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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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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청 축구단 No.19
송제헌 (宋制憲 / Song Je-Heon)
생년월일 1986년 7월 17일 (만 age(1986-07-17)세)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경상남도 마산회원구
학력 마산중앙중 - 마산공고 - 선문대학교
신체 조건 174cm, 74kg
포지션 윙어, 스트라이커
소속 클럽 포항 스틸러스 (2009) br 대구 FC (2010~2012) br 전북 현대 모터스 (2013~2015) br 상주 상무(입대) (2014~2015) br 인천 유나이티드 (2016) br 경남 FC (2017) br 천안시청 축구단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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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경력

아마추어 시절

경상남도 마산회원구 출생으로 마산중앙중, 마산공고, 선문대학교를 졸업했다. 2008년 전국 추계대학축구연맹전에서 득점왕을 차지했다. 원래 포지션은 미드필더였으나 공격수로 포지션을 전환하고 포텐이 터진 듯.

포항 스틸러스 시절

2009년 드래프트에서 번외지명으로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했다. 포항 입단 이후, R리그에서 9경기 출장 8골 1도움을 기록하는 가공할 득점능력으로 주목을 받았다. 5경기 연속골을 기록하는 등 R리그 연신 폭격을 가했다. 포항 측은 2009 시즌 종료와 함께 곧바로 송제헌과의 재계약을 추진했으나, 송제헌은 포항의 두터운 공격진에서는 자신의 출장 기회가 생기지 않을꺼라 생각해 재계약을 거절하였고, 이를 포착한 대구 FC의 재빠른 영입 제의로 대구에 입단하게 되었다. 원래 이영진 감독이 FC 서울 수석코치를 하던 시절부터 R리그에서 활약하던 송제헌 선수를 눈독 들이고 있었다고 한다. 1군 경기에는 3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했다.[1]

대구 FC 시절

당분간 볼 수 없을 대구 시절. 묘하게 이 분 닮았는데? 신성모독이다!!!

2010 시즌을 앞두고 대구 FC로 [이적 소식]이 떳다. 이근호 때처럼 2군 리그 득점왕을 데려와서 키워볼 심산인 듯 하다.

터키 [전지훈련에 참가]했다. 전지훈련 중 [2연승에 기여]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3번째 경기에선 [페널티 킥을 얻어내며 도움을 기록]했다. 장남석 황일수와의 삼각 편대로서 가능성을 보여준 전지훈련이었다.

인터뷰를 통해 흙 속의 진주라 불리며 이영진 감독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월 27일 광주 상무와의 K리그 [개막전 홈경기에 선발 출장]했다. 전반 13분 김민균이 슛이 튕겨져 나오자 이를 놓치지 않고 침착하게 골을 성공시켰다. 팀 1호골이자, 자신의 시즌 첫 골이었다. 팀은 이후 상무의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최성국에게 동점골과 역전골을 내주며 1:2로 패배.

3월 6일 토요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쏘나타 K리그 2010 [2라운드 경기에 선발 출장]했으나, 전 시즌 우승팀인 포항의 공세에 제대로 된 플레이를 보이지 못하고 밀려버렸다. 송제헌도 후반 14분에 결정적 1:1 찬스를 맞이했으나, 날려버리고 말았다.

5월 2일 강원 FC와의 10라운드 경기에서도 [선발 출장]했다. 이날 황일수의 득점을 돕는 패스 플레이를 선보였다. 황제 콤비라 불릴 대구의 기동타격대의 콤비플레이의 시작이라 할 수 있었다.

5월 15일 대구 FC 유소년 축구센터에서 [일일 축구강사]로 나섰다. 5월 20일에는 수성고로 [일일 강사 활동]을 나갔다.

5월 23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포스코 컵 1라운드에 [선발 출장]했다.포항을 상대로 돌파와 날카로운 플레이를 선보였지만, 아쉽게도 강력한 포항의 수비를 뚫고 골을 기록하진 못했다.

5월 30일 대전 시티즌과의 포스코 컵 3라운드에 [선발 출장해서 역전골을 기록]했다. 장남석의 패스를 받아 그대로 그대로 간결하게 넣는 모습이 백미. 팀의 역전골을 넣어, 승기를 가져왔고, 팀은 3:2 펠레 스코어로 이겼다. 이 때의 활약으로 대구 FC는 3라운드 [베스트 팀에 선정]되었다.

12월 1일에는 청곡종합복지관으로 [무료 급식 봉사]를 나갔다.

시즌 총평을 해보자면, 본인이 해결하려는 마인드로 경기를 풀어갔기에 팀과 엇박자가 났으나, 차츰 자리를 잡아가며 19경기 출전해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본인의 등장을 K리그에 알렸다. 다만 황일수와의 연계 플레이는 굉장한 시너지를 발휘했음을 알 수 있었다. 원 톱 공격수보다는 윙포워드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플레이 스타일이 다른 황일수와의 연계가 돋보이며,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했다.

2011시즌을 앞두고 J2리그 제바 지프와의 연습경기에서 전반 2분 선제골을 기록한다. 쿠마모토 전지훈련에서 돋보이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3월 5일 광주 FC와의 K리그 1라운드 [원정경기에 선발 출장]했다. 송제헌은 골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활발하게 측면에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3월 13일 강원 FC와의 K리그 2라운드 [홈 개막전에서 선발 출장]해 선제 골을 기록했다. 송창호의 패스를 받은 송제헌은 중거리에서 강력한 슈팅을 날려, 골을 기록했다. 대구는 이 골을 앞세워 1:0으로 승리했다.

3월 26일 토요일 파주 NFC에서 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팀과의 [연습 경기에서 원톱으로 출전]했으나 경기는 0-2로 패하고 만다.

부산과의 6R 경기에서는 부산의 질식수비를 뚫어내고 전반 22분 선제골을 기록했다. 10월 2일 인천과의 경기에서 2-0 승리를 이끄는 2골을 집어넣었다. 이번 시즌 송제헌 원톱, 혹은 왼쪽 날개 또는 김현성과의 투톱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경기를 출장하고 있다.

7월 9일 부산 아이파크와의 K리그 17라운드 [홈경기에 오랜만에 선발출장]했다. 오랜만에 선발 출장인지 활발한 모습을 보였지만, 아쉬움이 남는 움직임이였다. 활발한 움직임에 비해 날카로움이 부족했다.

7월 17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18라운드 [원정 경기에 선발 출장]했다. 전반 시작과 동시에 김명중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전반 36분 송제헌의 돌파에 이은 슛이 골망을 가르며 동점골을 기록했다. 경기는 1:3으로 패배했고, 송제헌은 이날 대구의 유일한 골을 기록했다.

7월 23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K리그] 19라운드 경기에 선발 출장했지만, 전반 17분, 후반 40분 경고 누적 퇴장을 당하며, 다음 경기에 출전할 수 없게 되었다. 김현성의 골에 관여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아쉬운 움직임에 퇴장이 더해져 안타까움까지 자아냈다.

9월 17일 대전 시티즌과의 25라운드 [원정 경기에 선발 출장]했다. 오랜만에 황일수와의 콤비 플레이가 절정에 달한 경기로, 황일수가 커트한 공을 받은 송제헌이 그대로 첫 선제골을 집어넣었으며, 황일수의 오른쪽 크로스를 받아서 골을 넣는 등 송제헌은 2골을, 황일수는 2도움을 기록했다. 다만 경기는 2:2로 비겼다. 이 경기에서의 활약으로 송제헌은 25라운드 [베스트 위클리 11]에 뽑혔다.

9월 25일 토요일 수원 삼성과의 K리그 26라운드 경기에 [선발 출장]했다. 이 날 두 골을 먹혔지만, 경기 직전 송제헌이 헤딩 골을 성공시키며 한 골을 만회했다. 시즌 6번째 골이었다.

10월 2일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는 [홈경기로 치루어졌고, 선발 출장]했다. 전반은 실점 위기도 있었지만, 활발히 골 사냥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후반전은 시작하자마자 송제헌이 경기 선제골을 넣었다. 후반 15분에 추가골을 넣으며, 경기는 2:0으로 승리했고, 송제허은 3경기 연속골을 넣었다. 윙 포워드로 나섰을 때의 움직임이 더 좋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후 김기희와 함께 [27라운드 베스트 위클리 11]에 뽑히기도 했다.

10월 16일 경남 FC와의 경기에 [투톱으로 선발 출장]했다. 하지만 팀은 0:3로 패배했다.

10월 23일 강원 FC와의 [원정 경기에 선발 출장]했다. 송제헌은 김현성과의 투톱으로 출장했으나 골을 기록하진 못했다.

10월 30일 울산 현대와의 K리그 최종 라운드 경기에 [투톱으로 선발 출장]했다. 활발한 움직임을 펼치면서 골을 노렸으나 김영광의 선방에 막히고 말았고, 경기는 0:0으로 마쳤다.

2011시즌은 25경기 8골을 기록하며 자신이 골을 넣을 줄 아는 공격수임을 입증했다. 2011 K리그 베스트 공격수 부문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모아시르 감독의 부임으로 생애 첫 외국인 감독을 경험하게 되었다. 브라질 전지 훈련 이후 33번을 배번받았다.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었으나 2골을 몰아넣는 기염을 토해냈다!! 이때부터였나요? 전북이 송제헌을 노리던 것이... 송제헌의 활약에 힘입어 대구 FC는 전북에 승리한다. K리그 5R 경기에서 위클리 베스트 미더필더 부분에 이름을 올렸다.

4월 11일 한국의 폴 포츠라 불리는 최성봉씨 와의 만남을 대구 선수들과 함께 가졌다. 경남 과의 경기에서는 2-3으로 패배했지만 한 골을 기록했다.

2012시즌 대구 FC의 상승세를 이끄는 원톱으로 활약하고 있다. 개인 통산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 것은 물론이고 하위 스플릿에 떨어진 팀의 주포로서 확실한 활약을 하며 두자릿 수 득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골을 10골 더 넣어 20골을 넣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광주전에선 시즌 처음이자 마지막 도움을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 성적은 36경기 11골 1도움을 기록했다. 이후 전북으로 이적한다.
대구에서는 통산 83경기에서 21골 2도움을 기록했다.

전북 현대 모터스 시절

2013년 1월 4일 전북 현대로의 이적이 결정되었다. 이승현김동찬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영입인 듯 하다. 전북은 대구에 보상금 3억을 지급했다.
전북에서는 김신영과 함께 조커 자원으로 경기를 나섰으나, 시즌 내내 1골에 그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대구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팬들에게 실망감과 아쉬움을 남겼다.
기록은 14경기 1골.
이후 2013 시즌 종료를 앞두고 서상민, 박희도와 함께 군입대를 택해, 2014 시즌부터는 상주 상무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2015 시즌에 전역하여 팀에 돌아왔으나, 전역하자마자 계약을 해지하여 FA 선수가 되었다.

전북의 항목이 매우 빈약한데?
만든 이가 대구팬이거든
전북 팬들의 추가 바람
여기에서 본 거 같은데?

상주 상무 시절

2014 시즌을 앞두고 27번을 배번 받았다. 2015 시즌에는 19번.
그러나 상주에서도 송제헌은 많은 출장 기회를 얻지 못했고, 첫 시즌 6경기, 두번째 시즌 1경기 출전에 그쳤다. 총 기록은 7경기 1도움.

인천 유나이티드 시절


이후 전역하여 전북으로 복귀했으나 계약을 연장하지 않으며 팀을 나왔고, 2016년 1월 5일 인천 유나이티드로 이적하였다.

시즌 시작 후 송제헌은 우려와 달리 인천의 공격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됐다. 슈팅과 테크닉을 활용해 빈약한 공격력을 그나마 살리는 중.
2016년 4월 2일 서울 원정에서 경기 종료 직전, 케빈의 백헤딩을 받아 팀의 시즌 첫 필드골을 터뜨렸다. 다음 라운드에서는 PK골도 기록. 이후에도 송제헌은 답답한 인천의 공격진에서 그나마 활발하고 뛰어난 모습을 보이며 12라운드까지 3골 1도움을 기록했다. 11라운드에서는 이효균의 퇴장으로 인해 혼자 부담을 짊어져 체력이 고갈되어 완벽한 찬스에서 다리가 풀리는 모습도 있었고 12라운드에서는 성급한 중거리슛도 나왔으나 케빈의 득점에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여러모로 인천 공격의 핵심이며 팬들의 지지도 높다. 그러나 얼마 후 부상을 당하며 전열에서 이탈해 오랫동안 모습을 감췄고 여름이 되서야 돌아왔다. 복귀 당시 팀이 다시 위기에 봉착해 송제헌에게 기회는 많이 가지 않았고 그대로 후보로 밀리게 되었으며 이기형 체제에서는 김용환진성욱이 주전 윙으로 자리매김을 하면서 크르스테 벨코스키와 함께 주전 경쟁에서 낙오되었고, 결국 시즌 종료 이후 팀과의 합의 하에 계약을 해지하며 자유계약 신분이 됐다. 즉 이 초반 3골 1도움이 시즌 동안 그가 기록한 공격 포인트의 전부가 되었다.

경남 FC

이후 전력 강화를 노리던 고향 팀인 경남 FC에 입단하며 K리그 챌린지에서 새로운 시즌을 보내게 되었다. # 그리고 2017년 경남에서의 기록은 인천의 기록에서 1도움만 빠진 (...) 14경기 3골.

천안시청 축구단

결국 시즌 종료 후 경남을 떠나 한국 내셔널리그천안시청 축구단으로 이적했다.

플레이 스타일

빠른 발과 탁월한 골 결정력을 겸비한 득점 자원이다. 특히 대구 시절 황일수와 빠른 발을 이용한 양날개는 그야말로 고속기동전이라고 할 만한 공격 옵션으로서 역습 때 최고의 장점을 발휘한다.

에피소드

황일수와의 좌우 날개로 언론에서 묶여서 많이 언급된다. 속도와 골 결정력의 황일수와 지능과 기술을 겸비한 송제헌을 묶어서 황제 콤비라고 불렸다.

생일을 보면 알겠지만 제헌절에 태어났기 때문에 부모님께서 이름을 제헌이라고 지어주었다.

의적대장이라는 별명이 있다. 보통 축구계에서 의적이라 함은 강팀에 강하고 약팀에 약한 팀을 지칭하는 말인데, 이 당시 대구의 모습이 딱 이랬다. 그리고 송제헌은 대구 FC에서 가장 많은 공격 포인트를 올리는 선수 중 하나였기 때문에 그들을 앞에서 이끈다고 하여 의적대장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본인도 이를 싫어하지는 않은 듯.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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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 당시 포항은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하고, 정규 리그 2위를 차지하는 등 영광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스테보, 데닐손 등을 뚫고 들어가기란 매우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