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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일에 대해 후회는 하지 않는다. 감상에 젖어있기엔 처해진 상황은 급박하다. 토트넘은 담을 넘었다. 이 동네에 내가 보지 못한 녀석들 중에 토트넘만큼 신선하고 하체가 발달한 녀석은 몇이나 더 있을까? 토트넘의 조기축구 동료는 적어도 10명은 있겠지. 그리고 경기할 상대팀도 11명은 있겠지. 그럼 적어도 20명 안팎의 신선하고 하체가 튼튼한 녀석들이 있는 걸까?
아무런 확신도 할 수 없다. 내가 기억하는 그들은 옆집 앞에 모였다가 근처 초등학교에서 친선경기를 뛰고나서 탕수육에 소주를 들이붓는 사람들이다. 뛰어서 소모한 칼로리보다 더 많은 열량을 섭취하는 사람들. 뱃살이 늘어지고 머리가 벗겨진 비슷비슷한 얼굴들. 똑같이 토트넘 유니폼을 걸치고서……. 운동신경이란 단어를 도저히 떠올릴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긴 토트넘도 원래는 그렇지 않았던가? 죽어서도 담을 뛰어넘을 정도로 체력이 좋을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는가?
아무런 확신도 할 수 없다. 내가 기억하는 그들은 옆집 앞에 모였다가 근처 초등학교에서 친선경기를 뛰고나서 탕수육에 소주를 들이붓는 사람들이다. 뛰어서 소모한 칼로리보다 더 많은 열량을 섭취하는 사람들. 뱃살이 늘어지고 머리가 벗겨진 비슷비슷한 얼굴들. 똑같이 토트넘 유니폼을 걸치고서……. 운동신경이란 단어를 도저히 떠올릴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긴 토트넘도 원래는 그렇지 않았던가? 죽어서도 담을 뛰어넘을 정도로 체력이 좋을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아니면 생전에 밥 먹듯이 반복한 행동이다 보니 죽어서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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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고민은 토트넘의 시체를 그대로 둘 순 없다는 뜬금없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고양이가 다니는 길목에 고양이 시체를 놓으면 얼씬도 하지 않는다는 얘길 들은 적 있다. 그러나 녀석들이 고양이만큼 판단력이 있진 않겠지. 녀석들 중에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녀석이 있다면 썩어가는 강렬한 냄세에 이끌릴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후각이 살아있는 놈은 운동신경이 살아있는 놈보단 많을 거라는 생각도.
짧은 고민은 토트넘의 시체를 그대로 둘 순 없다는 뜬금없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고양이가 다니는 길목에 고양이 시체를 놓으면 얼씬도 하지 않는다는 얘길 들은 적 있다. 그러나 녀석들이 고양이만큼 판단력이 있진 않겠지. 녀석들 중에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녀석이 있다면 썩어가는 강렬한 냄새에 이끌릴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후각이 살아있는 놈은 운동신경이 살아있는 놈보단 많을 거라는 생각도.
어짜피 생각이 없는 놈들이니까, 자신들의 동료(?)가 죽거나 죽을 지경이라면 달려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왜, 동물의 왕국에 보면 자주 나오잖아? 그게 사실이라면 이 토트넘을 미끼로 써서 좀비들을 다른 곳으로 유인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거기까지 시험해 보고 싶진 않았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는 배부른 돼지가 나았다.
하지만 토트넘은 적어도 90kg는 될 것 같다. 굶고 지친 내가 쉽게 들어옮길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편히 옮기기 위해서는…… '''잘라낼 수 밖에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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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톱과 망치를 동원해서 사체를 잘게 나눴다. 목장갑을 끼고 작업을 했지만 시간이 가면서 찐득한 체액이 장갑 안까지 배어들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짜장이 튄 것 같았던 티셔츠는 짜장면을 그릇 째 엎은 모양이 됐다. 토트넘의 체액을 뒤집어 쓰고 있는 것이다.
토막낸 사체는 묻어버릴 생각도 했지만 그만큼 깊게 파야 하니 수고스럽다. 나는 담장 너머 이웃집으로 조각을 집어던졌다. 상한 고기 덩어리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철퍽거리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마치 내가 비인간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처럼. 아니, '''원래 저 집 사람'''이잖아. 비난 당할 일이 아니다. 이건 있던 곳에 돌려보내 주는 거야.
그때 나는 담 너머를 슬쩍 보았다. 그 집은 벽을 따라서 안 쓰는 화분, 손수레 따위가 계단처럼 쌓여있었다. 토트넘이 담을 넘은 수수깨끼가 밝혀졌다. 그렇다면 반대로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건? 그 비밀도 오래 가지 않았다. 우리집 담 아래에도 안 쓰는 커다란 장독이 뒤집혀서 벽 앞에 있었던 것이다. 거의 벽의 절반까지 되는 높이였다. 아무렴 죽은 몸으로 이 담을 뛰어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체가 발달된 토트넘은 그 절반 정도의 높이는 올라갈 수 있었고 다시 거기서 담을 넘는건 가능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담 너머를 슬쩍 보았다. 그 집은 벽을 따라서 안 쓰는 화분, 손수레 따위가 계단처럼 쌓여있었다. 토트넘이 담을 넘은 수수께끼가 밝혀졌다. 그렇다면 반대로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건? 그 비밀도 오래 가지 않았다. 우리집 담 아래에도 안 쓰는 커다란 장독이 뒤집혀서 벽 앞에 있었던 것이다. 거의 벽의 절반까지 되는 높이였다. 아무렴 죽은 몸으로 이 담을 뛰어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체가 발달된 토트넘은 그 절반 정도의 높이는 올라갈 수 있었고 다시 거기서 담을 넘는건 가능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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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장독은 당연히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 하지만 나가는 문을 막은 것 뿐이다. 들어오는 문은 여전히 열려있다. 하지만 그 문을 닫으려면 저쪽으로 넘어가야 할텐데. 저쪽이 안전한 공간인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체액으로 범벅이 된 몸은 땀까지 나면서 믿을 수 없는 냄새를 자아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씻어내고 싶지만 내친 김에 일을 처리해야 하지 않을까"
체액으로 범벅이 된 몸은 땀까지 나면서 믿을 수 없는 냄새를 자아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씻어내고 싶지만, 내친 김에 이웃집 대문도 닫아놓고 쓸만한 게 있는지 뒤져봐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 이 꼴로는 위험하지 않을까? 다시금 불쾌한 딜레마가 시작됐다.
== 선택 ==
* [[창작:좀비탈출/5-1-1-1|이웃집으로 넘어가 본다.]]
1. 본문 ¶
시체를 치운다. |
토트넘을 내려다 보니 생각보다 생전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었다. 접점이라곤 밥맛 떨어지는 일 밖에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되고 나서 만난 최초의 지인이었다. 부모님을 죽인 원수였어도 조금은, 쥐꼬리만큼은 반가운 기분이 생길법 하지 않은가?
"안녕하셨어요 아저씨? 건강해 보이네요."
그건 농담만은 아니었다. 토트넘은 지금까지 본 녀석들 중 압도적으로 신선했다. 아직도 신체 일부는 분홍빛을 띄고 있고 단련된 하체는 근육이 뭉그러지지도 않았다. 상대적으로 상체는 살점이 떨어져나가고 지방의 부패가 시작되었지만…… 의식할 수록 그게 사람이었던 시절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내가 한 일에 대해 후회는 하지 않는다. 감상에 젖어있기엔 처해진 상황은 급박하다. 토트넘은 담을 넘었다. 이 동네에 내가 보지 못한 녀석들 중에 토트넘만큼 신선하고 하체가 발달한 녀석은 몇이나 더 있을까? 토트넘의 조기축구 동료는 적어도 10명은 있겠지. 그리고 경기할 상대팀도 11명은 있겠지. 그럼 적어도 20명 안팎의 신선하고 하체가 튼튼한 녀석들이 있는 걸까?
아무런 확신도 할 수 없다. 내가 기억하는 그들은 옆집 앞에 모였다가 근처 초등학교에서 친선경기를 뛰고나서 탕수육에 소주를 들이붓는 사람들이다. 뛰어서 소모한 칼로리보다 더 많은 열량을 섭취하는 사람들. 뱃살이 늘어지고 머리가 벗겨진 비슷비슷한 얼굴들. 똑같이 토트넘 유니폼을 걸치고서……. 운동신경이란 단어를 도저히 떠올릴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긴 토트넘도 원래는 그렇지 않았던가? 죽어서도 담을 뛰어넘을 정도로 체력이 좋을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아니면 생전에 밥 먹듯이 반복한 행동이다 보니 죽어서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짧은 고민은 토트넘의 시체를 그대로 둘 순 없다는 뜬금없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고양이가 다니는 길목에 고양이 시체를 놓으면 얼씬도 하지 않는다는 얘길 들은 적 있다. 그러나 녀석들이 고양이만큼 판단력이 있진 않겠지. 녀석들 중에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녀석이 있다면 썩어가는 강렬한 냄새에 이끌릴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후각이 살아있는 놈은 운동신경이 살아있는 놈보단 많을 거라는 생각도.
어짜피 생각이 없는 놈들이니까, 자신들의 동료(?)가 죽거나 죽을 지경이라면 달려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왜, 동물의 왕국에 보면 자주 나오잖아? 그게 사실이라면 이 토트넘을 미끼로 써서 좀비들을 다른 곳으로 유인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거기까지 시험해 보고 싶진 않았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는 배부른 돼지가 나았다.
하지만 토트넘은 적어도 90kg는 될 것 같다. 굶고 지친 내가 쉽게 들어옮길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편히 옮기기 위해서는…… 잘라낼 수 밖에 없군.
잠시 뒤 나는 필요할 법한 공구는 전부 챙겨서 뒷마당으로 돌아왔다. 혹시 그 사이에 뭔가가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경계했지만 다행히도 다른 놈들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이 지난 것 같지만 아직도 태양은 정점에 있었다. 그러고 보면 토트넘은 이렇게 햇볕이 쨍쨍한데 왜 움직이고 있었던 걸까? 혹시 녀석이 숨기 위해 뒷마당으로 오다 마주친 걸지도 모른다. 그런 거라면 조금만 늦게 나왔더라면 안전한 타이밍을 잡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톱과 망치를 동원해서 사체를 잘게 나눴다. 목장갑을 끼고 작업을 했지만 시간이 가면서 찐득한 체액이 장갑 안까지 배어들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짜장이 튄 것 같았던 티셔츠는 짜장면을 그릇 째 엎은 모양이 됐다. 토트넘의 체액을 뒤집어 쓰고 있는 것이다.
토막낸 사체는 묻어버릴 생각도 했지만 그만큼 깊게 파야 하니 수고스럽다. 나는 담장 너머 이웃집으로 조각을 집어던졌다. 상한 고기 덩어리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철퍽거리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마치 내가 비인간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처럼. 아니, 원래 저 집 사람이잖아. 비난 당할 일이 아니다. 이건 있던 곳에 돌려보내 주는 거야.
그때 나는 담 너머를 슬쩍 보았다. 그 집은 벽을 따라서 안 쓰는 화분, 손수레 따위가 계단처럼 쌓여있었다. 토트넘이 담을 넘은 수수께끼가 밝혀졌다. 그렇다면 반대로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건? 그 비밀도 오래 가지 않았다. 우리집 담 아래에도 안 쓰는 커다란 장독이 뒤집혀서 벽 앞에 있었던 것이다. 거의 벽의 절반까지 되는 높이였다. 아무렴 죽은 몸으로 이 담을 뛰어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체가 발달된 토트넘은 그 절반 정도의 높이는 올라갈 수 있었고 다시 거기서 담을 넘는건 가능했던 것 같다.
이 계단을 어떻게 한다?
우리집 장독은 당연히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 하지만 나가는 문을 막은 것 뿐이다. 들어오는 문은 여전히 열려있다. 하지만 그 문을 닫으려면 저쪽으로 넘어가야 할텐데. 저쪽이 안전한 공간인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체액으로 범벅이 된 몸은 땀까지 나면서 믿을 수 없는 냄새를 자아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씻어내고 싶지만, 내친 김에 이웃집 대문도 닫아놓고 쓸만한 게 있는지 뒤져봐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 이 꼴로는 위험하지 않을까? 다시금 불쾌한 딜레마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