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교}}
생애 ¶
한성부 출신으로 손병희의 딸과 결혼했다. 1919년에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 이 운동을 주도한 손병희의 측근으로서 사전 모의 과정부터 깊숙이 가담했다. 권동진, 오세창, 최린, 박인호 등과 함께 실무를 맡았으며, 사후 수습을 위해 민족대표 33인에서는 빠졌다. 당시 맡고 있던 직책은 천도교 대종사장(大宗司長)이었다.<ref>{{독립유공자|3124|박인호}}</ref>
3·1 운동을 사실상 주도한 뒤 곧바로 의친왕 탈출을 꾀한 대동단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서대문감옥에서 심한 고문을 받고 풀려나왔으나, 이듬해에도 천도교인 신숙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파견하고 군자금을 제공하는 등 임시정부와의 연계를 계속했다. 천도교 기관지 《신인간》 발행에도 천도교 교무책임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손병희 사후 최린 주도의 신파가 교권 및 사회운동의 방향을 놓고 분파되면서 천도교단은 오랜 내분 사태에 돌입했다. 손병희의 사위로서 교단 내 상당한 실력자이던 정광조는 이론가 이돈화와 함께 최린의 손을 들어주어 신파 세력에 큰 힘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정광조가 천도교 대령에 선임되었다가 구파에 의해 출교 처분되는 등 갈등은 계속되었다.
천도교 신파가 대세론이라는 타협적인 노선을 내세워 설립한 시중회에 가입하면서 태평양 전쟁 시기까지 일제에 적극 협조한 행적이 있다. 1939년에는 이용구의 장남 이석규가 '일한합병 공로자 감사 위령제'라는 행사를 열었을 때 참석하기도 했다.<ref>{{서적 인용
|저자=강만길
|제목=해방전후사의 인식 (2)
|날짜=2006-03-10
|출판사=한길사
|출판위치=서울
|장=24. 개인적 친일 및 낙수
|꺾쇠표=예
}}</ref> 이용구와 김옥균, 박영효, 이완용, 송병준을 비롯해 이토 히로부미와 데라우치 마사타케 등을 추도하는 이 행사는 이석규가 흑룡회와 공동 개최했다.
|저자=강만길
|제목=해방전후사의 인식 (2)
|날짜=2006-03-10
|출판사=한길사
|출판위치=서울
8935600016}} |
|꺾쇠표=예
}}</ref> 이용구와 김옥균, 박영효, 이완용, 송병준을 비롯해 이토 히로부미와 데라우치 마사타케 등을 추도하는 이 행사는 이석규가 흑룡회와 공동 개최했다.
정광조는 1942년에 천도교 교령으로 뽑히는 등 교단 원로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전시체제 하에서 천도교를 대표해 여러 친일단체에 가담했다. 1941년 발족한 조선임전보국단에 발기인으로 참여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국민정신총동원천도교연맹, 국민총력천도교연맹 등 어용 단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아 태평양 전쟁 전몰 장병을 위한 위령제를 개최하기도 했고, 1943년에는 이종린과 함께 조선종교단체전시보국회에 천도교 대표로 참가해 학병제를 선전하는 강연회를 열었다.
사후 ¶
198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으나, 일제 말기에 뚜렷한 친일 행적을 보인 서훈자들이 논란이 되면서 1996년 대한민국 국가보훈처에 의해 서춘, 김희선, 박연서, 장응진과 함께 서훈이 취소되었다.<ref>{{뉴스 인용
|저자=김덕련
|url=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77680
|제목=<nowiki>발굴 주요 친일명단 120명 중 34명 해방후 훈·포장·표창 서훈 - 김성수는 2등급, 유관순은 3등급</nowiki>
|출판사=오마이뉴스
|날짜=2005-08-31
|확인날짜=2008-05-27
}}</ref>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의 천도교 부문에 선정되었으며,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저자=김덕련
|url=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77680
|제목=<nowiki>발굴 주요 친일명단 120명 중 34명 해방후 훈·포장·표창 서훈 - 김성수는 2등급, 유관순은 3등급</nowiki>
|출판사=오마이뉴스
|날짜=2005-08-31
|확인날짜=2008-05-27
}}</ref>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의 천도교 부문에 선정되었으며,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천도교단은 정광조와 김병제 등 천도교 지도자들의 친일 논란에 대해, "일제의 총체적 강압 강요" 하에서 "교단이 해체나 와해되지 않고 교단을 유지 보존시켜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 시대를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으므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ref>{{웹 인용
|제목=알림
|url=http://www.chondogyo.or.kr/technote/read.cgi?board=gonggiboard&y_number=297&nnew=2
|출판사=천도교중앙총부
|날짜=2008-01-11
|확인날짜=2008-04-10
}}</ref>
|제목=알림
|url=http://www.chondogyo.or.kr/technote/read.cgi?board=gonggiboard&y_number=297&nnew=2
|출판사=천도교중앙총부
|날짜=2008-01-11
|확인날짜=2008-04-10
}}</ref>
참고자료 ¶
*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PPL_7HIL_A1883_1_0011884|정광조|鄭廣朝}}
* {{서적 인용
|저자=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제목=일제협력단체사전 - 국내 중앙편
|날짜=2004-12-27
|출판사=민족문제연구소
|출판위치=서울
|페이지=389,579,594,626,655쪽
|꺾쇠표=예
}}
* {{서적 인용
|저자=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제목=일제협력단체사전 - 국내 중앙편
|날짜=2004-12-27
|출판사=민족문제연구소
|출판위치=서울
8995330724}} |
|꺾쇠표=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