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화의 역임 직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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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정의화(鄭義和) |
본관 | 연일 정씨 |
출생일 | 1948년 12월 18일 (age(1948-12-18)세) |
출생지 | 경상남도 진해구 [1] |
학력 | 부산대학교 의학 학사 br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원 의학 석사 br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원 의학 박사 |
소속 정당 | {{{#808080 무소속}}} |
지역구 | 부산 중구·동구 |
의원 선수 | 5 |
의원 대수 | 15, 16, 17, 18, 19 |
현직 | 김원묵기념봉생병원 원장 br 새한국의비전 이사장 |
경력 | 한나라당 수석부총무 br 한나라당 원내총무 권한대행br 남북의료협력단 이사장 br 국회 스카우트의원연맹 회장 br 여수세계박람회유치위원회 위원장br 국회 재정경재위원회 위원장br 한나라당 최고위원 br 한나라당 세종시특별위원회 위원장br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조직위원회 위원장 br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br 제18대 후반기 국회 부의장br 제18대 후반기 국회의장 권한대행 br 제19대 후반기 국회의장 |
목차
생애 ¶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부산광역시 중구-동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고등학교 선배인 무소속 허삼수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국민당 박찬종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재정경제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친이계에 속하였다. 이후 국민통합포럼·함께내일로 등 대표적 친이계 공부모임에 합류했지만 2010년 이들 모임을 탈퇴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치러진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에 선출되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18대 국회 후반기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다.[2] 한미자유무역협정 비준안을 통과시킬 때 본회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2012년 초 박희태 국회의장이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때 돈 봉투를 살포했다는 고승덕 국회의원의 폭로로 국회의장직을 사퇴하자 잠시 국회의장 직무를 대행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4년 19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에 선출되어 국회법에 따라 새누리당 당적을 상실하여 무소속으로 있다. 여담으로 의료인 출신 국회의원으로서는 최초로 국회의장에 선출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국회선진화법 이후 거의 필수적으로 여야 합의를 거친 후 본회의에 의안을 상정하게 되었는데, 정국 경색이 잦다 보니 정의화 의장이 양자 중재를 위해 나서는 경우가 많아 역대 국회의장 중에서는 존재감이 큰 편이다. 의장 직권상정을 하더라도 여당의 단독 처리 요구는 거부하고 야당의 본회의 참석을 끝까지 기다리는 등 정치력을 잘 발휘하고 있다는 평이 많은 편.[5] 다만 정부와 여당에서 바라는 신속한 법안 처리가 이뤄지지 않아 정부와 여당으로부터 원성을 사는 편.
결국 터질 게 터지고 말았다. 경제선진화법 입법 문제로 박근혜 대통령이 조속한 통과를 요구하며 사실상 정면충돌을 불사한 것. 본격 의전서열 1인자와 2인자의 정면충돌 이에 대해 정 의장은 '직권상정은 국가비상상태에서만 가능하다'고 하며 "내가 성을 바꾸지 않는 이상 직권상정은 없다."라고 하며 완강한 거부의사를 밝혔다. 그동안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덜했던 입법부의 수장이라는 직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2016년 1월 25일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2016년 2월 23일,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 관련 직권상정을 시도한다는 속보가 떴다. 직권상정은 국회법에 따라 천재지변, 사변 이에 준하는 사태, 혹은 양당 대표가 합의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므로 하루 종일 국가비상사태라고 한 것은 이를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는 본인이 "성을 바꾸지 않는 이상 직권상정은 없다" 라고 공언한 말을 바로 뒤집는 행위로 테러방지법의 정당성 문제와 엮여 논란이 커졌다.[6]
당시 테러방지법은 법제사법위에 계류되고 있는 상황이라, 본회의가 열리기 전까지 법안 처리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던 상태였다. 왜냐하면 야당은 국정원에게 감청, 계좌추적 권한을 주는 것이 국정원의 권력 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대로 본회의에 상정되지 않을 법안을 2월 23일 정의화가 갑자기 직권상정을 해, 당시 여당의 의석 수가 과반을 넘어간 상황이였기 때문에 법안이 바로 통과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직권상정은 '전시, 사변에 준하는 상태'에 이뤄져야 한다. 정의화는 "최근 북한의 테러 위협"을 빌미로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을 했지만, 오히려 당시 상황은 북한의 테러 위협이 아니라, 이것 때문에 국가비상사태라고 비꼬기도 한다. 여러가지로 시의적절하지 않았던 행위였던지라 야당과 시민단체의 많은 비판을 받았다.
본회의가 열리고 즉시 필리버스터가 진행되었는데, 본회의가 열리면 그 안에는 의장석을 비울 수 없기 때문에[7] 의장단인 정의화 의장, 이석현 부의장, 정갑윤 부의장이 돌아가며 의장석을 차지했다. 부의장은 두 시간 근무, 의장은 한 시간 반 근무인데, 의장이 부의장 사이에 들어갔기 때문에 한 시간 반 근무 - 두 시간 휴식의 반복. 2월 27일 오전에는 의장단이 피로에 gg를 치고 헌정사상 최초로 상임위원장이 의장 대리를 맡는 진풍경도 연출되었다.
필리버스터에 대해 정의화 의장은 초반에는 조속한 법안 처리를 강조하며 여야 중재를 시도하는 등 필리버스터에 대해 긍정적이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순기능이 있었음을 인정하며 성숙한 민주 국가로 성장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20대 총선 공천이 끝난 뒤 친정인 새누리당의 공천 논란에 대해 사화에 빗대어 악랄한 사천(私薦)이자, 비민주적인 정치 숙청이라고 강력히 비판하며 새누리당에 복당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비박 의원으로서 공천을 주도한 친박계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총선이 끝난 뒤 이전 의장들처럼 정계를 은퇴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 행보를 할 것으로 예측된다.
의장 임기 수행 후 새누리당으로 복당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스스로 자신의 당적과 관련해서 "현행법상 국회의장 임기가 끝나면 (별도 의사 표현이 없을 경우) 자동으로 입당이 된다"며 "새누리당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고 자동으로 가게 되는 것"이라고 했고, 다만 "탈당할지, 계속 있을지는 고민하겠다. 공천 때부터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보면서, 20년 인생을 투자하고 지분 있는 곳이지만…"이라고 발언했다. #,#,# 그 말대로 자동 복당 되었고, # 이후 무소속으로 소개되는 것을 보면 어느 시점에 탈당계를 제출한 것으로 보인다.
2016년 5월 26일 싱크탱크인 "새한국의 비전"을 출범시켰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대선 준비용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본인이 새누리당에 복당하지 않겠다고 밝혀 앞으로는 여권이 아닌 야권이나 독자 노선을 걸을 가능성이 높다.
7월 16일 보도된 기사에 따르면, 본인 세력이 약하다는 점을 들어 대권 출마를 하지 않고, 반기문과 새누리당 비박계 영입을 통해서 정계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알려졌다. 반기문의 선대위원장이 되겠다고 발언을 했다고 알려졌으나, 본인은 부인하였다. 현재, 이재오, 손학규, 정운찬 등의 제3지대론 당사자 중 하나로 언급되고 있다.
의장 퇴임 후 20년 전 자리인 봉생의료원장으로 복귀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 바깥에서 중도성향 후보였던 안철수-유승민 후보의 단일화를 우회적으로 추진하기도 했고, 2018년 들어서는 바른미래당이 출범하자 바른미래당의 부산광역시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실제로 하태경 의원이 당 지지율이 오르면 영입할 수 있다며 열심히 홍보했지만 당 지지율도 시원치않고(...) 정의화 본인도 큰 의지는 없었던 듯. 당적은 무소속이지만 성향은 현재의 자유한국당이 아닌 바른미래당에 가까워진 것으로 보인다.
퇴임 이후에 대한민국 국회의장 최초로 국회의장 기념관을 건립하였으며 위치는 자신의 옛 지역구였던 부산 동구 초량동에 위치하고 있다.
2018 6.13 지방선거이후 자유한국당의 비대위원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으나 본인은 고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담 ¶
국회의장을 맡은 정치인은 그 회기가 끝나면 불출마 선언하는 것이 박관용 국회의장이 만든 관행인데[8] 이에 대해 불필요한 관행이라는 의견을 밝혀 20대 총선에 출마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있었다. 다만 이런저런 문제들이 있어[9] 불출마하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지배적. 그리고 불출마 선언을 했다.
원래 의사라서 2000년 초 국회에서 뇌졸중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 권익현 전 의원과 2004년 9월 본회의장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연설 도중 실신한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의 응급조치에 나서 국회 내에서는 '의원 119'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 외에도 중남미 순방 중 비행기 안에서 다친 여자 아이에게 응급처치를 해서 감사편지를 받기도 하였다. 특히 신경외과 전문의로서 두개골 외상에 정통한데, 장준하 의문사 논란을 두고 유골을 본 순간 타살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밝히며 여권에 충공깽을 선사하기도 했다.
섬진광역시 설치를 건의하기도 했다. 이외에 한나라당-새누리당 계열 정당에서 개헌이나 선거법 개정을 통한 정계 개편에 대해서 필요성을 인정하는 목소리는 제법 있으나, 선거구를 개편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소극적이거나 반대하는 입장이 많은데, 지역 구도 타파를 위한 중대선거구제로의 개편 또는 석패율제 도입이나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에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름과 직책을 붙인 호칭이 둘 다 '정의'로 시작하기 때문에 언론에 정의화 의장이 등장하면 '정의화'와 '정의장'이 다른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는 효과가 있다. 정의당: ????
테러방지법뿐 아니라 다른 쪽으로도 테러와 인연(?)이 있다. 2015년 1월 어떤 20대 남성이 청와대를 폭파하겠다며 트위터에 여러 번 글을 올리고 청와대 민원실에도 여러 차례 메시지를 남겨서 관계 기관이 바짝 긴장하는 사건이 있었다. 많은 네티즌이 박근혜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즉, 정치적으로 야당 쪽 성향 가진 사람)이 용의자일 것이라 추측했으나, 엉뚱하게도 여당 출신 인사인 정의화 당시 국회의장 보좌관의 아들인 강모 씨로 드러났다.(...)[10]강모 씨는 과거에도 공익근무 중에 방화미수로 집행유예를 받는 등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인 보좌관은 아들 잘못 둔 죄로 졸지에 사표 내고 프랑스로 날아가(당시 강모 씨가 프랑스에 머물고 있었음.) 아들을 설득해서 귀국시켜 조사받게 했다. 강모 씨는 항소심에서 죄질은 안 좋지만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점이 참작되어 징역 6월을 선고받았다.
사진에 취미가 있다. 부산고 재학시절 사진동아리에서 활동했으며, 부산대 재학 중에도 사진동아리인 사진예술연구회에서 활동했다. 이후 국회의장 임기 중에도 아프리카 등지에서 찍은 사진들을 선별하여 사진전을 개최했다.
가끔씩 봉생병원에서 훈화를 하시는데 약간 지루하다.
선거이력 ¶
연도 | 선거 종류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1996 |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중구·동구) | 신한국당 | 41,185 (41.6%) | 당선 (1위) | 초선 |
2000 |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중구·동구) | 한나라당 | 48,924 (57.7%) | 당선 (1위) | 재선 |
2004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중구·동구) | 한나라당 | 49,857 (59.6%) | 당선 (1위) | 3선 |
2008 |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중구·동구) | 한나라당 | 32,669 (66.4%) | 당선 (1위) | 4선 |
2012 |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중구·동구) | 새누리당 | 31,484 (48.1%) | 당선 (1위) | 5선[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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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현 진해구
- [2] 야당 몫은 홍재형 의원이 맡았다.
- [3] 이분이 새누리당에서 그나마 진보성향인 소장파이기도 했고, 실제로 새누리당 단독으로 통과시키는 것을 자제하기도 했다.
- [4] 또한 이 당시 새누리당 내에서 진보성향으로 표시된 사람이 두 명 더 있기도 했다. 바로 같은 소장파인 남경필과 훗날 자유한국당 대표가 되는 홍준표.
물론 홍준표는 낙선역으로 민주당 계열에서 보수로 표시된 사람도 있었다. - [5] 정작 2012년 국회선진화법 당시에는 반대표를 던졌었다. 국회선진화법 처리를 주도한 황우여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자신이 바라던 국회의장이 되지 못하고, 반대표를 던진 정의화 의원은 국회의장이 되어 국회선진화법을 지키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상황.
- [6] 물론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듯, 정의화 의장은 단독상정 자체를 안 한 적은 없고 여당 단독처리를 피해왔지만, 이 사안과 관련해서 뱉은 말이 있다 보니... 더민주당의 신경민 의원은 국정원장과 식사를 한 뒤 직권상정이 이뤄졌다며, 무엇 때문에 하룻밤 사이에 마음이 바뀐 것인지, 의문스럽다고 필리버스터 과정에서 비판을 하기도 했다.
- [7] 정회를 선언하면 되지만, 이마저도 필리버스터를 하고 있는 중에는 할 수가 없으니 꼼짝없이 의장석 지박령이 돼야 한다(....).
- [8] 보통 5선 이상 의원이 국회의장을 맡으므로 사실상 은퇴 수순이다.
- [9] 다른 욕심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부정적 여론, 해당 지역구 출마를 노리는 정치 지망생 문제. 법적으로 복당 가능한 시점에는 거의 공천이 끝난다는 점은 중진 의원이라는 특성상 공천을 미뤄둘 것이 확실하고, 정의화 본인의 선거구인 부산 중구·동구가 선거구 통폐합 대상이라는 것은 오히려 정의화가 불출마함으로써 선거구 분할 및 통합이 이뤄졌기에 원인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 [10] 정의화 의장은 비박이고, 그의 보좌관 아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여당 계통 사람이라도 싫어할 수는 있겠다.
- [11] 후반기 국회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