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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홍경인(洪景仁) |
출생 | 1976년 10월 27일, 부산광역시 |
가족 | 배우자 박애리[1], 형, 누나 |
신체 | 166cm[2], 65kg |
학력 | 대구고등학교br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 학사 |
종교 | 개신교 |
데뷔 | 1988년 MBC 베스트셀러 극장 '강' |
소속사 | 델미디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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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
배우 활동 ¶
1988년 MBC 베스트셀러극장 '강'으로 데뷔하였다. 1992년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주인공 엄석대 역을 맡아 주목을 받았으며[3], 1995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전태일, KBS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의 정신지체아 수철 역의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그 당시에는 그야말로 연기력의 화신에 가까운 배우라는 평가를 받은 전무후무한 아역배우였다. [4]
특히 박광수 감독과 함께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그 해 씨네21에서 설문조사한 '최고의 남자배우'부분에 안성기와 공동으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 당시 충무로 톱스타였던 안성기는 다작 출연으로 인기가 내려가기도 했으나, 그래도 부동의 원탑이었던 시기였다. 이 외에도 각종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5] 분신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 이것은 대한민국 영화 역사상 최초로 배우의 몸에 불을 붙인 것이었는데 당시 기술이 부족했던 국내 여건상 호주의 특수효과 전문가를 섭외해서 촬영했다고 한다. 당시 한국 최초로 사용했던 기법이 할리우드에서나 쓰던 '워터젤'을 몸에 바르고 불을 붙이는 기법.[6] 그 전문가 曰 "우리 나라에서도 주연 배우가 몸에 이 정도 양의 불을 붙인 적은 없었다." 라고 호평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 영화상 역대 최연소 남우주연상 수상자가 되었으며 1995년 '이천 춘사영화제'에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수상. 당시 겨우 만 19세.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기록은 계속 보유 중이다.
하지만... '전태일' 이후의 그의 행보는 썩 좋지 못했다. 케이블 및 공중파 오락프로그램에 여기저기 출연하고 진행하는 등의 그의 행보로 인하여 특히 영화계에서는 도대체 누가 배우 관리를 저렇게 하는거냐? 저런 배우를 제대로 관리하지도 못하고 방송 여기저기 나오게 하냐?는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7] 그럴수 밖에 없었던게 이 당시 젊은 배우들은 극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예능프로에 자주 출연하여 인지도나 친밀감을 쌓는게 당연시였던 시절이었고, 당시 배용준이 소속되어있던 소속사로 이적하다보니 여기저기 나오는게 당연시 되었던 것.[8] 더불어 영화 전태일의 이미지를 지우고자 선택했던 '피아노맨', '채널 식스나인'이라는 영화에서도 연기력면에서는 호연을 보여줬으나 영화 자체의 운이 없었거나 연기력이나 화제성에서 다른 배우들에게 밀리기도 했다.
1996년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에서 크게 활약을 보여 일약 스타덤에 오르고, 1999년 드라마 왕초에서 철없는 캐릭터인 '날파리'[9]로 유명해지는 동시에 바로 슬럼프를 겪게된다. 단신인데다가 동안인지라 개그역할을 맡아서[10] 크게 히트했으나 그 이후로 원래의 연기력에 맞는 역할을 얻지 못하는 비운을 산다. 괴리가 너무 컸던것. 1999년에는 가수로 활동하면서 앨범 《후애(後愛)》을 발표하지만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다.[11]
이후 이렇다 할 흥행작을 찾지 못하고 공백기를 가지던 중,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군 복무를 마치고 2007년 뮤지컬 배우로 컴백했다. 2008년에는 불한당에서 주인공 장혁의 친구이자 장혁을 남몰래 사랑하는 동성애자 역할을 소화해내기도 했다. 2009년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악역인 석품랑의 배역을 열연하였다. KBS드라마 전우에도 출연했다. 2011년엔 드라마 광개토태왕에서 비교적 비중 있는 조연인 연살타로 출연.
좋은 연기력을 가졌음에도 시트콤에서 얻은 이미지 때문에 몇 년이라는 시간을 낭비하게 된 안타까운 케이스.[12] 그래도 군전역 후에는 드라마에 많이 출연하며 다시 재평가를 받고있다. 또한 본좌급의 연기력을 갖고도 지나치게 작은 키 때문에 아이돌 스타로서도 대성하진 못했다. 같은 시기에 활동한 비슷한 나이의 배우들인 송승헌, 소지섭 등이 아이돌 스타로서도 대성한 것과는 대조된다. 특히 소지섭은 아직도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이미지와는 별개로 실제로도 유머러스하고, 입담도 좋은 편이다. 라디오 스타에 아역 특집에 나와서 이민우와 김정현을 압도하는 말빨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역 시절 에피소드를 들려주다가 장렬하게 자폭하는 토크가 특징. 1976년생 용띠클럽 회원이기도 하다. 뱀발로 문희준이 군대 시절에 가장 사이가 안 좋았던 선임이 홍경인이었다고 하며 그의 갈굼에 복수하기 위해서 문희준은 그의 양말에 불개미를 넣었다고 한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이후 연예병사들의 친목질로 각종 병크가 드러났던 걸 보면 그나마 연예인 친목질로 개판5분전이던 곳에서 나름 규율시켜서 재평가 그들은 날 짓밟았어 하나남은 꿈도 빼앗아 갔어[13]
2013년 11월 중반부터 12월 중반까지 EBS 라디오연재소설에서 최민석 원작의 '풍의역사'를 낭독하기도 했다. 다양한 인물을 심지어 열여섯 소녀까지 미친연기력으로 소화했는데, 특히 '오중사'가 압권. 라디오 연재소설의 공개방송인 낭독의 힘에서 현장낭독을 할 때는 원작자인 최민석 작가가 경인씨의 신들린 연기에 연신 엄지 손가락을 치켜올렸다며 제책이 이렇게 재밌었나 싶었다고 할 정도. 하지만 본인은 이 책이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해보고 싶은 역할이 뭐냐는 질문에 '앞잡이'고자 두목라고 말했다. 앞서 말한 공개방송에서 어느 낭독 전날 술을 마셨다고 밝히며 자긴 목소리가 잠겨서 걱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날 제작진은 목소리가 더 듣기 좋아졌다며 좋아했다고. 술의 파워
2016년 12월 11,18일에 방송된 복면가왕에 참가해 모처럼 시청자들을 찾았다. 동네방네 스피커라는 이름으로 나서서 내 안에 첫눈 있다 스노우볼을 꺾고 2라운드에 진출했으며 조율하고 가실게요! 바이올린맨에게 밀렸다. 참고로 그를 가수라고 생각했던 김구라는 데꿀멍...... 뭐 정식 앨범을 낸 경력이 있긴 하지만. 오랫동안 연기를 하다가 매너리즘이 와 사업을 하고 있으면서 연기활동은 계속 하고 있었다고 밝혔으며 얼마 전에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는데 팔로우 숫자 뒤에 K가 안 붙는다며 이번을 계기로 K가 붙었으면 좋겠다는 언급을 했다.
드라마 ¶
방영 연도 | 방송사 | 제목 | 배역 | 비고 |
2018년 | OCN | 보이스 2 | 나형준 | |
2015년 | TV 조선&tvN | 위대한 이야기 - 광장시장 사람들 | 강호 | |
2013년 | tvN | 환상거탑 | 형식 | |
2011년 | KBS | 광개토태왕 | 연살타 | |
2010년 | 전우 | 양상길 | ||
2009년 | MBC | 선덕여왕 | 석품 | |
2008년 | SBS | 불한당 | 김만두 | |
2002년 | 대망 | 서구 | ||
2000년 | MBC | 신 귀공자 | ||
나쁜 친구들 | 이홍원 | |||
1999년 | 왕초 | 날파리 | ||
1996년 | MBC | 남자셋 여자셋 | 홍경인 | |
일곱 개의 숟가락 | 조정인 | |||
1.5 | 송진복 | |||
KBS | 컬러 | |||
1995년 | KBS | 젊은이의 양지 | 임수철 | |
SBS | 모래시계 | 강우석 | 박상원 아역 | |
1993년 | MBC | 제3공화국 | 박정희 | 이진수 아역 |
1990년 | 꼴찌수색대 |
영화 ¶
수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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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팝핀현준의 부인과 이름이 같다.
- [2] 예전에 신검 키.
- [3] 촬영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17살이었는데 성인 배우도 소화하기 힘든 복잡한 역할인 엄석대를 겨우 중학생이었던 그가 아주 살벌하고 소름끼치게 표현해내어 당시 대한민국 영화계는 천재 배우가 나왔다며 발칵 뒤집혔다. 참고로 선생님 역할로 신구와 최민식이 나온다.
- [4] 그야말로 연기 스펙트럼이 엄청났다. 독재자(엄석대 역)부터 노동운동가(전태일), 그리고 정신지체아까지. 근데 이 정도의 필모그래피를 다 10대 때, 즉 중·고,대학생 신분으로 전부 쌓았다(...)
- [5] 문민정부 시절로 사회 전반적으로 민주주의, 노동문제등에 관심이 크던 시기인지라 당시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컸다고 한다.
- [6] 훗날 이는 한국에서도 수많은 화재 재난 영화에서 쓰이게 된다. 영화 전태일의 성공 덕분이었다.
근데 어설프게 써서 조금 다친 배우들도 있었다고.. - [7] 심지어 개그맨들과 꽁트를 찍기도 했었고 드라마타이즈 코미디에도 참여했을 정도다. 그것도 개그를 받쳐주는 정상인 역할이 아니라 오히려 본인이 바보스럽게 코믹한 쪽으로... 무려 90년대 최고 개그우먼 중 하나인 이영자와도 꽁트를 했을 정도.
이영자한테 홍진경이 77년생이고 자기가 76년생이라 홍진경이 누나라는 드립을 치기도... - [8] 역시 배우에게는 예능이 毒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홍경인과 배용준을 관리하던 사람은 바로 훗날 전지현을 대 스타로 만든 사이더스HQ의 '정훈탁' 되시겠다. 당시 정훈탁은 EBM이라는 매니지먼트사를 차렸는데, 소속 연예인은 바로 배용준, 한재석, 정찬, 차태현, 홍경인...
- [9] 대부분 철없는 캐릭터로 연기하지만 마지막회의 진지한 씬에서는 그의 연기 내공이 빛을 발한다.
- [10] 긴 바바리 코트를 입었는데 너무 길어서 코드 자락을 바닥에 질질 끌어 낙엽을 쓸며 노래부르는 장면이 특히 유명하다(...)
- [11] 사실 가창력은 꽤 좋은 편이다. 남자셋 여자셋에서도 노래를 하는 씬이 몇 번 등장한다. 그러나 이미지가 이미지라서 묻혔다...게다가 90년대 후반에는 비주얼과 퍼포먼스로 승부하는 비디오형 가수들의 범람이 절정을 이룬 시기였다. 심지어 음향장비가 좋지 못해서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발라드 가수들까지 종종 방송에서 립싱크를 시키는 시절이고, 라이브를 하는 가수를 신기하게 보던 시절이었다. 즉, 젊은 가수들의 절대다수에게 가창력보다는 외모와 춤실력이 강조되던 시절. 오죽하면 가수는 커녕 일반인치고도 노래를 잘하는 편이 아닌 최창민같은 가수들이 솔로가수로 나왔을까... 이 상황에서 가창력만으로 승부하려면 가창력이 신승훈이나 김건모같이 본좌급으로 뛰어나거나 음악성이 윤종신처럼 탁월해야했는데, 그냥 평범하게 노래잘하고 외모는 떨어지던 홍경인이 발붙힐 자리는 없었다.
- [12] 16살 때 이미 영화의 주인공이었다. 그냥 그 나이에 맞는 연기 그런게 아니라 엄석대 역이었으니. 19살 때 전태일 역으로 분신자살까지 소화하며 명 연기를 펼치다가 남자셋 여자셋 이후로는 주연을 못하게 된다.
- [13] 참 아이러니한 것이, 문희준이 속한 H.O.T.의 데뷔곡인 전사의 후예의 가사에서 저격하는 대상의 가장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는, 엄석대를 연기한 인물을 군대에서 만났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