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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완구


개요


沈完求
1938년 07월 01일 ~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2선 국회의원, 광역자치단체장을 지냈다. 호는 죽제(竹齊). 그가 상도동계인 것이 왜 이 문서(r37 이전)에서 빠졌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신민당 초창기부터 김영삼을 모신 민주계(보수정당)이다. 긴 정치인 커리어에 비해서 당적이 많이 바뀌었는데, 탈당을 해서가 아니라 김영삼이 군부 독재 아래 지리멸렬한 야당을 통합하거나 당을 혁신하면서 자연히 당적이 바뀐 케이스. 바뀐 당적을 살펴보면 한국 현대 정치사를 그대로 알 수 있다.

98년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 후 당시 막 여당이 된 새정치국민회의로 옮길 때만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탈당이었다. 하지만 30년 동지였던 한나라당 민주계 인사들은 씁쓸해 하는 가운데에도 심 시장의 탈당을 용인했다고. 한보사태로 구속된 홍인길 의원을 구명해달라는 정도의 당부만 남겼다. 홍의원은 몇 달 안가 형집행정지를 받고 풀려났다. 오히려 심완구가 2002년 뇌물수뢰로 구속되면서 피선거권이 박탈됐다. 석방된 뒤로는 다른 후보들을 도우면서 정치인생을 마무리하는 중이다.

생애

1938년 경상남도 울산군 대현면(현 울산광역시 남구)에서 태어났다. 울산대현초등학교, 울산제일중학교, 부산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박정희 정권 시절 신민당에 입당해 당료로 근무했다. 김영삼 총재를 지근거리에서 모시며 야당 정치인 생활을 시작했다.[1] 그 뒤 정치 궤적은 98년 이전까지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같이한다.

전두환 정권 출범 직후인 1980년 말 민주한국당 창당에 참여했고 신민당은 민주한국당에 흡수됐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경상남도 울산시-울주군 선거구에 출마해 민주정의당 고원준 후보와 민주농민당 이규정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 재도전해 민주정의당 김태호 후보와 동반 당선됐다.[2] 당선 직후 민주한국당은 신한민주당으로 흡수됐고 그도 자연히 당적이 바뀌었다. 최형우 대신 울산시-울주군 지구당위원장으로 일하던 1987년 신한민주당이 통일민주당에 흡수되면서 다시 당적이 바뀌었다. 통일민주당은 김영삼, 김대중 두 거물이 출범시켰고 그는 당연히 김영삼 계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경상남도 울산시 남구 선거구에 당선됐고, 1990년 삼당합당으로 통일민주당 김영삼 계가 민주자유당에 흡수되면서 그도 다시 한 번 당적이 바뀐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민주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했다가 통일국민당 차수명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1993년부터 1995년까지 한국전력공사 상임고문을 역임했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울산시장에 당선됐고, 1997년 7월 울산시가 광역시로 승격되면서 울산광역시이 됐다. 광역시 승격에 관해서는 일화가 있는데 시에서 발행한 '울산광역시 승격백서'에 따르면, 당시 심완구 시장은 지역의 유력인사, 국회의원, 타 경상남도의회 의원, 중앙정부 관계자 등에게 밤마다 전화를 걸어서 광역시 승격을 지지해 달라고 전화를 걸었다고. 울산을 롤모델로 삼아 광역시 승격을 염원하는 창원시장이 보고 배워야 할 듯.. 인지는 잘 모르겠다. 심완구는 YS의 심복이었고, 삼김시대가 끝난지도 20년이 다 돼가는 지금은 광역시 승격이 투명한 절차를 밟아야 하는 시대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울산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였다. 2002년 건설업체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노무현 정권 때 석방되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였다. 그러나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덕룡, 문정수, 이신범, 강삼재, 김정수, 박희부, 노병구, 최기선 등 일부 상도동계 정치인들과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였다.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울산광역시 남구 을 선거구에 출마한 야권 단일후보 송철호(당시 무소속)를 지원했지만 새누리당 박맹우 후보에게 패했다. 심완구는 무소속 야권후보 송철호 띠를 두르고 곳곳을 다니며 지지를 호소했었다. 다른 성향과 당적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송 후보를 지지한 이유에 대해, 아마 노무현 정권 당시 송철호 변호사가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심완구의 석방에 기여한데 대한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2018년 6.13 지방선거 때도 송철호 변호사를 도왔다. 5월 31일 더불어민주당 울산시당 출정식에도 참석해 연단에 섰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이 문재인 대통령 출범에도 불구하고 울산에서 여전히 야당 신세라며, 울산 민주당이 살 길은 송철호 후보를 당선시키는 것 뿐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리고 운명의 개표날, 송철호 후보 옆에서 개표방송을 지켜봤다. 자신에게 거듭졌던 사람을 돕는 모습은 이유야 어쨌든 훈훈한 미담이 될만한 이야기.[3]

선거 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1981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2선거구)[4] 민주한국당 43,219 (18.44%) 낙선 (3위)
1985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울산/울주) 민주한국당 88,918 (27.41%) 당선 (1위) 1985년 민한당 소멸br신한민주당 창당br1987년 신민당 소멸br통일민주당 창당
1988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울산 남) 통일민주당 46,210 (45.21%) 당선 (1위) 1990년 3당합당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울산 남) 민주자유당 43,471 (32.98%) 낙선 (2위)
1995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남 울산시장)[5] 민주자유당 122,326 (30.43%) 당선 (1위)
1998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울산광역시장) 한나라당 160,491 (42.74%) 당선 (1위) 1998.09.14 탈당BR새정치국민회의 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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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신민당사는 종로구 관훈동에 있었다.
  • [2] 12대 총선까지는 중선거구제로 복수의 의원들이 당선됐다. 당시 총의석은 276석.
  • [3]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은 불과 20년 전 같은 울산시장직을 두고 1, 2위를 다퉜던 사이였다. 물론 결과는 심 전 시장의 당선과 송철호 시장의 8전 9기 전설의 시작.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된 셈이다.
  • [4] 경남 울산시, 울주군
  • [5] 민선 1기 중인 1997년 일반시에서 광역시로 승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