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이지아(李智雅) |
본명 | 김지아,[1] 개명 전 이름 김상은[2][3] |
출생 | 1978년 8월 6일[4], 대구광역시 서구 |
신체 | 168cm, 48kg, A형 |
학력 | 대구초등학교br대구중학교br아트 센터 디자인 대학교 그래픽디자인과 |
데뷔 | 2007년 MBC 드라마 '태왕사신기' |
가족 | 조부: 김순흥br형제자매: 1남 3녀 중 셋째[5]br前 배우자: 서태지(1997년 ~ 2006년)# |
소속사 | BH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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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개요 ¶
대한민국의 배우.
2004년 배용준과 함께 LG텔레콤 CF 촬영으로 연예계에 들어왔으나 후속 활동이 없었다. 공식적으로는 2007년 MBC 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 수지니 역으로 데뷔. 큰 배역임에도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으로 호평을 받았다. 이때의 모습이 칼리의 컨셉이 되었다.
스캔들 5개월 후 2011년 MBC 드라마 나도 꽃의 여주인공 순경 차봉선 역을 맡았다. 아래 후술된 스캔들의 여파를 고려하면 생각보다 빨리 현장에 복귀한 셈이다. 이때까지 드라마에서 이지아와 함께 출연한 배우는 배용준-김명민-김혜수-정우성으로 죄다 연기대상 수상자이고 정우성 또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미남 배우로 이름을 알렸었다. [6] 하지만 상대역은 윤시윤. 다행인지 불행인지 경쟁작인 뿌리깊은 나무의 임팩트가 워낙 독보적이라서 예상보다 그렇게 화제를 모으진 못했다. 배우의 연기나 드라마 자체는 그럭저럭 입소문이 나쁘지 않은 편이었으나 영광의 재인과 뿌리깊은 나무와의 경쟁에서 시청률 참패를 당하면서 조기 종영되었다.
이 드라마가 끝난 후 소속사였던 키이스트와의 계약이 만료되었고 재계약하지 않았다. 이후 2012년 3월 14일 새 소속사 윌엔터테인먼트[7]와 새 계약을 맺었다.
2013년 SBS 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서 전직 쇼호스트 오은수 역을 맡았다. 이 드라마에서 최초로 타이틀 롤을 맡았지만 어째 주목은... 드라마가 끝난 후 윌엔터테인먼트를 떠나 HB엔터테인먼트에 새 둥지를 틀면서 지진희, 김래원, 신성록과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소속사에서 이름있는 배우 중에서는 유일한 여자였다.
2부작 드라마 <설련화>에 출연하였다. SBS에서 2015년 11월 11일에 방영하였다.
HB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 만료 이후 2016년 5월 13일 이병헌의 소속사인 BH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체결했다.
캐스팅 및 연기력 ¶
일단 태왕사신기라는 대작의 주조연급으로 데뷔했는데, 대다수의 연예인이 단역을 전전하면서 겨우겨우 조연을 잡아 올라가는 것에 비해 단 한 번에 주조연 역을 따냈으면서도 단역 경력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지아의 배경에 대한 구설수가 있었으며, 특히 배용준[8]의 패키지 출연[9]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연기력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는데, 비판적인 의견이 상당수. 앞뒤가 안 맞잖아 특히 2009년 김혜수와 함께 출연했던 SBS 드라마 "스타일"에서는 원조 민폐녀 논란과 함께 혹독한 연기력 비판을 받았다. [10] 이는 전작인 베토벤 바이러스에서도 마찬가지. 물론 함께 출연했던 김명민이 워낙 열연했고, 장근석의 연기력 역시 일정 수준은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교 대상이 넘사벽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어색한 제스쳐, 대사 처리 미흡 등으로 많이 까였다. 하지만 아테나:전쟁의 여신에서는 연기력이 쓸 만한 편, 아무래도 신인이고 경력이 적다 보니 맡는 캐릭터가 자신과 얼마나 잘 맞는가에 따라서 연기 싱크로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모양.
친일파의 후손 ¶
이지아에게 있어 평생 짊어가야 할 짐이자, 그녀의 활동에 있어 발목을 잡는 굴레[11]
2011년 12월 19일 이지아의 집안이 육영사업을 하던 재력가이며 덕망 있는 명문가라는 언플 기사가 떴다. 정대철 당시 민주당 상임 고문은 이지아의 조부가 재력은 물론 남다른 인품의 소유자였고 자손인 이지아 부친에 이어 이지아 역시 유복하고 뼈대 있는 가정환경 속에서 바르게 자랄 수 있었다고 인터뷰했다.
물론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게 이지아 본인의 잘못은 아니지만 친일파를 덕망 있는 가문이니 할아버지가 부자였기에 이지아도 해외에 유학가고 풍족하게 살았다는 등의 자랑 언플질을 한 것은 쉴드 불가능이라 그야말로 가루가 되듯이 까였다. 전 남편은 심지어 독립운동가의 자손이다! 명문가랍시고 언플한 가문이 수탈의 주범인 친일파임이 밝혀지고 나서 비수로 돌아왔기 때문에 욕을 먹은 것으로 애초에 이지아측과 기획사가 신비주의를 타파하겠답시고 가문에 대한 정보를 밝힌다며 명문가라고 자랑하지만 않았어도 아무도 몰랐을 일을 자기들이 나서서 시원하게 까발린 셈이다. 사진 자작극에 이어 또다시 병크 적립 이지아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이혼 사건이 모두 종결된 지금은 서태지와의 일보다는 이 친일 논란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단 이지아는 사과를 한 상태이긴 하다.
이지아의 사촌동생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그냥 세금 좀 많이 내면 친일이란 거냐고 주장하며 자신의 할아버지는 나쁜 친일파가 아니었고 시대의 희생자였을 뿐이라는 글을 게재하여 또 한 번 논란이 되기도 했다.[12] 팬들 중 몰상식한 일부 사람들도 이런 논리를 주장하거나 이후에 육영사업에 기여했으니 죗값을 씻은 거100억 원 꿀꺽하고 1억 원 기부하면 깨끗한 거냐라는 둥 지나친 두둔을 하여 반감을 사기도 한다.
그러나 위에 '정리된 것'을 클릭해 보면 알 수 있듯이, 김순흥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사실을 지적하는 글이 대형 카페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삭제되기도 했고, 블로그에 올라온 글도 명예훼손으로 신고를 당해 게시 중단된 사실이 있다. *
생각해 볼 것은 대한민국은 헌법상 연좌제가 없는 국가다. 친일파 후손이라고 하더라도 본인이 조상의 친일행적을 직접적으로 옹호한적이 없거나 조상이 친일행위로 부당하게 얻은 부와 권력을 부당하게 물려받고 국가에 반환하지 않은 적이 없다면 법적으로나 도의적으로나 공격받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할 것이다. 덕망 있는 명문가, 남다른 인품의 소유자는 옹호 아닌가......?
하지만 이지아는 대중문화 속에서 활동하는 연예인으로서 대중문화라는 매체를 접하고 판단하는 일반 대중들의 불편함과 따가운 시선 역시 어떻게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나쁘게 봤음 나쁘게 봤지 좋게 보일 리는 만무하니 이는 이지아 본인에겐 안타까운 일이지만 과거사에 매우 민감한 우리나라에선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보인다.
정우성과의 열애와 서태지와의 이혼 ¶
2011년 3월 20일 마침내 열애설이 공식 인정되면서 정우성을 남자친구로 둔 인생의 승리자가 되었다. 결혼까지 가면 레알 승리 입증. 장동건을 잃은 데 이어 여성들은 뒷목잡고 쓰러졌다.
2011년 4월 21일 서태지와 비밀 결혼했다가 이혼 후 위자료 및 재산분할 청구 소송을 걸었다는 사실이 <스포츠서울>을 통해 보도되었다. 대한민국은 연예계 소식으로 완전히 뒤집혔다. 어느 정도였냐면 당일 KBS 9시 뉴스에 나왔고, 다음 날 조선일보 2면을 가득 채우는 위엄을 달성.
웬만한 스캔들에는 반응 안 하는 매체에서도 비중있게 다루는데 인터넷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이 사실을 맨 처음 보도한 스포츠서울은 기사 제목에 당당히 특종을 박았다.15년 전의 복수 '믿을 수 없어''서태지와 이지아라니!'말부터 '애도 2명이나 낳았대'라는 미확인 정보까지 나돌았다. 후에 아이는 없었다는 공식발표가 있었다.
신문에서 나온 이야기로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93년 미국 공연에서 이지아의 언니 소개로 인해 두 사람은 처음 서로를 알게 되었고, 그 후 편지를 주고 받다가 96년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후 미국으로 건너 간 서태지는 이지아와 재회하고 97년 결혼. 당시 혼인신고에서는 서태지의 본명인 정현철과, 이지아의 본명이었던 김상은으로 나와 있었다. 서태지와 부부로 산지가 2년 7개월, 이후 별거에 들어갔다. 2000년에 서태지 복귀 후 2006년에 이지아 측에서 홀로 이혼소장을 캘리포니아 법원에 냈다.. 그러므로 2011년에 낸 소송은 이혼소송이 아니라 위자료 청구소송.
2011년에 했던 소송은 이혼소송이 아닌 위자료 및 재산 분할소송으로 이지아는 국내법에 따라 2009년 이혼 성립을 주장, 서태지는 미국법에 따라 2006년 이혼이 성립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지아측 발표에 따르면, 이지아가 만 15세 때(1993년) 팬과 스타의 만남으로 서태지와 만난 인연을 가지고 있었으며 서태지가 은퇴 후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 미국에서 서태지를 만나 친언니의 증인참석으로 결혼에 골인한다. 어쨌든 그녀와 연관성이 짙은 남자만 해도 한국 굴지의 대중 뮤지션, 전설적인 한류 탤런트이자 사업가, 연예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미남 배우이다.
소송건이 사실이라면 그녀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가 의아스럽다는 지적도 있다. 법조계에서는 55억이나 청구한다고 해서 전액 받아낸다는 보장도 없고,[13] 설령 다 받아낼수 있다 쳐도 이미 여배우로 어느 정도 입지를 굳힌 그녀가 왜 이런 무모한 짓을 할까라는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것. 게다가 철저하게 자신의 신상을 숨겨온 그녀가 이런 거액의 소송을 진행하면서 신상이 전혀 안 드러날 거라고 믿을 수가 있나라는 점도 의혹으로 제기된다. 거액의 소송을 진행하다보면 자연히 신상이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광고가 많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지아의 해명글에서 위자료 소송이 돈 때문이 아니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후 서태지가 빠른 속도로 재혼을 하면서 서태지가 재혼을 위해 먼저 이지아에게 정리를 요구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하는 설이 신빙성있게 돌고있는 상태. 이지아에게도 한국에서의 연기생활을 이어가려면 어떻게든 털어내야할 문제이기도 했고...
비판론 ¶
비판하는 여론의 주장은 아무리 그렇다고해도 정우성을 속인 것은 심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하나.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입장에서 자신을 굳이 이혼녀라고 밝힐 이유는 없지만, 전 남편과의 관계가 완전히 청산되지 않은 시점에서 연애를 한 것은 경솔하다는 주장. 덕분에 애꿎은 정우성만 졸지에 서태지와 이지아 사이에 끼인 꼴이 되어서 언론의 이목이 집중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한 것은 두말 할 것 없고. 또 다른 것은 서태지에게 건 거액의 소송을 이유로 남자를 등쳐먹으려는 악녀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개티즌들의 전형적인 억측으로 인한 마녀사냥으로 볼 수 있다. 이지아는 세간에 알려지기 이전, 정우성에게 이미 밝혔으며 정우성은 이에 대해 "나도 10년 넘게 사귄 여자친구가 있었다."며 아무렇지도 않게 반응해서 이지아가 굉장히 감동받았다고. 건승하시길 빈다는 말을 덧붙혔다. 참조 하지만 이 영상의 내용은 전적으로 이지아의 의견.
비판론을 뒷받침하는 의견으로는, 서태지는 자신의 글에서 누구를 저울질하고 잘못을 따지지 않고 자신이 먼저 죄송하다는 말을 꺼냈지만 이지아는 자신이 피해자인마냥 행동[14]한 것이, 사랑 앞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어디 있느냐며 추억을 짓밟은 사람이라고 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돈이 문제가 아니라 '조용히 비밀로 묻어두었던' 추억을 짓밟은 게 가장 나쁜 짓이었다는 게 대부분의 여론.
동정론 ¶
본질적으로 얻을 것이 많지않은 소송을 굳이 해서 이지아가 얻을 만한 것이 없다는 결론에서 출발하는 동정론도 있다. 신비주의로 일관하며 따라다니는 뒷말들에 계속 침묵으로 일관해왔는데 -일본 화류계 출신이라든가 텐프로 출신이라든가 하는 루머- 제대로 된 과거를 가졌다는 걸 증명할 방법은 서태지가 직접 나와서 인정해주는 것 이외엔 없었다. 사실 '나 서태지의 전 부인이었어요' 라든가 '비공식 결혼해서 이름까지 바꿨어요' 이런 걸 말한다고 믿을 사람도 없을 뿐더러 이혼까지 한마당에 굳이 말할 이유도 없으니 본인의 과거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하기 위해 소송을 했다는 의견이다.
97년 결혼 이후 "서태지의 비공식 아내"로 숨어 살아온 시간에 대해서 동정하는 입장도 있다. 실질적으로 00년에 이미 별거(서태지측 주장)에 들어갈 만큼 결혼생활보다 소송기간이 더 길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어린 여자와 결혼하면서 자신의 부모에게도 알리지 않은 서태지의 행동이 의문스러운 게 사실이며[15] 06년에 이혼 소송을 할 때까지 결혼생활의 끝마무리를 이지아 혼자 해야 했다고 [16]하니.
그러나 부모에게도 알리지 않은 결혼이라는 주장은 사실과 맞지 않는다는 디스패치의 반박 기사가 나왔다. 디스패치가 네바다 등기소까지 뒤져서 취재한 결과 결혼식의 증인이 다름아닌 이지아의 이복 언니였다는 것. 이는 “양 측이 동의를 했고 많은 지인들은 두 사람의 교제나 결혼 사실을 알고 있었다”라는 서태지 측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또한 같은 기사에서 확인된 이지아의 교통법규 위반 사실이나 쇼핑, 가족 왕래 증언 등으로 볼 때, 결혼생활에 자유가 없었다는 이지아 측의 주장을 무작정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정우성 ¶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애꿎게 덤터기를 쓰게 된 이유는 역시 정우성. 옹호/비판이 대립하는 서태지, 이지아 측과는 달리 이쪽은 절대적인 동정을 받고 있는 처지다.
2012년 11월 29일, 12월 6일 무릎팍도사에서 (정확히는 12월 6일 방송분) 이지아의 과거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해당 방송에서는 파리 여행을 갔을 당시에 과거의 상대가 누구였는지 털어놓았다고 했고, 위자료 청구소송에 관해서는 해당 기사가 터지기 바로 직전에 이지아가 정우성에게 정중하게 "미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라고 얘기하면서 알게 되었다고 한다.
파리에서 이지아가 "과거에 긴 시간 동안 어떤 사람과 교제 한 적이 있다"고 말하자 오히려 이지아에 대한 수많은 루머들이 거짓이라는 것에 안도했고, 결혼 사실 보다 오히려 자기 때문에 더 난처한 상황이 올까 걱정되어, "자신은 신경쓰지 말고 지금 처해진 상황 현명하게 잘 대처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건 당시 정우성이 침묵했던 것은 자신이 말을 꺼낼 경우, 이를 확대 재생산된 기사들이 나와 두 사람의 과거를 정리하는 데 방해되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것 같아서였다고 한다. 성격상 침묵하기 힘들었다고.
이후 무릎팍 도사 섭외요청에 응한 이유는 그와 관련된 여러 오해들을 풀기 위해서라고 한다.
방송 말미에 정우성은 이지아를 가리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그 친구는...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사랑한 죄밖에 없어요... 그게 그렇게 잘못인가요?
그 친구는... 세상 사람과 소통하고 싶었던 사람이에요...
성지 ¶
여담 ¶
초등학교 졸업사진으로 추정되는 사진도 나왔다. 이 사진이 진짜 이지아의 예전 사진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2007년에 이지아 본인이 직접 디자인한 드레스를 입고 레드카펫을 밟은 적이 있는데, 허리춤에 수놓아진 자수를 두고 'Leejiatoes'이지아 발가락라고 해석해 이것을 거꾸로 읽으면 seotaijeeL이 된다는 설이 퍼졌으나, 소속사에서 이 글자는 'irresistible'이라고 밝혔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irresistible이 맞는다.[18][19]
디아블로 3 공식 홈페이지에 리쌍, 작곡가 윤일상과 함께 인터뷰 영상이 올라왔다. 제목은 ["회상: 디아블로를 추억하며..."]. 실제로 왕십리역에서 발매기념 사인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근데 서태지의 자동차가 디아블로였다
이탈리아 피아트 그룹 산하의 최고급 스포츠 승용차 브랜드인 마세라티가 이지아 때문에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이지아는 마세라티의 플래그쉽 후륜구동 대형 세단인 콰트로포르테 5세대의 오너(사실은 리스차량)인데, 2013년 4월의 어느 날에 음주한 후 대리운전 기사를 불러서 이동하다가 논현동에서 대리운전 기사가 쏘나타 경찰차와 접촉 사고를 내는 바람에 마세라티가 더 알려졌다. 6세대 콰트로포르테의 출시를 앞둔 상황에서 일어난 일인지라, 실제로 마세라티/페라리 수입사인 FMK 측에서는 이지아의 콰트로포르테 접촉사고 때문에 마세라티의 인지도 상승에 득이 되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본의아닌 노이즈가 있고 난 후 출시되었던 기블리, 6세대 콰트로포르테의 판매량이 늘어 마세라티의 국내 판매량이 증가하기도 했다. 고마워요 이지아
예능 ¶
SBS 김정은의 초콜릿 (2009)
SBS 힐링캠프 (2014.8.11) 여기서 전 남편을 디스 했다. 출연 전부터 광복절 앞두고 친일파 후손을 부르다니 제정신이냐며 힐링캠프의 섭외 자체를 욕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반대로 이지아의 팬들은 방송 전부터 문제없다고 주장하며 포털 사이트를 옹호 댓글로 도배했다. 방송 후 댓글란에선 같은 여자로서 동정한다는 등 주로 여성층이 이지아의 불운한 결혼생활을 동정한다며 고무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네이버, 네이트, 다음 등 댓글란만 보면 매력적이라며 감탄했다는 반응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대다수 남초 성향 커뮤니티들과 일부 여초 커뮤니티에선 비판하는 여론이 훨씬더 많았다. [20]
친일파 건으로 인해 여전히 비판하는 시선들이 많으며 특히 친일파 논란에 대해선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이 많다. 자기가 해명하고 싶은 루머만 해명하고 본인한테 불리한 논란은 회피한 것이 아니냐는 것.# 이지아 팬들중 일부의 지나친 동정론과 쉴드로 오히려 더 반감을 느낀 사람도 많다. 특히 이지아 할아버지의 친일 행적을 물타기하거나 그냥 넘어가자는 사람들에 대해선 너나할 것 없이 비난이 많다. 말하는게 지적이다는 의견도 있지만 다른 의견으로는 두루뭉술한 문어체로 말해서 답답하다는 사람도 있었다. 방송상에서 앞으로는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드라마 ¶
음반 ¶
러브 바이러스 (Digital Single) 2008.12.24
컵케익과 외계인 (Digital Single) 2009.08.14 - 영화 <내 눈에 콩깍지>의 OST에 수록되었다.
뱀파이어 로맨스 (Digital Single) 2010.02
광고 ¶
LG텔레콤 (현 LG유플러스) '랄랄라'편
롯데제과 애니타임
롯데리아
드레스 투 킬 (DRESSED TO KILL)
LG생활건강 이자녹스 (ISA KNOX) / 라하 (LAHA)
화보 ¶
Cosmopolitan 2008년 3월호 / 2009년 5월호 / 2015년 7월호 / 2016년 3월호
Arena
Vogue Girl
Vogue Korea 2016년 2월호
The Celebrity 2014년 7월호
InStyle 2016년 1월호
Harper's Bazaar 2016년 3월호
기타 ¶
KBS1 사랑의 리퀘스트 (2010)
tvN 월드스페셜 LOVE - 필리핀 말라본 편
2009년 6월,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에 있는 맑은내 배꽃마을에서 굿네이버스와 함께 자원봉사활동을 한 바 있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다녀온 사람이 추가바람.
2016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에서 유창한 영어실력를 발휘하기도 했다.
수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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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러 번의 개명을 거친 이름이라고 한다.
- [2] 조부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김순흥이다.
- [3] 미국에서 Shea Lee(시아 리, 셰이 리,[24] 세아 리)라는 이름을 쓰기도 했다.
- [4] 소속사에서 페이스북으로 알려주었다.
- [5] 남동생은 본인과 성이 같으며, 위로 두 언니는 성이 다르다고 한다. 즉 이부형제.
- [6] 다만 정우성과 출연할 당시엔 드라마의 메인 히로인은 아니었다.
- [7] 소리바다의 자회사.
- [8] 당시 이지아가 소속 되었던 엔터테인먼트사는 키이스트. 배용준 역시 키이스트 소속이면서 동시에 최대주주이다.
- [9] 인기있는 배우와 그렇지 못한 배우를 묶어서 출연계약을 맺는 것. 제작사 측에서는 흥행력이나 지명도 있는 배우를 기용하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수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10] 다만 이 드라마 자체가 구닥다리 구성에 평면적 캐릭터로 이루어졌다는 한계 자체를 지목하여 이지아의 연기만을 까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의견도 있다
- [11] 서태지와의 결혼 생활과 관련된 문제에 대한 논란을 떠나서, 이거 하나 때문에 국내에서 연예인으로서의 이미지가 비호감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 [12] 세금 많이 내면 친일파는 아니다 당연히. 그렇게 따지면 당시 재력가는 모두 일고의 여지가 없는 친일파일 것이다.
물론 대다수가 그렇지만김순흥의 경우는 자발적인 기부금이었다는 것에서 친일색을 띠고 있음이 증명되는 것이고, 더해서 반일운동에 대항하기 위한 자금도 지원했으며, 강제 징병이 실시된 이후로는 징병제를 찬성하는 성명을 내놓고, 일본 패망 직후에 한국민주당의 발기인으로 참석해 친미 성향, 혹은 친일에 대한 세탁 등을 한 인물이다. 이를 두고서 친일파가 아니라면, 참 서글픈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샤를 드 골과 프랑스의 처우와 비교되는 모습이다. - [13] 모 재벌의 황혼이혼사건에서는 1000억 청구해서 50억, 즉 5% 받았다.
- [14] 게다가 당시 그녀가 보였던 언행들 중에는 거짓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다소 있다
- [15] 하술된 기사 내용에 이 부분은 사실상 거짓
- [16] 서태지 측에서 04년 이혼에 대한 합의, 06년 이혼 요구를 받았다며 인정한 내용이다.
- [17] 그런데 15년 후에 이혼기사를 가장 처음으로 보도한 언론도 스포츠서울이었다.
15년을 벼르고 별렀다15년? JTBC는 30년을 별렀는데 - [18] '저항 할 수 없는' 이라는 뜻과 함께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이라는 뜻도 있는 단어다
- [19]
그런데 irresistible은 2004년 발매된 서태지 7집 issue의 앨범커버에 나오는 단어이기 때문에, 본인은 힘든 기간을 가졌다고 하면서 여전히 서태지를 따라다니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였다.앨범커버 왼쪽 하단에 잘려져서 쓰여져 있고, irresistible이라는 단어 자체가 흔하게 쓰이는 단어이기 때문에 이는 그냥 끼워맞추기식 추측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 [20] 일부 여초 커뮤니티에서 비판적인 것은 할아버지의 실체를 알린 글이 석연찮은 이유로 삭제된 것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 [21] 한/일 합작 '텔레시네마'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된 드라마형 영화.
- [22] 드라마 <아테나 - 전쟁의 여신>의 극장판이다. 아이리스 시리즈는 모두 드라마 종영 후, 압축된 버전의 영화가 제작되었다.
- [23] 실질적 첫 스크린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