게 상대가 안 되는 김경민한테 '얘네(김수용, 심현섭)들은 나한테 (개그로) 상대가 안 된다. 김수용은 말은 하는데 옹알이처럼 하고, 심현섭은 남보원 선생님 시절 개그를 하고, 개인기라고 하면서 공룡 흉내내기나 하는 애다'라는 말까지 듣는 굴욕까지 당했다.
2017년 9월 3일 복면가왕에서 리듬을 쳐줘요 상암동 타자기라는 가명으로 나왔으며 지금 몇시? 몹시 좋은기분 괘종시계과 같이 김현철의 '왜 그래'를 불렀다. 정체를 밝힐 때 신승훈의 'I believe'를 불렀으며 본인의 장기자랑인 성대모사를 선보였다. 참고로 후배인 김구라가 많이 거론했는데, 정작 그가 나왔을 때는 알아보지 못했다.
방송사고 ¶
2002년 1월 13일자 개콘의 '봉숭아 학당' 촬영 중, 방송사고가 있었다. 심맹구 역으로 "정부느은! 왜 공짜를 좋아하면 머리가 벗겨지는지 알아?" "바지가 벗겨지면 이상하잖아~"라는 내용의 대사를 했다.[9] 그리고 김준호가 애드립으로 바지를 내렸는데 실수로 팬티까지 벗겨지는 바람에...... 이하생략.
다행인 점은 개콘이 녹화 방송이어서 실제 방송에서는 '돌발상황'이라는 자막으로 가려서 큰 사고는 막았다는 점. 이것 때문에 그 다음주 개콘에서 '섹시현섭', '에로현섭'이라고 써있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방청객이 보였다. 김준호는 무대가 끝나고 대기실에서 어떻게 되었을까?
훗날 이 사건에 대해 본인 曰: "거기가 튼실했으면 그나마 덜 부끄러웠을 텐데…."라고 밝힌 적이 있다.
가정사 배경과 정치 논란 ¶
전남 광주 출신이다. 아버지가 호남전기 사장, 전남매일신문 사장, 광주일보 회장이자 11대 국회의원, 민주정의당 총재비서실장을 지냈던 심상우로, 1983년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사망했다.[10] [11]그래서 한때 잘 나가던 부잣집 도련님(할아버지부터가 호남전기공업[12] 창업주 심만택이었다.)이었다가 아버지 타계 이후로 상경하여 많은 고초를 겪게 되었다고 한다.[13]
지금도 광주 여행하다 보면, "원래 저 땅은 심상우 의원 땅이었는데…." 하는 말을 의외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심 씨의 가세가 한 때 얼마나 흥성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14] 예를 들어 박치기왕 김일을 실제로 가족 식사 자리에서 만나 본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테러 소식을 들었던 심현섭 본인은 1분이 1년 같았다며 회고했다고 한다.
개그맨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 이후 2002년 대선에서 보수정당인 한나라당 후보였던 이회창 후보를 공개 지지하는 것을 시작으로 2012년 대선까지도 보수파 계열에서 정치적 지지 의사를 꾸준히 표명했는데, 이러한 행보는 사실 정치권에 대한 개인적인 야망이나 출세욕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심현섭 본인의) 아버지가 북한이 벌인 테러로 순직하게 된 특수한 개인사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으며, 참여정부 시절의 탄압 주장도 사실 그의 정치적 지지 행보와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아웅산 테러를 일으킨 공작원이 2008년 미얀마 감옥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자, "그 공작원도 아버지와 함께 남북 분단 시대의 희생자"라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더불어 아버지의 사망 이후 가세가 기울어진 상태에 놓이고 후에 정치적 논란도 겪게 되는 심현섭 본인 또한 시대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보수 네티즌들은 심현섭의 몰락이 참여정부 시절의 정치압력이라고 주장하며, 이명박 정부 시대의 김미화·김제동·윤도현·김C 등의 방송 하차가 정치 압력의 결과라는 주장을 역공하는 근거로 삼았다. 정권이 확실히 바뀌어버린 후에도 여전히 방송에 얼굴을 잘 비치지 않으며 가끔 나와도 추억속 개그맨 이상의 모습은 보이지 못하는걸 보면 그냥 본인이 개그쪽을 더이상 중시하지 않는다고 보는게 더 정확할 것이다.
사실 그냥 재미가 없어서 그런게 크다 김미화 김제동도 마찬가지이고
개콘을 떠날 당시의 인터뷰에서도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했다.", "절더러 '오만하다', '인기 얻었다고 떠나냐?' 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지금 상태라면 '개콘'에 남아있는 게 결례다. 삐걱삐걱 소리내면서 가느니 쉬는 게 오히려 시청자들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섭섭하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개콘' 생기고 나서 처음 주는 코미디대상인데…. (상을 받지 못해) 좀 쉬고 싶다는 생각과 그런 섭섭함이 맞아 떨어진 거라고 봐 달라."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후에 밝혔지만 이에는 사실 심현섭 개인의 분노보다 소속사의 결정이 더 컸다고 한다. 1주일 만에 웃찾사로 옮긴 것은 그런 이유라고... #
10년이 지난 2013년, '개그콘서트-코미디 40년' 특집 기자간담회에서 심현섭 본인이 개그콘서트를 떠난 건 자신이 앞뒤 안 가리고 거만했었기 때문이라며 개콘을 떠난 이유에 대한 정치외압설을 부정했다. #
여하간 이러한 이유 탓에 정치 쪽 구설수로 많이 엮인 개그맨이기도 하다. 하지만 본인은 정치가 목표였다면 선거에 출마를 했을 것이라면서 "자신은 코미디언일 뿐이다"라고 밝혔다.
2009년에 버락 후세인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광화문에 방한했을 때 환영행사의 사회를 본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심현섭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지난 40년 동안 이 순간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주관이 뚜렷하고, 행동력도 거침이 없고 한때 최고의 인기를 끌었을 정도로 잘 나갔던 개그맨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한 가지 사실로는 후배들의 군기를 잡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후배들과도 친한 개그맨들 중에 1명이었다고... 슬럼프 시절에는 김진철의 후배 얼차려, 폭행 사건때는 대놓고 국민들에게 웃음을 줘야할 개그맨들이 웃지 못할 모습을 보여줬다며 씁쓸하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는데, 이는 김진철의 후배 얼차려, 폭행 사건이 여자 후배들에게까지 범행을 저지르게 되면서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기 때문이다.
성추행 의혹 논란 ¶
2018년 3월, 그에게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글이 디시인사이드 예능 프로그램 갤러리에 올라왔다. 글을 올린 L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11년 가을, 심현섭과 소개팅을 했고, 첫 만남에 간 영화관에서 계속 허벅지를 주무르는 심현섭에게 불쾌감을 표현했으나 그는 L씨를 차에 태운 후 CCTV가 없는 장소를 찾아갔고, L씨가 차에서 내리려 하자 문을 잠그고, 자신을 애무할 것을 요구했고 "만지기 싫으면 이것만 봐달라"며 바지를 벗고 자위행위를 했다고 설명했다. JTBC
L씨는 그냥 도망쳐서는 안 될거 같아 상황을 살힌 후, 증거물까지 챙겨 그 다음 날 바로 신고했다고 한다. 이후 경찰과 검찰 조사까지 진행됐고, 돈을 받고 끝낼 문제가 아니라 판단해 합의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정확히 내비쳤지만 형사는 합의하자고 했으나 합의하지 않았다. 그리고 검찰에서 실시한 거짓말 탐지기로 대질신문 조사에 심현섭은 전부 응했지만[15] L씨는 두 차례 다 응하지 않았다.기사 결국 검찰에서 날라온 결론은 증거불충분이었다고 말했으며 무혐의로 종결.
현재 글은 삭제되었고 이 사건 이후 심현섭 측은 L씨에 대해 법적 대응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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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송 심씨 24세손 '燮'자 항렬이다.
- [2] 예를 들어 "빰바야~ 까스토미또르쌈바~"
- [3] 원판에서는 '스티브'(Steve)로 나온다.
- [4] 그 자신의 주장으로는 12월 17일 이미 수상이 통보되었으나 정작 발표 때는 결과가 뒤집혔다고 한다. 이 당시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출연하지 못했다는 주장도 했었는데, 실제로는 매니저와 담당자간의 오해로 밝혀져 심현섭이 사과했다.
- [5] 그 전에도 모 프로그램에서 말실수를 심하게 하여 공영방송에 출연정지를 당한 적이 있었다.
- [6] 심현섭과 SBS 공채 동기였으나 IMF 때문에 SBS가 코미디 프로그램을 종영하면서 설 자리를 잃었다.
- [7] 황승환의 경우는 10월 말경에 사고로 팔을 다쳐 출연하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2002년 11월 초경의 그의 출연 장면을 보면 깁스를 한 채로 출연하고 있다. 황승환은 약 1년 후에 개콘에 복귀하지만 특유의 '여장연기'를 계속 하는 바람에 '식상하다'는 반응을 얻고는 곧 하차했으며, 이후에는 엔터기술의 최대 주주 겸 황마담웨딩컨설팅 CEO로 연예인 주식부자 겸 CEO 대열에 합류했다. 그런데 회사자금 횡령으로 검찰에 불구속 입건되었으며, 이때 황승환의 본명(오승훈)과 그가 사실은 바지사장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 [8] 심현섭, 김준호와 SBS 공채 동기였지만 IMF 때문에 SBS가 코미디 프로그램을 종영하면서 설 자리를 잃었다.
- [9] 당시 데모하는 학생 기믹으로 출연하던 박성호의 유행어를 따라하는 것이다.
- [10] 심상우가 떠나기 전 아들에게 당시 돈으로는 상당한 2천 원을 용돈으로 줬는데 그것이 아버지의 유품이 되어버렸고, 심현섭은 지금도 그걸 간직하고 있다. 2014년 현재 돈가치로 따지면 9만 원~10만 원 정도이다.
- [11] 훗날 테러당시 현장에 있었던 기자들에게서 이야기를 듣었는데,평소 밝고 활달했었던 아버지가 테러 당일에는 표정이 어두웠고 말수도 적었다고 한다.그것은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항목에 실린 참석자들의 마지막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
- [12] 1945년 창립 이래 심씨 가문이 소유했으나, 1970년 큰아버지 심상하 회장 사후 부인 진봉자의 전횡으로 회사가 어려워져 1976년에 남봉 김남중(1917~1987) 전남일보 회장 등 호남 연고 기업가 6명에게 팔렸으나, 경영권 분쟁 발생 후 1978년에 김남중이 단독으로 인수해 1982년부터 '로케트전기'로 바꿨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와 에너자이저 등 해외 건전지들에 밀려 1998년부터 '로케트' 브랜드를 질레트에 팔고 하청업체로 전락하여 2015년에 회사가 정리되었다. 반면 같은 '로케트' 브랜드를 쓰는 자동차 배터리 부문은 1978년에 세방기업 매각 후 '세방전지'로 분리되어 현재 잔존중이다.
- [13] 이미 1976년에 숙모 진봉자 여사의 전횡과 사촌 심홍근 사장의 운영미숙 등으로 호남전기를 팔았으며, 1980년 11월에 언론통폐합으로 전남매일을 잃게 된다.
- [14] "공무원 = 도둑놈" 하는 등식을 지역 사회의 어른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켜준 사례이기도 하다. 2002 한일월드컵 때 히딩크 호텔로 개명한 모 호텔 및 근처 아파트 단지 부지도 원래는 심상우 의원 명의로 되어 있던 것을 심 의원 사후에 공무원들이 가로챈 것. 허나 현재 호텔은 온데간데 없고, 교회가 들어서 있다.
- [15] 그의 증언 또한 모두 진실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