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포로 신세 ¶
1980년 년대 중엽, 칼리파 하프타르 장군은 리비아-차드 전쟁(통칭 토요타 전쟁)에 리비아 군을 이끌고 참전했으나, 차드 군은 프랑스의 후원과 토요타 픽업트럭을 이용한 기동전술로 리비아 군을 참패시켰다. 1987년에 하프타르 장군은 병사들과 함께 차드 군에 포로로 붙잡히고 말았다. 카다피는 하프타르와 관련성을 부인하여 그를 투사구팽해버린다.딱히 토끼를 잡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이 뒤의 행적은 묘연한데, 수년간 차드에서 옥살이를 한 것으로 추측되지만 행적은 불분명하다. 뉴욕 타임즈에서는 이 시기에 차드에서 카다피 축출, 암살 작전에 투입할 리비아 무장세력을 훈련하는 작전에 CIA가 자금을 지원했다는 보도가 된 바 있는데, 하프타르가 여기에 참가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2.4. 쿠데타 ¶
2014년 2월, 하프타르는 TV를 통하여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한 일반 국민회의에 반대하는 봉기를 일으키라고 선언했다. 하프타르는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의회 의사당을 장갑차와 로켓포로 공격하여 의회 권한 정지를 선언했으며, 국민군은 벵가지에서 이슬람 무장단체 '안사르 알 샤리아' 등 이슬람계 세력에 공격을 퍼부었다. 이 사실상 쿠데타를 계기로 하여 리비아 국민군에는 세속주의 반군 세력이 모두 결집하게 된다. 2014년 6월 국민투표(유권자 중 18%, 약 63만 명 투표)를 거쳐 동부지역에서는 대표자 정부(the House of Representatives)가 2014년 8월 4일 창립되어 일반 국민회의를 대체했다. 하프타르는 리비아 국민군(the Libyan National Army)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하프타르는 내전에서는 뛰어난 역량을 보였는데, 2016년 2월에 리비아 국군은 이슬람주의 민병대를 대부분 벵가지에서 축출했으며, 2016년 4월 중순에는 이슬람주의 민병대는 벵가지 동족 250km나 떨어진 데르나 까지 축출되었다. 하프타르가 이끄는 리비아 국군은 무슬림형제단이 이끄는 리비아 돈, 미스라탄 부대, 벵가지의 혁명 세력 슈라위원회, 시르테 지역을 장악한 이슬람 국가와 대결하고 있다.
2.5. 리비아 국민합의 정부와의 충돌 ¶
2015년 12월에, UN의 증재로 동부와 서부의 일부 세력이 합의하여 국민합의 정부가 창설되었다. 하지만 동부지역은 반대파가 많이 합의가 승인되지 못하고 있다. 하프타르의 지지자들은 국민합의 정부에 대하여 하프타르의 지위를 보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리비아 국군의 지휘권을 넘기지 않고 있다. 국민합의 정부는 동부지역 군 사령관 가운데 한 명인 마흐디 이브라힘 알 바르가티를 국방장관으로 임명하고 하프타르를 소외시키는 중.
2016년 3월 30일, 임명된지 무려 3개월이나 지나서 국민합의 정부의 총리 세라즈가 튀니지에서 해로로 트리폴리에 들어왔으며 해군기지에 머물고 있다. 세라즈는 리비아 내에서 정치, 군사 지지 기반이 거의 없어, 트리폴리 정부 역시 세라즈의 입성을 반대하면서 공항을 폐쇄할 정도였기 때문.
2016년 5월에 세라즈는 미스라탄 부대를 중심으로 반-IS 센터를 트리폴리에 창설하였으며, 5월 중순에 미스라탄 부대는 하프타르가 이끄는 리비아 국군과 시르테 남부 질라 지역에서 전투를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