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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동우
         2017년 [[두산 베어스]] 주루코치시절, [[양의지]]와 --[[덤 앤 더머]]-- 장면을 연출(?)했다.
  • 광주광역시/인물
         * [[양의지]] - 광산구
  • 권혁
         2010년 10월 7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 1차전, 팀이 스코어 5:6으로 이기던 9회 초에 5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1사 1, 2루, 2S1B 상황에서 어처구니없게도 자기 혼자 실수로 투수판을 밟은 상태에서 공을 떨어뜨리면서 보크를 범하여 아이작 궈낵 경[*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의 패러디.]이라는 별명을 얻었다.[[http://gall.dcinside.com/list.php?id=samsunglions&no=768365&page=3&bbs=|#]] [[http://gall.dcinside.com/list.php?id=samsunglions&no=768354&page=3&bbs=|#]] 보크를 저질러 1사 2, 3루가 되자마자 [[안지만]]으로 교체되었고, 안지만이 3번 타자 [[이종욱(야구선수)|이종욱]]을 유격수 플라이, 4번타자 [[양의지]]를 중견수 플라이로 아웃시키고 경기를 끝냈으니 망정이지, 기껏 이겨논 경기 말아먹을 뻔했다. 이날 권혁은 0.1이닝 12투구수 1피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홀드를 기록했지만, 보크를 기점으로 (본인 왈)멘탈에 심각한 문제를 안게 되어 이후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 김민식(야구선수)
         팬들은 그의 [[반어법|화려한 활약]]에 [[양의지]]의 영입을 요구했지만 팀이 육성과 재정상의 이유로 FA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내년에도 주전 자리가 보장되었다(...)
  • 김정혁
         8월 18일 [[이승엽]]과 함께 1군 엔트리에 등록됐다. 19일 두산전에서 9회초에 2사 후 2루타를 친 [[야마이코 나바로|나바로]] 대신 대주자로 출장해 2사 1,2루 상황에서 [[김재현(1991)|김재현]]의 좌전 안타를 치자 홈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포수 [[양의지]] 태그를 피해 슬라이딩하며 추가점을 내는 인상적인 활약을 보였다. 반면 타격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못 보이면서 27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 김정혁(1985)
         8월 18일 [[이승엽]]과 함께 1군 엔트리에 등록됐다. 19일 두산전에서 9회초에 2사 후 2루타를 친 [[야마이코 나바로|나바로]] 대신 대주자로 출장해 2사 1,2루 상황에서 좌전 안타를 치자 홈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포수 [[양의지]] 태그를 피해 슬라이딩하며 추가점을 내는 인상적인 활약을 보였다. 반면 타격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못 보이면서 27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 김태형 (1967년)
         현역 마지막 시즌부터 플레잉 코치로 뛰기 시작했고 다음 해 은퇴하면서 [[두산 베어스]]에서만 10년 동안 배터리코치로만 재직하면서 [[홍성흔]] 이후의 포수 자원인 [[용덕한]], [[양의지]] 등을 강인권 코치와 프로에 안착시키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두산 베어스]]가 [[김광수 (1959년)|김광수]] 감독대행 체제로 2011 시즌이 끝난 후 감독 후보군에 올랐지만, 당시 투수코치였던 [[김진욱]]이 신임 감독이 됨에 따라 팀을 떠나 [[SK 와이번스]]에 1군 배터리코치로 옮겼다.
  • 변진수(야구선수)
         2012시즌 개막 후에는 내내 2군 무대에 있었지만, 6월 12일 처음으로 1군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6월 14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경기에 7:6으로 뒤진 8회말 마운드에 올라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면서 깔끔한 1군 데뷔전을 기록했는데, 행운이 따랐다. 9회초에 [[양의지]]가 역전 2점 홈런을 치면서 8:7로 팀이 역전한 것. [[스캇 프록터]]가 9회말을 잘 막으면서 팀이 8:7로 승리, 변진수는 행운의 데뷔 첫 승을 기록했다.
  • 용덕한
         2008년에 복귀했다. [[2009년]] 시즌에 [[최승환]]의 부상으로 인해 79경기를 출장한 것이 최다 출장한 기록이 되었다. [[2010년]] 포스트 시즌에서 주전 포수 [[양의지]]를 대신한 특급 백업 요원으로 자리매김하였고, 상대적으로 경험이 적었던 [[양의지]] 대신 노련한 모습을 선보이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ref>[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0100601032233169006 준비된 백업 용덕한 준PO 시리즈 MVP로] 문화일보</ref> 그러나 [[2011년]] [[5월 27일]] 잠실 한화전에서 낫아웃 상황에서 파울이라고 항의하다가 [[오선진]]이 3루까지 뛰는 상황을 자초하여, 이후 2군행을 통보받았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105280001 낫아웃에 3루까지...어떻게 된 건가?] - OSEN</ref> 이는 [[1997년]] [[8월 23일]] 대구에서 열렸던 [[삼성 라이온즈|삼성]]과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과의 연속 경기 1차전의 낫아웃 해프닝 이후 낫아웃 상황의 착오가 발생한 사건이었다(이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포수 [[김영진 (야구 선수)|김영진]]은 이후 [[한화 이글스]]에 트레이드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0065870 김영진의 ‘희대의 해프닝’ 낫아웃 오판] - OSEN</ref>
         [[양의지]]에 이어 [[김재환 (야구 선수)|김재환]], [[최재훈 (야구 선수)|최재훈]] 등 신진 포수들에게 밀려 [[2012년]] [[6월 17일]] [[롯데 자이언츠]] [[투수]] [[김명성 (1988년)|김명성]]을 상대로 [[롯데 자이언츠]]에 트레이드되었다. 이는 [[장성우]]의 [[경찰 야구단]] 입대에 따른 [[강민호]]의 백업 포수가 필요하였던 [[롯데 자이언츠|롯데]] 측의 요청으로 성사되었다.<ref>[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367321 포수 물색하던 롯데, 용덕한 결정한 이유는?] - OSEN</ref> [[2010년]] 포스트 시즌에 이어서 [[2012년]] 포스트 시즌에도 맹활약을 보여 롯데가 13년 만에 포스트 시즌에서 승리를 거뒀다. 주전 포수인 [[강민호]]가 준PO 1차전에서 손등 부상으로 2차전부터 주전 포수로 출전하였고, 2차전 1:1 동점 상황에 9회에 상대 [[투수]] [[홍상삼]]을 상대로 역전 솔로 홈런을 쳐내며 결승 홈런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후 인터뷰에서는 "친정 팀이건 뭐건 간에 내가 속해 있는 팀이 이기는 게 먼저다. 나는 롯데 선수고 친정 팀이란 건 아무 의미가 없다."라는 말을 하며 [[롯데 자이언츠]]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다.
  • 윤명준
         [[2013년]] [[5월 21일]] [[넥센 히어로즈|넥센]]전에서 구원 등판해 [[유한준]]을 몸에 맞는 볼로 출루시키자 [[강광회]] 주심이 주의를 줬으나 후속 타자인 [[김민성 (1988년)|김민성]]에게도 몸에 맞는 볼을 허용해 [[강광회]] 주심이 바로 퇴장을 선언했다. 공을 몸에 맞은 [[김민성 (1988년)|김민성]]은 화를 참지 못하고 그에게 걸어 나가려 하자 포수 [[양의지]]가 말리는 모습이 나오면서 각 팀의 선수들은 벤치 클리어링을 일으켰다. 이 광주 후 벌금 200만원, 8광주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징계 기간은 1군 엔트리에 있어야 광과되기 때문에 당시 감독이었던 [[김진욱]]은 [[2013년]] 그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었기에 그를 1군에 잔류시켜 조기에 출장 정지가 풀리도록 조치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0&article_id=0000071348 김진욱의 과감한 결단과 선택, 윤명준 만들었다] - 스포츠한국</ref>
  • 최승환
         [[2009년]] 시즌이 개막한 후 [[채상병]]을 밀어내고 데뷔 9년 만에 비로소 [[두산 베어스]]의 주전 [[포수]]로 활동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22680 두산 최승환, "이제 야구가 재미있다"] 《오마이뉴스》, 2009년 5월 1일 작성</ref> 목 오른쪽에 큰 점이 있어서 '''"점포"'''라는 별명이 있다.<ref>[http://livepoll.donga.com/view_t.news?f=e_s&n=200907210239&l=30 최승환, 점 빼러 갔다가 포기한 사연은?] - 동아일보</ref> 데뷔 이후 처음으로 붙박이 주전으로 [[2009년]]을 보냈지만 [[2010년]]에는 [[경찰 야구단|경찰청]]에서 제대한 [[양의지]]에게 밀려 2군으로 다시 내려갔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20&g_serial=484693 '아직 부족해~' 김경문 감독의 끝없는 진화 의욕] - 조이뉴스24</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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