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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회남

{{중립 필요|날짜=2012-10-4}}
{{공직자 정보
직책 = 前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문화선전성
북조선국 문화선전상]] 예하 차석보좌관<br />(前 北朝鮮國 文化宣傳相 隸下 次席補佐官)
| 이름 = 안회남
| 원래 이름 = 安懷南
출생일 = {{출생일
1909|11|15}}
| 출생지 = {{국기|대한제국}} 한성부
| 사망일 = ?
| 주석 = 김일성
| 장관 = 허정숙 (북조선국 문화선전상)
| 부주석 = 김두봉
| 총리 = 김일성
| 부총리 = 박헌영<br/>홍명희<br/>김책<br />허가이<br />최창익<br />정준택
별명 = [[아명
초명(初名)]]은 안필승(安必承)
| 국적 = {{국기|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경력 = [[소설
소설가]], 문학평론가<br/> 前 조선문학가동맹 소설분과위원장
| 학력 = 경성 휘문고등보통학교 중퇴
| 임기 = 1948년 9월 16일 ~ 1954년 1월 20일
| 부모 = 안국선(부)
| 친인척 = 안필수(할아버지) <br/> 안막(6촌 남동생)
| 정당 = 무소속
| 웹사이트 =
}}
안회남(安懷南, 1909년 11월 15일 ~ ?)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소설가이며 문학평론가이다. 초명(初名)안필승(安必承)이며 나중에 안회남(安懷南)으로 개명하였다. 본관은 죽산(竹山)이다.

생애

신소설금수회의록》의 작가 안국선의 외아들로, 한성부에서 출생해서를 다녔다. 휘문고보 동창인 소설가 김유정과는 절친한 사이였으며, 김유정이 요절하기 전 마지막으로 쓴 편지글이 안회남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1931년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발(髮)〉로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이태준, 박태원, 이상구인회 동인들과 함께 활동을 했던 안회남의 초기 작품은 심리 묘사 위주로 신변을 다룬 사소설(私小說)이 주를 이루었으나, 이후 급격한 경향의 변화를 보인다. 태평양 전쟁 기간 중에 일본에 1년가량 징용으로 끌려갔다온 후로는 이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을 냈고, 월북 이후로 추정되는 1948년 발표된 중편인 《농민의 비애》는 미군정의 폭정으로 농민들의 생활이 일제 강점기보다 더 비참해지고 있다는 사회 고발적인 내용이다.

광복 후 좌익 계열 문학 단체인 조선문학건설본부에 이어 조선문학동맹 결성에 참가하여 소설분과위원장을 맡았다. 1947년경에 월북하였고, 한국 전쟁 시기에 종군작가단에 참가하여 서울에 왔다가 박태원, 현덕, 설정식 등 아직 월북하지 않고 있던 문인들과 함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돌아갔다. 1960년대 숙청되었다는 설만 있을 뿐, 1954년경까지의 활동만 확인되었고 이후 행적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가족 및 친척 관계

* 증조부 : 안광묵(安光默)
* 할아버지 : 안필수(安弼壽)
* 아버지: 안국선(安國善, 1878년 12월 5일 ~ 1926년 7월 8일, 대한제국 조선 왕조의 신소설 작가.)

인간 관계

* 소설가 김유정(金裕貞), 소설가 이석훈(李石薰), 아동문학가 현덕(玄德), 소설가 겸 시인 이상(李箱) 등과는 절친하기 짝이 없는 오랜 친구 관계를 맺었다.

학력

같이 보기

참고자료

* {{서적 인용
|저자=권영민
|제목=한국현대문학대사전
|날짜=2004-02-25
|출판사=서울대학교출판부
|출판위치=서울
id={{ISBN
89-521-0461-7}}
|페이지=52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