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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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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미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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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개요


블루스의 여왕. 가요무대 최다 출연의 주인공.[1]

주현미(周炫美 : 중국어 발음은 저우쉬안메이)는 1961년 11월 5일 생 (age(1961-11-05)세) [2].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다.

화교 3세[3] 출신으로, 전라북도 남원 에서 4남매 중 첫째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4살 때 한국으로 이주하여 자란 중국인[4] 한의사였고, 어머니는 한국인이었다. 참고로 주현미의 친할머니 역시 한국인이었다고 방송에서 밝혔다. 따라서 주현미는 굳이 혈통을 따지자면 중국 쿼터(1/4) 혼혈인 셈이다. 대만 국적이었으나 결혼 후 남편을 따라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주현미의 동생들은 아직 중화민국 국적이라 한다.[5] 종교는 가톨릭으로 소화 데레사라는 세례명을 가지고 있다.[6]

남편은 한국 록그룹 비상구(EXIT) 보컬리스트 출신이자 조용필 밴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기타리스트였던 임동신[7]. 40일간 미주 공연으로 알게된 두 사람은 주현미가 28살일 때 결혼했다. 당시 주현미는 가수 일이나 인기를 포기해도 좋을 만큼 남편을 사랑했다고 한다. 임동신은 결혼 후 자기 일은 거의 포기하고 아내의 매니지먼트와 프로듀싱 작업을 도왔다. 그래서 주현미가 가요대상을 수상했을때 '여보'라고 울먹이며 남편을 부르기도 했다. 주현미의 아들은 현재 버클리 음대 재학 중.

연예인 중에서는 나름 엘리트로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중앙대학교 약대를 졸업해서 약사 면허증을 가지고 있다.[8] 이후 약국을 운영하기도 했으나 수줍음 타는 성격이라 사업수완이 없었던데다 원칙을 고수하는 탓에 손님이 없어 일찍 가게를 접었다고 한다. 당시 의약분업이 이뤄지기 전이었는데, 증상과 상관없이 막무가내로 영양제나 항생제 등을 달라는 손님들에게 그럴 수는 없다고 거절하다보니 별난 약사라고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약국이 망해서 가수한 주현미

대중가수로서 처음 알려진 것은 1981년 제 2회 MBC 강변가요제에서 주현미가 소속된 중앙대학교 약학대학 음악그룹 인삼뿌리 2기가 장려상을 수상하면서부터이다. 사실 그 이전 중학교 2학년때 이미 첫음반을 발매한 적 있다. 이때 첫 음반은 작곡가 정종택이 맡았었는데, 주현미가 성인이 되어 발매한 앨범도 정종택이 맡았다.

솔로 데뷔 전인 1984년 무렵에 김준규랑 같이 부른 메들리 앨범 '쌍쌍파티'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는데, 같이 듀엣으로 녹음한 게 아니라 따로 따로 녹음한 걸 편집에서 합친 앨범이지만 편집한 둘의 호흡이 워낙에 대단했기에 80년대 중반 돌풍을 일으켰고, 이때의 흥행을 발판으로 솔로로 독립할 수 있었다. 그 기세를 타 1985년 1집 앨범 ≪비내리는 영동교≫로 데뷔하여 단번에 트로트 탑 그룹에 올랐으며, 그 후에도 연이은 성공으로 히트곡이 상당히 많다. 1988년에는 '신사동 그 사람'의 대 히트에 힘입어 MBC, KBS 연말 가요대상을 동시에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1989년에도 '짝사랑'으로 MBC 연말 가요 대상을 2년 연속 제패하기도 했다.


화교 출신이라 차별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심지어 주현미가 상을 타면 왜 외국 가수에게 국내 가수상을 주냐고 비아냥대는 기자도 있었다고. 그래서인지 비슷하게 차별받던 흑인 혼혈인 인순이와 동질감을 느껴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초중고를 모두 화교 학교를 다녔던지라 중국어도 잘 하며 방송에서 중국어 노래도 곧잘 부른다.


참고로 경상남도 진주시의 시외버스 업체인 부산교통의 안내방송에 주현미 노래의 일부분이 BGM으로 나온다고 한다.[9] 이외에도 소녀시대서현과 같이 짜라자짜로 활동했다.

음악성

트로트계에서는 이미 넘어설 수 없는 여왕으로 군림하고 있으며, 곡의 스타일이나 가창법도 기존 가수들과는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국민가수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만큼 음반판매, 히트곡의 수, 실력, 자기 관리 면에서 흠 잡을 곳이 없다. 음색이 얇으면서도 강하고 부드러워 음색계의 깡패보스 애절하거나 높고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기억하기 쉽지만 성량이 굉장히 풍부해 라이브를 들어 본 사람은 놀랄 정도. 여기에 특유의 고음 뿐 아니라 중저음이 굉장히 탄탄하고 매력있어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보컬리스트이다.

특히 1980년대 중반은 이미 젊은이들에게 트로트는 어른들의 노래가 되었고 흘러가는 장르가 되었는데도 젊은이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럼에도 역대급 보컬리스트를 논할 때 발라드나 알앤비 위주의, 소위 디바 스타일 가수들보다 비교적 언급이 적을 수도 있었는데 이는 트로트라는 장르에 대한 전반적인 낮은 시선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주현미는 락밴드 활동으로 음악을 시작했으며 클래식, 락, 알앤비, 국악 등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과 교류하며 음악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저 트로트의 여왕으로만 평가하기에는 넘사벽급의 실력과 표현력을 가진 가수.

일화

  • 일각에서 주현미에 대한 우스갯소리로 떠도는 일화로는 주현미가 처음 해외를 나가는데 가수 조용필이 농담으로 "비행기를 탈 때는 꼭 약사면허증을 보여줘야 된다"라고 말했는데 주현미가 공항에서 출국하면서 정말로 약사면허증을 보여줬다는 일화가 있다.

  • 1980년대 초반 기준으로 1억원의 빚이 있었다. 승용차가 100만원하던 시대에 그 정도의 빚이 있었다는 건 충격이 아닐 수 없었지만 워낙 인기있는 가수이다 보니 비교적 빠르게 빚을 다 갚았다. 사실 1년에 364일을 공연했다고 할 만큼 무시무시한 속도로 돈을 벌었으니 그 정도의 빚은 문제도 아니었을 것이다.

  •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에이즈 루머였다. 에이즈는 지금도 치료가 무지하게 어려운 질병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 병 걸리면 무조건 사망하는 악질 전염병이라는 인식이 박혀있던 시절이라 이 때문에 특별히 잘못한 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안티가 생겨나기도 했다. 걸리지도 않은 질병에 걸렸다는 허위사실인 데다가 그 병이 역대 최악의 전염병이다 보니 마음고생이 정말 엄청났다고 한다.

  • 전성기 시절에는 1년 내내 딱 1일만 빼고 휴일 없이 방송과 지역 행사를 모두 수행한 적도 있었단다. 참고로 그 하루는 현충일. 현충일에는 유흥업소들이 자체적으로 휴업하는게 관례였기 때문이다.

  • 의외로, 하현우와 친분이 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아들이 국카스텐을 추천한 이후, 그들의 매력에 빠졋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같이 공연을 한 적도 있고, 리더인 하현우는 따로 주현미의 집에 놀러간 적도 있다고 한다.

음반 활동

  • 2018년 싱글 <여정>
  • 2018년 주현미 <그대를 불러봅니다>
  • 2014년 주현미 30th ANNIVERSARY ALBUM <빗속에서/최고의 사랑>
  • 2011년 주현미의 러브레터 프로젝트 음반 <내일 가면 안되나요/ 여백>
  • 2008년 EP <짜라자짜> with 소녀시대 서현
  • 2008년 조PD 콜라보레이션 "사랑한다"
  • 2006년 17집 <어허라 사랑/ 달아달아>
  • 2003년 16집 <정말 좋았네/ 사랑가>
  • 2000년 15집 <러브레터/ 없었던 일로 해요>
  • 1996년 싱글 <인생유정/ 첫사랑>
  • 1993년 14집 <첫사랑/ 정으로 사는 세상>
  • 1992년 13집 <또 만났네요/ 애인>
  • 1991년 12집 <사랑이야기/ 추억으로 가는 당신>
  • 1990년 11집 <잠깐만/ 단심>
  • 1989년 10집 <짝사랑/ 추억속에서>
  • 1988년 9집 <신사동 그 사람/ 다시 보고 또 보고>
  • 1986년 8집 <내가 왜 웁니까/ 눈물의 부르스>
  • 1986년 7집 <첫 정/ 태평무>
  • 1986년 6집 <빗물이야/ 연인들의 돛단배>
  • 1986년 5집 <탄금대 사연/ 월악산>
  • 1985년 4집 <울면서 후회하네/ 빗물이야>
  • 1985년 3집 <잊어야지/ 때로는 그리움이>
  • 1985년 2집 <님아 가지말아요/ 월미도를 아시나요>
  • 1985년 1집 <비내리는 영동교/ 길면 3년 짧으면 1년>

방송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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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005년 기준으로 총 485번 나왔다. 2위는 470번을 나온 현철이며 3위는 438번을 나온 설운도다.
  • [2] 음력 9월 27일.
  • [3] 주현미의 아버지는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4살에 한국으로 이민와서 자랐으므로 사실상 2세인 것이나 다름없다.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 180412 주현미편에서 주현미의 친할아버지는 중국인이고 친할머니는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아마도 할머니는 중국으로 이주하여 생활한 조선인 1세(그 당시에는 조선이라고 불렀다. 물론 한국인 맞음)인 것으로 추정한다. 주현미의 친할머니어머니한국인이었기 때문에 주현미의 형제들은 어린 시절 집안에서부터 이미 한국 문화 방식으로 자랐다고 한다. 따라서 오히려 주현미와 형제들은 처음 화교 학교에 입학하였을 때 그것 때문에 굉장히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 [4] 중국 산동성 모평현에서 4살 때 한국으로 이주한 중국인이지만, 당시 북한과 대치 중인 한국의 정치 및 군사적 상황에 의하여 대만 국적이 되었다.
  • [5] 한국화교는 타이완 섬과는 거리가 먼 산둥 성 출신들이며 단지 국적을 부여한 나라가 중화민국이었을 뿐이다. 상황이 이렇게 좀 꼬인 건 국부천대 때문. 물론 현재 화인들의 대부분이 귀화를 택하면서 중화민국 국적자는 줄고 있다.
  • [6] 좀 비슷한 케이스인 외성인 출신 대만가수 등려군도 테레사라는 세례명을 가진 가톨릭 신자이다. 등려군 역시 산둥 출신.틀린 정보이다 등려군 자신은 타이완 태생 부친은 하북성 모친이 산둥성 출신이다
  • [7] 1987년 '잃어버린 추억'으로 알려져 있다.
  • [8] 딸이 안정적인 직업을 갖길 원한 어머니의 바람이 컸다고 한다.
  • [9] 주로 "어제같은 이별"과 "비 내리는 영동교"가 주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