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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굉필

나는 소학동자, 나랏일을 어찌 알겠는가 - 남효온의 사우명행록


김굉필 친필 필적

Contents

1. 개요
2. 생애
3. 평가
4. 여담
5. 참고

1. 개요

조선 전기의 유학자, 관리. 김종직제자이며, 조광조스승이다. 남효온의 친구이기도 하다. 정여창(鄭汝昌)·조광조(趙光祖)·이언적(李彦迪)과 함께 동방사현이라 불린다.참조

2. 생애

30세가 될 때까지 소학을 읽으면서 수기를 하였다. 김종직은 김굉필을 극찬했는데, ‘성인(聖人)이 될 바탕이 있다’고 칭찬했다.

40세가 넘어서야 벼슬에 나갔다. 김종직의 제자였지만, 김종직이 현실 타협적인 면을 보인다고 비판하여 사이가 나빠졌다. 김종직이 죽었을 때도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다.참조

연산군 시기인 1498년(연산군 4년) 7월, 김종직조의제문이 문제가 되어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김종직의 제자로서 붕당(朋黨)을 만들어 서로 칭찬하고 임금의 정치를 비난하거나 시국을 비방했다”는 죄로 벌을 받게 된다. 곤장 80대, 평안도 희천(熙川) 유배형을 받았다. 2년 후 다시 전라도 순천(順天)으로 유배지가 옮겨졌다.

1504년(연산군 10년) 9월, 갑자사화가 일어났을 때 다시 한 번 연루되어 사형에 처해졌다. 향년 51세였다.

광해군 때 문묘에 배향되었다.

3. 평가

김종직 - 김굉필 - 조광조로 이어지는 조선 초기 정통 사림파 학맥의 중간 고리.

4. 여담

소학을 좋아했다. 남효온의 사우명행록에서는 자신을 소학동자(小學童子)라고 불렀다고 한다. 참고로 그 제자인 조광조 역시 소학을 매우 좋아했다.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