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1.2과 현재 버전의 차이점
@@ -1,11 +1,6 @@
* [[야구 관련 인물(KBO)]], [[LG 트윈스/선수단]]
http://imgnews.naver.net/image/109/2009/12/17/200912171021351101_1.jpg
황병일 코치, "내년에는 무조건 팀타율이 향상될 것"
[사진]황병일 코치, '올해의 코치상 수상'
||||<#c30452> {{{#ffffff 황병일(黃炳一 / Byeong-il hwang)}}} ||
|| '''생년월일''' || [[1960년]] [[3월 22일]] ||
http://imgnews.naver.net/image/109/2013/12/05/201312051150778765_529fea4de8713_59_20131205115301.jpg
|||| http://imgnews.naver.net/image/109/2013/12/05/201312051150778765_529fea4de8713_59_20131205115301.jpg ||
||||<#000000><tablealign=right><:> {{{#ffffff LG 트윈스 No.79}}} ||||||<#c30452> {{{#ffffff 황병일(黃炳一 / Byeong-il hwang)}}} ||
|| '''생년월일''' || [[1960년]] [[3월 22일]] ||
LG 트윈스 No.79 | |
황병일(黃炳一 / Byeong-il hwang) | |
생년월일 | 1960년 3월 22일 |
출신지 | 경상북도 포항시 |
학력 | 포항중앙초-포항중-경북고-건국대 |
포지션 | 외야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83년 1차 지명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 (1983~1985) br 빙그레 이글스 (1986~1990) |
지도자 | 빙그레-한화 이글스 타격코치 (1990~2002) br LG 트윈스 1군 타격코치 (2003) br LG 트윈스 1군 수석코치 (2004~2005) br SK 와이번스 1군 타격코치 (2006) br KIA 타이거즈 1군 타격코치 (2008~2009) br KIA 타이거즈 1군 수석코치 (2010~2011) br 삼성 라이온즈 2군 타격코치 (2012) br 두산 베어스 1군 수석코치 (2013) br 두산 베어스 2군 감독 (2014) br kt wiz 2군 감독 (2015) br kt wiz 1군 수석·타격코치 (2015~2016) br LG 트윈스 육성군 타격 인스트럭터 (2018~)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8번(1983 ~ 1985) | |||||
김휘욱(1982) | → | 황병일(1983 ~ 1985) | → | 최무영(1986~1989)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79번(2012) | |||||
정회열(2006 ~ 2011) | → | 황병일(2012) | → | 이종두(2013~) |
목차
선수 시절 ¶
지도자 시절 ¶
한화 이글스, LG 트윈스, SK 와이번스 코치 시절 ¶
은퇴하자마자 빙그레의 타격코치로 부임해 한화 이글스로 바뀐 후에도 2002년까지 12년 간 한화 이글스에서 타격코치로 재임했으며,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도 경험했다. 이 때 장종훈, 송지만, 이영우, 김태균, 이범호 등을 발굴하거나 성장시켜 2000년대 초중반까지 삼성의 박흥식 코치, 현대의 김용달 코치, 두산의 송재박 코치와 함께 대한민국 최고의 타격코치 중 하나로 손꼽혔다. 이후 LG, SK 타격코치를 거쳤는데 SK 시절에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선수 시절에는 그저 그런 선수였지만, 과거 아마추어 시절에 뛰어난 타격 재능으로 유명했던 것만큼 코치로서는 거포형 타자를 발굴하여 그 기량을 발전시키는 데 뛰어났다는 것이 중평. 코치로서 권위를 내세워 일방적으로 선수를 지도하기보다는 선수들과 직접 소통하며 선수 스스로가 문제점을 찾아 해결해 가도록 이끌어 가는 능력이 탁월해, 팀을 옮겨도 그를 따르는 선수들이 많다. 송지만은 현대에 이적한 후로도 슬럼프에 빠졌을 때 황병일에게 조언을 구했고, 자신의 롤 모델로 장종훈과 황병일을 꼽았다. 이범호도 한화에 있었을 때, 황병일이 한화를 떠난 후에 슬럼프에 빠지면 황병일을 제일 처음 찾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2010년에 수석코치가 되었음에도 KIA 타자들은 타격에 대해 타격코치가 아닌 황병일을 찾았다고 한다. 하긴 당시 KIA 1군 타격코치를 생각해보면 그럴 만하다
KIA 타이거즈 코치 시절 ¶
2008년부터 SK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조범현 감독을 따라 KIA에 타격코치로 부임해 2009년 우승의 공로로[2], 2010 시즌부터는 수석코치로 승격되었다. 2010 시즌 20홈런 타자 5명을 배출하는 게 목표라고 공언했지만, 오히려 KIA 타선의 성적이 하락하자 그에 대한 비난이 증가했다. 이 때 황붕어라는 별명도 생겼다 수석코치가 된 후로는 조범현 감독을 보좌하는데 전념했다지만, 타격 쪽에 아예 손대지 않은 것은 아니다. 특히 2010 시즌에는 경험이 부족한 최경환이 타격코치를 맡아 실질적으로는 황병일이 타격코치도 겸했다고 보는 쪽이 많다.[3]
삼성 라이온즈 코치 시절 ¶
2011 시즌이 끝나고 조범현 감독이 경질되며사퇴하며 황병일도 수석코치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삼성 2군 타격코치로 부임했다. 무려 26년만에 친정팀에 복귀하는 것. 그리고 2012 시즌 삼성 2군 타자들은 죄다 부진했다.[4]
두산 베어스 코치 시절 ¶
연도별 성적 ¶
역대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
1983 | 삼성 라이온즈 | 39 | 64 | .250 | 16 | 6 | 2 | 0 | 12 | 8 | 0 | 3 | ||
1984 | 37 | 51 | .137 | 7 | 1 | 0 | 2 | 5 | 4 | 0 | 8 | |||
1985 | 9 | 10 | .100 | 1 | 0 | 0 | 0 | 2 | 0 | 0 | 0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
1986 | 빙그레 이글스 | 75 | 260 | .242 | 63 | 9 | 2 | 3 | 21 | 25 | 12 | 24 | ||
1987 | 43 | 55 | .200 | 11 | 0 | 1 | 1 | 7 | 2 | 0 | 4 | |||
1988 | 31 | 53 | .283 | 15 | 3 | 0 | 1 | 4 | 7 | 2 | 6 | |||
1989 | 69 | 116 | .207 | 24 | 4 | 0 | 2 | 9 | 14 | 2 | 17 | |||
1990 | 65 | 67 | .179 | 12 | 3 | 0 | 0 | 4 | 7 | 0 | 12 | |||
통산(8시즌) | 368 | 676 | .200 | 149 | 26 | 5 | 9 | 64 | 67 | 16 | 74 |
----
- [1] 한국 야구 사상 기록된 것으로는 최초의 사이클링 히트 기록 보유자이다. 1980년 대학야구 춘계연맹전 원광대전
- [2] 무엇보다도 김상현의 포텐을 터뜨리는 데에 큰 공헌을 했다.
- [3] 삼성 라이온즈에서도 김한수 타격코치의 경험이 부족해 김성래가 수석코치로 승격된 첫 해에는 타격을 겸임한 바 있다.
- [4] 2011 시즌 삼성 2군 팀 타격 기록이 도루 제외 전부문 전체 2위 안에 들 정도로 강했다. 그러나 불과 1년만에 팀 타격 기록이 전체적으로 하락했는데, 특히 사사구와 홈런이 급감해 출루율과 장타율 부분이 하위권으로 크게 하락했다. 참고로 2012 시즌 삼성 2군 타격코치는 황병일을 포함해 강기웅과 김종훈까지 3명으로 등록되었었는데, 김종훈은 시즌 중 1군 선수단에 합류했고, 강기웅은 이제 코치로 복귀한지 2년째가 되기에, 연배나 경험이 많은 황병일이 메인 타격코치를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