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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헌(林度憲) | |
생년월일 | 1972년 6월 9일 (만 age(1972-06-09)세) |
출신지 | 경상북도 경산시 |
출신학교 | 하양초 - 경산무학중 - 경북체고[1] - 성균관대 |
포지션 | 레프트 |
신체사이즈 | 신장 194cm, 체중 88kg |
소속팀 | 현대자동차서비스-현대자동차 (1993~2002) |
지도자 | 대한민국 청소년 배구 국가대표팀 코치 (2004)br대한민국 배구 국가대표팀 코치 (2005)br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수석코치 (2006~2015)br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감독 (2015~2017) br대한민국 배구 국가대표팀 코치 (2017~2019.05.13) |
종교 | 불교 |
삼성화재 블루팡스 역대 감독)
소개 ¶
경북체고 시절 훈련 중에 생긴 안면마비 증상 때문에 얼굴 한 쪽이 일그러져 있지만, 굴하지 않고 배구에 전념하여 성균관대학교와 현대자동차서비스 - 현대캐피탈을 거치며 국가대표 레프트로 활약한 공격수였다. 임꺽정이라는 별명 외에는 "괴력의 강타자"라는 별명이 있었다. 같은 시기에 활약한 하종화와 달리 선이 굵은 묵직한 파워 스파이커였으며, 보기보다 블로킹과 수비력도 준수했던 다재다능한 레프트였다. 특히 사이드 블로킹이 수준급이며 김세진이 가장 어려워하던 블로커 중 한 명이다. 즉, 현대자동차서비스-현대캐피탈의 팀 컬러 중 하나인 "높이"에도 잘 맞았다.
선수 시절 ¶
고교 동창인 세터 진창욱과 함께 콤비를 이루어 성대 배구부를 대학배구 리그의 지존에 오르게 했다. 1993년에는 '갈색 폭격기' 신진식이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쌍포를 형성했다. 특유의 성실함으로 제몫을 했고 하종화의 뒤를 이을 차세대 거포로 주목받아 1993년 현대자동차서비스에 계약금 3억 5,000만 원을 받고 입단한 임도헌은 바로 주전 자리를 꿰찼다. 1994-1995 슈퍼리그에서는 마낙길 - 강성형과 함께 삼각편대를 이루어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거기에 MVP까지 차지했다. 이듬해 월드리그에서는 대표팀이 6강에 오르는 데 1등 공신이 되었다. 그러나 1996년은 이성희-박삼용의 고려증권에 밀리는 바람에, 1997년은 삼성화재의 선수 싹쓸이로 인해 신진식-김세진 콤비에 밀려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5 슈퍼리그부터 3년 연속으로 베스트 6에 뽑혔다.
그러나 1997년 9월 22일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게 되면서 다른 선수들과 달리 슈퍼리그 2시즌을 걸러야 했다. 게다가 구단에 아무런 동의도 받지 않고 군 복무를 시작했다는 이유로 현대자동차서비스와 군 복무 도중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 사이 현대자동차서비스는 자유계약 싹쓸이로 막강 전력을 가진 삼성화재를 이길 수 없었고, 거기다가 무릎 연골 부상까지 닥치면서 소집해제된 후에도 서서히 팀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결국 송만덕 감독이 현대캐피탈에 부임한 후 손석범 등을 중용하며 임도헌은 세대교체를 빙자한 한양대 라인 심기를 이유로 2002년 12월 20일에 팀에서 사실상 강제로 은퇴한다. 지금도 현대캐피탈과 사이가 나쁜 건 이 때문이다.[2]
오히려 신치용 前 감독과는 의외로 오랜 관계를 유지하여 왔다. 1989년에 열린 청소년대회에서 선수와 코치로 만난 것을 시작으로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신치용이 주선해 주었고, 안면마비로 고생했던 그에게 치료를 지원해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현대맨이었음에도 임도헌은 삼성화재의 코치로 일할 수 있게 되었던 것.
지도자 시절 ¶
2003년 캐나다 밴쿠버로 건너가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에서 1년 동안 지도자 연수를 받은 그는 국가대표팀 및 청소년대표팀 코치를 거쳐 신치용 감독의 부름을 받아 2006년 삼성화재의 수석코치로 선임되었다. 신치용 감독의 지도자 은퇴 후 후임 감독으로는 신진식 코치가 유력히 거론되고 있어서 향후 친정 팀인 현대캐피탈이나 그 외 다른 팀의 감독으로 갈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현대캐피탈로 갈 가능성은 전술했듯이 현대캐피탈과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낮다. 임도헌 본인은 감독 자리에 큰 욕심이 없다는 말도 있었으나, 임도헌과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 온 신치용 감독은 이미 "내 후임 감독은 임도헌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2014-2015 시즌을 마친 후 삼성화재 배구단의 주체가 제일기획으로 이관되는 과정에서 삼성화재의 창단 감독인 신치용이 구단의 단장 겸 제일기획의 스포츠구단 운영담당 부사장으로 선임됨에 따라 현장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자, 신치용의 후임으로 삼성 블루팡스의 제 2대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차기 감독으로 유력시되었던 신진식은 수석코치로 승격됐다.
하지만 신치용 재임 때부터 팀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몰빵배구를 해결하지 못한 데다가, 국내 선수들과의 격차가 너무 벌어져 2015-2016 시즌에 팀이 PS 탈락 위기에 몰려 있다. 특히 2016년 2월 1일 한국전력과의 홈경기에서 4세트 중반 그로저가 상당히 지쳐하는 기색이 역력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웜업존에서 뻗어 버린 그로저를 뺀지 몇 분 후에 곧바로 다시 코트로 투입하여 5세트까지 출전시켜 팬들에게 미친 듯이 까였다. 근데 문제는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돌아온 것은 2:3 역전패뿐이었으며, 201 대첩을 만들고 말았던 것.
2016-2017 시즌에는 트라이아웃제와 얇은 국내 선수층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18승 18패를 기록하며 정규리그 4위를 기록했으나, 3위 한국전력과 승점 4점 차가 되는 바람에 삼성화재는 창단 이래 최초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는 쓴맛을 보게 되었다. 결국 2017년 3월 24일 삼성화재의 감독직에서 사임했다.
그리고 국가대표팀 코치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국대 감독은 의 김호철 라이벌 이자 선수 시절에 뛰었던 소속팀의 전 감독이다(...).
이후 2019년 5월 13일부로 코치직을 사퇴했다. 김호철 감독의 자진사퇴로 공석이 된 국가대표팀 감독 공모에 참여하기 위해서라고.
그 외 ¶
우리동네 예체능에 출연해서 말한 바에 따르면 배구편 뿐 아니라편도 유심히 봤었다고 했다. 그 이유와 같이 경북체중 출신인데, 자신도 중학교 시절에 유도 경험이 2~3년 정도 있었다고... 허리후리기 기술 시전은 덤. 관련 자료
보통 감독이 팀 이름을 외치는 것으로 작전타임을 끝내는데, 임도헌은 삼성을 삼쓰엉이라 다소 길게 발음한다. 보기.
감독 데뷔 시즌이던 2015-16 시즌 작전타임에서 내뱉었던 그의 어록이 있는데 한 번 보도록 하자.
야! 야! 초반부터 이르께 벌어지면 몬따라가~ 그리고 카바부터 들어가야 될 거 아이가? 저짝 써브가 지금 강타가 아닌데 리씨브가 안되면 머가꼬 배구 할래? 안그러나 상대가 잘하는 건 어쩔 수 없어! 근데 지금 다 우리 범실로 준다 아이가. 야! 그리고 빨리 좀 뜨라! 지금 써브 강타 몬때려. 그러니까 캐찌 되면 찬찬히 곱게 올리고 어땍카바 들어가주고야한테 올리라(야야 부늬기부터 바꿔야대 부늬기 부늬기!) 야! 삼쓰엉! 허이!!
평소 작전타임 때에도 '어택카바'를 강조하는 그의 전술과 거침없이 내뱉는 특유의 동남 방언이 어우러져 현재까지도 배구 팬들 사이에선 선수 이름만 살짝 바꾸면서 회자되고 있는데 음성지원까지 될 정도로 굉장히 중독성 있다는 평이 많다. 이 때문에 그와 삼성화재 기사마다 위의 어록을 Ctrl CV하여 우려먹는 댓글들이 꼭 하나씩은 달려 있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