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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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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엽 . . . . 36회 일치
         {{다른 사람|[[이승엽 (동음이의)]]}}
         |선수명 = 이승엽
         |사진 설명 = 이승엽(2016년)
         * 이승엽야구장학재단 이사장 (2018년 ~ 현재)
         '''이승엽'''(李承燁, [[1976년]] [[10월 11일]] ~ )은 [[대한민국]]의 은퇴한 [[야구]] 선수로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내야수]], [[지명타자]]이다. 본관은 [[광주 이씨|광주]]이다.
         감독이 그의 아버지와 협상했다가 불발됐고 그는 야구를 시작할 때까지 단식하겠다고 하여 그의 아버지를 설득시켜 야구를 시작했다. 투구와 타격 모두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좌완 투수로 좀 더 이름을 알렸다. 그는 경상중학교 재학 당시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고, 재학 시절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1993년 청룡기 대회]]에서는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우수 투수상을 수상했다.<ref>[[스포츠 조선]] - 2010년 5월 기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5/16/2010051601132.html "최동원, 선동열, 이승엽, 추신수, 봉중근, 이대호, 류현진… 청룡기가 낳은 한국 야구 대들보"]</ref> [[1994년]] 청소년 국가 대표로 선발된 그는 투타에서 고루 활약을 펼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ref>''[[OSEN]]'' - 2007년 12월 기사 [http://www.osen.co.kr/news/Sports_View.asp?gisano=G0712260021&code=110100 "이승엽-이대호, 모교서 방망이 날세운다"]{{깨진 링크|url=http://www.osen.co.kr/news/Sports_View.asp?gisano=G0712260021&code=110100 }}</ref><ref name="homerun">스포츠 춘추 - 2010년 9월 [[박동희 (기자)|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463 "이대호로 본 ‘홈런 타자는 어떻게 탄생하나’"]</ref>
         1995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계약금 1억 3200만원, 연봉 1,000만원의 조건으로 투수로 입단하였다. 좌완 투수 유망주였으나 시절 당했던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ref>[[문화일보]] - 2009년 9월 기사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9091701032230073002 "이의수의 마흔 이후 남자의 생존법 - 실패는 성공을 잉태한다"]</ref><ref>[[동아일보]] - 2010년 8월 기사 [http://news.donga.com/3/all/20100820/30624874/1 "투수 → 타자 변신 성공시대… 타자 → 투수는 왜 잘 안 될까"]</ref> 입단 초기부터 투수 훈련에 애를 먹은 그는 첫 스프링 캠프에서 당시 타격코치였던 [[박승호 (야구인)|박승호]]로부터 1년만에 타자로 뛸 것을 권유받았고, 이후 좋은 반응을 보여 1루수로 완전히 전향했다.<ref>[[마이 데일리]] - 2010년 8월 기사 [http://www1.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8101138562229 "이대호·이승엽·추신수, ‘잘 던져야 잘 친다’… 투수 출신들 맹활약"] {{웨이백|url=http://www1.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8101138562229# |date=20140814152842 }}</ref> 그가 타자로 전향하자 ‘좌승엽 우승관’으로 불리며 기대를 받았던 입단 동기 내야수 [[김승관]]은<ref>엑스포츠 - 2010년 7월 기사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23613 "추신수와 부산고의 황금 시대를 이끈 한화의 김백만"]{{깨진 링크|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23613 }}</ref> 상대적으로 기회가 줄어 [[2004년]] [[롯데 자이언츠|롯데]]에 트레이드된 후 [[2007년]]에 방출돼 그 해를 끝으로 은퇴했다. 타자로 완전히 적응하며 프로 첫 해부터 가능성 있는 모습을 보였다. 점차 그는 거포로서의 재능을 뽐내며 붙박이 3번 타자 겸 1루수로 자리매김했지만 내야수 [[이동수 (야구인)|이동수]]에게 밀려 데뷔 첫 해에 신인왕 수상에는 실패했다. 프로 입단 3년차인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그의 타격이 정점을 찍기 시작하면서 그는 아시아 프로 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로 거듭났다.<ref>스포츠 춘추 - 2009년 12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338 "양준혁이 말하는 ‘선구안 향상법’"]</ref>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의 이승엽.
         그가 기록한 [[2006년]] 성적은 타율 2위, 타점 1위(108), 홈런 1위(41개<ref>실제로 [[2006년]] 그는 155개의 공을 펜스 너머로 넘겼지만, 이 중 [[2006년]] [[6월 11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대결에서 상대 선발 투수 [[와타나베 슌스케]]로부터 친 홈런이 심판이 당시 1루 주자 [[오제키 데쓰야]]가 3루를 밟지 않고 홈에 들어왔다고 판단해 단타로 처리되며 공식 기록은 41개가 됐다{{뉴스 인용|제목=<nowiki>[스포츠 10대 해프닝②]</nowiki> 이승엽, 도둑 맞은 19호 홈런|url=http://media.daum.net/breakingnews/sports/view.html?cateid=1071&newsid=20061221135010895&p=joynews24|출판사=조이뉴스24|저자=최정희|날짜=2006-12-21|확인날짜=2008-09-22}}</ref>)를 기록해 공격 전 부문에서 리그 정상급의 활약을 펼쳤다. 특히 홈런에서는 일본 진출 이후 최다 홈런을 기록했는데 6월에는 44홈런을 몰아치며 리그 홈런 1위에 올라섰다. 그러나 8월 중순 경 발생한 무릎 부상 이후 홈런 페이스가 주춤했고, 시즌 중반부터 페이스를 높여 온 [[주니치 드래곤즈]]의 [[타이론 우즈]]에게 홈런 숫자에서 추월당해 결국 리그 최다 홈런 2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타율은 [[주니치 드래곤즈]]의 후쿠도메에게 밀리고 홈런과 타점은 [[타이론 우즈]]에게 밀렸지만 시즌 내내 도루를 제외한 타격 전 부문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하며 최정상급의 기량을 뽐냈다.
         이듬해 [[2007년]] 1월, 모친상 소식을 일본에서 전해 들었고 왼쪽 엄지손가락에 염증이 생기는 부상 등 시즌 내내 고전했다. 외다리 타법을<ref name="sword"/> 고쳐보기도 했지만 성적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7월 중에는 스스로 2군행을 자처하기도 했다. 시즌 후반기에는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요코하마]]와의 첫 대구에서 연타석 홈런을 치는 등 부진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으며, 시즌 후반에는 승부에 결정적 기여를 한 홈런을 여러 개 쳐 내며 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홈런을 한 개도 치지 못하는 등 장타력이 실종된 모습을 보이며 시즌을 마감했다.<ref name=world>{{뉴스 인용|제목=이승엽 2007년 시즌 결산, 모친 타계… 부상… 악재의 연속|url=http://media.paran.com/snews/newsview.php?dirnews=2246545&year=2007|출판사=세계일보|저자=강구열|날짜=2007-10-22|확인날짜=2008-06-01}}{{깨진 링크|url=http://media.paran.com/snews/newsview.php?dirnews=2246545&year=2007 }}</ref> 종합적으로 2007 시즌에는 타율 0.274, 30홈런, 74타점을 기록하였다.
         시즌 초반에는 지난 시즌 후 받은 손가락 수술로 인해 심각한 슬럼프에 빠지며 2군으로 강등됐다.<ref>스포츠 춘추 - 2008년 4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011 "한·일 전문가가 꼽는 이승엽의 문제"]</ref> 그러던 중 8월에 있었던 [[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해 대한민국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특히 그는 4강전인 일본전에서 투런 홈런을, 쿠바와의 결승전에서도 투런 홈런을 쳐 내며 자신의 건재함을 보였다.<ref>스포츠 춘추 - 2008년 8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079 "한-일 기자 대담 “9회초 대타 김현수가 의미하는 것”"]</ref><ref>스포츠 춘추 - 2008년 8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080 "일본에서 본 호시노 JAPAN의 침몰"]</ref> 그러나 그 해 45대구에 출장해 2할대 타율, 7할 5푼 5리의 OPS를 보였으며, 8홈런 27타점에 그쳤을 뿐만 아니라, [[2008년 일본 시리즈|일본 시리즈]]에서도 극도의 부진을 드러냈다. 그 해 일본 시리즈는 퍼시픽 리그 우승 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와 진행했는데 여기에서 7대구 동안 홈런과 타점 없이 18타수 3안타(타율 0.167), 12삼진이나 당하는 등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기도 했다.
         16홈런, 2할대 타율로 시즌을 마감한 그는 일본 시리즈가 끝난 이후인 [[11월 14일]]에 [[한일 클럽 챔피언십]] [[KIA 타이거즈]]와의 대구에 1루수로 선발 출전해 2루타 두 방을 날리며 4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ref>{{뉴스 인용|제목=이승엽 “내 야구 인생에 포기는 없다”|url=http://news.nate.com/view/20091116n04063|출판사=스포츠월드|날짜=2009-11-16}}</ref>
         오릭스 버펄로스 시절의 이승엽.
         [[2011년]] [[10월 21일]] 기자 회견을 열어 8년 간의 일본 생활을 정리한다는 의사를 밝히고 영구 귀국했다.<ref>{{뉴스 인용|제목='국내 복귀' 이승엽, 日서 기자회견 '굿바이, 오릭스'|url=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979943.htm|출판사=스포츠서울|날짜=2011-10-21|확인날짜=2012-11-26|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007070317/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979943.htm#|보존날짜=2013-10-07|깨진링크=예}}</ref> 이후 자녀 교육을 위해 서울로 이사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76&aid=0002218871 이승엽, 와이프에게 어쩔 수 없는 경상도 남자인가 보다] - 스포츠조선</ref> [[2011년]] [[12월 5일]] 연봉 8억원, 플러스 옵션 3억원에 계약을 체결하며 복귀했다.
         2013 시즌 올스타전 홈런 레이스에서는 결승전에서 [[KIA 타이거즈]]의 [[나지완]]과의 대결에서 6-2로 이기며, 데뷔 이후 첫 올스타전 홈런 레이스 우승을 맛봤다. [[2013년]] [[8월 28일]] [[NC 다이노스|NC]]와의 대구에서 3,000루타를 달성<ref>[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395864 삼성 이승엽, 역대 6번째 3,000루타 달성]</ref>했으며, 이는 가장 적은 대구 수로 달성한 기록<ref>[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30829.010220731320001 이승엽 최소 대구 3,000루타]</ref>이다.
         [[2013년]]에는 타격 부진에 시달리며 2할대 타율, 13홈런을 기록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9&article_id=0002527668 이승엽의 무서운 다짐 "내 이름, 꼭 되찾겠다"] - 노컷뉴스</ref> 이는 9홈런에 그친 [[1996년]] 이후 가장 적은 홈런이었다. 정규 시즌 막판에는 허리 부상으로 1군에서 말소됐다. [[두산 베어스]]와의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도 타격 부진이 계속돼 7대구에서 타율 1할4푼8리(27타수 4안타)에 그쳤다. [[2013년]] [[11월 1일]] 7차전까지 단 1타점도 기록하지 못하다가 7차전에서 추격의 발판을 마련한 동점 적시타를 기록하며 당시 감독이었던 [[류중일]]의 믿음에 보답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396&article_id=0000136917 이승엽, 홈런이 전부가 아니다… 부진 털어낸 동점 적시타 ‘우승 발판’] - 스포츠월드</ref> 하지만 주춤한 성적으로 인해 그 해 골든 글러브(지명타자)를 타격왕을 차지한 [[이병규 (1974년)|이병규]]에게 내 줬다.
         그는 시즌 시작 전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2017년]] [[5월 21일]] [[송창식 (야구 선수)|송창식]]을 상대로 [[KBO 리그]] 첫 450호 홈런을 기록했고<ref>[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EB21&newsid=01666246615931216&DCD=A20102 '이승엽, 통산 450홈런'삼성, 661일만에 시리즈 스윕(종합)] - 이데일리</ref>, 2달 뒤인 [[7월 29일]]에는 [[김성민 (1994년)|김성민]]을 상대로 [[KBO 리그]] 최초로 4000루타를 달성했다.<ref>[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707291933932974&ext=na '라이언킹' 삼성 이승엽, KBO리그 최초 4000루타 돌파] - 마이데일리</ref> 시즌 후반기부터 소속 팀을 제외한 9개 구단에서 그를 위해 은퇴 투어를 진행했고 그 여정이 끝난 [[10월 3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대구를 끝으로 공식 은퇴했다. 그 대구에서 [[한현희]]를 상대로 연타석 홈런을 기록하며 그의 은퇴를 바라보는 이들을 아쉽게 만들었다. 대구 후 팀은 그에 대한 성대한 은퇴식을 열었고, 그의 등번호인 '36번'은 구단 역대 세번째로 영구 결번 처리됐다.<ref>[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612121051081031 ‘일구대상’ 이승엽 “마지막 1년, 떠날 때 후회없도록”(일구상 시상식)]</ref> 그는 은퇴 후에는 야구 관련 직종에 종사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히며 "야구장 안팎에서 야구 관련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1/13/0200000000AKR20170113128700007.HTML?input=1195m 이승엽 "은퇴 이후 일? 야구 관련 아니면 안 한다"]</ref>
         {{인용문|안녕하세요.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입니다. 이번 역은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가 있는 대공원, 대공원역입니다. 내리는 문은 오른쪽입니다. 야구장에 오셔서 힘찬 함성과 뜨거운 열정을 함께하시기 바랍니다.}}
         *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 최다 홈런상, 최다 타점상 (1994년)<ref>{{뉴스 인용|제목=300홈런 주인공 이승엽은 누구인가?|url=http://www.hani.co.kr/section-006001000/2003/06/006001000200306222243547.html|출판사=연합뉴스|날짜=2003-06-22}}</ref>
         * [[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8년)<ref>{{뉴스 인용|제목='국민 타자' 이승엽, 퍼펙트 金 약속 지켰다|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808232121082221|출판사=마이 데일리|저자=박세운|날짜=2008-08-23|확인날짜=}}</ref>
  • 박석민 . . . . 11회 일치
         || '''응원가''' || '''삼성 시절''': 하늘 - 웃기네[* 나! 나! 나나나나! 나나나나나 '''박석민 [[짱]]!'''. 전주부분을 개사한 것이다.][* [[로티플스카이|하늘]]이 사망한 이후부터 쓰이지 않고 있다...가 [[2014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부터 본인의 요청으로 부활했다.][* 롯데 [[김상호(1989)|김상호]]와 곡이 같다만 사용한 부분이 다르다. 김상호 항목 보고 가수와 곡 제목이 다른데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웃기네가 Venus를 번안한 곡이며 Bananarama 곡 역시 중간에 박석민 응원가에 해당하는 멜로디가 있다.] [br] 타카피 - 케세라세라[* 날려버려 날려버려 삼성 박석민~ '''(어이!)''' 날려라 날려 삼성 박석민~ '''(어이!)''' 날려버려 날려버려 삼성 박석민~ '''(어이!)''' 날려라 삼성 박석민~ 워어~어어어~ 날려~라 박석민~ 워어~ 어어어~ 날려라 삼성 박석민~ 2014 시즌에 추가된 응원가. 현재는 앞에서 언급했던 웃기네의 원작자 로티플스카이가 사망한 이후 쓰이지 않으면서 이 응원가가 정식 응원가가 되었다가 현재는 웃기네와 같이 쓰이고 있다. 기존 응원가가 좋다보니 처음엔 반응이 좋지 못했으나 지금은 그럭저럭 호평을 받고 있다. 단적인 예로 이때 같이 바뀌었던 이승엽 응원가는 한시즌도 채 못가고 팬들의 반발로 용도폐기되고 흑역사화가 된것만 봐도..][br][[신해철]] -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워어어어어 박석민 워어어어어어 최!강!삼!성! 승리요정 박석민] [BR] '''현재''': 하늘 - 웃기네 [br] 타카피 - 케세라세라[* 삼성때 응원가에서 삼성을 NC로 바꾼 것외에는 동일하다. 박석민 본인이 삼성 시절 응원가를 그대로 써 주기를 희망했고 삼성 구단도 흔쾌히 승낙. ~~유일하게 [[임태현|임가놈]]의 응원가를 피했다.~~ ] ||
         [[최형우]]가 시즌 초반 극도의 부진에 빠진 상황에서 4월 한달동안 0.344의 타율과 5개의 홈런을 날리며 [[이승엽]]과 함께 삼성의 중심타선을 지탱했다. 1번 [[배영섭]]과 4번 [[최형우]]가 슬럼프에 빠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류중일]] 감독은 9번 김상수를 1번으로, 5번에서 좋은 타격감을 유지하던 박석민을 2번으로 전진배치한다. 박석민은 2번 타순에서도 맹타를 휘둘렀지만 박한이가 부상에서 회복될 때까지의 임시직이라고 한다. 박석민 본인도 5번을 선호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최형우의 슬럼프가 길어지자 최형우가 5번으로 내려가고 박석민이 4번을 치게 되었다. 결국 최형우가 2군으로 내려가고 나서는 이승엽이 4번으로 가고 박석민은 3번을 치게 되었다. 최형우가 1군으로 복귀한 이후는 최형우를 이승엽 뒤에 세우지 않겠다는 류중일 감독의 뜻에 따라 박석민 - 이승엽 - [[강봉규]] - 최형우 또는 최형우 - 이승엽 - 박석민의 타순을 따라 3번 또는 5번 타자로 나서다가... 최종적으로는 4번으로 고정되면서 삼성의 중심 타선은 '''3번 이승엽 - 4번 박석민 - 5번 최형우'''가 되었다.
         팀이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앞선 11월 1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스코어 1:0으로 앞선 4회초 1사 1루에서 '''투런홈런'''을 날리며 부진에 마침표를 찍고 유종의 미를 거두며 여러모로 2002년의 [[이승엽]]과 비견되었다.[* 반면 이 해의 [[이승엽]]은 2002년의 [[마해영]]+[[양준혁]] 포지션.] 이 홈런은 근소하게 앞서던 삼성 분위기를 완전히 가져오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으며, 삼성은 여세를 몰아 '''볼넷 3개+ 적시타 2방 4타점'''을 묶어 '''시리즈 세 번째 1이닝 6득점'''으로 SK를 완전히 도륙내며 스코어 7:0으로 승리했다. 이날 박석민은 4타수 2안타 1홈런 2타점 1득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우승 확정 뒤에는 역시나 개그 사진을 방출했다. --[[거북왕|꼬부기]]의 [[물대포]]!-- 이승엽도 당했다. ~~'''[[http://sports.news.nate.com/view/20121102n16253?mid=s1001&isq=5531|박석미친]]'''~~ ~~'''[[이재용]], [[이건희]]'''에게도 그거 해 봐~~
         타순은 2008~2009년까지는 주로 4번, 가끔 5, 6번에 기용되다 [[최형우]]의 포텐셜이 폭발한 후로는 3번이나 5번으로 나온다. 포지션은 데뷔 초기에는 [[2루수]][* '''2004년 한국시리즈 9차전 선발라인업 키스톤이 조동찬-박석민(!)이었다'''. (참고로 아래 움짤에서 18번 투수는 박석민이 아니라 [[박석진]].) 물론 이 키스톤이 선발출장한 이유는 수비보다도 당시 상대 선발이었던 [[오주원|오재영]]을 겨냥한 좌투수 저격 라인업의 의미가 더 컸었고 결과적으로 이날 삼성의 수비는......[[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br][[파일:external/lh3.googleusercontent.com/2004%252520KS.gif]]]였지만 현재는 주로 [[3루수]]이며 가끔 [[1루수]]. 막 제대했을 때는 타격면에선 합격점이었지만 같은 포지션의 [[조동찬]]에 비해 떨어지는 수비가 문제였다.[* 사실 3루수에서도 그의 천재성이 엿보이는게, 원래 2루나 유격수를 보았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그냥 '아 포지션변경하기 힘든 것을 천재성으로 극복했구나'하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2루와 유격수 수비와 3루수비는 '''스텝부터가 다르다.''' 유격수나 2루수는 좌우 양 옆으로 움직여야 하지만--[[박기혁|좌우로 스텝을 밟는 게 아니라 전력질주로 뛰어가서 잡아야 하는 유격수도 있었지만 말이다]]-- 3루수비는 앞뒤로 움직여야 한다. 당장에 [[알렉스 로드리게스|에이로드]]가 [[데릭 지터|절대 유격수만 고집하시는 분]]하고 양립이 안 되어서 3루로 전향했고, 그 때의 3루수비를 기억해보자. 멀리 갈 것도 없이 유격수에서 [[강정호|이 분]]을 제쳐내지 못하고 3루로 정착한 [[황재균|케이팝 모델 x스머신]]을 떠올리는 것도 있다. 황재균도 처음에 3루수비는 개판이었다. 다만 당시 수비코치이던 [[염경엽]]이 기초부터 다시 가르쳐 지금에 이르른 것.--물론 그 개판인 수비도 [[롯데 자이언츠|이 팀]] 팬들한테는 [[이대호|굉장히 예쁘게 보였을 거다]]-- 뭐 황재균을 사온 이유가 이대호의 수비를 감당못하고 1루로 보낸 거 였지만.]당시 수비력만으론 리그 하위권인데다 그전의 삼성 3루수는 역대 최강의 수비를 자랑하던 [[김한수]]였기 때문에 더욱 비교되는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일취월장하여 3루 수비는 리그 최고 수준에 달하는 정도가 되었다.[* 3루수로서는 나무랄 데 없을 정도로 수비가 좋아졌지만, 1루수로서는 아직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특히 1루수로서 가장 중요한 포구에서 실수가 좀 잦은 편이다. 11년 [[채태인]], [[조영훈]], [[모상기]]가 부진할 당시에는 삼성의 차기 1루수 부분에 대한 우려가 크던 상황이었으나 12년은 국내복귀를 선언한 [[이승엽]]이, 13년과 14년은 각성한 [[채태인]]이 1루를 맡아 공수양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15년 부터는 [[양준혁|어느 머리 큰 전설적인 신인왕의 컨택능력을 가진]] [[구자욱|중장거리 히터 스타일의 초대형 군필신인]]이 등장한 덕에 박석민이 억지로 1루를 맡을 필요가 없어졌다. 박석민의 아쉬운 수비와 원래 3루 대체제로 생각했던 [[조동찬]]이 시즌아웃 이후 경기를 전혀 뛰지 못하는 상황임을 생각할때 삼성입장에서는 천만다행인 셈.]아이러니하게도 어려운 수비는 잘하는데 쉬운 수비는 잘 못한다. 가끔 글러브에 공이 낄 때도 있다. 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때 수비시 [[투수]]용 글러브를 끼고 경기에 나섰다. [[투수]]용 글러브와 [[내야수]]용 글러브의 크기 차이를 생각하면 참 희한한 일. 2015년 현재 웹이 막힌 큰사이즈의 내야수 글러브를 사용중이다. 사실 막힌 웹은 무조건 투수용이라는건 우리나라 사회인야구에 주로 있는 편견이고 일본의 경우는 내야수들도 막힌웹의 글러브를 많이 사용한다.은퇴한 양키스의 유격수 데릭 지터또한 커리어 내내 소위 바둑판웹이라고 불리는 디자인의 글러브를 사용한것으로 유명하다.
  • 김승관 . . . . 8회 일치
         1995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대구상고 시절에는 [[이승엽]]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좌승엽 우승관으로 불리던 라이벌이었다. 당시 투수였던 [[이승엽]]이 팔꿈치 부상과 어깨 혹사로 인해 타자로 전향하자, 그가 "승엽이는 방망이도 잘 쳐요"라고 말을 했을 뿐인데…
         '''정작 [[이승엽]]은 유명해지고, 본인은 오히려 [[듣보잡]]이 되고 말았다'''.
         이후 롯데에서 이런저런 보직을 맡다가, 2017년 시즌 초 타격 부진으로 인해 [[훌리오 프랑코]] 타격코치와 자리를 맞바꿔 1군 타격보조코치로 올라왔다. 시즌 후반기에 메인 타격코치였던 [[김대익]]이 외야수비코치로 보직이 바뀌자, 1군 메인 타격코치로 보직 변경됐다. 시즌 막판에는 [[이승엽]]의 사직구장 은퇴 투어에도 참석하기도 했다.
         항상 [[이승엽]]을 따라다니다가 본인이 스스로 무덤을 파 버린 비운의 천재. 당시 고교 코치들 말에 따르면, 이승엽은 부드러운 스윙을 휘두르는 반면, 김승관은 뻗어나오는 거친 스윙이라서 절대 프로에서 성공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승엽과 일화는 이 링크에서 찾아볼 수 있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9/02/2017090200273.html|이승엽에게 쓰는 편지]]
  • 조진호 (축구인) . . . . 8회 일치
         비록 [[수원 삼성 블루윙즈]]과의 FA컵 4강전은 조진호 감독의 사망으로 [[이승엽 (축구인)|이승엽]] 감독 대행이 지휘했지만,이미 조진호가 FA컵 4강 대진표가 나왔을 때 대비해 전술을 모두 파악해 놓은 상태였으며, 이를 인수인계받은 [[이승엽 (축구인)|이승엽]] 대행은 조진호 감독의 전술을 파악해 전방 압박을 충실히 해서 조진호 감독이 원했던 공격적인 축구를 선보였고, 승부차기 끝에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꺾고 FA컵 결승에 진출하며 명장의 마지막 경기에 피날레를 찍었으며, 이날 경기에서 이승엽 대행은 조진호 감독이 입었던 속옷을 입고 경기를 지휘했다고 한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potvnews.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71567 |제목="아, 감독님" 이정협의 되새김질과 이승엽 대행의 '속옷'|출판사=SPO TV |저자=조형에 |날짜=2017-10-26}}</ref>
         |후임자 = [[이승엽 (축구인)|이승엽]] (감독 대행)
  • 김재박 . . . . 7회 일치
          * 1998년 8월 26일, [[이승엽]]과 [[타이론 우즈]]가 치열하게 홈런경쟁을 펼칠 때[* 8월 26일 당시에는 이승엽 36홈런, 우즈 29홈런이었다. 이후 우즈는 9월에만 11홈런을 치며 역전하게 된다.] 현대가 삼성에 크게 이기고 있음에도 이승엽 타석에서 [[고의사구]] 지시. 수많은 삼성 관중들이 크게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승엽의 홈런을 기대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보란 듯이 이승엽을 고의4구로 걸렀고 경기장에는 빈병이 날아들었다. 당시 상황을 보면 19대 4로 점수차가 크게 난 상황에서 [[안병원(야구선수)|안병원]]이 초구 스트라이크를 던질 때 1루주자였던 [[양준혁]]이 도루를 성공하자 보복성으로 고의사구를 던진 것이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082800329126008&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8-08-28&officeId=00032&pageNo=26&printNo=16524&publishType=00010|<스포츠 기자석> 팬들을 죽이는 프로야구]] [[http://sports.news.naver.com/kbo/news/read.nhn?oid=109&aid=0002580212|[한국프로야구 난투사](29) 대구 관중들, 현대의 ‘이승엽 고의 볼넷’에 분노 폭발]] 당시 [[허구연]]은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090200209126012&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8-09-02&officeId=00020&pageNo=26&printNo=23976&publishType=00010|신문 기고]]를 통해 '우리 프로야구는 이승엽이란 슈퍼스타가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 경신이란 좋은 재료를 지니고 있음에도 상대 팀들의 지나친 견제로 축제에 찬물을 끼얹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 강동우 . . . . 5회 일치
         || [[강봉규]](2000~2005) || → || '''강동우(2006)''' || → || [[이승엽(1982)|이승엽]](2007) ||
         || [[이승엽(동명이인)|이승엽]](2006) || → || '''강동우(2007)''' || → || 이윤학(2008) ||
         피나는 노력으로 재활을 마치고 2000년 시즌 막판에 겨우 복귀해서 다시 삼성의 주전 [[외야수]]로 활약하지만, 신인 시절의 성적은 다시 나오지 않았고 평범한 선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래도 [[류중일]] 코치가 선수 시절에 달던 1번을 달고 뛰며 타격에서는 나름대로 제몫을 하며 삼성의 주전 외야수로 활동했고, 2002년 [[김응용]] 감독 아래에서 타율 0.288, 9홈런으로 어느 정도 부활에 성공하였다. [[2002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는 2001년 데뷔하여 삼성의 붙박이 타자가 된 왕년의 좌타 [[라이벌]] [[박한이]]와 함께 [[테이블 세터]]를 이뤄 활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 타율이 2할 중후반에 머무르는 바람에 '비운의 톱타자'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후 [[선동열]] 감독과 마찰을 빚게 되었고 외야진 보강 차원에서 2006년 3월 [[두산 베어스]]의 [[강봉규]], [[김창희(야구)|김창희]]를 상대로 [[트레이드]]되고 말았다. 당시 삼성 팬들은 격분하여 난리를 쳤다. 이는 훗날 [[양준혁]]의 등떠밀기식 은퇴, [[이승엽 와도 자리없다]]는 발언 등과 함께 [[선동열]]의 삼성 프랜차이즈 내치기 사건 중 하나다.
  • 배영수 . . . . 5회 일치
          이 사건으로 [[펠릭스 호세]]가 출장 정지를 먹자, [[우용득]] 당시 롯데 감독대행은 다음 날 호세를 1군에서 말소하고 [[이대호|이 선수]]를 1군에 처음으로 등록한다.[* 그리고 호세는 그해 KBO 역사에 남을 성적을 올리고도 '폭행사건으로 깎인 이미지'+'투표단의 용병 차별'로 여러모로 본인보다 성적이 떨어지는 타자들에게 밀려서 MVP와 골든글러브 수상에 실패했는데 공교롭게도 [[이승엽|두]] [[양준혁|선수]] 모두 배영수와 같은 삼성 소속이었다.(다만 양준혁은 2001 시즌 LG에서 뛰다가 골든글러브 수상즈음 삼성으로 복귀하게 된다.)]
          * 이러니저러니 해도, 21세기에 들어선 후 삼성은 2014년초를 기준으로 7회 우승 중 6회가 배영수가 데뷔한 후 달성한 것이고, [[이승엽]]이 떠난 2000년대 중반의 삼성의 최대 흥행카드이기도 했다.
          * 하지만 배영수가 이적 후 대구야구장에 처음으로 왔을 땐 그래도 삼성팬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남기기도 했으며, [[라팍]]에서 열렸던 2017년 올스타전 때에는 3루쪽을 향해 인사를 하는 모습도 보였~~고 이승엽한테 2루타를 맞아주었~~다. 또한 2017년 이승엽의 은퇴 투어 때는 이승엽/다른 삼성 출신 선수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나와 삼갤에서도 동정여론이 생겼다. 오히려 올스타전 때에는 팬들이 [[최형우|누구]]와는 다르게 성대한 박수로 맞아주었다. 금지어 자리도 '''[[최형우|지역차별 운운하며 팬들을 엿먹이고 떠난 후 입은 입대로 털면서 사진찍을 때 코빼기도 안 비치셨던 모 선수]]'''에게 옮겨간 상태.
  • 구자욱 . . . . 4회 일치
         '''구자욱'''(具滋昱<ref>한국야구위원회, 2012 가이드북</ref>, [[1993년]] [[2월 12일]] ~ )은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외야수]]이다. [[이승엽]]이 '포스트 [[이승엽]]'으로 지목한 선수이다.
         스프링캠프와 시범 경기 때 맹활약하며 기대를 받았으나, 외야의 [[최형우 (야구 선수)|최형우]], [[박해민]], [[박한이]], 내야의 [[채태인]], [[박석민]]을 제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시범 경기 때 부상을 당한 [[채태인]]을 대신해 개막전 엔트리에 들어갔으며, 3월 28일 [[SK 와이번스]]와의 개막전에 선발 출전하게 되었다. 데뷔 첫 타석에선 유격수 땅볼로 물러났으나, 두 번째 타석에서 우측 펜스를 직격하는 2루타를 쳐, 데뷔 첫 안타와 타점을 기록하였다. [[4월 1일]] [[kt 위즈|kt]]전에서 [[정대현 (1991년)|정대현]]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기록하며 데뷔 첫 홈런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시즌 초반 아쉬운 1루 수비를 보여주었다. 두 번째 홈런을 기록한 [[4월 3일]]을 기점으로 타격감이 안좋아지자, [[강봉규]]가 한동안 1루수로 출전하게 되었다. [[4월 9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강봉규]]의 대타로 타석에 나와 [[김승회]]를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기록하며 데뷔 첫 끝내기 안타를 기록하였다. 다음날 경기에서 부상당한 [[채태인]]이 1군에 올라와 시즌 첫 선발 출장을 했으나, 한 타석만에 그와 교체되었고, 그는 홈런 포함 3타수 2안타로 맹활약하였다. [[채태인]]이 다시 2군으로 내려가며 주전 자리를 이틀만에 꿰찼지만, 다시 타격감이 안 좋아져 [[김정혁 (야구 선수)|김정혁]]이 주전으로 나섰다. 그러나 [[김정혁 (야구 선수)|김정혁]]도 기대 이하의 실력을 보여주었고, [[4월 29일]]에 그는 다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면서 데뷔 첫 3안타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 뒤로 꾸준히 타격감을 끌어올린 그는 [[채태인]]이 부상에서 돌아오자, 타격 부진에 빠진 [[박해민]]을 대신해 중견수로도 출장하며 꾸준히 경기에 나섰다. [[5월 21일]] [[두산 베어스|두산]]전에서 [[윤명준]]을 상대로 홈런을 기록하였고, 이 홈런은 [[삼성 라이온즈]]의 4000번째 홈런이 되었다. [[6월 3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이승엽]]의 [[KBO (야구)|KBO]] 최초 400호 홈런이 터지던 날, 대수비로 출전한 그도 나란히 홈런을 기록하며 자신이 포스트 [[이승엽]]의 자격이 있다는걸 증명했다. 꾸준히 타격감을 올린 그는 [[6월 18일]] 경기에서 3타수 2안타를 치며 3할고지를 돌파하였고, 시즌 끝에는 3할 4푼 9리의 좋은 성적을 보여주었다. 그 뒤 그는 부상으로 빠진 [[박석민]]과 [[박한이]]를 대신하여 3루 수비와 우익수 수비도 소화하며 수비에서의 재능도 보여줬다. 그는 전반기 0.329의 타율과 9개의 홈런으로 [[2015년]] [[올스타전]] 드림 올스타의 1루수로 뽑히게 되었다. 그는 [[8월 4일]] [[kt 위즈|kt]]전에서 [[저스틴 저마노|저마노]]를 상대로 안타를 기록하며 신인 최다 경기 연속 안타인 22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였고, 다음 날 경기에서도 안타를 기록하며 23G 연속 안타로 기록을 늘렸다. [[8월 22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5타수 5안타 5득점 1홈런으로 맹활약하며 생애 첫 5안타, 5득점에 두 자릿수 홈런까지 달성하였다. [[9월 20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타격 후 옆구리 통증으로 시즌을 아쉽게 마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역대 신인 최고 타율을 갱신하였다. 최종 성적은 11홈런, 17도루, 57타점, 97득점이었다. 이는 타율 3위, 득점 10위, 출루율 10위의 대단한 성적이였다. 비록 [[2015년 KBO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에서는 0.286의 타율로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며 팀은 준우승을 하였으나, [[김하성]]과 [[조무근]]을 제치고 신인왕에 오르게 되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1/24/0200000000AKR20151124125600007.HTML?input=1195m '타격 3위' 삼성 구자욱, 2015 신인왕 수상] - 연합뉴스</ref>
  • 김정혁 . . . . 2회 일치
         다만 팬들의 의견과는 달리, 현장에서 김정혁의 1군 중용에 대해선 부정적인 상황이다. 우선 [[류중일]] 감독은 수비가 되는 선수를 1군으로 올리는 경향이 있고, 거기다 삼성의 주전 3루수 [[박석민]]은 김정혁과 동갑이다. 거기다 지명타자로 가자니 삼성의 [[지명타자]] 포지션에 오를 선수들은 '''[[이승엽]]'''. '''[[최형우]]''', [[채태인]]이다.
         8월 18일 [[이승엽]]과 함께 1군 엔트리에 등록됐다. 19일 두산전에서 9회초에 2사 후 2루타를 친 [[야마이코 나바로|나바로]] 대신 대주자로 출장해 2사 1,2루 상황에서 [[김재현(1991)|김재현]]의 좌전 안타를 치자 홈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포수 [[양의지]] 태그를 피해 슬라이딩하며 추가점을 내는 인상적인 활약을 보였다. 반면 타격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못 보이면서 27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 박승호 (야구인) . . . . 2회 일치
         [[삼성 라이온즈]]에서만 현역 생활을 하다가 은퇴한 박승호는 [[1993년]]부터 [[1999년]]까지 친정 팀에 계속 머무르며 타격코치로 일했다. 그는 5년 코치 생활을 하는 동안 [[1995년]] [[투수]]로 입단한 [[이승엽]]에게 타자로 전향할 것을 권유하기도 했는데 당시 [[백인천]] 감독, [[박흥식 (야구인)|박흥식]] 코치와 함께 그가 대형 타자로 성장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ref>[[매거진 t]] - 2008년 9월 기사 [http://www.magazinet.co.kr/Articles/article_view.php?mm=002004000&article_id=48717 "t MAP - 이승엽"]</ref>
  • 승리(빅뱅) . . . . 2회 일치
         || '''6''' || BE FRIEND || 승리 || 승리, FUTURE BOUNCE, 이승엽, 김상욱 || FUTURE BOUNCE ||
         || '''6''' || BE FRIEND || 승리, SUNNY BOY, TA-TROW || 승리, FUTURE BOUNCE, 이승엽, 김상욱 || FUTURE BOUNCE ||
  • 신동주(야구) . . . . 2회 일치
         [[삼성 라이온즈]]와 [[KIA 타이거즈]]에서 뛰었던 전 야구 선수. 등번호는 37번(삼성) - 25번(해태) - 37번(KIA) - 40번(삼성, 2004) - 24번(삼성, 2005, 트레이드 전) - 52번(KIA, 2005) - 37번(KIA, 2006). [[마해영]]이 삼성으로 오기 전 [[이승엽]]-[[양준혁]]과 클린업을 구축하여 상대의 투수에게 공포를 선사하던 장본인. 그래서 [[임창용]]도 신동주가 해태로 이적하고 나서야 원래 등번호인 37번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삼성에서 상당한 활약을 하던 선수 치고는 항목이 엄청 짧다.~~ [[해태 타이거즈]]의 마지막 5번타자. ~~더불어 롯데 왕자의 난 덕에 기업인 동명이인에게 밀린 [[안습]]의 사나이~~
         1991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해 1992년에 데뷔했으며, [[백인천]] 감독의 휘하에 삼성의 중심 타선으로 자리잡았다. 롯데의 [[8888577]]의 암흑기였던 [[백인천]]이었으나 젊은 시절의 [[백인천]]은 1990년 LG의 우승을 이끌었는데다 삼성 감독으로서 [[최익성]], 신동주, [[이승엽]]의 타격 실력을 대폭 향상시킨 장본인이다. 1997년에는 도루 2개가 모자라 20-20을 달성하지 못했으나 21홈런에 .326에 .581의 장타율로 타율-장타율에서 [[이종범]]과 맞먹는 스탯을 자랑했다.[* 한편으로는 아쉬운 해였다. 이 해 외야 부문 [[KBO 골든글러브]]는 [[양준혁]], [[박재홍(야구)|박재홍]], [[이병규]]가 탔는데, [[양준혁]], 박재홍이야 압도적인 실력이니 그렇다 쳐도 [[이병규]]와 비교해서는 타율, 홈런 등에서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했음에도 골든글러브에서 떨어지며 결국 골든글러브는 인기투표임을 인증했다. ~~[[이병규]]도 2011년에 똑같이 당한 게 함정~~~~이병규는 그 해 신인왕인데 신인한테 인기에서 밀렸다고?~~] 게다가 그해 준플레이오프에서는 2개의 홈런을 쏘아올렸는데 1차전 전주경기에서는 결승홈런이었고 2차전 대구에서도 0:3에서 추격하는 홈런을 올렸다.[* 물론 그 준플레이오프는 선수생명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 [[김상엽]]에게 mvp가 돌아갔다.] 1999년에는 .278 22홈런 26도루로 20-20을 달성하기도 하였다. 이 때 [[KBO 리그]] 역사상 전후무후한 기록을 세웠는데 이것은 1이닝 3도루이다.
  • 이수진(치어리더) . . . . 2회 일치
          * [[이승엽]]을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어렸을 적부터 야구장에서 이승엽을 보며 응원을 했다고.
  • 최준석 . . . . 2회 일치
         || '''응원가''' || '''두산 베어스 시절''' [br] 정광태 - 힘내라 힘[* 날려라 준! 날려라 석! 날려라 최준석~ 홈런! ×4][* 여담으로 이 응원가는 [[이승엽]]의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응원가기도 했고, [[중신 브라더스]]의 팀 응원가로도 쓰인다.] [br] '''롯데 자이언츠 시절'''[br]콜럼버스 1492 OST - Conquest of Paradise[* 스포츠 CF에 나오던 그 [[마성의 BGM#s-9|웅장한 마성의 BGM]] 맞다. 응원 가사는 롯데~의 최 준석 화이팅 오오오오오오오~ 롯데~의 최 준석 화이팅 오오오오오오오] [br] 자우림 - 하하하송[* (빰빰빰빰빠밤빰) 홈! 런! 최준석! (빠빠빠빠빠빠빠빠빠밤빰) 홈! 런! 최준석!. 2015년 7월 2일 사직SK전에서 쓰이는게 확인되었다. 원래 홈런타자 돌림빵 응원가였다가 [[이대호|친구]] 응원가로 굳어졌던 노래다.][* [[한화 이글스]]의 [[하주석]]도 같은 멜로디의 응원가를 쓰고 있다. ] [br] Pitbull - Celebrate[* 자~이언츠 최준석~ 자~이언츠 최준석~ 빰빠바바바빰빰 *2][* 이 응원곡의 응원동작에는 최준석의 홈런 세레머니 동작이 들어간다.] [br]'''NC 다이노스 시절''' [br]구단 자체제작[* 오~ NC의 최준석 NC의 최준석 다이노스(최준석!)(x3)][* 시즌 전에 공개한 응원가는 [[장성호]]와 [[Johnny, I hardly knew ya|원곡도 같고]] 가사마저 [[표절|복붙 수준으로 같았으나]] 이에 대해서 항의가 들어갔는지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https://youtu.be/1ouaZDexyA8|비공개 처리 되었다]]. 그런데 오히려 급하게 만든 응원가가 더 호평을 받고 있다(...).] ||
         상대적으로 지명타자 자리에 여유가 있는 KT와 삼성이라면 한번쯤 고려하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있었으나,[* 17시즌 후 이승엽의 은퇴로 최준석이 지명타자 자리를 대신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삼성은 이미 지명타자 자리에는 박한이가 있다. 당장 김한수 감독이 박한이 안쓴다고 2017년에 엄청 욕먹었었는데 그런 박한이를 뒤로한채 최준석을 영입한다면 대구아재들은...][* KT의 경우 지명타자 자리에 [[이진영]]과 1루수, 지타를 병행하는 [[윤석민(타자)|윤석민]]이 있다. 또한 KT는 2017년 [[황재균]]을 '''4년 88억원'''에 영입한 데다 KT는 넥센 다음으로 돈을 적게쓰는 구단인 만큼 삼성보다도 영입할 가능성이 낮다.~~[[남태혁]], 한기원의 체중 관리 문제로도 벅찬데~~] 막상 어느 팀도 트레이드조차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76&aid=0003206027|관련기사]]
  • 강기웅 . . . . 1회 일치
         2루수 부문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수상자 (2루수)|골든 글러브]]를 세 차례(1989, 1990, 1993) 차지했다. [[유격수]] [[류중일]] - 2루수 강기웅의 키스톤 콤비는 [[KBO 리그]] 역사상 가장 좋았던 콤비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거꾸로 쳐도 3할이라는 천재적 타격을 자랑했으나, 약한 체력이 단점이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66872 5연타석 홈런의 천재 2루수 강기웅] - 오마이뉴스</ref> 통산 타율 0.292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였다. 실업야구팀 한국화장품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었던 [[1988년]] [[10월 25일]]에 [[우리은행|상업은행]]과의 경기에서 세계 최초 5연타석 홈런을 기록한 적이 있다. [[1995년]] [[5월 13일]] 대전에서 [[한화 이글스]]와의 대구에서 1루수 [[이승엽]]과 충돌하여 입은 발목부상이 악화되어 내리막길을 걸었고, 부상 등의 이유로 [[백인천]] 감독과 불화를 일으켜 [[백인천]] 감독이 그를 [[1996년]] 시즌 후 외야수 이희성, 투수 최광훈을 상대로 [[현대 유니콘스]]에 트레이드했으나, 그는 삼성이 아닌 다른 팀에서는 뛸 이유가 없다고 의사를 밝혀 트레이드를 전격 거부하고 [[1997년]] 2월에 현역에서 물러났다.<ref>[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SH.php?url=baseball/201102/sp2011020917031657360.htm&cd=2101&ver=v002 명품 2루수 강기웅] - 한국일보</ref> 은퇴 후 유통업에 종사했다. 은퇴 때 그는 “심장에 푸른 피가 도는데 어떻게 유니콘스 옷을 입을 수 있었겠느냐”라는 말을 남겼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356 천재 강기웅의 인생 유전] - 박동희 칼럼</ref> [[2011년]] [[8월 10일]]에 타격코치로 선임되어 친정 팀에 돌아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5206016 삼성, 2군 타격코치로 강기웅 씨 영입] - 연합뉴스</ref>
  • 권혁 . . . . 1회 일치
          * '''2003년 2월 하와이 전지훈련 때'''[* 2006년이라고 잘못 기재했었는데, 이건 아마 사진을 2003년에 촬영한 뒤 2006년에 블로그에 업로드한 것으로 추정된다. 블로그를 보면 [[이승엽]]과 [[틸슨 브리또]], [[김진웅]], [[이정호]]가 삼성에 있었고 [[손혁]]과 [[차명주]]가 [[두산 베어스]] 소속인 상태이다. 당시 권혁은 입단 2년 차였다.] '''2.5M 깊이의 [[익사|물에 빠져 죽다가 살아난 적]]이 있다'''. 수영이 능숙하지 않음에도 깊은 데로 갔다가 빠진 경우인데, 당시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야말로 제대로 빠져서 익사 직전까지 갔다가 인공호흡 및 응급처치로 살아난 케이스. 정황상 권혁은 당시 그곳이 그렇게 깊은 곳인 줄 몰랐던 것 같다. 물놀이 분위기가 고조되어 맥주병 선수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폭포를 왕복하고 있었는데 권혁도 그렇게 하다가 빠진 것. 체격 건장한 운동선수라 물에 빠져도 어떻게든 나올 것 같은데 당시 권혁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가라앉았던 걸 보면 역시 물에는 장사 없다는 말이 맞는 듯. 다행히 현장에 있던 [[배영수]]와 이재국 기자[* 당시 스포츠조선 소속. 현재는 스포츠동아로 옮긴 상태이다. [[이광용의 옐로우카드]]의 주 패널로 잘 알려져 있다.]가 가까스로 그를 건져내서 응급조치로 살려냈다. [[http://blog.naver.com/namastae?Redirect=Log&logNo=40022370751|당시 사건을 자세하게 기록했다. 사진도 있음.]] 그리고 13년 뒤인 2016년 현재 배영수와 권혁은 나란히 한화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 대구광역시/인물 . . . . 1회 일치
         * [[이승엽]] - 중구(대구)
  • 백정현 . . . . 1회 일치
         다만 [[이승엽]]의 은퇴 경기 때 선발로 나서서 불쇼를 선보인 건 아쉬웠다.
  • 유승민(정치인) . . . . 1회 일치
         사실 그의 신념인 [[공화주의]] 자체가, [[사민주의]]와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복지에 친화적인 사상이다. 보수성향 의원 중에서는 경제 분야에서 가장 왼쪽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색깔 때문에 일부 진보 진영에서는 '''진정한 보수'''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대표적 진보 논객인 [[진중권]]은 긍정적으로 평했고, 보수 논객인 [[전원책]]은 유승민은 좌파라고 하기도 했다. 2017년 2월 2일 썰전 방영본에 의하면, jtbc 신년 토론 이후에 [[심상정]]으로 부터 "[[정의당]] [[이승엽 와도 자리 없다|와도 자리없다]]"는 농담 문자를 유승민이 받았다고 한다.
  • 정진호(1956) . . . . 1회 일치
         [[삼성 라이온즈]]와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에서 활동했던 야구선수. 그리고 범죄자. '''~~[[양승호]], [[이광은]]~~과 같은 입시비리의 대표주자'''. 현역 시절에는 그리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고 주로 백업으로 활동하다[* [[1985년]]에는 부상으로 결장한 [[오대석]] 대신 2루수 [[김성래]]와 플래툰으로 유격수를 맡았지만(만약 김성래가 유격수를 맡으면 2루수는 [[배대웅]]이 대신했다.) 다음 해인 [[1986년]] [[4월 19일]] [[이승엽 야구장|대구]] [[빙그레 이글스|빙그레]]전에서 5회말 대타로 나섰다가 손문곤이 던진 공에 오른쪽 엄지손가락 부상을 당해 결국 그 해 6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했으며 [[유격수]] 자리는 부상에서 돌아온 오대석과 김성래가 번갈아 맡았다.] 청보로 이적한 다음 해인 1987년 주전 2루수를 맡았지만 그 이후 하락세를 걸어오다가 1990년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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