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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만 (1675년)

이진만(李鎭萬, 1675년 ~ 1752년)은 조선 후기의 문인, 학자로 자(字)는 맹능(孟能)이고, 호는 백은(白隱), 본관은 우계이다. 1699년(숙종 25) 문과에 합격하였으나 시험 주제에 문제가 있다 하여 파방되었다. 뒤에 1702년(숙종 28) 식년시 생원 3에 합격하고 그 해의 진사시에 다시 응시하여 식년시 진사 3으로 합격하여 사마양시에 모두 합격하였지만 관직을 단념하고 학문 연구에 전념했다.

생애

1675년(숙종 1)에 경상북도 에서 태어났으며, 도촌 이수형(李秀亨)의 8대손이고 성균관전적을 지낸 취사 이여빈(李汝香+賓)의 4대손이며, 노인직으로 절충장군 행용양위부호군을 지낸 이기정(李基定)의 아들이다. 동생으로는 이진화(李鎭華), 이진방(李鎭芳), 이진영(李鎭英) 이 있었다.

1699년(숙종 25) 문과(文科)에 갑과(甲科) 3으로 급제하였으나 시험 문제에 문제가 있다 하여 합격이 취소, 파방되고, 왕명으로 다시 시험에 응시하게 하니 이것은 선비가 취할 길이 못된다고 거절하였다. 그는 과거 제도의 폐단을 논하는 상소문을 올린 뒤 낙향하였으며, 이때부터 벼슬길을 단념하고 성리학(性理學)과 도학(道學)연구에만 전념하였다. 1702년(숙종 28) 식년시 생원 3에 합격하고 그 해의 진사시에 다시 응시하여 식년시 진사 3 53위로 합격하였다.

그는 과거 제도의 폐단을 비판하는 상소 외에도 단종 때의 충신인 금성대군(錦城大君)의 충절을 설명하며 금성대군의 사우(祠宇)를 나라에서 창건해 줄 것을 상소하였고, 세종 때의 천문학자인 문절공(文節公) 김담(金淡)을 모신 단계서원(丹溪書院)을 철폐하려는 움직임이 있자 단계서원의 철폐를 막아달라는 상소문 을 올리고 낙향하였다.<ref>김담은 그의 외선조인데, 8대조모 이수형의 처 예안김씨의 친정아버지로서 외9대조가 되며, 고조모 이여빈의 처 예안김씨를 통해서는 외10대조가 된다.</ref>

과거 공부를 단념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시문으로 소일하며 창설재 권두경(蒼雪齋 權斗經), 눌은 이광정(訥隱 李光庭) 과 주로 교류하였다. 이후 그는 사서육경이나 경전 중에 주자의 주자어류(朱子語類), 성리대전(性理大全), 당육지(唐陸贄)의 육선공주의(陸宣公奏議), 가공언(賈公彦)의 주례주소(周禮註疏), 진덕수(眞德秀)의 대학연의(大學衍義) 의 책을 골라 모아서 한 권으로 편집하여 《대성집설 (大成集說)》이라 이름하고 늘 즐겨 읽었다. 이후 전국의 명승지를 찾아다니며 시문이나 기행문 을 남겼다.

만년에는 고조부 이여빈이 지어 학문연구와 문하생들을 가르치던 인수정 바로 앞에 정자 백은당(白隱堂)을 짓고, 백은거사(白隱居士)라 자처하며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으로 세월을 보냈다. 저서로는 백은당문집(白隱堂文集)과 대성집설(大成集設) 이 전한다.

저서

* 백은당문집(白隱堂文集)
* 대성집설(大成集設)

각주

<referenc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