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의 역임 직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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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서울 No. 10 | |
박주영 [br] (朴主永 / Park Ju Young / Park Chu Young) | |
생년월일 | 1985년 7월 10일 (age(1985-07-10)세) |
국적 | width=28 대한민국 |
출신지 | 대구광역시 동구 각산동 |
학력 | 반야월초등학교 (1992~1998) br 청구중학교 (1998~2001) br 청구고등학교 (2001~2004) br 고려대학교 (2004~2005) |
신체 조건 | 182cm, 75kg |
포지션 | 공격수[1] |
주로 쓰는 발 | 양발(오른발) |
등번호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10번br FC 서울 - 10번, 91번br AS 모나코 - 10번br 아스널 FC - 9번, 30번br RC 셀타 데 비고 - 18번br 왓포드 FC - 20번 |
프로 입단 | 2005년 FC 서울 |
소속팀 | FC 서울 (2005~2008) br AS 모나코 (2008~2011) br 아스널 FC (2011~2014) br RC 셀타 데 비고 (2012~2013) (임대) br 왓포드 FC (2014) (임대) br 알 샤바브 FC (2014~2015) br FC 서울 (2015~) |
국가대표 | 68경기, 24골 |
종교 | 개신교 |
2018 K리그 기록 | 15경기 1골 |
2018 시즌 기록 | 15경기 1골 |
목차
개요 ¶
비운의 축구 천재
고등학교 때인 2001년 포항 스틸러스의 후원으로 1년간 브라질 축구유학을 다녀왔으며 각종 청소년 대회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며 한국축구를 이끌어갈 유망주가 되었다. 2005년 후원해준 포항 스틸러스가 아닌 FC 서울에 입단해 놀라운 득점력으로 그 해 올해의 선수상, 신인상, 인기상 등을 휩쓸었다. 2008년 9월 프랑스의 AS 모나코로 이적한 박주영은 첫 경기에서 1득점을 기록하는 등 매 경기마다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면서 10월에 팀 최우수선수로 선정되었다.
박주영은 2005년 6월 정식 국가대표로 A매치에 출장해 첫 경기에서 득점을 올렸으며, 2008년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에서 득점왕을 수상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는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1골을 넣어 2-2무승부로 16강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2012 런던 올림픽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그 유명한 박시탈을 선보이기도 했다.
상세 ¶
동료를 이용하는 움직임, 빈 공간을 찾아 들어가는 날카로운 감각과 창의성 높은 플레이, 뛰어난 볼 컨트롤, 기존의 한국 공격수들에게서 보기 힘들었던 문전 앞에서의 침착한 볼처리와 정확한 슛으로 한국에서 '축구천재'로 불렸었다. 청구중학교, 청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시절인 2001년 프로구단 포항스틸러스의 후원으로 브라질에 1년간 축구유학을 다녀왔으며 2003년 대통령금배 전국고교축구대회 득점왕, 추계 중고축구연맹전 득점왕, 2004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득점왕과 MVP 등 각종 청소년 대회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며 한국축구를 이끌어갈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다.
2005년 FC서울에 입단해 32경기에 출장, 18골이라는 놀라운 득점력을 보였으며 그 해 프로축구 올해의 선수상, 신인상, 인기상, 득점왕 등을 휩쓸었다. 특히 프로축구 최초의 만장일치 신인상을 이끌었던 점과 당시 사기캐릭으로 불리던 고려대 선배 이천수와 MVP 경쟁을 했다는 점은 K리그 역사상 최고의 루키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2006년에는 33경기 10골로 부진했으나 2007년에는 잦은 부상으로 출장 경기 수가 줄었음에도 15경기 5골의 성적을 냈다. 2008년 9월 프랑스의 AS모나코FC로 이적한 박주영은 첫 경기에서 1득점과 1어시스트를 하는 등 매 경기마다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면서 단숨에 핵심선수로 부각되어 이적한 바로 다음 달인 10월에 팀 최우수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2008-09시즌 35경기 출장 5골, 2009-10시즌 22경기 9골 등의 활약을 보였다. 그리고 2010-11 시즌은 강등권 팀에서 12골을 넣으며 공격 전체적인 면에서 팀을 이끌었으나, 모나코는 강등되었다. 동시에 여러 명문 팀들과 이적설이 돌았으나, 결국 아스날을 선택했다.
청소년대표로 일찍부터 국가대표로 뛰던 박주영은 2005년 6월 정식 국가대표로 A매치에 출장해 첫 경기임에도 득점을 올렸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뚜렷한 활약을 보이지 못했으나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축구 국가대표, 2007년 아시안컵 국가대표, 2008년 동아시아연맹 축구선수권대회 등에서는 활발한 경기를 펼쳐 2008년 동아시아 축구선수권대회 득점왕을 수상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 참가하여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1골을 넣어 2-2 무승부로 16강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그리고 광저우 아시안 게임 동메달에 이어, 2012년 런던에서 한국 축구 역사 상 첫 메달을 획득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클럽 ¶
역대기록 | ||||||||||||||||||||
시즌 | 팀 | 소속 리그 | 리그 | FA컵 | 리그컵 | 대륙 축구 클럽 대항전 | 기타 컵 대회 | 총계 | ||||||||||||
경기 | 골 | 도움 | 경기 | 골 | 도움 | 경기 | 골 | 도움 | 경기 | 골 | 도움 | 경기 | 골 | 도움 | 경기 | 골 | 도움 | |||
2005 | FC 서울 | K리그 클래식 | 19 | 12 | 3 | 2 | 0 | 1 | 11 | 6 | 1 | - | - | - | - | - | - | 32 | 18 | 5 |
2006 | 26 | 7 | 1 | 2 | 2 | 0 | 4 | 1 | 0 | - | - | - | - | - | - | 32 | 10 | 1 | ||
2007 | 11 | 2 | 0 | 1 | 0 | 0 | 3 | 3 | 0 | - | - | - | - | - | - | 15 | 5 | 0 | ||
2008 | 13 | 2 | 4 | - | - | - | 4 | 0 | 0 | - | - | - | - | - | - | 17 | 2 | 4 | ||
08~09 | 모나코 | 리그앙 | 31 | 5 | 5 | 3 | 0 | 1 | 1 | 0 | 0 | - | - | - | - | - | - | 35 | 5 | 6 |
09~10 | 27 | 8 | 3 | 5 | 1 | 0 | 1 | 0 | 0 | - | - | - | - | - | - | 33 | 8 | 5 | ||
10~11 | 33 | 12 | 0 | - | - | - | 2 | 0 | 0 | - | - | - | - | - | - | 35 | 12 | 0 | ||
11~12 | 아스날 |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 1 | 0 | 0 | 1 | 0 | 0 | 2 | 1 | 0 | 2 | 0 | 0 | - | - | - | 6 | 1 | 0 |
12~13 | 셀타 비고 | 프리메라 리가 | 22 | 3 | 0 | 4 | 1 | 0 | - | - | - | - | - | - | - | - | - | 26 | 4 | 0 |
13~14 | 왓포드 | 풋볼 리그 챔피언십 | 2 | 0 | 0 | - | - | - | 1 | 0 | 0 | - | - | - | - | - | - | 3 | 0 | 0 |
14~15 | 알 샤바브 | 사우디 프로페셔널리그 | 7 | 1 | 0 | - | - | - | - | - | - | - | - | - | - | - | - | 7 | 1 | 0 |
2015 | FC 서울 | K리그 클래식 | 23 | 7 | 2 | 1 | 2 | - | - | - | - | - | - | - | - | - | - | 24 | 9 | 2 |
2016 | 34 | 10 | 1 | 5 | - | 4 | - | - | - | 10 | 1 | 2 | - | - | - | 49 | 11 | 7 | ||
2017 | 32 | 8 | 1 | 5 | - | - | - | - | - | 4 | 2 | - | - | - | - | 36 | 10 | 1 | ||
2018 | 11 | 1 | 0 | - | - | - | - | - | - | - | - | - | - | - | - | 11 | 1 | 0 |
국가대표 ¶
2017년 9월 5일 기준이다.
박주영 국가 대표팀 득점기록 | ||||||||||
일시 | 장소 | 상대팀 | 경기결과 | 대회명 | ||||||
2005년 6월 3일 | 타슈켄트 | width=30 우즈베키스탄 | 1-1 | 2006 FIFA 월드컵 독일예선 | ||||||
2005년 6월 8일 | 쿠웨이트 | width=30 쿠웨이트 | 4-0 | 2006 FIFA 월드컵 독일예선 | ||||||
2006년 1월 21일 | 리야드 | width=30 그리스 | 1-1 | 친선경기 | ||||||
2006년 1월 25일 | 리야드 | width=30 핀란드 | 1-0 | 친선경기 | ||||||
2006년 3월 1일 | 서울 | width=30 앙골라 | 1-0 | 친선경기 | ||||||
2008년 2월 17일 | 충칭 | width=30 중국 | 3-2 (2득점) | 2008 동아시안 컵 | ||||||
2008년 5월 31일 | 서울 | width=30 요르단 | 2–2 | 2010 FIFA 월드컵 예선 | ||||||
2008년 6월 7일 | 암만 | width=30 요르단 | 1–0 | 2010 FIFA 월드컵 예선 | ||||||
2008년 11월 19일 | 리야드 | width=30 사우디 아라비아 | 2-0 |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 예선 | ||||||
2009년 6월 6일 | 두바이 | width=30 UAE | 2–0 |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 예선 | ||||||
2009년 8월 12일 | 서울특별시 | width=30 파라과이 | 1-0 | 친선경기 | ||||||
2009년 9월 5일 | 서울특별시 | width=30 호주 | 3–1 | 친선경기 | ||||||
2010년 5월 24일 | 사이타마 | width=30 일본 | 2–0 | 친선경기 | ||||||
2010년 6월 23일 | 더반 | width=30 나이지리아 | 2–2 |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 | ||||||
2011년 3월 25일 | 서울 | width=30 온두라스 | 4–0 | 친선경기 | ||||||
2011년 6월 3일 | 서울특별시 | width=30 세르비아 | 2–1 | 친선경기 | ||||||
2011년 9월 2일 | 고양시 | width=30 레바논 | 6–0 (3득점) |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예선 | ||||||
2011년 9월 7일 | 쿠웨이트 | width=30 쿠웨이트 | 1–1 |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예선 | ||||||
2011년 10월 11일 | 수원시 | width=30 UAE | 2–1 |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예선 | ||||||
2011년 11월 11일 | 두바이 | width=30 UAE | 2–0 |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예선 | ||||||
2014년 3월 5일 | 아테네 | width=30 그리스 | 2–0 | 친선경기 |
연령 | 출전 | 골 |
U - 17 | 0 | 0 |
U - 20 | 26 | 18 |
U - 23 | 30 | 12 |
A 대표 | 68 | 24 |
종합기록 | 124 | 54 |
주요 개인 수상 ¶
- 대구 MBC배 고교축구대회 득점왕 : 2003
- 금강대기 전국 중고축구대회 득점왕 : 2003
- 대통령금배 전국고교축구대회 득점왕 : 2003
- 추계 중고축구연맹전 득점왕 : 2003
-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 득점왕 : 2004
-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 MVP : 2004
- 아시아축구연맹(AFC) 선정 올해의 청소년 선수상 : 2004
- 카타르 8개국 초청 국제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득점왕 : 2005
- 카타르 8개국 초청 국제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MVP : 2005
- 자황컵 체육대상 프로선수상 : 2005
- 스포츠서울 올해의 프로축구 대상 올해의 신인상 : 2005
- 스포츠서울 올해의 프로축구 대상 올해의 인기 선수상 : 2005, 2006
- 스포츠서울 올해의 프로축구 대상 올해의 득점왕 : 2005
- 스포츠서울 올해의 프로축구 대상 올해의 선수상 : 2005
- 일간스포츠 - 아디다스 프로축구대상 신인왕 : 2005
- 일간스포츠 - 아디다스 프로축구대상 골든슈 : 2005
- 일간스포츠 - 아디다스 프로축구대상 골든볼 : 2005
- 삼성 하우젠 K리그 대상 신인왕 : 2005
- 삼성 하우젠 K리그 대상 베스트 XI : 2005
-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득점왕 : 2008
- AS 모나코 10월의 최우수 선수 : 2008
- 제16회 광저우 아시안 게임 동메달 : 2010
- AS 모나코 11월의 최우수 선수 : 2010
- AS 모나코 12월의 최우수 선수 : 2011
- 아시아축구연맹(AFC) 선정 아시아 베스트 XI : 2011
- 런던 올림픽 축구 동메달 : 2012
표로 보기 ¶
플레이 스타일 ¶
지금은 폼이 많이 하락했지만 한때는 '천재'라는 수식어가 사실 부끄럽지만은 않은 선수였다. 특히, 이전까지의 한국 축구의 공격수들은 골대 앞에서 잔뜩 힘이 들어간 플레이를 하기가 일쑤였는데, 신인이던 당시 언론으로 부터 "한국 축구 최초로 골대 앞에서 침착함을 갖춘 천재"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골대 앞에서의 플레이가 여유있었다. 특히 팀 동료를 이용하는 플레이나 빈 공간으로의 쇄도, 2선에서의 침투는 대한민국에서는 발군의 능력을 자랑했다. 뛰어난 키핑력에 국대에서 차두리에 이은 2위에 랭크되는 스피드를 가지고 있으며, 점프력면에서도 뛰어나 (모나코 피지컬 테스트에서 점프기록 1M를 달성..마이클 조던 강백호와 동급이다) 180초반대라는 키를 생각해보면 상당한 제공권을 가지고 있다. 이 점프력을 이용한 정확한 떨구기도 수준급이었다. 이 당시 쉐도우 스트라이커로서의 능력을 바탕으로 판타지스타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초년병땐 한국 공격수의 평균보다 키핑력이 좋았지만, 세계레벨에서는 키핑력을 활용하는 면에서 약점을 보였다. 낮은 레벨에서는 시야와 패스 능력이 좋아서 공을 끌어도 별 상관이 없었지만 높은 레벨일 때는 약점으로 작용했던 것. 등진 상태나 회전하면서 다음 동작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을 자주 보여주었는데, 프리미어리그 레벨의 수비수들은 박주영보다 운동능력이 뛰어났기에 박주영의 다음 동작이 따라잡히면서, 결과적으로 공을 질질 끌면서 템포만 잡아먹는 결과가 나타났던 것이다.
드리블의 경우 전성기 때에는 뛰어난 순간 속도와 예측력을 기반으로 한 번에 확 치고 나가는 스타일을 선호했다. 즉 일단 공을 잡아놓고 상대 수비수가 마크하러 오면 수비수의 다음 행동을 예측해서 반대 방향으로 순간적으로 확 치고 나가는 스타일이었다. 볼 키핑력과 순간속도, 예측력이 있기에 가능한 스킬이었는데 무릎 부상을 포함한 피지컬 하락과 폼이 죽으면서 이런 스타일의 드리블은 잘 시도하지 않는다. 다만 아직도 예측력은 유효한 강점으로 상대 수비의 움직임이나 공의 흐름 같은 것을 잘 읽는 편이다. 그래서 흐르는 볼에도 강점이 있다.
위치선정도 뛰어난 편이다. 특히 유럽 진출 전 선수생활 초기에는 오프사이드 라인을 타다가 침투해서 득점하는 경우가 많았다. 유럽진출 이후 피지컬을 보강하면서 버티고 헤딩을 따내는 스타일로 변모했지만, 어린시절 피지컬이 부족한 시절에는 라인선상에서 왔다갔다하며 침투해서 골을 넣거나 나와서 공을 받고 수비수를 제껴서 넣는 2지선다형 공격수였다.
프리킥도 상당히 뛰어나다. K리그 역사에 손꼽히는 프리킥 장인 이천수, 김형범, 염기훈보다는 떨어지지만 그 다음 티어는 되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대표팀에서 프리킥을 전담하는 손흥민보다는 한수 위였다.
커리어 초기 가장 큰 약점이었던 것은 몸싸움. FC서울 시절 당시 박주영은 높은 키핑력과 발재간, 골 결정력으로 먹고 사는 선수였지만 몸싸움에서 약점을 보였는데, 당시 정교한 패스로 상당수의 골 기회를 제공해 주었던 히칼도 역시 몸싸움에서 약점을 보였다. 이 시기 박주영이 잘 나가던 것도 데뷔 당시의 전반기 시즌뿐으로, 후반기 시즌에 들어서면서 이미 박주영 공략법이 나왔다는 말들이 다른 팀 수비수들의 인터뷰에서 흘러나왔고 실제로 박주영의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상대팀이 거친 몸싸움으로 대응해오면서 후기리그에 FC 서울의 성적이 크게 하락하는 원인이 되었던 것. 2006년에도 2005년 후반기 시즌처럼 수비수에게 패턴이 읽혀서인지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그나마 2007년 세뇰 귀네슈가 부임한 이후에는 스트라이커가 아닌 사이드 미드필더로 뛰면서 경기력을 크게 회복했지만, 데뷔시즌 말고는 스탯생산력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모나코 이적 이후 한동안은 몸싸움에서 너무 밀려서 스피드에만 의존해야 해서 예상보다 저조한 커리어를 찍게 됐지만, 그대로 도태되는 대신 스스로를 갈고 닦아 몸싸움과 제공권 능력은 아주 크게 보강했다. 모나코 2,3년차 09/10~10/11시즌 사이의 박주영은 한국에서 독보적인 중앙 공격수 였다. 이 최고의 중앙 공격수라는게 무슨 골을 많이 넣는 선수라는게 아니다. 한국 최고의 스코어러는 아니었지만 현대 축구에서 필수적인 원톱 역할, 수비진과 경합하며 골문 부근에서 공을 따내고 지키는 공성추 역할은 대체할 사람이 없었다. 물론 그 반동으로 청대때의 화려한 모습은 사라졌지만 현대축구에서 중앙 공격수는 무조건 포스트 플레이가 우선이고, 득점력은 다음이다. 어정쩡한 올라운드 원톱이나 고전적인 스트라이커는 현대 축구, 특히 세계무대에서 언더둑 입장인 한국같은 팀에겐 효용성이 떨어졌다. 현대 축구는 대체적으로 원톱이 직접 때리는 임무보다 상대 수비수의 집중력과 힘과 어그로를 빼면서 2선 공격수들에게 도움과 공간을 주는게 첫번째 이며 이게 커리어 중반기 스코어러론 더 빼어났던 이동국을 제칠 수 있었던 이유다.
이런 타입 특성상 골 결정력 지적은 늘 받았다. 아스날에서 박주영을 영입할 때 모나코 팬들은 아스날 팬들에게 기술이 뛰어나고 영리하지만 1:1 결정력이 약한 선수라고 소개했는데 컨디션에 따라 결정력이 들쭉날쭉 했다. 라이트 팬들 입장에선 답답한 점이 많은 선수였는데 코칭 스태프 입장에선 육체적 능력과 축구지능이 좋아 최전방에서 혼자 공을 지키고 뿌리며 플레이를 만들 수 있는 박주영을 선발로 보낸다. 그런데 골을 시원시원하게 못넣는다. 강팀이랑 할 때만 그런게 약팀하고 할 때도 그러니 TV로 보는 팬 입장에선.
집중력과 투쟁심 부족도 큰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는데, 침착하게 페이스를 유지하는 건 좋지만 페이스를 확 끌어올려야 할 지점에서도 침착하게 본인의 페이스와 리듬만 유지하다 템포를 못 따라가 잠깐 멍하니 있는다거나, 안일하거나 어이없는 플레이가 한 번씩 나오곤 한다. 투지 부족도 가끔 지적된다. 그래서 한국이 상대적으로 약팀과 경기하는 아시아권 대회에서 맹위를 떨쳐야 함에도 최용수나 황선홍 이동국처럼 상대를 압살하는 플레이는 거의 보여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너무 약팀과 붙을 경우 본인의 집중력이 크게 떨어져 루즈한 플레이를 자주 보여주기 때문이다.
데뷔부터 지금까지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활약상을 쭉 돌이켜보면 들쭉날쭉 극심한 널뛰기를 뛴 것 같지만, 사실 뜯어보면 의외로 일관성이 있다. 실력에 비해 활약상이 저조했을 때는 예외없이 팀에서 에이스 대접을 받지 못할 때였다. 일종의 멘탈 문제라고 할 수도 있는데, 본인 위주로 팀이 돌아가야만 플레이가 온전히 살아난다. 이것을 한때 설이라는 말이 있었으나 모나코를 제외한 아스널 셀타비고랑 비교해 2016년 4월 현재 최고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FC서울과 박주영을 보았을때 확실해 보인다. 왓포드랑 알샤밥은 판단이 힘들다
확실히 왕자병 기질만을 멘탈 문제라고 말하기는 어렵긴 한데, 박주영의 문제는 이 왕자병 기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투지나 집중력 부족도 동시에 지적받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팀 페이스가 어떻게 흘러가건 항상 내 페이스는 유지하지만, 또 팀의 중심이 되어야 하며 강한 상대와의 싸움에서는 밀리지 않지만 약자에게는 또 집중력이 떨어지는, 그렇지만 딱히 대체할만한 기량을 가진 선수는 없는 대단히 드문 케이스.
국내복귀 이후 FC서울의 미드필더진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때는 직접 3선까지 내려가며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인다. 원래 미드필더 출신인 만큼 킬패스나 경기운영 능력도 뛰어나다.
어쨌든 박주영은 한국 축구에서 비교적 현대적이고, 또 축구적으로 멘탈, 피지컬, 스킬을 통틀어 대단히 독특한 캐릭터를 지닌 선수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이동국과 달리 FIFA 월드컵이나 올림픽 축구처럼 큰 경기에서 결정적 한 방을 잘 터뜨려 주었기에 박주영이 비난을 받더라도 어느 정도 쉴드치는 사람들도 있고 그들의 논거도 충분히 합리적이긴 하다. 더군다나 박주영은 월드컵,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3대[3] 메이저 축구대회에서 모두 골을 넣어본 단 3명[4]뿐인 대한민국 축구선수.
아니, 그런 큰 경기에서 골을 넣어준다는 것 자체가 축구선수의 중요한 실력이니만큼 박주영은 실력없는 선수라는 비아냥을 들을 만한 위치는 절대로 아니다. 이동국이 성실한 국가대표(내신에 강하고 수능에 약한 학생)였다면 박주영은 좀 많이 뺀질거리지만(?) 현대축구에 요구하는 장점을 확실하게 갖췄고 필요할 때 뻥뻥 잘 터뜨려줘서 포기할 수 없게 만들었던(내신은 바닥인데 수능은 기가 막히게 잘 치는 학생) 캐릭터다. 박주영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양쪽에서 모두 멘탈이 매우 강한 편이란 점은 분명하다. 다만 태도문제나 일관성 없는 행보 등으로 인한 논란이 좀 많은 것이 문제.
별명 ¶
인지도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 엄청 까이는 인물이다 보니 별명이 무식하게 많다. 가나다순으로 정리되어 있으니 추가시 유의 바람. 야구의 김별명 같은 항목에서 명확하게 영향을 받아 생겼으며, 김별명 등 이 위키의 별명 항목은 까는 별명 좋은 별명 무차별적으로 기록되어 있고, 위키 전체적으로 볼 때 박주영만 이상한 항목이 아니다.
- JYP : 원래 영문 표기는 Chu-Young Park 이었으나, 모나코 이적 후 마킹을 J. Y. PARK으로 달기로 하면서 진짜 JYP가 되었다.
- 관중영: 경기에 계속 나가지 못해서 관중이나 다름없는 신세라 관중+(박주)영.
- 겨유득 : 겨레의 유일한 득점 루트. 2012년 셀타 임대 당시 걸렸던 박주영 팬카페의 메인화면. #
- 공원 : 성인 박씨로 인해 쓰이는 별명인데 워낙 흔한 명사라서 박주영의 화제도가 한창 상종가를 칠 때나 좀 쓰였지 별로 잘 쓰이지도 않았다.
- 도주영 : 이 별명은 도주영 30년 축구 인생의 모토에 대한 압축적 표현이다. 행위의 결과는 이미 주체 안에 내재되어 있었다는 일부 철학 학파의 시선으로 볼 때 도주영 별명 석 자는 포항에서 서울로 달아날 때부터 예고되었다, 이후 모나코에서 릴로 이적하려다 벵거의 전화를 받고 아스날로 이적하며 도주영 3글자는 거의 수면 가까이까지 부상하였으나, 축구선수의 전격적 이적은 왕왕 있어온 일이라 현실화되기에는 아직 충분치 못하였다. 그러나 최강희 감독의 부름은 시종 무시하면서도 홍명보 감독의 부름은 덜컥 받아들여 병역에서마저 성공적으로 도주하는 기이한 솜씨가 아니고서야 도주영 세 글자 별명은 성공적으로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후에도 박주영은 표홀히 아스날, 왓포드, 알 샤밥 등지를 방랑하며 주급만은 쏙쏙 챙겨먹는 솜씨로 도주영 세 글자 이름을 드높였다.
- 동팡주영 : 비슷한 맥락에서 한 때 맨유에 존재하기만 했던 중국인 공격수 동팡저우에 빗대.
- 따봉박 또는 박따봉 또는 꿀엄지 : 유래는 너무도 명확하다.
- 따봉충(-蟲)[5]
- 모나코왕자 : 타 별명과 달리 박주영이 모나코에서 잘나가던 시절의 별명.
- 모나코인, 모나코박 : 병역기피 시도 후에 한국 브라운관에 자주 비치기는 하는데, 한국 스포츠계 초유의 국적미상 상태의 선수라 이 선수의 국적이 도대체 어디인지 논란이 분분했던 가운데 일부 인물들은 그가 모나코인이라고 여겼던 듯하다.
- 무슈 팍 : 만약 그가 모나코인이라면 마땅히 프랑스어를 사용해서 불러야 하기 때문에, 프랑스의 남성 호칭인 무슈를 활용하였다.
- 무적의 스트라이커 : 말 그대로 무적(無籍)의 스트라이커였기 때문에.
- 박시탈 : 런던올림픽에서 일본 상대로 선제골을 터트려서 얻은 별명.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인 각시탈에 빗대어 등장한 멋있는 별명이다. 당시 런던 올림픽에서 대회 내내 경기력이 저조하다 일본 상대로만 선제골을 박은, 마치 항일 암살자 같았던 박주영의 모습을 빗대는 측면도 있다.
- 밥꼼수: 병역과 관련해서 일반인들은 듣도 보도 못한 온갖 법조항 사이를 누비는 모습을 보고 붙은 비아냥. '밥'은 박주영의 다른 별명인 '밥줘영'에서 유래.
- 박나모토 : 아스날에 잠시 소속되었던 일본 축구선수 이나모토와 같다 하여. 이나모토는 아스날이 경제적 목적으로 영입한 후 출전시키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다.
- 박코치 : AS 모나코 시절 한창 폼이 좋았을 당시 팀 공격진 중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생긴 별명. 축구를 배우러 갔는데 오히려 가르친다고.
- 박힐러, 프리스트 박 : 박주영이 아스날을 떠난 이후 몇몇 선수가 박주영 아스날 재직시에는 건강했으나 그 전후에는 부상에 시달리던 선수인 것이 발견, 박주영의 존재가치를 새롭게 발견한 팬들이 환호하며 찬양하기 위해 붙인 별명. 사실 박주영은 벤치에서 힐과 버프를 주며 선수들을 회복시키는 역할로 기용한 벵거의 혜안이었음이 밝혀졌다. 무엇보다 박주영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종교적인 이미지와도 잘 어울리며 성공한 별명.
- 박XX : 일부 입이 거친 사람들이 지나친 비속어를 사용하여 이렇게 잠시잠깐 불렀다. 당연히 평소에는 한국 축구에 관심 없고 앞으로도 없을 월드컵 냄비들이다. 왜냐면 2014년 발효된 별명인데 그 전까지의 행보를 고려해 볼 때 월드컵에서 똥 쌀 것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고 병역기피 등등의 행적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사실 어찌 보면 일반명사에 가까운 비속어들로 특정인물을 호칭하기에는 대한민국에 박씨가 너무 많다.
- 밥줘, 밥줘영: 박주영의 이름을 비슷한 발음으로 웃기게 비튼 것.[6] 줄여서 '밥줘'라고도 한다. 깔 때 쓰기도 하지만 그냥 쓰는 팬도 많으며 사실상 박주영의 주요 별명 중 하나로 정착했다. 알샤밥으로 이적하며 알샤밥줘영, 알샤밥줘, 알밥샤줘영 등의 바리에이션이 생겼다. 그러나 알 샤밥 시절에서 별다른 임팩트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바람에 알샤밥줘영 등은 조용히 묻혔다.
- 버블팍 : 아스날 입단 후 여러모로 거품(버블)에 가까운 모습이 보여지며 붙은 별명. 발음 자체는 현아의 히트곡인 Bubble Pop!의 패러디이다. 기사 댓글에서 주로 "버블버블 팍팍"[7] 하면서 조롱할 때 자주 쓰였다. 곡의 연차가 오래되고 박주영의 거품도 꺼지면서 점차 생명력을 잃었다.
- 봉와주영 : 소위 황제훈련 도중 봉와직염을 앓으면서 유래했다. 많은 남성들이 군대 시절 행군과 함께 접하게 되는 병명이다. 대부분의 남성은 군생활 도중 행군경험이 있으므로 약간의 위생관리만으로도 발병을 억제 가능함이 널리 알려진 바이며, 주로 더럽고 게으른 고참이나 게으르진 않지만 바짝 쫄아붙어 있는 이등병들이 자주 걸리며 모두의 골머리를 썩게 하는 병으로 유명하다. 친숙하면서도 동시에 짜증스러운 주제였기 때문에 수많은 네티즌들은 프로 축구선수의 위생관리에 대한 의문과 함께 위생상태 불량에 관한 혐오감을 표시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나 애초에 더러운 질병이라 생명력이 길 수 없는 별명으로 잠시잠깐 반짝했다.
- 벤치영: 경기에 계속 나가지 못해서 벤치에 앉아 있는 신세라 벤치+(박주)영.
- 사우디박 : 사우디 시절 종종 사용되던 별명.
- 선례왕(先例王) : 합법적 병역 연기 및 면제는 물론 포항에서 서울로의 도주 등 박주영 인생 전반을 걸친 선구자적 면모가 일반인들에게는 상상의 영역조차 초월한 바, 박주영에게는 감히 왕의 칭호가 어울리다고 뭇사람들이 기림과 함께 얻은 영예로운 별명. 인간 박주영의 생애 전반에 대한 깊고 날카로운 통찰이 빛난다.
- 스텔스박 : 브라질 월드컵에서 공격수인데 마치 스텔스기와 같이 적의 시야에 잡히지 않았다. 엄지를 들어올릴 때 빼곤 아군의 시야에도 잘 잡히지 않았던 것은 덤.
- 스티붕밥(박): 모나코 장기 체류를 통한 병역 연기한 모습이 같은 예체능계에 종사하던 00년대 가요계의 전설적 댄스 가수 스티브 유와 같다 하여 그의 별명 '스티붕 유'에서 이름을 따와 사용되었다. '밥'은 밥줘영에서 온 것.
- 승부사 : 2010년 국가대표 훈련시 한 동영상에서 "야 형 승부사야 임마" 하면서 코너킥 위치에서 골대 안으로 공을 집어넣은 것에서 유래. # 이후 인생의 분수령이나 갈림길마다 귀신같은 결단력을 보여주면서 재조명. 골결정력과는 전혀 관계 없음. 이따금 박주영의 경기력이 좋았을 떄 신문 기사에서도 박주영을 승부사라고 호칭하며 이 별명의 영향인지 그 빈도가 다른 선수들보다는 조금 더 많은 것처럼 보이긴 하나 그 날 경기 폼이 좋으면 종목 불문하고 쓰이는 단어이기 때문에 크게 구별될 정도의 의미는 없다. 결국 기막힌 승부수를 던지고 연이어 성공한 그의 인생역정과 관계가 깊은 별명이다.
- 썬더 : 남아공 월드컵 때의 아디다스 광고문구 '모든 팀에는 썬더가 필요하다'에서 유래. #
물론 비꼬는 의미이다.박썬더 벤치썬더 등으로 응용된다.
- 영박 : 아스널 홈페이지에서 박주영의 성명을 영박으로 표기하는 바람에 생긴 별명.주 영박
- 액받이 무녀: 출처.
- 일류 : 브라질 월드컵 종료 당시 힘들 때 웃는 게 일류라는 이상민의 발언이 그의 과거 행적과 대비되며 비꼬는 의미로 이너넷에서 한창 유행하고 있었다. 때마침 벨기에전이 종료된 후 손흥민이 울고 있는데 박주영은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의 사진에서 유래하였다. 이후 귀국 사진에서도 비교적 여유로운 모습의 사진들이 찍히며 잠깐 유행했다. 2017년까지도 어리석은 족쟁이들이 승부 같은 것에나 집착하면서 울고불고하지만 박주영이 여유로운 모습을 과시하거나 할 때 가끔 쓰인다.
- 주님영 : 주멘보다는 좀 비꼬는 성향 이 덜하지만 어쨌든 종교색을 강하게 드러내는 박주영의 행태를 눈꼴시게 보는 일부 인물들이 이렇게 부른다.
- 주님요 : (기도 세리머니→)주님 + 브라질 축구스타 주닝요 패러디. 당연히 이 별명은 비꼬는 맥락에서나 쓰이며, 주님영보다 귀염성이 덜하다.
- 주멘: 박주영의 주요 별명 중 하나. 주님 또는 박주영 + 아멘 또 다른 뜻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때 주영 또는 주멘으로도 불린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라는 뜻으로도 쓰이며 야구의 종범과 비슷한 의미.
- 주영신(갓주영) : 비꼬는 의미로 더욱 많이 쓰이나 가끔 가다 현실이 되기도 한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 골을 넣고 잠시 이런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가끔이라고 하기도 뭐한것이,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동메달 결정전 딱 한 순간뿐이고 그 이후에는 없다.
가끔은 가끔인데 가끔이 너무 가끔이야. 그리고 사실 한일전 그것도 청대에서 한골 넣었다고 갓주영이면 역대 한일전 최다득점자인 최정민은 옥황상제인가?취소선 드립처럼 한계가 너무 명확하기 때문에 2017년까지도 가끔 축구 사이트에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으나 집중포화를 맞고 사라지곤 한다. 그러나 슈틸리케호 말기 축구 국가대표팀의 부진이 너무나도 심했기 때문에 자조적인 의미로 상당한 호응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착각을 심하게 한 나머지 진지하게 주영신 같은 얘기를 과도하게 하면 집중포화를 맞고 버로우하게 되니 한계를 명확히 알고 주의하자. 박주영은 국대에서 잘 나갔던 시절은 정확히 말해 08-12년이 전부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08년 동아시아컵부터 남아공시절엔 주전력으로 뽑혔고 본인도 피크시절 능력치지만 11년을 기준으로 터키 세르비아 가나 폴란드 는 평가전이었고[8]브라질 예선은 최종예선 같이 한국과 호각을 이룰만한 팀들이 아니었다.[9]하지만 알다시피 13년은 이적실패와 벤치를 달구면서 월드컵에서 주적이 되고 부진한것은 부정할수 없다.
- 주젊공, 공원, 젊은 공원 : 구글 번역기로 번역하면 박주영의 박이 공원으로 영이 젊다로 해석되어 주 젊은 공원이라는 해괴한 이름이 나오는데 이를 생략했더니 말맛이 생겨서 주로 쓰였다. 해외에서 돌아오고 나서 조금씩 사용빈도가 줄어들더니 현재는 잘 쓰이지 않고 있다.#
- 쪼꼬형 : SNS에 부인이 준 발렌타인 초콜릿을 인증하면서 쪼꼬라고 하는 바람에 쪼꼬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제는 FC서울 공식 인스타그램에서도 박주영을 쪼꼬형이라고 부른다...
- 토템박, 토템풋볼 : 아스날 시절 시작된 별명이다. 신비적, 주술적 요소를 듬뿍 함유하고 있는 별명으로 박힐러, 프리스트 박 등과 그 얼개를 함께 한다.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추태로 인해 더욱 널리 알려졌다. 주로 퐈이야와 짝지어 불린다.[10] 이들 둘은 필드에 서 있을 때는 무용지물이지만 벤치에 앉고 나서야 마치 옥침대와 같이 이로운 영향력을 은은하게 발휘한다는 취지의 별명이다.
- 합법줘: 합법적으로 병역을 연기했다며 비꼬는 의미에서 나온 별명. '줘'는 다른 별명 '밥줘영'에서 유래. 한국프로야구를 통해 이미 정착돼 있던 합법드립에다가 '밥줘영'을 결합했다. 물론 원래의 합법드립은 진짜 합법인 건 아닌데 합법화됐다고 오해해서[11] 비꼰 것이 정착된 것이지만, 박주영의 병역 연기는 진짜로 합법이었다는 점이 다르다.
- 힐러 : 힐에 능하다.
트리비아 ¶
- A매치 전대륙 상대 득점자이다. 득점 순서대로 보면 2005년 6월 3일 우즈베키스탄(아시아), 2006년 1월 21일 그리스(유럽), 2006년 3월 1일 앙골라(아프리카), 2009년 8월 12일 파라과이(남미), 2009년 9월 5일 호주(오세아니아), 2011년 3월 25일 온두라스(북중미) 순이다. 다만 호주의 경우 OFC 소속이 아닌 AFC 소속일 때 기록한 득점이라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2018년 현재까지 이 기록은 황선홍, 박주영, 이동국, 손흥민만 보유하고 있다.
- 기자들이 무척 싫어하는 선수들 중 한 명이다. 한창 박주영으로 뜨거울때 인터뷰 요청을 안 받아주고 피해다녀서 그렇다고 한다. 심지어는 셀타 비고 이적 후에도 저런 태도로 일관해서 결국 현지에서도 비난하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박주영의 인터뷰 거부에 대한 관련 글 공식 인터뷰는 피한 적이 없으나 축구 선수에게 이런저런 기자와 언론의 사적 인터뷰 제의를 다 거절하면 공식 인터뷰라는 것이 몹시 드물기 때문에 프로 선수는 구단의 사업을 돕고 지지해주며 돈을 쓰는 팬들에 대한 의리상 인터뷰에 적극적이어야 할 의무까지는 아니어도 필요가 있다. 여담으로 그의 성격자체가 한 몫했고 그 성격의 소유자가 어린 시절 국내 기자들에게 시달리다보니 그렇게 된 듯.
- K리그 팬이 아니면 잘 모르던 사실인데 FM 제작사인 스포츠 인터랙티브에서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2006버전부터 포항 스틸러스의 싫어하는 인물에 박주영을 넣어놨다. 그것도 혐오도 90에 영구적으로 혐오 체크까지. 실은 한국 FM 평점 주는 것은 한국 사람이 한다. 그래서 이영표 선수가 싫어하는 선수에 이임생이 들어가 있을 정도. 하지만 주관적인 평가가 많이 개입되면 나중에 제작사에서 모든 데이터를 취합한 뒤 상식껏 조정을 한다고 한다.
- 풋볼 매니저에서의 능력치는 K리그 시절에는 유럽 주요 리그를 제외한 타 리그는 스카우터를 파견하지 않고 리그의 수준에 맞춰 랜덤 포텐[12]으로 대신하게 되어있는지라 선수의 능력치를 잘 표현을 못했으나 유럽리그인 AS 모나코 이적 이후에는 활약에 맞추어 능력치가 개편되었다. 개편 이후 2010까지 양발은 유지한 채 포워드의 능력치는 전체적으로 좋아졌으나 그에 맞춰 구단 내의 위상이 핵심 선수로 변경됨에 따라 초기 시작 시기에 영입을 타진하려면 400억 이상의 영입료를 지불해야 한다. 2011버전에 또다시 개편되어 양발 사용이 오른발 사용으로 바뀌면서 그에 비례해 전체적인 능력치가 올라갔다. 하지만 아스날에 가면서 제대로 출전하지 못한 탓인지, 2012에서는 골결정력이 11로 내려가는 등 폭풍 하향을 먹었다. 2013에도 골결정력이 또 10으로 내려갔으나 AS 모나코 시절의 능력치가 높게 평가되었는지 신체적 능력, 퍼스트 터치[13] , 정신적 능력은 그리 너프되지 않아 감독의 전술적 역량에 따라서는 다득점을 노릴 수 있다. 2015에서는 월드컵에서의 엄청난 활약과 아스날의 강제 방출 및 무적기간 덕분에 전작의 유럽 하부리그 준주전급 선수에서 유망주급 능력치로 변경되어 엄청난 너프를 먹었다.##. 모나코 시절까지는 중간은 가던 프로 의식도 아스널에서의 먹튀 행각과 셀타비고 임대 시절 보여준 워크에식 때문인지 fm 2018 기준으로 멘탈갑 수준의 6이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발로텔리와 동급이다.
멘탈갑의 전설들 테베스는 2, 아드리아누와 카사노는 3.
- 피파에서는 K리그 시절 초기에는 상당히 좋았으나 그 다음부터 부진해 능력치가 유망주 급으로 변화. 모나코 이적후 70대 중반의 아시아인 치고는 상당히 쓸만한 능력치로 둔갑했다. 피크시절에는 80까지도 올라가며 아시아 최강 포워드로서 이름을 날렸으나 아스날에서 셀타로 이적할시 약간 능력치가 하향되었다. 전체적으로 뛰어나고 결정력이 좋은 포워드임에도 셀타에서 삽질이 반영되어 아스날 재복귀시 70대 초반으로 다운되어 버렸다. 월드컵에서 삽질 후 60대 후반까지 떨어졌다.15년 FC서울 복귀시엔 능력치가 60대 중반까지 너무 다운돼 대표팀에서도 써먹기 힘든 레벨까지 떨어졌다. 16년에 60대 후반까지는 복귀했으나 데얀(77) 아드리아노(72)에 비하면 조커 이상으로 쓰기 힘든 능력치가 되었다. 능력치로 보는 그의 일대기
- 위닝일레븐에서는 데뷔 때부터 20살 주제에 80대에서 70대 중반 능력치를 주렁주렁 달고 나오는데다 마스터리그에서 키우면 괴물이 되는 존재로 만들어 놓고 모나코 이적 후로는 피지컬에다 헤딩능력도 80대로 설정되어 대표팀과 팀내 에이스급 선수로 설정되었다. 너프를 잘안시키는 위닝 특성상 브라질 때까지도 손흥민에 이어 넘버2의 한국인 능력치를 받았으나 다음해부터 현실을 반영해 70대 초반으로 엄청난 너프를 받았다. 2017에서 약간 상승했으나 전성기에 비하면 부족한 능력치다. 그러나 피파시리즈와는 달리 이동국에 비해 언제나 높은 능력치를 자랑한다.[14][15]
- 고려대 졸업 당시 서울 동북고등학교에 교생실습을 나간 적이 있다. 당시 동북고등학교 학생들이 축구하고 있었는데, 박주영이 나와서 학생들 공을 뺏고 드리볼 하던 도중, 학생들에게 공을 빼앗기고 마는데... 당황한 박주영은 다시 공을 빼앗아 중거리 슛을 날려 골을 넣었다는 일화가 있다.
- 2004년 청소년 대표팀에 소집되었으나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정기전 출장으로 이탈, 언론에서 뭇매를 때렸고 연대 학생들은 어디 얼마나 잘하나 보자 하고 벼르고 있었으나...연세대와의 정기전에서 연세대 수비진을 완전히 농락, 고대의 2-0 승리를 이끌었다. 그것을 본 고려대 학생들은 다음 해 고연전 축구를 매우 기대했지만 정작 결과는 무승부. 그것도 끝나기 5분여 전 극적인 동점골을 내주며 무승부를 맞이했다.
- 모나코의 구단주이자 모나코 공국의 공작 알베르 2세에게 초청장을 받은적이 있다고 한다. 모나코에서도 프리킥 연습을 빠지지 않고 하고 있다고 하는데 문제는 감독이 프리킥 찰 기회를 안준다. 모나코TV에서 니마니와 친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근데 니마니는 박주영에게 패스를 안 한다. 니마니는 결국 박주영과의 주전경쟁에서 패해 프리미어 리그 번리로 임대갔다.
- 잘 안 알려져 있지만 패션테러리스트다. 꼭 유니폼 팔 사이즈를 조금 크게 입어서 소매가 손을 덮고 있다. 소매로 손등 덮기는 어지간히 캐주얼한 옷을 입지 않는 이상 여자가 해도 드물게나마 지탄받을 수 있는 패션이다.
- 골을 넣으면 항상 기도 세레머니를 하는데 이에 대해서 항상 많은 말이 있다. 하지만 정작 팀동료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모양. 애초에 세레머니 후에 멀쩡히 동료들과 교류를 하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리그앙 시절, 스타드 렌 FC와의 리그경기에서는 골을 터뜨리고 세레머니를 할때 오히려 동료들이 장난을 치는걸 보면 그들도 즐기는 듯. 여담이지만, 웨인 루니의 슬라이딩 세레머니에선 아무말도 없다가 박주영의 세레머니에선 무릎다친다고 까는 해축팬들도 간혹 있다. 본인은 안정감을 준다고 한다. 하지만 세레모니하다가 부상 당하는 선수들도 있기 때문에 팬들에게는 괜히 애먼 상황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줬는데... 2010년 12월 25일,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부상으로 무릎에 크게 무리가 가서, 아직까지도 훈련장에서 무릎찜질을 하는 모습이 종종 포착되며, 비시즌 기간에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 2006~2008년 사이에, 너구리알이라는 사람이 박주영키우기 게임을 제작하였다. 하지만 관계자의 요청에 의해 현재는 모든 자료가 소실된 상태. 군복무 중 다른 게임으로 고소크리 맞고 그때까지 자신이 만든 게임을 전부 삭제했다. 덕분에 영창도 다녀왔다. 참고로 고소한 사람은 엔하위키 시절에 작성금지 되었다가 이 나무위키에서는 해금이 되었다.
- 2011년 6월 12일에 한살 연상의 모교 선배와 결혼. 가까운 사람들만 참석한 비공개 결혼식을 올렸다. 사회자는 이휘재, 축가는 김태우. 가나전 이후에는 선수들이 여러모로 축하(?)해줬다. 결혼축하 헹가레 받고 내동댕이 쳐져도 웃는다. 백호에게서 음료수 세례도 받았다.
- 2012년 즈음부터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탓에 까들의 활동이 부쩍 늘었다. 본진이라 할 수 있는 다음 해축게에서 공개적으로 타 사이트 공대를 모집하고 있을 정도.참고. 이런 무개념 박까들의 난입으로 개소문닷컴의 청정지대(?)[16] 중 한 곳이었던 축구 게시판이 이미 큰 피해를 입었다.
- 박주영이 병역 논란 당시 귀국 후 최강희 감독의 기자회견 제의를 거절하고 최강희 감독은 물론 축협 등의 모든 연락을 거부하며 잠수 탔을 때 이를 비꼬는 사람들이 투명하다, 사라졌다, 보이지 않는다며 비꼴 때 사용되는 인터넷 은어 종범 대신 이제 대세는 주영이라며 대체하려고 했다. 은어로 쓰이는 종범 자체가 워낙 광범위하게 퍼진 말이라 대체되진 않았지만 그 후에도 이따금씩 사용례가 발견되곤 한다. 그런데 종범이 지역감정 문제로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것도 있고 은퇴하면서 존재감이 낮아진 반면 박주영은 아스널서 절정을 찍고 있기에 주영의 점유율이 치솟는 중.
- 2017년 들어 박주영의 토템설이 입증이 되었다는 의견이 해외축구판에서 늘었다. 우선 첫 유럽 리그 진출팀인 AS 모나코는 박주영이 뛰던 당시에는 잘 하는 팀은 아니었지만, 2016-17 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과 리그 우승을 이루었고, 셀타 비고는 이후 이아고 아스파스, 놀리토 등의 활약으로 유로파 리그에 진출했으며, 왓포드 FC는 15-16시즌 EPL에 승격한 이후, 트로이 디니등의 활약으로 중위권에 랭크 되어 있다.
- 2000년대 중반 박주영을 주인공으로한 육성 시뮬레이션 플래시 게임인 '축구왕 박주영'이 있었다. 박주영을 키워 프로선수로 만드는 게 목적이고 중간 중간 '불멸의 이순신' 플래시 게임이 들어가있었지만 축구협회측에서 합의한 초상권 협의 종료로 결국 사라졌다. 관련 사진
- SNS는 일절 하지 않다가 2016년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하였다. 그런데 계정을 파자마자 논란에 휩싸였다. 광주 FC로 이적한 정조국과 농담따먹기를 하며 돌 찾으러 갔냐는 말을 하는가 하면, 상주 상무로 입대하는 후배 박희성의 사진을 올리며 비웃고 외모를 조롱하는 포스팅으로 크게 논란이 되었다. 3월엔 태국으로 이적한 김진규가 그립다는 최용수 감독의 인터뷰를 올려놓고 ㅋㅋ를 연타하고, '푸하하', '짝사랑' '뭥미', '뜬금포' 등의 해시태그를 덧붙이면서 마치 감독의 인터뷰를 디스하는 듯한 뉘앙스를 남겼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안티들이 논란을 만든거고 당사자들끼린 잘 지낸다. 최용수 감독과는 10번 가지고 농담 주고받고 15시즌 중반 최 감독이 중국 장쑤의 오퍼를 받자 가지 말라고 메시지를 보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고 FC 서울 동료들과도 친분이 깊다. 전북의 심판매수로 흉흉하던 시절 여유롭게 동료들과 야유회 나온 사진을 올려서 서울 팬들 사이에서 소소하게 화제가 된 바 있다.
- 페라리 458 이탈리아의 오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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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스트라이커,윙어,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을 할 수 있다.
- [2] 제대로 된 포스트 플레이가 가능했던 황선홍, 최용수, 김도훈이 시대가 겹쳤고 조재진은 부상으로 전성기가 짧았다. 그 이후를 이어갈 재능이었던 박주영이 2011년 아스날 이적으로 급격하며 몰락하면서 이 문제는 2010년 내내 한국의 발목을 잡혀 김신욱 같이 포스트 플레이 이해도가 전무한 선수에 계속 매달리게 만들었다. 그나마 2018년에 들어서는 황의조가 포스트 플레이어로 맹활약을 하고 있다.
- [3] AFC 아시안컵은 대한축구협회에서 그렇게 높은 비중을 두는 대회가 아니다.
- [4] 나머지 2명은 구자철과 손흥민으로 이 2명의 경우는 아시안컵 골도 있다.
- [5] 이 말은 페이스북 유저 비하 표현이기도 하다. 페이스북의 추천 버튼인 '좋아요'(영어로는 'Like') 버튼에 그려진 아이콘이 엄지를 치켜드는 것(따봉)이기 때문.
- [6] 사실 이는 상상플러스에서 네티즌 별명중 '축구스타 밥줘영'에서 나온것이다.
- [7] Bubble Pop!의 가사 'Bubble Bubble Pop! Pop!'의 패러디.
- [8] 그렇다고해서 이걸 평가 절하할 필요는 없다. 전에 문서 작성에 세르비아는 2진 시차적응 등을 문제삼는 댓글이 있었으나 이런걸로 따지면 13년 스위스는 시합전날 입국했고 17년 콜롬비아는 3-4일전 입국해 더운데 사는놈들 추운데서 이겼다고 승리가 평가 절하됄 이유는 없다.가나는 주전력은 빠졌지만 기안이나 월드컵 주전은 대부분 출전했다
- [9] 레바논이 그나마 최종예선까지는 왔지만 주전력이 약하고 결국 최종예선에서 하위권 팀이었다
- [10] 월드컵에서의 정성룡은 좀 억울한 바가 있지만.
- [11] 야구 드립을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합법드립은 김동주 간통 사건으로 생긴 드립이다. 이 드립이 생겼을 당시 간통은 형법상 불법이었지만, 이때 사람들이 간통이 합법이 된 줄 오해하고 김동주한테 비아냥거린 것에서 합법드립이 시작됐다. 물론 현재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간통이 비범죄화되었다. 다만 이제는 간통을 저지르면 형사 처벌을 안 받는다는 거지 여전히 민사상 책임은 질 수 있다.
- [12] 첫 등장인 06버전에서 -9포텐, 07에서는 -8포텐
- [13] 정식 발매판에서는 볼 트래핑
- [14] K리그만 놓고보면 이동국의 스탯은 박주영이 비교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그런지 피파시리즈에서는 이동국의 능력치가 그리 나쁘지 않다. 국대 레벨에서도 쓸만하고
- [15] 그러나 위닝에서는 얘기가 달라지는데 상당히 능력치가 편중되어 있다. 헤딩이나 몸싸움은 그럭저럭인데 연계 쪽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되었는지 슈팅력과 헤딩은 뛰어나나 전체적으로는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반대로 박주영은 디펜스 골기퍼 스킬 빼고는 거의 모든 능력치가 70대 이상이다.
- [16] 사실 여기도 파고들어 보면 문제가 많은 곳이기는 하지만 최소한 서로간에 심한 욕은 안하는 분위기가 정착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럭저럭 청정지대 소리는 들을 수 있을지도.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개소문닷컴에는 이것도 안 되는 지대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