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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동

尹泰東 (창씨명 倉內善藏)
1900 ~ ?



생애

1900년 5월 13일 충청북도 충주에서 출생하였다. 경성제일고보를 거쳐 1925년 일본 동경제국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한 후, 원고등농림학교, 보성전문학교, 중동학교 등에서 강사로, 경성제국대학에서 조로 근무하였다. 1934년 7월에는 경성제대 예과 로 임명되어 그해 11월까지 근무하였다. 조선인이 경성제국대학로 임명된 것은 윤태동이 3번째이며, 전 기간을 통틀어 4명에 불과하다.

이후 만주로 건너가 간도성(間島省) 교육청 학무과장, 만주국 민생부 교육사 독학관, 대신관방 이사관 겸 교학관, 자료과장 등을 역임하였다. 협화회의 분회(도계림분회)에서 참여(參與)로 활동하였으며 협화회 주최 행사에서 '일본국민과 협화정신'이란 제목으로 강연하였다. 간도성 차장을 거쳐 1945년 4월에 간도성장(間島省長)에 취임했는데 조선인이 성장(省長)에 발탁된 것은 이범익 이래 두번째이다.

일제 패망 후 소련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이주됐으며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기타

충주시가 윤태동의 생가를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하여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친일파의 생가에 정부가 돈을 쓴다는 논란이 일었다.#. 충주시 엄정면 미내리 133번지에 위치한 이 한옥사헌부 감찰을 지낸 윤양계(윤태동의 조부)가 1873년 지은 것으로 중요 민속자료 제135호로 지정돼 지금까지 3억원 이상의 관리 비용을 지원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 담당자는 인물과는 무관하게 건축양식의 가치를 기준으로 지정됐을 뿐이라고 해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