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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承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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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장승수는 일진이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공부에서 손을 놓은 지 오래고, 매일 술담배를 하며 수업을 빠지며 당구장에서 당구까지 친 그야말로 민폐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당시 동사무소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아는 형님으로부터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해서 기술이라도 배우라는 말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포크레인 운전을 배워 노가다를 했다. 근데 의외로 장승수는 칠곡군에서 가장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 이유는 자신의 아버지가 본래 6.25 전쟁 시절 미국군과 친교를 쌓으며 영어 공부를 매우 열심히 해서 영어를 매우 잘 해 '온갖 선물들을 받아' 부자가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모았던 재산은 할아버지가 노름으로 탕진해 버려, 자식의 앞길을 막았다고 생각한 할아버지는 화병으로 세상을 떠나버렸고 그 후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면서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것[1]
노가다를 하다가 자신이 이대로 사는 게 너무 싫다며 공부를 해서 출세를 하겠다는 마음에, 대학 입시를 준비한다. 하지만 내신이 매우 형편없었던 탓에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러나 계속 노가다-학원을 반복하며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고등학교 졸업 후 3년이 지나면 수능 백분율에 따라 산출된 점수를 내신으로 반영하는 비교내신제도에 힘입어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96학번으로 수석 합격했다.
그 후 자신의 인생 수기인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를 김영사에서 출간하면서 유명해졌다.
이후 딱히 법조인으로서 눈에 띄는 활동은 없었으나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에서 강남 지역 중 한 곳에 장승수를 공천하려 한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분당이니 서초을이니 구체적인 지역구까지 거론됐지만 결국엔 흐지부지된듯. 사실 전 해인 2011년에도 한나라당 영입설이 나왔지만 본인이 부인한 바 있다.
2017년 7월에 변호사 명의를 대여한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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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 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장승수의 모친이 장승수와 장승수의 남동생을 데리고 안해본 장사가 없었는데 모두가 다 실패했다. 장승수 본인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어머니의 장사가 다 실패한 이유는 장사도 어느 정도 정보가 있어야 하는 건데 그저 막무가내로 시작한게 실패의 원인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