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李榮, 1492년 2월 10일 ~ 1583년 10월 20일)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은사이다. 자(字)는 양수(陽臼+又), 호는 북산(北山), 본관은 우계(羽溪)이다. 조정의 부름을 거절하고 은둔생활을 하였으며, 녹래리로 이주하였다. 뒤에 노인직으로 통정대부와 가선대부를 역임하였다. 경상북도 출신.
생애 ¶
할아버지는 도촌 이수형이며 아버지는 홍천현감 이대근(李大根)이고, 어머니는 안동권씨로 부호군 증 이조판서 권곤(權琨)의 딸이다. 형 이양은 충순위였으나 일찍 죽었고, 다른 형은 이당인데 정략장군 부호군을 지냈다.
그의 초기 행적은 미상이다. 후에 유일의 후손으로 조정에서 그를 불렀지만 사양하고 두문불출하였으며, 영천도촌(후에 봉화로 편입되었다.)에서 예안 녹전 녹래리로 들어가 외부와 단절하고 은거하였다.
1572년(선조 5) 임신년에 수계(壽階)로 통정(通政)에 제수되었고, 1582년(선조 15) 임오년 승 가선대부에 제수되었다. 1583년(선조 16) 10월 20일에 사망하였다.
묘는 안동군 도산면 감산(甘山, 북고산(北高山)) 후곡 대평(大坪) 유좌(酉坐)에 있다. 후일 기록이 실전되었다가 뒤늦게 찾게되어 문소 김홍락(聞韶 金鴻洛)이 비문을 짓고, 글씨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