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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임한 직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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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박창달(朴昌達) |
출생일 | 1946년 3월 17일 (만 age(1946-03-17)세) |
출생지 | 경상북도 포항시 |
거주지 | 대구광역시 남구 |
본관 | 구산 박씨 |
학력 | 한국외국어대학교 행정학 학사br영남대학교 행정학 석사 |
소속 정당 | {{{#C9151E 자유한국당}}} |
의원 선수 | 3 |
의원 대수 | 15, 16, 17 |
SNS |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
특이사항 ¶
박근혜 대통령을 1998년 대구 달성군 지역구로 이끌어 정계 진출을 성공시킨 주역이다.
29세에 민주공화당 입당 이후, 탈당 및 이적이 단 한번도 없었던 유일한 정치인이었다.
15대 총선에서 전국구 26번으로 출마하였지만 너무 순번이 뒤쪽에 있어서 당연히 낙선...했는데 임기 다 끝나가는 2000년 3월에 현역 윤원중 전국구 의원이 탈당하면서 의원직을 승계, 3달짜리 국회의원직을 수행했다. 물론 15대 국회 막바지여서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1] 대신 16대 총선에서 안정권인 15번을 받고 당선되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탄핵역풍 속에서도 자신이 영입한 박근혜가 당 대표가 되면서 텃밭 대구 동 을 지역구 공천을 받아 무난하게 당선되었다. 그러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1년 반여만에 의원직 상실 크리.(...) 그리고 그의 지역구는 바로 유승민이 차지하게 된다. 이후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의 8.15 특사로 사면복권되었지만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는 이미 지났다.(...) 사면복권되기 전에는 당원이 될 수 없기에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당원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후보 및 유세단 경호 등에 참여했다.
사실 박근혜 영입을 주도했다곤 하지만 정작 박근혜가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한 이후에는 친박계보에 속하지 않고 친이계에 속했다. 이명박의 중학교 4년 후배기도 하고 이재오와 친밀하게 지냈다. 19대 총선에서는 자신의 지역구였던 대구 동 을에 유승민이 버티고 있었기에 대신 대구 중/남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친이계라고 김희국에 밀라 탈락, 이에 반발하여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으나 느닷없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자유총연맹 회장직을 맡게 된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당시 위(청와대, 즉 이명박 대통령)에서 자유총연맹 회장직을 제안해 어쩔 수 없었다고. 실제로 이념적 성향은 극우가 아니라고 한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공천 신청을 했으나 탈락, 불복하고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였으나 새누리당 곽상도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김동열 후보에 밀려 3위로 낙선하였다.
3선 의원이지만 실제 수행임기는 6년이 채 안된다. 온전히 4년 임기를 수행한건 16대뿐이고, 15대는 3개월, 17대는 1년 3개월이다.(...) 그나마 17대는 공직선거법으로 당선 자체가 무효된 것이어서 엄밀히 말하자면 선수로 쳐줄수도 없다.[2]
선거이력 ¶
연도 | 선거 종류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1996 |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26번) | 신한국당 | - | 낙선→당선 | 2000.3.8 승계BR(윤원중 의원 탈당으로 승계) |
2000 |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15번) | 한나라당 | - | 당선 | |
2004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동 을) | | | | 2005.9.15 의원직 상실BR(공직선거법 위반) |
2016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중/남) | 무소속 | 11,256 (10.93%) | 낙선 (3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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