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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격서

Contents

1. 개요
2. 구조
3. 역사
3.1. 개창
3.2. 혁파 논란
4. 참조

1. 개요

조선전기에 도교 식 재초를 거행했던 관청이다.
도교의 신에 대한 초제를 주관하였고, 가뭄이나 홍수 등이 났을 때 기우제, 기청제를 지냈다.

2. 구조

* 태일전(太一殿) : 칠성(七星)을 제사지냈다. 화상이 모두 모두 머리를 풀어 헤친 여자의 모습이었다.
* 삼청전(三淸殿) : 옥황상제(玉皇上帝), 태상노군(太上老君), 보화천존(普化天尊), 재동제군(梓潼帝君) 등 10여 위를 제사하였다. 남자의 화상으로 모셨다.
* 사해(四海)의 용왕(龍王)
* 신장(神將)
* 명부(冥府)의 시왕(十王)
* 수부(水府)의 제신(諸神)
* 자수궁(慈壽宮) : 여도사가 거주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도사를 뽑을 때는 《영보경(靈寶經)》ㆍ《과의(科義)》ㆍ《연생경(延生經)》ㆍ《태일경(太一經)》ㆍ《옥추경(玉樞經)》ㆍ《진무경(眞武經)》ㆍ《용왕경(龍王經)》 등을 교제로 사용하였다.

3. 역사

3.1. 개창

고려 시절에 복원궁(福源宮), 소격전(昭格殿) 등의 도교 관청이 있었다. 조선 건국 이후 1392년 11월에 복원궁 등을 없애고 소격전만 남게 된다. 한양 천도 이후 1396년에 종로구 삼청동에 소격전이 건립된다. 1466년(세조12년)에는 소격서로 개칭된다.

3.2. 혁파 논란

연산군 때, 소격서는 형식적으로 혁파되었다. 하지만 형식적일 뿐이었고 초제는 그대로 거행하였다.
중종 재위 시기, 1518년에 조광조 등의 요청으로 소격서를 일시적으로 혁파하였다. 하지만 중종은 조상 때부터 내려온 제도라면서 소격서 혁파 주장에 거부감을 보였고, 기묘사화 이후 대비의 간청이라는 이유로 다시 부활시켰다.
임진왜란 이후 선조가 폐지하였다. 소격서의 근거가 되는 도교노자를 숭상하는 이단이라는 점, 제후국인 조선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명분에 어긋난다는 점, 초제를 지내는 비용이 낭비되며, 소격서는 쓸데없는 관리라는 점 등의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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