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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연 (1896년)

{{공직자 정보
| 이름 = 김사연
| 원래 이름 = 金思演
| 임기 = 1931년 ~ 1941년
| 총독 = 우가키 가즈시게<br/>미나미 지로
군주 = [[쇼와 천황
히로히토]] (일본)
| 총리 =
| 경력 = 前 한국민주당 공보특보위원(1946년)
| 출생지 = 조선 한성부 서대문구역
| 출생일 = 1896년 1월 2일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
1950|9|20|1896|1|2}}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
| 직책 = 前 조선총독부 주임 참의
| 학력 = 일본 게이오 기주쿠 대학교 상학과 중퇴
| 정당 = 무소속
}}
김사연(金思演, <small>일본식 이름: </small>金思演, 1896년 1월 2일 ~ 1950년 9월 20일)은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언론인이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생애

현재의 서울 서대문구 중림동이 원적지이자 출신지이다. 게이오의숙을 중퇴하고 1918년부터 6년 동안 한일은행 부지배인으로 재직하는 등 금융인으로 일했다.

일본어로 발행되는 잡지인 《조선공론》의 사장을 맡았고, 부협의원 등 여러 직책에서 일하며 경성부의 유지로 활동했다. 1931년 중추원의 주임참의직에 처음 임명되어 1941년에는 칙임참의에 올랐다. 최린천도교 신파가 1934년 조선총독부의 후원으로 결성한 시중회에 발기인으로 가담한 바 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태평양 전쟁 지원을 위한 학병제 경성익찬위원회에 가담했다.<ref>{{서적 인용
|저자=고원섭 (편)
|제목=반민자죄상기
|연도=1949
|출판사=백엽문화사
|출판위치=서울
|장=李完用의 後孫들, 8.15 前 그들의 功績은 이렇다!}}</ref> 이 단체는 학병 대상자의 가정을 방문해 참전을 강요하고 간담회를 여는 등의 활동을 했다. 일제가 태평양 전쟁에서 패하기 직전인 1945년 3월에는 중추원 참의 자격으로 〈반도 참정의 감사와 요망〉이라는 담화를 발표하기도 했다.


참고자료

* {{국사편찬위원회 인물|101_01839|김사연|金思演}}

각주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