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정보
김동한(金東漢, 1919년 6월 25일 ~ 1983년 9월 28일)은 대한민국의 해군 군인이며 가톨릭 성직자 겸 수필가이다.
| 이름 = 김동한
| 현지어표기 = 金東漢
| 사망지 = 대한민국 부산
| 생애 = 1919년 6월 25일 ~ 1983년 9월 28일 (65세)
| 배우자 = 無(미혼 독신)
| 부모 = 김영석(부), 서중하(모)
| 친척 = 김필수(형) <br/> 김수환(아우) <br/> 김보현(친조부) <br/> 강말순(친조모) <br/> 서용서(외조부) <br/> 김병호(조카) <br/> 김병기(조카) <br/> 김병무(조카) <br/> 김정자(조카딸)
| 복무 = 대한민국 해군
| 정당 = 무소속
| 국적 = 대한민국
| 복무 기간 = 1951년 3월 ~ 1970년 3월
| 최종 계급 = 대한민국 해군 중령
| 별명 = 호(號)는 금파(金波, 錦波)
| 주요 참전 전투/전쟁 =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 근무 = 해군 군종사제
| 지휘 = 군종사제회 부회장
}}| 현지어표기 = 金東漢
경상북도 대구]] |
| 생애 = 1919년 6월 25일 ~ 1983년 9월 28일 (65세)
광산]](光山) |
천주교]](세례명: 가롤로) |
| 친척 = 김필수(형) <br/> 김수환(아우) <br/> 김보현(친조부) <br/> 강말순(친조모) <br/> 서용서(외조부) <br/> 김병호(조카) <br/> 김병기(조카) <br/> 김병무(조카) <br/> 김정자(조카딸)
| 복무 = 대한민국 해군
| 정당 = 무소속
| 국적 = 대한민국
| 복무 기간 = 1951년 3월 ~ 1970년 3월
| 최종 계급 = 대한민국 해군 중령
| 별명 = 호(號)는 금파(金波, 錦波)
| 주요 참전 전투/전쟁 =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 근무 = 해군 군종사제
| 지휘 = 군종사제회 부회장
경상북도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 전문학사 출신 <br /> 1956년 대한민국 국방대학교 행정학사 1기 출신 <br/> 성직자, 천주교 사제, 수필가, 군인 <br/> 신민당 국가보건행정특보위원(1975년) <br /> 한국가톨릭결핵시설연합회 회장 |
김동한(金東漢, 1919년 6월 25일 ~ 1983년 9월 28일)은 대한민국의 해군 군인이며 가톨릭 성직자 겸 수필가이다.
일생 ¶
생애 ¶
그의 가계는 천주교 순교자 집안이었다. 할아버지 김보현 요한은 조선 후기였던 1868년 무진박해 때 체포되어 한성부에서 순교하였다.<ref name="한경1">우리 곁을 떠난 김수환 추기경은 어떤 분이었나 한국경제 2009-02-20 </ref> 옹기장수인 아버지를 여의고 포목행상으로 살림을 꾸리는 어머니의 아들로 출생하였고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라<ref name="한경1"/> 이후 경상북도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에 들어가 졸업 후 사제가 된다. 이후 그의 동생 김수환도 그의 영향을 받아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로 진학하게 된다.<ref name="한경1"/>
보통학교에 다닐 때 그와 그의 아우 김수환은 모친으로부터 나중에 신부가 되라는 권유를 받고 사제의 길을 걷게 된다.<ref>donga.com[뉴스]-“어머니 무릎서 신앙심 키웠다”</ref><ref>고품격 콘텐츠페이퍼, 헤럴드경제</ref>
사목 활동 ¶
1945년 12월 15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 뒤 1948년 8월 경상북도 상주군 함창읍 소재 함창동성당에서 본당 사제로 부임하여<ref>Catholic Image - Catholic Image</ref> 1949년 6월까지 사목하였다.
그 뒤 김동한 가롤로 사제는 1949년 6월부터 1951년 3월까지 경상남도 창원에서 사목하다가 1951년 해군의 첫 군종사관(군종 신부)로 해군 대위 임관하였다.<ref name="가톨1">(한국교회사 인물 80) (하){{깨진 링크|url=http://www.catholictimes.org/news/news_view.cath?seq=36413 }} 가톨릭뉴스</ref><ref>김동환 신부와 함께하는 故 김수환 추기경 :: 네이버 뉴스</ref> 1953년 4월 진해 및 인근 본당들과 함께 ‘군민 합동 성체대회’ 개최했으며 이 대회는 진해 지역의 천주교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ref name="가톨1"/> 그 이후 경상북도 대구 계산성당 등에서 사목하였다.
1969년에는 군종사제회 부회장에 서임되었다. 이때 군내 가톨릭회 총무로 있던 신치구에게 동생 김수환을 소개하기도 하였다.<ref>고품격 콘텐츠페이퍼, 헤럴드경제</ref> 이후 19년간의 해군 군종 사제 복무를 마치고 1970년 3월 해군 중령 예편하였다.
1978년 ‘한국 가톨릭 결핵 시설 연합회’ 조직하고 초대 회장에 피선되어 결핵환자 요양원을 맡았다.<ref name="가톨1"/><ref>영남권 대표 인터넷 신문 "매일신문"</ref> 1983년 9월 28일 선종하였다.
선종 이후 ¶
선종 당시 동생 김수환은 1983년 9월 말 세계 주교대의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로마에 체류하여 형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였다. 형 김동한 신부의 선종 소식은 당시 로마에 체류중이던 장익 주교가 직접 전했다.<ref>장익·지학순 주교 일화·사북 탄광체험 등 소개 강원일보</ref> 형의 임종에 참석하지 못하였던 김수환은 귀국 후 김동한이 임종한 곳에서 며칠을 보냈다고 한다.
한편 김수환이 추기경에 임직된 이후 그는 일부러 김수환을 피하였다. 추기경인 동생에게 누가 될까봐 주교관 출입을 일부러 피했던 것이다.<ref>고뇌와 번민 적지 않았던 인간 김수환 《내일신문》</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