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프런트이다. 1951년 11월 12일 경상북도 경산군에서 태어났다. 배재고등학교와 성균관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하였다. 1977년 LG그룹 공채로 입사하였다. LG상사에서 근무하다가 1990년 LG스포츠로 발령받으면서 스포츠계와 인연을 맺게 된다.
야구(LG 트윈스 / SK 와이번스), 축구(안양 LG / 대구 FC), 배구(LG화재), 씨름(LG투자증권) 등 여러 스포츠 종목의 단장으로 일하면서, "직업이 단장"이라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이후에는 가톨릭관동대학교 교수와 대한바둑협회 상임부회장, 스포츠칼럼니스트로써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경력 ¶
- 1990년 LG 트윈스 창단 준비팀장
- 1995년 12월 LG트윈스 단장 / LG화재 배구단 단장 (~1999)
- 1999년 안양 LG 치타스 단장 / LG투자증권 황소씨름단 단장
- 2001년 LG 트윈스 단장
- 2002년 한국씨름연맹 기획실장 / 사무총장
- 2003년 SK 와이번스 단장
- 2006년 4월 대구 FC 단장
- 2009년 7월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2013.04.17)
- 2010년 2월 IOC 생활체육분과위원 (~2013.04.17)
- 2014년 가톨릭관동대학교 스포츠레저학과 교수 (~2015)
- 2017년 1월 대한바둑협회[1] 상임부회장
기타 ¶
2008년 3월 대구 FC 단장 재직 시절 한 지역신문에 기고한 사설에서 축구는 조선인이 일본인을 압도하여 민족의 자긍심을 되찾고 나라를 잃은 울분을 토해 내는 것을 두려워해 축구통제령을 내릴려고 했으며 경평축구를 할 때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자 일제가 문화탄압을 하는 원인이 된 반면 일제가 축구를 강제로 막기보다 야구를 널리 전파하고 보급하여 자국의 문화지배력을 높이고자 했다는 사실과 다른 왜곡된 주장을 썼었다. 하지만 야구는 이미 축구통제령을 내리기 2년 전인 1932년에 야구통제령이 시행되어 성인야구를 금지하고 학생야구만 존속케 하여 조선야구가 위축하게 만들었다. 한편 축구는 조선총독부가 아닌 중등학교체육연맹에 실시방침을 전달하고 통제를 위임하는 형태를 취해 야구에 비해 좀더 나은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