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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우



두산 베어스 No.81
강동우(姜東佑 / Dong-woo Kang)
생년월일 1975년 4월 20일 (age(1975-04-20)세)[1]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대구광역시 북구
학력 칠성초-경상중-경북고-단국대 [2]
포지션 외야수[3]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98년 1차 지명 (삼성)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1998~2006) br 두산 베어스 (2006~2007) br KIA 타이거즈 (2008) br 한화 이글스 (2009~2013)
지도자 두산 베어스 2군 타격코치 (2014) br 두산 베어스 2군 주루코치 (2015) br 두산 베어스 1군 주루코치 (2015~2017) br 두산 베어스 1군 타격코치 (2018~ )
선수시절br응원가 입장시: 2NE1 - <내가 제일 잘 나가> br 타격시: 정형돈 - <이러고 있다>[4][5]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FFFFFF 2002}}} {{{#FFFFFF 200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0번
김영진(1995~1997) 강동우(1998~1999) 진갑용(2000~2015.8.6)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번
류중일(1987~1999) 강동우(2000~2005) 강봉규(2006)
두산 베어스 등번호 24번
강봉규(2000~2005) 강동우(2006) 이승엽(2007)
두산 베어스 등번호 31번
이승엽(2006) 강동우(2007) 이윤학(2008)
KIA 타이거즈 등번호 2번
박경진(2007) 강동우(2008) 신종길(2009 ~ 현재)
한화 이글스 등번호 3번
한상훈(2008) 강동우(2009~2013) 한상훈(2014~2015)

목차

소개

대한민국의 전직 프로야구 선수이자 비운의 선수로 꼽히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한 명. 2018년 현재는 두산 베어스의 1군 타격코치.

선수 시절

삼성 라이온즈 시절


말 그대로 불운의 선수.

경북고 - 단국대를 졸업하고 1998년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당시 삼성의 외야에는 최익성, 신동주, 양준혁이 주전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전년도 맹활약했던 최익성-신동주 우타 외야 라인에 부진 및 부상이 닥치자 데뷔 첫 해 주전 자리를 꿰차며 맹활약했다. 그 해 신인왕 후보에까지 올랐으나 고졸로 12승을 거둔데다 우승 프리미엄까지 누린 당시 현대 유니콘스의 고졸 신인 김수경에게 신인왕 자리를 내줬다. 또한 그 해 개최된 방콕 아시안게임 대표팀 엔트리에 선발되어 있었다. 삼성의 연고지인 대구광역시 토박이인지라 프랜차이즈성도 탁월하여 향후 삼성의 주전 외야수가 될 것으로 기대받으며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 해 10월 16일 벌어진 사건으로 인하여 강동우의 지독한 불운이 시작되었다.

파일:external/image.sportsseoul.com/20150418_1429312313_61161500_1.jpg
부상을 당한 후 들것에 실려나가는 강동우. 부상을 당한 후 그 충격 때문에 괴로워하는 표정을 주목하라.

LG 트윈스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 때 이병규의 큼지막한 홈런성 타구를 뛰어올라 잡아내는 과정에서 왼쪽 다리가 펜스 사이의 틈새에 끼면서 대구구장을 주깁시다 대구구장은 우리의 원쑤 정강이뼈가 뒤틀리며 골절되는 중상을 입고 바로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되었다.[6][7] 이 부상 탓에 강동우의 인생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부상만 아니었다면 강동우는 트레이드되지 않고 마지막까지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시 의사의 소견으로는 '야구 선수로는 물론이고 정상인으로서의 생활도 힘들다'고 했을 정도로 심한 부상이었다. 당연히 대표팀에서도 탈락되었으며[8][9] 2년 간의 재활이 시작된다.

피나는 노력으로 재활을 마치고 2000년 시즌 막판에 겨우 복귀해서 다시 삼성의 주전 외야수로 활약하지만, 신인 시절의 성적은 다시 나오지 않았고 평범한 선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래도 류중일 코치가 선수 시절에 달던 1번을 달고 뛰며 타격에서는 나름대로 제몫을 하며 삼성의 주전 외야수로 활동했고, 2002년 김응용 감독 아래에서 타율 0.288, 9홈런으로 어느 정도 부활에 성공하였다. 2002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는 2001년 데뷔하여 삼성의 붙박이 타자가 된 왕년의 좌타 라이벌 박한이와 함께 테이블 세터를 이뤄 활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 타율이 2할 중후반에 머무르는 바람에 '비운의 톱타자'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후 선동열 감독과 마찰을 빚게 되었고 외야진 보강 차원에서 2006년 3월 두산 베어스강봉규, 김창희를 상대로 트레이드되고 말았다. 당시 삼성 팬들은 격분하여 난리를 쳤다. 이는 훗날 양준혁의 등떠밀기식 은퇴, 이승엽 와도 자리없다는 발언 등과 함께 선동열의 삼성 프랜차이즈 내치기 사건 중 하나다.

이미 삼성 라이온즈를 떠난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삼성 팬들에게 강기웅, 박충식과 함께 여전히 안타까움으로 가슴에 남는 선수다.[10] 강동우와 관련된 신문기사의 리플을 보면 한화 팬들보다 삼성 팬들의 응원이 더 많을 때도 있다. 삼갤에는 간간히 '은퇴식만큼은 삼성에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이 올라온다. 이미 마해영의 사례도 있고.

두산 베어스, KIA 타이거즈 시절

파일:external/imgnews.naver.com/200606131737541101_1.jpg
두산 베어스 시절현역 선수를 2년간 하다가 나왔지만, 7년만에 결국 코치로 돌아왔다

파일:기아 강동우.jpg
한 시즌만 뛰다 만 KIA 타이거즈 시절

트레이드를 통해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기는 했지만, 이후 한 팀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여러 팀을 전전하게 된다. 2006 시즌에는 두산에서 그럭저럭 주전 경쟁을 했지만, 2007년 김경문이 직접 키운 외야수 이종욱, 김현수 등등이 펄펄 날아다니기 시작하면서 1군에서 탈락, 줄곧 2군에 머물게 된다. 결국 2007 시즌 종료 후 다시 좌완 투수 이윤학[11]을 상대로 KIA 타이거즈에 트레이드됐다.

조범현의 양아들이라는 욕을 대차게 먹으면서도 시즌 초반 잠깐 동안은 꾸준히 기용되었지만 타율 1할대를 기록하였고, 부상당한 시즌을 제외하고는 커리어 로우 기록을 남기며 줄곧 2군 신세를 졌다.(...)

한화 이글스 시절


한화의 암흑기 초반 1번타자 자리에서 맹활약해줬던 최고령 1번타자

2009 시즌: 한화 입성,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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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의지노력상을 수상한 강동우.

부활
2009시즌 한화 투수진엔 류현진, 중심타선엔 김태완, 그리고 테이블 세터엔 강동우로 정리된다.
2008 시즌 종료 후 신종길을 상대로 한화 이글스에 트레이드되었다. 2009 시즌 붙박이 1번 타자 겸 중견수로 기용되면서 놀랍게도 맹활약을 펼쳤고, 1998년 이후 12년 만에 3할 타율과 준수한 출루율을 기록하였다. 또한 팀 내에서 가장 적극적인 주루 플레이를 보이서 부활의 날개를 펼쳤다. 한화가 간만에 건진 수준급 1번 타자. 농담으로 FA로이드를 복용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로 2009 시즌 종료 후 FA를 선언했고, 한화 이글스와 1년 총액 3억 원(계약금 1억 5천+연봉 1억 5천)의 조건으로 재계약에 합의했다. 팬들은 반짝 활약이 아니기를 바랐으나...

한편 2009 시즌 말인 9월 2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끝내기 안타를 친 고영민을 축하해 주는 장면이 사진에 찍히면서 빈축을 샀다. 게다가 끝내기 안타 직전에는 2루심의 오심이 터진 탓에 다른 한화 선수들은 분을 억누르고 있던 상태였다.

2010 시즌: FA로이드 후유증?

스프링캠프에서 몸이 안 좋아 훈련을 제대로 못 했고 시즌 시작 시점에 몸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간염으로 인해 하와이에서 1주일만에 귀국하여 대전시는 모 병원에서 잠시 입원 생활을 했다. 결국 체력부족으로 1할대를 넘나드는 극악의 타격과 심각하게 좁은 수비범위를 보여주며 FA로이드 부작용 의혹을 받다가 결국 2군에 내려갔다. 그러나 5월 초에 2군에서 복귀해서 타율을 2할 7푼대로 끌어올리는 등 준수한 성적을 냈다. 6월 27일 개인 통산 1000안타를 기록했고, 후반기에는 1군과 2군을 왕복하였다.

2010시즌에 문제가 참 많아졌는데 일단 외야수로서 생명인 수비범위가 무진장 좁아졌다. 게다가 백업 플레이에 소홀하고[12][13] 텍사스 안타성 타구를 잡으려고 노력하지도 않는 모습을 보이며, 이대로라면 한화표 노장 선수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듯하다는 둥 팬들의 비난을 샀다.

2011 시즌: Again 2009, 다시 살아난 KBO 최고령 1번타자

##
투혼, 마지막 불꽃을 태운 시즌
2011시즌 한화 타선의 핵심
세계 최고령 1번 타자

2011년 406 대첩에서 대역전의 계기를 마련한 동점 투런을 때리기도 하는 등 그냥 사라지진 않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강속구 용병 투수로 화제를 모은 레다메스 리즈의 '천적' 소리를 들었다. 8일 LG전은 류현진이 무너지면서 8대4로 졌지만 4점을 강동우 혼자 다 냈다. 레다메스 리즈 상대로 대단히 자신감있는 스윙을 했다. 이어 4월 16일 기아전에서 결승타를 날려 팀의 7연패 사슬을 끊어냈다.

2011년 4월 21일까지 시즌 타율이 2할 7푼대였으나 득점권 타율은 5할 8푼대로 리그 전체 1위였다. 중심 타선같은 1번 타자의 재림에 그나마 꼴칰 타선에 숨통이 트이게 됐다. 내년에 FA인데, 이것 또한 FA로이드 인건가??

5월 24일, SK 와이번스와의 3연전 첫 경기에서 이승호의 높은 직구를 그대로 때려 2:2 피말리는 접전 끝에 끝내기 안타를 날렸다. 팬과 칰갤러들은 야왕의 작전지시를 충실히 수행한 강동우에게 공작의 칭호를 내려야 한다며 강동우 공작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리고 불암콩콩코믹스 <추두: 도망두산을 쫓다> 편에서는 야또나리가 되었다!!


7월 2일 KIA 타이거즈와의 3연전 두 번째 경기 3-6으로 뒤지고 있는 6회초 1사 만루 상황에서 손영민의 공을 잡아당겨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역전만루홈런을 쳤다! 시즌 9호. 캐스터가 타이거즈 팬인 건 알지만 좀 심하게 친기아 성향으로 중계하는 와중에 패배로 기울던 분위기를 다시 되찾아온 모처럼 시원한 한 방이었다. 도루하기 귀찮아서 그냥 넘겨버리는 1번 타자의 위엄

7월 30일 SK 와이번스의 큰 이승호를 상대로 쓰리런을 때리며 기어코 개인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인 11호 홈런을 쏘아 올렸다!! 테이블세터고 뭐고 그냥 넘겨서 점수내면 되는 거잖아? 그리고 요즘 더워서 누상에 서 있으면 힘들다고...

9월까지 타율 .265~.270대를 오가면서 좋은 활약을 보였다. 홈런은 13개로 팀내 홈런 2위였다. 강동우, 파워에서 가르시아와 동급이었다 파문.txt

9월 17일 4타수 4안타 1홈런 2타점 맹활약을 펼쳤다. 최고의 1번타자

후반기에 타율을 많이 끌어올린 덕분에 타율 0.288로 훌륭한 성적을 내고 시즌을 마무리했다. 팀 내 타자 고과 1위(!!)에 홈런 개수로 커리어 하이고, 타점도 순도높은 타점들이 상당히 많아 38살 나이임에도 차기 시즌에도 충분히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으리라 기대되었다. 한편 FA 대상자였지만 시즌 종료 후 FA 신청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연봉은 고작 5천만원이 올랐는데, 강동우의 생각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객관적으로 인상액이 너무 적다는 인상이 짙다. 물론 노장선수의 연봉은 상대적으로 인상폭이 적은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이 시기 한화 프런트진의 연봉 인상 정책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강동우는 물론이고 이대수, 박정진 등 A+급 활약을 보인 선수들의 연봉 인상폭이 똑같이 5천이었다. 이는 선수들의 동기부여 실패로 이어졌고, 2012년 한화가 최악의 시즌을 맞이하는데 적지 않은 일조를 한다.

2012 시즌: 다시 한 번 주춤

이제 나이도 있고 하니 체력적으로 힘든 테이블 세터를 다른 선수가 맡아주길 바랬으나... 개막전에서 시범으로 다른 선수를 1번으로 기용했다가 쫄딱 망했어요. 그래서 이 해도 1번타자로 활약했다.(...) 그나마 포지션은 주로 우익수로 뛰는게 다행...인가?

5월 17일 두산전에서 3루수가 공을 잡자 오른팔을 빼고 왼팔을 뻗어 태그하는 헬멧 블로킹 센스있는 주루플레이로 3루타를 만들어냈다.


이후 꾸준히 제몫을 해냈으나 허리 미세통증으로 인해 6월 26일자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회복기간을 거쳐 7월 10일 1군에 복귀. 한화는 강동우가 2군에 내려가 있는 동안 고동진, 양성우 등을 1번 타자 자리에 기용하였으나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실제로 강동우가 2군으로 내려가 있는 동안 한화는 2승 7패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마지막에는 장성호가 1번 타자로 기용될 정도였으니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지? 1군으로 올라왔으나 별 활약을 하지 못하고 8월 2일 이후로 다시 2군행. 다행히 1번 구멍은 오선진이 각성하면서 메울 수 있게 되었다.

2013 시즌

, 감독, 그리고 들이 목놓아 기다리는 그 분.

삼성 라이온즈 시절 그의 재기를 도운 김응용 감독을 만나 의지를 불태웠으나, 결국 그 해가 한화 이글스에서 마지막 해가 되었다. 시범경기 11경기에 출장해 16타수 5안타 타율 .313 2타점 2볼넷 출루율 .389를 기록해 다시금 KBO 최고령 1번 타자의 재림을 노리고 있었으나, 시즌 개막을 앞두고 시범경기에서 발가락 부상(골절)을 당해 2군으로 내려가고 말았다. 2012 시즌 종료 직후 가을 마무리훈련부터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까지 빠짐없이 훈련을 소화했기에 더욱 아쉬운 부상이었다. 다행히 1번 타자의 공백은 이대수가 나름대로 메워주고 있지만 팀이 개막 직후부터 연패 수렁에 빠져있고 마땅한 좌타자 요원도 없는 상황이라 그의 공백이 더욱 더 아쉬운 상황이었다.

5월 말 1군에 복귀하여 타선에 나름대로 힘을 보탰으나 14경기에서 30타수 6안타에 그쳤고, 팀의 리빌딩 방침과 맞물려 다시 2군으로 향했다. 다행히 퓨처스리그에서는 3할대의 타율을 기록하며 타격감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 후로 전혀 1군에 올릴 기미가 안 보인다. 그토록 대타를 남발하는 상황임에도 정작 강동우의 복귀는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일각에선 '(감독의 권위를 위한) 베테랑 죽이기'로 의심할 정도.

결국 한화 이글스 이적 이후 최악의 성적을 남겼다. 26경기 52타수 11안타 타율 .212를 기록.

11월 24일, 서산 훈련장에서 훈련하던 도중 방출 통보를 받았다. 강동우 본인은 현역으로 더 활동하기를 원했으나 그를 찾는 팀은 어디에도 없었고, 결국 안타까운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8 삼성 123 414 .300 br 124 23 8br(2위) 10 30 74 22 43 .466 .355
1999 1군 기록 없음
2000 13 20 .100 2 0 0 0 0 3 1 8 .100 .357
2001 125 347 .251 87 15 2 6 42 54 6 52 .357 .348
2002 130 466 .288 134 23 3 9 49 75 11 47 .408 .352
2003 130 443 .266 118 19 4 9 57 61 8 58 .388 .349
2004 132 438 .295 129 22 1 3 49 59 9 51 .370 .367
2005 125 367 .240 88 15 3br(5위) 6 38 61 9 46 .346 .322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6 두산 118 393 .249 98 12 2 2 34 36 8 49 .305 .330
2007 25 43 .163 7 1 1 1 6 1 0 5 .302 .250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8 KIA 45 40 .100 4 1 0 0 5 8 0 9 .125 .260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9 한화 128 506 .302br[14] 153br(5위) 30 2 10 48 88 27 70 .429 .384
2010 98 309 .252 78 8 1 4 22 45 14 44 .324 .346
2011 133 br [15] 518 .288 149br(5위) 13 3 13 51 83br(3위) 17 64 .400 .363
2012 76 257 .253 65 16 1 2 22 35 1 26 .324 .346
2013 26 52 .212 11 1 1 0 3 4 0 7 .269 .300
KBO 통산br(16시즌) 1427 4613 .270 1247 199 32 75 456 687 133 579 .376 .352

지도자 시절

두산 베어스

은퇴를 선언한 후 두산의 2군 타격코치로 영입되어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2014년 4월에 결혼하여 뒤늦게 품절남이 되었다.

2015년에는 2군 주루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는데, 기동력 강화 차원에서 4월 7일에 1군 1루 주루코치로 콜업되었다. 대신 장원진 타격코치가 말소되고 기존의 1루 주루코치이자 수비코치 겸임이었던 강석천은 수비코치만 맡는다. 장원진 타격코치는 박철우 타격코치를 보조하기로 했다.

2015 KS 우승을 친정 팀 앞에서 맛보았다. 그 기분이 심히 묘할 듯.

2018년 시즌 1군 타격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새로온 고토 코지 코치와 함께 선수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듯 하다.

여담

선수시절 등번호는 20-1-24-31-2-3번 순이다. 삼성 라이온즈의 1번 라인인 황규봉-류중일-강동우-윤성환 중 한 명. 불사조같은 선수시절을 보낸 선수.

여러 팀을 전전하는 저니맨이었다. 은근히 1990년대 중후반에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약했던 저니맨들이 많다. 그의 전임 1번타자였던 최익성이동수, 신동주 등.

O형 수염 자국이 선명한, 살짝 마초적인 매력이 느껴지는 상당한 미중년이다. 2014년 4월 19일까지 미혼(!!)이었다. 2011 시즌 중반부터 굉장한 활약을 펼치던 때의 스포츠신문 인터뷰 중 '체력 관리의 비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친구가 보내 주는 인삼을 꾸준히 먹고 있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팬들은 '저런 건 친구가 아니라 와이프가 챙겨줘야 되는데...'라며 심히 안타까워했다. 어느새 '동우햄 장가 보내기'는 새 시즌 한화팬들의 중요한 목표가 되어 가고 있다. 실제로 2013년에는 류택현 바로 다음으로 나이 많은 미혼의 프로야구 현역 선수였다. 위의 사례에서 팬들이 안타까워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결국 2013 시즌 종료 후 은퇴하면서 이제는 노총각 코치(...). 삼성에서 뛰던 소싯적에 선배였던 양준혁을 그렇게 잘 따랐다더니 엉뚱하게 노총각 운명까지 따르는 걸까

2012년 말 암 투병 중이었던 후배 야구선수 이두환에게 후원금을 전달해 스토브리그를 훈훈하게 달구었다. 이제 장가만 가면 된다

2014년 1월에 현역에서 은퇴한 뒤, 그의 생일인 4월 20일에 결혼하여 노총각에서 탈출하게 되었다. 축 동우햄 결혼 이제 양신만 결혼하면 된다

잘 알려져 있듯이 2015년 전까지 무려 17년간 마지막 신인 정규타석 3할 타자였으나, 15시즌 삼성 라이온즈의 후배 구자욱이 .349를 기록하면서 갱신되었다. 다만 구자욱의 경우 2012년부터 선수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데뷔시즌 마지막 3할타자 기록은 아직도 강동우가 가지고 있는 셈. 하지만 2017년 고졸 신인 이정후가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 하면서 최후의 데뷔시즌 3할타자 타이틀도 물려주게 됐다.[16]

별명 또는 애칭 비슷하게 '동우햄'이라 불린다 햄은 역시 동우햄

파일:yang_kang.gif
2017년 두산 베어스 주루코치시절, 양의지덤 앤 더머 장면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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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네이버 등에는 4월 20일 출생으로 1974년생이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이는 호적상 생일로 주민등록상에만 이렇게 올라와 있고, 실제로는 1975년생이라고 한다. 태어나기도 전에 출생신고를? 그래서 1974년생 이병규를 단국대 1년 선배로 취급하고 1975년생 조인성, 김동주와 친구로 지내는 듯.
  • [2] 1994학번
  • [3] 신인 시절 포지션은 중견수였으나 부상 이후 우익수로 전향했다가 한화 이적 후 다시 중견수로 뛰었으며 선수 말년에는 간간히 좌익수로 나왔었다.
  • [4] 이글스의 불꽃 투혼 강동우~ 이글스의 불꽃 투혼 강동우~ 이글스의 불꽃 투혼 강동우~ 안타를 날려주세요~
  • [5] 이전 가사는 '불꽃 투혼' 부분이 '1번 타자'였다. 강동우가 부상으로 1번 타자 자리에 잘 들어서지 않게 되면서 바뀌었다. 한화 올드팬들은 '이글스의 1번 타자는 이영우지!' 하면서 전 응원가를 싫어하기도 했다.
  • [6] 이때 이병규가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던 도중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제스처를 취한 것이 방송을 타면서 '후배(강동우는 이병규의 단국대 1년 후배)가 부상당한 게 그렇게도 고소하냐'며 무한 까임을 당했다. 이병규는 강동우가 부상당한 것을 모르고 홈런성 타구가 잡힌 것이 아쉽다는 표현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판단은 알아서.
  • [7] 이후 베이스볼 긱에서 이도형과 함께 한 인터뷰에서 이도형이 이 사건을 언급하였다. 강동우는 '병규형이랑 단국대 다니면서 참 친하게 지냈는데'라는 말부터 꺼냈는데 그 후엔 계속 이병규그 사람이라고 하였다. 끝에는 이병규와 오해를 풀었다는 말을 했지만 대학 1년 선배를 그 사람이라고 칭한 것 자체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2017년 시점에서는 강동우가 은퇴하고 두산 코치로 합류하고 이병규도 은퇴한 뒤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던 시절엔 서로 웃으며 연락처도 주고받는 등 지금은 그다지 나쁜 사이는 아닌 듯.
  • [8] 어쨌거나 이 부상으로 인해 군 면제를 받기는 했다.
  • [9] 대신 드림팀 막차에 승선한 심재학은 1998 시즌을 마치고 공익 입대가 예정되어 있어 군대로 끌려갈 뻔했던 상황이었는데, 강동우의 대타로 합류해 병역특례를 받는데 성공했다.
  • [10] 다만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을 때는 까였던 적도 있다.
  • [11] 2018년부터 KIA에서 뛰는 우완투수 이윤학과는 동명이인. 이쪽은 좌완투수였다.
  • [12] 2010년 9월 8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김다원우익수 이양기쪽으로 안타를 쳤고 이양기는 이 공을 잡으려다가 실패한 뒤 스텝이 꼬여서 그 자리에서 넘어졌다.(…) 이 황당한 장면에 한화팬들은 크게 당황하였다. 그리고 김다원은 그대로 누를 돌고 돌아 홈으로. 이는 김다원데뷔 홈런이었다.(…) 크보 역사상 데뷔 홈런이 인사이드 파크 홈런인 것은 사상 최초.(……) 사실이 아니다. 자세한 건 김다원항목 참조
  • [13] 그러나 강동우가 백업을 게을리 했다고 보기 힘든 측면도 있다. 강동우는 분명 뛰고 있었고, 오선진이 간 것은 애매한 뜬공을 잡기 위한 것이었으며 오선진이 가는 게 더 나은 위치여서 간 것이다. 강동우를 깔만한 상황은 아니다. 이 모든 게 작년에 비해 턱없이 좁아진 수비범위 때문이라고 얘기하는 이들도 있지만 역시 지나친 비난이다.
  • [14] 전성기를 완전히 넘겼다고 평가받은 시점에 거의 모든 지표에서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다. 이쯤 되면 강동우가 부활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직전 시즌 KIA에서의 성적과 비교하면 더욱 놀라울 따름.
  • [15] 최고령 전경기 출장 타이기록.
  • [16] 여담으로 강동우의 데뷔 시즌인 1998년은 이정후가 태어난 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