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광복 후 충북자동차주식회사 취체역, 주한미군 제7사단통역관, 경기도청 및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통역관 등으로 활동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북도 충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대동청년단 김기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조대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UNKRA 및 KCAC 정치고문, 문교부(현 대한민국 교육부) 기술교육원부원장서리, 미군 작전과 포로심사관 등으로 활동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김기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에 충청북도 충주시 선거구로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김기철에 밀려 탈락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북도 중원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무소속 정상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당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중원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4년 자유민주당이 민정당에 흡수되자 민정당 충청북도당 위원장이 되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한국독립당 후보로 해당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이종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