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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


虛僞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인 것처럼 꾸민 것 등을 뜻한다.

독립운동가



허위 / [[한자]]: 許蔿
생몰년도 1854년 4월 1일 ~ 1908년 10월 21일
출생지 조선 경상북도 하고면 임은동
사망지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경성 감옥
국적 조선 (1854년 ~ 1897년) br 대한제국 (1897년 ~ 1908년)
본관 김해 허씨(金海 許氏)
별칭 호(號)는 왕(旺山)
직업 평리원 재판장 -> 의병장
종교 유교
가족 허윤(조부) 허조(부) br 허훈(백형) 허신(중형) 허겸(계형) br허학(장남) 허영(차남) 허준(삼남) 허국(사남)

許蔿
1855년(철종 6년) ~ 1908년

호는 왕(旺山)이다. 1855년 경상도 하고면 임은동(현 구미시 임은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다가 고종이 내밀봉서(內密封書)로 의병 해 명령을 내리자 해하였다.

1907년 고종이 강제 퇴위하고 정미 7조약으로 대한 제국 군대가 해하자 의병을 일으켰다. 13도 창의군의 군사장으로 선봉대를 이끌고 동대문 밖 30리까지 진격하였으나[1] 준비하고 있던 일본군에 의해 격퇴당하고, 총대장인 이인영이 부친상을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나자, 후임 총대장이 되어 2차 진격을 계획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이듬해 일본군 헌병에게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심문을 받던 중 '의병을 일으킨 주동자와 대장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주동자는 이토이며 대장은 나다.'라고 대답하고, 이유를 묻자 '이토가 우리 나라를 침략하지 않았다면 의병 또한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 이토가 곧 주동자이다.'라고 대답했다는 야사가 있다.

김구백범일지에서는 허위가 순국하자 그곳에 있던 식수로 쓰는 우물이 빨갛게 물들어 더이상 사용할 수 없다고 하더라 라는 말이 쓰여있다. [2]

여담으로 그의 증조카가 일제강점기 시기 동북항일연군에서 항일 무장 투쟁 활동을 했던 허형식이다.# 또한 당조카인 허길의 아들이 바로 시인 이육사이다. 직계 제자로는 대한 광복회 총사령인 박상진이 있다. 박상진은 허위가 순국한 후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루기도 했다.

대구광역시 달성공원 안에 왕 허위 선생 순국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SBS의 드라마 제중원에서도 후반부에 중요 조연으로서 등장한다. 손현주가 연기하였고, 외유내강형의 인자한 인물로 그려진다. 총상을 마취 없이 치료하는데도 버텨냈으며 그 대가로 주인공 황정의 호를 지어준다. 주인공이 독립 운동가로 각성하도록 돕는 인물 중 하나.

참고로 이 분의 손자 분들이 구 소련 및 중앙 아시아에서 고려인 신분으로 힘들게 사시다가 2006년 귀화하셨다 #. 3대가 지나온 국권 침탈 - 연해주 - 중앙 아시아의 기나긴 여정과 또 종착점으로서 그들을 맞이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고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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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허위가 이끌던 13도 창의군이 최종적으로 머물었던 길을 그의 호를 따 명명하게 됐는데, 그게 현재의 이다.
  • [2] 출처. 백범일지. 치하포 사건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