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일제 강점기의 관료}}
{{작가 정보
윤석중(尹石重, 1911년 5월 25일~2003년 12월 9일)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작가, 아동문학가로, 호는 석동(石童)이다.
{{작가 정보
| 이름 = 윤석중
| 원어이름 = 尹石重
| 출생지 = {{국기|일제 강점기}} 경성부
| 사망지 = {{국기나라|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필명 = 호(號)는 석동(石童)
| 장르 = 아동문학<br/>동화<br/>음악평론<br/>동시<br/>시문학<br/>영화제작<br/>작사
| 학력 = 조치 대학교 신문학과 학사 졸업
| 소속 = 前 한국방송위원회 위원장
| 직업 = 아동문학가, 동화작가, 시인
| 활동 기간 = 1924년~2003년
| 배우자 = 박용실
| 자녀 = 슬하 3남 1녀
| 친척 = 윤양중(이복 아우)<br/>윤영모(이복 아우)<br/>윤경모(이복 아우)
}}| 원어이름 = 尹石重
1911|5|25}} |
2003|12|9|1911|5|25}} |
대한민국}} |
| 장르 = 아동문학<br/>동화<br/>음악평론<br/>동시<br/>시문학<br/>영화제작<br/>작사
| 학력 = 조치 대학교 신문학과 학사 졸업
천주교]](세례명 : 요한) |
| 직업 = 아동문학가, 동화작가, 시인
| 활동 기간 = 1924년~2003년
| 배우자 = 박용실
| 자녀 = 슬하 3남 1녀
| 친척 = 윤양중(이복 아우)<br/>윤영모(이복 아우)<br/>윤경모(이복 아우)
윤석중(尹石重, 1911년 5월 25일~2003년 12월 9일)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작가, 아동문학가로, 호는 석동(石童)이다.
개요 ¶
생애 ¶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에서 태어났다를 재학하였으나 1929년 11월 3일 광주 학생 운동이 발발하고, 이에 동참하지 못하고 졸업장을 받는 게 양심의 가책이 되어 <중외일보>에 '자퇴생의 수기'를 투고한 후 졸업을 며칠 앞두고, 자퇴를 한다. 1930년 가을에는 일본으로 유학을 가지만 1년을 채우지 못하고, 귀국을 하게 된다. 이후 1942년 일본 조치 대학 신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25년 잡지 어린이에 그의 동요 〈오뚜기〉가 당선된 후 많은 동요 가사를 창작·발표하였다. 1933년, 방정환의 뒤를 이어 《어린이》 주간으로 한국 아동 문학의 선구자로 활약하였다. 그 후 《소년중앙》·《소년》·《소학생》의 주간을 지냈으며, 1955년 조선일보 편집 고문을 지냈다. 1956년 새싹회 회장에 선출되고, 1961년 3·1 문화상 예술 부문 본상과 1966년 문화훈장 국민장을 받았다. 1970년 어린이 회관 고문이 되는 등 아동들을 위한 많은 공헌을 하였다. 저서로 《윤석중 동요집》, 《초생달》, 《굴렁쇠》, 《어린이를 위한 윤석중 시집》 등이 있다. 1956년 새싹회 동요집 엄마손 등을 비롯하여 윤석중 동요집, 잃어버린 댕기 등 30여 편에 이른다. 2003년 12월 9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3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