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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명의 신데렐라 일레븐 등장인물은 최한경(신데렐라 일레븐) 참조.
이름 | 최한경(崔韓慶 / Han-Kyeong Choi) |
생년월일 | 1974년 11월 20일 |
출신지 | 경상북도 포항시 |
학력 | 대해초-포항중-포철공고 |
포지션 | 투수, 외야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93년 삼성 라이온즈 고졸연고지명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1993~1999) br LG 트윈스(2000)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75번(1993~1995) | |||||
→ | 최한경(1993~1995) | → | 류중일(2000~)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9번(1996~1999) | |||||
최용희(1994~1995) | → | 최한경(1996~1999) | → | 변대수(2000) |
목차
소개 ¶
현역 커리어 ¶
포항제철고 시절에는 투타 만능에 빠른 공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으며 포항제철고 졸업 후인 1993년 삼성에 입단했다. 입단 첫 해에 12경기에 나와 2.87의 평균자책을 기록했으나 그리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다.
이듬해 1994년 리빌딩 중이라 어수선했던 시기에 그야말로 갑툭튀, 151km/h까지 나오는 강속구를 앞세워 삼성의 뒷문을 책임지며 6승 7패 9세이브 평균자책 3.28을 기록했다. 팀은 정규시즌 5위로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해 노장 정리 등 본격적인 리빌딩이 시작된 한편, 150km/h의 강속구를 던지는 최한경은 큰 기대를 받았다.
당시 150km대를 던지는 투수는 선동열하고 박동희 정도로 많지 않았던 상황에서, 쌩 고졸신인이 평균 150km의 공을 던진다는 것은 일약 센세이션에 가까웠다. 마무리 활동 당시 삼성전 중계 방송에서는 최한경까지만 가면 삼성이 이길 수 있다는 말이 자주 나오곤 했는데, 이는 그가 94년 한정 당대 최고의 마무리였음을 입증한다. 공은 가볍다는 소리를 들었을지언정 속도만큼은 엄청났고, 이 때문에 94년 주전으로 활약했지만 오히려 속구를 던질 수 있다는 것 때문에 5회부터 등판하고, 선발로도 나오는 등 아직 몸이 다 만들어지지 않은 고졸신인에게는 가혹할만치 엄청난 혹사를 당했다.
1995 시즌부터는 방위복무 때문에 홈경기에만 출전했고 게다가 그나마 선발로 키우려고 시도했던 선수들이 죄다 무너지며 최한경을 선발 기용하는 강수를 뒀다. 갑작스런 선발 전향에도 7승 4패의 성적을 거뒀지만 그간의 혹사를 버티지 못하고 평균자책이 5.70으로 부진했다. 150km/h의 강속구는 130km/h의 속도로 밋밋해졌고 또한 선발과 계투를 오가며 자잘한 부상을 얻어 1996년에는 1승 2패를 거두는데 그쳤다. 그것이 최한경의 마지막 1군에서의 모습이었다. 대학에 입학한 동년배들이 이제 막 프로에 진출할 시기에 자취를 감춘 것.
1997년에는 어깨부상을 당했고, 1999년 타자 전향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삼성에서 방출되었다. 방출 후 LG 트윈스에서 다시 타자로 1군 복귀를 시도했으나 1년만에 방출되며 은퇴했다.
은퇴 후 LG 트레이너로 있다가 대전고, 홍익대 코치를 거쳐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의 야구 팀인 장쑤 호프스타스의 감독, 광동 레오파드의 코치로 있다가 현재는 귀국해 고향 포항에서 스포츠센터를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