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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개량

목차

1. 소개
2. 의미
3. 기원
4. 역사
5. 사례
6. 여담
7. 참조
8. 분류

1. 소개

人種改良

2. 의미

특정한 '인종(人種)'을 유전적으로 '개량(改良)'해야 한다는 우생학적인 주장을 뜻한다. 특히 인종개량은 특정 인종(주로 자신이 속한 인종이나 민족)이 '열등'하다고 주장하며, 다른 민족과의 혼혈을 통하여 이를 개량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경우가 많다.

3. 기원

인종개량이라는 용어의 등장은 19세기 말, 일본이다. 당시 일본인들은 서양 문명을 도입하던 시기로서, 가축개량법(家畜改良法) 같은 과학적인 육종법을 접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서양인에 대한 열등감도 강하게 가지고 있어, 이것이 인종개량론이 나타나는 배경이 되었다.


4. 역사

이 분야의 선두주자(?)로서, 타카스키 신사쿠의 사촌동생, 미나미 테이스케(南貞助)라는 인물이 있다. 14세에 타카스키 가에 양자가 되어 신사쿠의 동생으로서 자란 미나미 테이스케는 20세에 영국에 유학하였으며, 유학중에 '일본인종개량론자'가 되어 서양인과의 사이에서 혼혈아를 낳아야겠다는 큰 뜻(?)을 품게 되었다. 이 시기 일본의 사절단이 영국을 방문하자 그는 영국 여성과의 결혼 허용에 대해서 질문하였는데, 이토 히로부미오쿠보 도시미치는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였으나, 나머지 사절단은 결혼 허용에 동의했다고 한다.

그리고 미나미는 결국 일본 최초의 국제결혼(…)에 성공하였다. 상대는 바로 런던 근교에 거주하는 정원사의 딸 라이자 피트만이라는 여성이었다. 1872년 9월 20일, 라이자와 영국식으로 결혼한 미나미는다음해 1873년 라이자를 데리고 일본에 귀국하였다. 그리고 영국 결혼증명서를 번역하여 함께 외무성에 결혼신고를 제출했다. 이것이 일본에서 정부가 인정한 최초의 국제결혼이다.

미나미는 런던에서 은행의 지배인으로서 상당히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라이자는 미나미가 부유층이라고 오해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리 행복하게 살지 못했는데, 라이자는 당시 일본 생활에 익숙하지 않아서 노이로제 상태가 되었고 미나미 역시 현재는 물론 당시로서도 상당히 특이한 사상을 지닌 인종개량주의자(…)였으므로 혼인 파탄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결국 미나미와 라이자는 10년 간 결혼생활을 하다가 이혼하였다.(참조) (참조)

일본의 작가 타카하시 요시오(高橋義雄)는 1884년 『일본인종개량론(日本人種改良論)』이라는 저술을 발표했다. 이 저술은 "일본인종은 신체적, 육체적으로 서양인종에 비해서 열등하므로, 서양인과 대등하게 경쟁하는 것은 어렵다. 따라서 일본인과 서양인 사이에 혼혈을 만들어, 서양인의 피를 일본인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펼쳤다.

정치가 카토 히로유키(加藤弘之)는 1886년 「인종개량의 변(人種改良ノ弁)」이라는 주장으로 타카하시 요시오의 인종개량론에 반박하였다. 하지만 이 역시 우생학인종주의에 기반하고 있는 주장이다. 카토는 인종개량론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그것을 위해서는 의식주 등의 환경을 개량하는 방법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혼종 생산을 통한 인종개량의 비현실성도 지적하였다. (1) 어떤 조합으로 인종을 개량해 나가야 할지, 그에 대한 연구가 불충분하다. (2) 많은 세월이 걸려서 비현실적이다. (3) 몇대나 잡종을 반복하다보면 일본인의 피가 멸종해버린다.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는 이전부터 우생학적인 사고방식에 경도되어 있었는데, 타카하시 요시오의 책에 서문을 쓰면서 카토의 주장이 특수한 사례라고 비판하였고, 당시 주목받고 있던 가축개량법(家畜改良法)을 인종개량에 응용하면 된다고 보았다. 다만 생활양식의 개선, 여성 지위 향상 등의 습양(習養) 역시 유전만큼 중요하다고 보았으며, 타카하시 역시 이에 동의하였다.

1885년 문부성 대신으로 취임한 모리 아리노리 역시 인종개량론을 주장하여, 일본 젊은이들이 미국으로 가서 혼혈아를 낳아서 일본으로 돌아와서 서양인종으로 인종을 개량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일본어 대신에 영어를 쓰자는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1]

이러한 논의는 이후 우생학의 수용과 '국민우생법' 등의 제정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5. 사례

  • 혼혈을 통한 인종개량 같은 극단적인 주장은 사실 근대 일본에서도 그리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은 주장이었고, 실제로 정책적으로 옮겨진 사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같은 일부 사례가 와전되었는지 한국 인터넷에서는 일본인들이 개화기에 '혼혈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다는 펼쳤다는 루머가 퍼져 있다.(참조)(참조)[2]

  • 국내에서도 열등감 때문에 인종개량을 하자는 주장을 펼치는 사람을 인터넷에서 때때로 찾아볼 수 있다.(참조)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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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세계 속 한국 근대사 1 (공)저: 이윤섭
  • [2] 사실 잘 모르는 사람은 상당히 오해할만한 상황이다. 후쿠자와 유키치 같은 영향력이 큰 인물도 이런 사고방식에 동조하였고, 문부성 대신도 여기에 동조하는 발언을 했으니까(…).


8.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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