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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주시 . . . . 50회 일치
[include(틀:영주시의 읍면동)]
||<-3><tablealign=right><tablebordercolor=#04B486><bgcolor=#04B486><:> {{{+2 {{{#FFFFFF '''영주시'''}}}}}} [br] {{{#FFFFFF 榮州市 / Yeongju City}}} ||
||<-3><bgcolor=#FFFFFF> [[파일:영주시 로고.jpg|width=200]] ||
||<-2><bgcolor=#04B486> {{{#FFFFFF '''국회의원'''}}} [br] [[영주시·문경시·예천군|{{{#FFFFFF {{{-1 (영주시·문경시·예천군)}}}}}}]] ||<bgcolor=#EFFBEF> [[최교일]]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br]초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
||<-2><bgcolor=#04B486> {{{#FFFFFF '''링크'''}}} ||<bgcolor=#EFFBEF> [[http://www.yeongju.go.kr//|영주시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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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bgcolor=#FFFFFF>[include(틀:지도, 장소=영주시,너비=100%)] ||
||<bgcolor=#21610B> {{{#FFFFFF △ 철쭉이 만개한 소백산 (영주시 풍기읍 죽령로1720번길 76 (수철리 산 86-1))}}} ||
||<bgcolor=#21610B> {{{#FFFFFF △ 영주에 있는 희방계곡의 희방폭포의 모습 (영주시 풍기읍 죽령로))}}} ||
||<bgcolor=#21610B> {{{#FFFFFF △ 선비촌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796)}}} ||
||<tablealign=center><-10> '''영주시 행정구역 변천사''' ||
|| 영천군[br](榮川郡, 1895)[br]풍기군[br](豊基郡, 1895)[br]순흥군[br](順興郡, 1895) || → || 영주군 [br] (榮州郡, 1914) || → || 영주시 [br](1980) [br] 영풍군 [br](榮豊郡, 1980) || → || '''영주시''' [br] (1995) ||
1980년 영주군 영주읍이 영주시로 승격되어, 남은 영주군 지역이 영풍군(榮豊郡, '영'주와 '풍'기에서 한 글자씩 따서 새로 지었다)[* [[영풍그룹]]과는 관계 없다.]으로 개칭되었다. 1995년 영주시와 영풍군이 통합되어 현재에 이른다.
* [[영주시/교통]]
2018년 6월 26일 서울신문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영주시청이 2019년부터 2022년 3월까지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소수서원)~단산면 병산리(선비세상 관광단지) 2.8㎞ 구간에 총 사업비 100억원(국비 50억, 경북도비 5억, 영주시비 45억원)을 투입해 모노레일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모노레일 설치와 함께 탑승장 3곳과 정거장 5곳, 회랑(1548㎡)을 설치하고 모노레일 차량 14량(8인승)을 투입한다고 한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superidea&no=65078|꿈은]]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train&no=868480|이루어진다]].
* 시내에 분식, 간식으로 유명한 곳이 많다. 정도너츠의 생강도너츠, 시내 아디다스 앞 농협위치에 저녁에만 열리는 꼬치집(참고지만 김밥도 상당히 맛있다), 그리고 밑으로 조금 내려가 랜드로바 가게 ~~지금은 금강제화~~ 앞에 있는 랜드로바 떡볶이, 거기서 더 내려오면 롯데리아 옆 태극당(빵집), 그리고 나드리 분식, 중앙분식의 쫄면이 영주시내에서 시민들이 대표적으로 즐겨찾는 분식/간식집이다. ~~다만 맛을 너무 기대하진 말자.~~ ~~영주 출신인 부모님은 서울에 사셔도 1년에 3~4번씩은 쫄면 먹으러 꼭 내려가던데~~
* 의외로 영주 시내에는 '맛집' 이라고 할만한 식당들이 잘 소개되지 않는데, 그 이유가 대부분 맛집이라고 할만한 식당들은 영주시내에 있지 않고 "정말 이런데 식당이 있어요?" 라고 생각할 정도로 영주시 외곽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 민물매운탕, 오리고기, 닭발과 같은 히든(?) 식당들의 경우 대중교통으로 가기 불가능하며 광고도 하지 않아 입소문으로 알고가지 않는 한 알고 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배달을 시켜보려고 배달책을 펴는 순간 정말 먹을 것이 없게 느껴지는 이유가 이것. 그러므로 지역민들이 점심 저녁으로 꾸준하게 찾을만한 맛있는 식당을 아는 경우가 많아 영주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꽤 괜찮은 식당을 알 수 있다.
* [[헌혈의 집]]이 없다. 하려면 [[안동]]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헌혈의 집은 대부분 특별시, 광역시와 지역 중심 도시에나 있지 영주시보다 인구가 많은 곳조차도 헌혈의 집이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므로 특이한 사항은 아니다. 비정기적으로 헌혈 버스가 학교로 오지만 1년에 1번꼴.(...)
- 김륵 . . . . 9회 일치
당색으로는 [[동인 (정치)|동인]]이고 학맥으로는 [[이황]]학파로, 퇴계 [[이황]]의 제자인 [[소고 박승임]], 금계 [[황준량]]의 문하에서 수학하다 이황을 직접 찾아가 직제자가 되기도 했다. [[경상북도]] [[영천시]] (현재의 [[경상북도]] [[영주시]]) 출신.
그러나 사마시 합격 이후 생부 김사명과 스승인 퇴계 이황이 연이어 사망, 그는 고향 영주시에 머무르며 퇴계 이황의 위패를 영주시 이산서원(伊山書院)에 배향하는 일을 추진하였으며 이후 영천(영주시) 지역 사림의 중심인물로 부상하게 된다. 그는 흑석사(黑石寺)와 [[소수서원]] 등에서 수학하다 [[1576년]](선조 9)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오리 [[이원익]], 학봉등이 그의 동방이었다.
1600년(선조 33) 병을 이유로 관직을 사퇴하고 고향인 영천(영주시)으로 물러난 뒤 김륵은 학문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 밖에 월천 [[조목]]을 찾았고, 그 뒤 오운(吳澐)·배응경(裵應褧) 등 벗들과 이산서원에 모여 강학에 몰두하였다.
[[1611년]] 그는 관직을 버리고 고향 영주시로 물러났다. [[1612년]](광해군 4) 대북(大北) 세력이 꾸며낸 [[김직재]](金直哉)의 옥사에 그가 연루되었다는 누명을 쓰고 심문을 받은 뒤 삭탈관직(削奪官職)되었다가 복관되었다.
이후 영주시내에 귀학정과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에 천운정을 짓고 시문으로 소일하며 이수광·한석봉등 당대의 명사들과 교류했는데, 이때 석봉 한호로부터 친필 글씨로 귀학정 현판을 선물로 받았다. 1616년(광해군 8) 병으로 사망했다. 묘소는 경북 봉화군 상운면에 있다. [[1623년]] [[인조반정]] 후에 [[광해군]] 시절의 행동이 참작되어 1653년에 이조 판서로 증직되었다.
정조 12년인 1788년에 '민절(敏節)'의 [[시호]]가 내려졌으며, 경상북도 영주시의 [[구강서원]], 향현사(鄕賢祠) 등에 배향되었다.
- 예천군 . . . . 4회 일치
||<-2><bgcolor=#5EBFED> {{{#FFFFFF '''국회의원'''}}} [br] [[영주시·문경시·예천군|{{{#FFFFFF {{{-1 (영주시·문경시·예천군)}}}}}}]] ||<bgcolor=#FFFFFF> [[최교일]]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br]초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
[[경상북도]] 북서부에 있는 군. 인구는 5만여 명. 동쪽 [[안동시]], 북동쪽 [[영주시]], 서쪽 [[문경시]],남서쪽 [[상주시]], 남동쪽 [[의성군]], 북쪽 [[충청북도]] [[단양군]]이 있다.
|||| 예천군 ||<-5> 문경시-예천군 || 영주시-[br]문경시-예천군 ||
- 의상 (신라) . . . . 2회 일치
의상은 많은 [[사찰]]을 창시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중 [[영주시|영주]]의 [[부석사 (영주시)|부석사]]가 유명하다. 토에 정통한 승려로서 [[신라]]와 [[고려]]에서는 국사로 추존되었으며<ref>일부 고려의 왕족과 귀족 중에는 고려는 도선의 풍수지리설 덕택에 건국, 후삼국을 재통일했다는 사고관이 있었다.</ref>, 민간 신앙에서도 무속의 신 중 한 사람으로 [[경상북도]]의 일부 무당들로부터 숭배되었다.
- 경상북도 . . . . 1회 일치
[[영주시]]''' || 榮州市 || 669 || 114,374 || 47,908
- 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영주시 출신 인물]]
- 영덕군 . . . . 1회 일치
보수 성향 정당의 지지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경상북도에서도 보수 정당 지지율이 유독 압도적으로 높은, '''전국에서 [[자유한국당]] (구 새누리당) 지지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2007년 대선 당시에는 [[이명박]] 후보가 여기서 '''84%'''를 득표해서 앞섰고, 또다른 보수 후보인 [[이회창]] 후보의 득표율을 합하면 표가 무려 '''90%'''에 달했다. 2012년 말의 18대 대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무려 '''87.11%'''를 득표해 '''대구경북권 2위이자 전국에서 2위'''[* 근소한 차이로 [[군위군]]이 1위.]를 기록했다. 이는 경상북도에서의 박근혜 후보 평균 득표율(80.82%)보다 무려 6.29%나 높고, 경북에서 가장 낮은 [[영주시]]와는 9.14%나 차이가 날 정도로 매우 압도적인 수치이다. 이윽고 열린 2014년 제 6회 지방선거에서도 [[김관용]] 새누리 경북도지사 후보의 득표율이 의성에 이은 2위를 차지했고[* 의성도 경북 평균보다 6~7% 높은, 전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보수 정당 강세지역이다.], 가장 최근에 열린 [[20대 총선]]에서도 '''전국에서 유일하게 새누리당 득표율이 70%를 넘겨(70.83%)''' 경북 평균(58.11%)보다 무려 12.72%나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전국 평균(33.50%)의 무려 '''2배가 넘는 수치를 기록한 유일한 지역'''이었다.
- 영천시 . . . . 1회 일치
[include(틀:다른 뜻1, other1=영천(永川)은 이 문서로 연결됩니다. 영천(榮川), rd1=영주시)]
- 이평 (1572년) . . . . 1회 일치
그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감곡리 석남마을 후곡 자좌(子坐)에 있고, 그의 부인 파평윤씨는 영주 옥산에 묘가 있다.
- 정도복 (고려) . . . . 1회 일치
그 뒤 향리 영주에 물러나 어버이 묘소아래 집을 마련하고 여년을 지냈으며 이후 그가 살던 곳을 한성부 판윤을 지낸 이가 살았다 하여 한성동(漢城洞, 현 영주시 이산면 원리)이라 이름붙였다. 영주에 신도비가 있으며, 모현사(慕賢祠)에서 향사(享祀)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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