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1.2과 현재 버전의 차이점
@@ -24,7 +24,7 @@
이후 [[만주국]]으로 건너가 만주국 수도 [[신징]]에서 신징지방경찰청 서기관 직과 만주국 사법부 대신관방 사무관을 지내는 등 사법관청에서 다년간 근무했다. [[일본 제국]]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해 만주국이 사라진 뒤 서울로 돌아왔다.
권태술은 [[미군정]] 하에서 관리로 발탁되었다. 일본인들이 두고 간 재산을 처리하는 서울재산관리국 감찰서장을 거쳐 서울재산관리처장에 올라 재임하였다. 1948년 9월 이후 [[서울특별시|서울]] 은 맡고 있던 중 [[한국 전쟁]]이 발발하여 [[서울특별시|서울]] 자택에서 실종되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끌려간 것으로 여겨진다.<ref> {{웹 인용
권태술은 [[미군정]] 하에서 관리로 발탁되었다. 일본인들이 두고 간 재산을 처리하는 서울재산관리국 감찰서장을 거쳐 서울재산관리처장에 올라 재임하였다. 1948년 9월 이후 [[서울특별시|서울]] [[중구 (서울특별시)|중구]] 구청장을 맡고 있던 중 [[한국 전쟁]]이 발발하여 [[서울특별시|서울]] [[종로구]] 명륜동 자택에서 실종되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끌려간 것으로 여겨진다.<ref> {{웹 인용
|url=http://kwari.org/sub2a_info.php?num=225622|제목=권태술
|출판사=한국전쟁 납북사건 자료원
@@ -49,4 +49,4 @@
{{토막글|정치인}}
[[분류:1903년 태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20세기 죽음]][[분류:만주국 관련자]][[분류:서울 중구]][[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주오 대학 동문]][[분류:납북자]]
[[분류:1903년 태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20세기 죽음]][[분류:만주국 관련자]][[분류:서울 중구]][[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주오 대학 동문]][[분류:납북자]]
{{공직자 정보
권태술(權泰述, <small>일본식 이름:</small> 야스히가시 마사유(安東正祐), 1903년 ~ ?)은 일제 강점기의 관료이며,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공무원이다.
| 이름 = 권태술
| 원래 이름 = 權泰述
| 출생일 = 1903년
| 임기 = 1930년 5월 31일 ~ 1936년 5월 31일
| 총독 = 사이토 마코토 <br/>우가키 가즈시게
| 총리 = 하마구치 오사치 (일본 총리) <br/> 와카쓰키 레이지로 (일본 총리) <br/>다카하시 고레키요 (일본 총리 권한대행 서리) <br/> 사이토 마코토 (일본 총리) <br/>오카다 게이스케 (일본 총리) <br/> 히로타 고키 (일본 총리)
| 출생지 = 대한제국 한성부
| 학력 = 일본 주오 대학교 법학과
| 직책 = 前 조선총독부 경성지방법원 예하 서기관 <br/> (前 朝鮮總督府 京城地方法院 隸下 書記官)
| 직책2 = 前 만주국 신징지방경찰청 예하 서기관 <br/> (前 滿洲國 新京地方警察廳 隸下 書記官)
| 임기2 = 1936년 6월 11일 ~ 1938년 8월 26일
| 군주2 = 푸이 (만주국 군주)
| 총리2 = 장징후이 (만주국 총리)
| 사망일 = ?
| 소속 = 前 대한민국 서울 중구 구청장
| 정당 = 무소속
}}| 원래 이름 = 權泰述
| 출생일 = 1903년
| 임기 = 1930년 5월 31일 ~ 1936년 5월 31일
| 총독 = 사이토 마코토 <br/>우가키 가즈시게
히로히토]] (일본 군주) |
| 출생지 = 대한제국 한성부
| 학력 = 일본 주오 대학교 법학과
| 직책 = 前 조선총독부 경성지방법원 예하 서기관 <br/> (前 朝鮮總督府 京城地方法院 隸下 書記官)
| 직책2 = 前 만주국 신징지방경찰청 예하 서기관 <br/> (前 滿洲國 新京地方警察廳 隸下 書記官)
| 임기2 = 1936년 6월 11일 ~ 1938년 8월 26일
| 군주2 = 푸이 (만주국 군주)
| 총리2 = 장징후이 (만주국 총리)
| 사망일 = ?
| 소속 = 前 대한민국 서울 중구 구청장
| 정당 = 무소속
권태술(權泰述, <small>일본식 이름:</small> 야스히가시 마사유(安東正祐), 1903년 ~ ?)은 일제 강점기의 관료이며,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공무원이다.
생애 ¶
이후 만주국으로 건너가 만주국 수도 신징에서 신징지방경찰청 서기관 직과 만주국 사법부 대신관방 사무관을 지내는 등 사법관청에서 다년간 근무했다. 일본 제국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해 만주국이 사라진 뒤 서울로 돌아왔다.
권태술은 미군정 하에서 관리로 발탁되었다. 일본인들이 두고 간 재산을 처리하는 서울재산관리국 감찰서장을 거쳐 서울재산관리처장에 올라 재임하였다. 1948년 9월 이후 서울 중구 구청장을 맡고 있던 중 한국 전쟁이 발발하여 서울 종로구 명륜동 자택에서 실종되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끌려간 것으로 여겨진다.<ref> {{웹 인용
|url=http://kwari.org/sub2a_info.php?num=225622
|제목=권태술
|출판사=한국전쟁 납북사건 자료원
|확인날짜=2008-06-15
}} </ref>
|url=http://kwari.org/sub2a_info.php?num=225622
|제목=권태술
|출판사=한국전쟁 납북사건 자료원
|확인날짜=2008-06-15
}} </ref>
한국 전쟁 초기에 서울이 조선인민군 점령 하에 있을 때 실종된 민간인 10명과 공직자 5명의 가족이 2006년에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최초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권태술 가족도 이 가운데 포함되었다.<ref> {{뉴스 인용
|제목=6·25중 납북 가족, 정부에 첫 소송 - 납북돼 가는길… "어머니!" 소리쳤네
|출판사=조선일보
|저자=안준호
|날짜=2006-01-18
|쪽=A9면
}} </ref> 권태술 가족을 포함한 실종자 가족들은 실종자에 대한 국가유공자 지정과 배상급 지급을 요구했다.
|제목=6·25중 납북 가족, 정부에 첫 소송 - 납북돼 가는길… "어머니!" 소리쳤네
|출판사=조선일보
|저자=안준호
|날짜=2006-01-18
|쪽=A9면
}} </ref> 권태술 가족을 포함한 실종자 가족들은 실종자에 대한 국가유공자 지정과 배상급 지급을 요구했다.
참고자료 ¶
* {{국사편찬위원회 인물|101_00814|권태술|權泰述}}
각주 ¶
<references/>
{{토막글|정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