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 정보
김소동(金蘇東, 1911년 6월 3일 ~ 1988년 11월 9일)은 대한민국의 영화감독 겸 대학 교수이다.
| 이름 = 김소동
| 원어명 = 金蘇東
| 사진 =
| 출생지 =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상주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활동기간 = 1934년 ~ 1988년
| 종교 = 불교
| 부모 = 김함령(부)
| 학력 = 한양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 수상 =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 원어명 = 金蘇東
| 사진 =
1911|6|3}} |
1988|11|9|1911|6|3}} |
영화감독]] <br/> 음악평론가 <br/> 피아니스트 <br/> 음반 프로듀서 <br/> 영화평론가 <br/> 영화 시나리오 작가 <br/> 영화제작자 <br/> 영화 기획가 <br/> 대학 교수 <br/> 기업가 |
| 종교 = 불교
| 부모 = 김함령(부)
김한일]](영화감독) |
| 수상 =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김소동(金蘇東, 1911년 6월 3일 ~ 1988년 11월 9일)은 대한민국의 영화감독 겸 대학 교수이다.
생애 ¶
1934년 서양고전음악평론가 첫 등단을 한 그는 이듬해 1935년 피아니스트 데뷔에 이어 같은 해 1935년 음반 프로듀서 데뷔하는 등 잠시 피아니스트 겸 음반 프로듀서 활약하다가 1943년에는 영화평론가 등단하였으며 광복이 도래한지 1년이 지난 1946년 《모란등기(牡丹登記)》로 영화감독 데뷔하였다. 1956년 《왕자호동(王子好童)과 낙랑공주(樂浪公主)》, 1957년 《아리랑》, 1958년 《돈》, 《오! 내 고향》 등을 발표했다.<ref name="글로벌_1">예술·스포츠·취미/영화/영화의 감상/한국영화의 감독과 작품/김소동, 《글로벌 세계 대백과》</ref>
그의 작품 가운데 사극 작품을 제외한 그의 작품 세계는 늘 농촌을 무대로 하고 있으며, 도회지의 모순된 상황이나 위선 따위를 풍자 내지 고발하고 있다. 특히 《돈》에서는 이러한 비판 의식이 잘 부각되었으며, 제2회 영화평론가협회상을 받았다.<ref name="글로벌_1"/>
학력 ¶
* 1924년 경상북도 상주 함창보통학교 졸업
* 1930년 경성제1고등보통학교 졸업
* 1934년 일본 니혼 대학교 법학과 학사
* 1938년 일본 도쿄 중앙음악학교 학사
* 1951년 연희대학교 철학과 학사
* 1960년 연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철학석사
* 1969년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문학석사
* 1972년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문학박사
* 1930년 경성제1고등보통학교 졸업
* 1934년 일본 니혼 대학교 법학과 학사
* 1938년 일본 도쿄 중앙음악학교 학사
* 1951년 연희대학교 철학과 학사
* 1960년 연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철학석사
* 1969년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문학석사
* 1972년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문학박사
분류
- 1911년 태어남
- 1988년 죽음
-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
- 함창 김씨
- 상주시 출신 인물
- 대한민국의 기업인
- 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일제 강점기의 음악 평론가
- 대한민국의 음악 평론가
- 1934년 데뷔
- 일제 강점기의 영화 평론가
- 대한민국의 영화 평론가
- 대한민국의 법률학 평론가
- 대한민국의 고전 피아노 연주자
- 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
- 대한민국의 영화 각본가
- 대한민국의 영화 제작자
- 대한민국의 저술가
- 투자가
- 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함창초등학교 동문
- 경기중학교 동문
- 경기고등학교 동문
- 니혼 대학 동문
- 구니타치 음악대학 동문
-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동문
- 연세대학교 대학원 동문
- 한양대학교 대학원 동문
- 한양대학교 교수
- 중앙대학교 교수
-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