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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최은희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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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최경순
출생 1926년 11월 20일, 경기도 광주
사망 2018년 4월 16일(향년 91세)
장례미사 2018년 4월 19일
가족 배우자신상옥, 자녀 1남 1녀[1]
종교 가톨릭 (세례명 : 소화데레사)
데뷔 1947년 영화 <새로운 맹서>

목차

활동

1943년 극단 <아랑>의 연구생이 된 후 1947년 '새로운 맹서'로 영화계에 데뷔, 연기력과 미모로 주목받는 신예로 떠오른다. 이 때 촬영기사 김학성과 만나서 동거했다.[2] 하지만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결별. 이 때 최은희는 서울에 있다가 심영[3]에게 1차로 납치된다.내가 납치범이라니 하지만 청천강 인근에서 탈출했는데, 이 때 '북한군에게 윤간당했다.'라는 괴소문이 돌게 된다. 문제는 이후 국군을 따라 위문공연을 하고 다녔는데, 이 과정에서 진짜로 한국군에 의해서 성폭행 당했다는 것이다. 윤간은 아니지만 머리에 총을 겨누고 성폭행했다니 빼도박도 못한다. 이는 최은희 본인의 증언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이 때 신상옥을 만났고,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를 계기로 신상옥 감독과 만나 결혼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서 김학성은 둘을 간통죄로 고소했으나, 김학성과 최은희는 사실혼 관계에 가까웠지 혼인신고는 하지 않은 동거 상황이었기 때문에 무죄 판결이 나온다. 자서전을 보면 당 최은희는 김학성의 가정 폭력에 달리고 있었다고 한다. 결혼 생활중 둘 사이에는 자녀가 없어서 입양을 하였다, 신상옥은 이후 자녀를 보았기 때문에, 최은희가 불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5, 60년대 영화계를 김지미, 엄앵란과 함께 나눌 정도로 스타가 되었다. 특히 1960년대에는 후배 김지미와 경쟁했는데, 흥미롭게도 '춘향전'을 비슷한 기에 김지미(홍성기 감독)와 최은희(신상옥 감독)가 각자 버전으로 찍고 동 개봉하면서 라이벌전을 벌이기도 했다. (결과는 신상옥 최은희 페어의 승리로 끝났다.) 이 절 그녀는 정말 다양한 연기를 선보였는데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처럼 전통적 여인상에서 <지옥화>처럼 서구적인 글래머상까지 소화하면서 그녀는 초창기 한국영화에 엄청난 업적을 남겼다.

1965년에는 대한민국의 3번째 여성감독으로 이름을 올리며 총 3편의 작품을 연출했다. 이 때에 연출한 영화가 본인이 주연으로 출연한 <민며느리> 이다. 당로서는 파격적인 페미니즘 어젠다와 텍스트를 보여준 대를 앞서간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민며느리>는 제20회 국제서울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그 이후 신상옥 감독이 중간에 배우 오수미[4]와 사귀게 되면서 이혼하였다. 1967년부터는 신상옥이 이사장으로 있던 학교였던 안양예술고등학교의 교장으로 일하며 후진양성에 주력했지만 1978년 1월 14일에 홍콩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북되었으며 동년 7월 19일에 신상옥 감독 역 홍콩에서 납북되었다.

그 후 북한에서도 영화 활동을 이어 나가면서 1985년에는 영화 <소금>으로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타기도 했다. 1986년 3월 13일, 신상옥과 함께 오스트리아 에 있던 도중, 미국 대사관으로 탈출하여 극적으로 탈북에 성공해 10년 넘는 망명생활을 하다가 1999년에 영구 귀국했다.

마릴린 먼로가 주한미군 위문 공연으로 내한했을 당, 같이 동행했으며 사진도 남아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동갑이다.

사망

2018년 4월 16일에 향년 91세로 사망했다. 사족이지만 사망 전 1년동안은 계속 투병생활을 해왔던 것으로 뒤늦게야 전해졌다. 슬하에 친자녀는 없지만 입양한 자녀 2명(1남 1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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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둘 다 남편 신상옥家 친척조카를 입양했다.
  • [2] 최은희가 언니처럼 잘 따르던 선배의 남동생이었다. 나이차이가 열 살 이상 났고, 김학성 슬하엔 자녀도 있었다. 다만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다고.
  • [3] 우리가 아는 그 고자심영이 맞다.
  • [4] 본명은 윤영희로 나중에 실종되는 윤영실의 언니다. 오수미 본인도 1992년 하와이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