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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교(국회의원)


{{{#70000B 대한민국}}} {{{#70000B 국회의원}}} ({{{#70000B 서울}}} {{{#70000B 중랑구 갑}}})
제18대br유정현제19~20대br서영교현직

이름 서영교(徐瑛敎, Seo Youngkyo)
출생일 1964년 11월 11일
출생지 경상북도 상주시
학력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br이화여자대학교 공공정책학 석사br이화여자대학교 동아시아학 박사과정 수료
종교 불교
가족 배우자 장유식(변호사)[1], 슬하 1녀
소속 정당 {{{#1871B8 더불어민주당}}}
지역구 서울 중랑구
의원 선수 2
의원 대수 19, 20
소속 위원회 국회운영위원회(간사)
현직 제20대 국회의원
약력 이화여자대학교 총학생회장br대통령비서실 춘추관장br동국대학교 겸임교수br민주통합당 원내부대표br더불어민주당 전국여성위원장br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외부 링크 블로그

목차

개요

대한민국 제19, 20대 국회의원(서울 중랑구 갑)으로 더불어민주당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가족채용 논란' 등으로 제명 위기에 처하자,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였으나, 9월 13일 1년만에 복당이 확정되었다.

행적

1964년 경상북도 상주군[2]에서 태어났다. 이후 가족들을 따라 서울로 이사하여 중곡초등학교, 면목여자중학교(현.장평중학교), 혜원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3] 1983년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1986년 이화여자대학교 총학생회장을 역임했고, 이대 정외과를 졸업한 후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공공정책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같은 학교 대학원 동아시아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8년부터 중랑구 면목동에서 주부들 대상으로 무료도서대여사업을 했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 창당 당시 발기인으로 참여하면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 2003년에는 민주당 부대변인으로 일약 출세하여 화제를 모았다. 2004년부터 3년간은 열린우리당 부대변인으로 활동하였다.

그 후 2007년에는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춘추관장 겸 보도지원 비서관으로 발탁되었는데, 전임자 김현 비서관도 여성 386 출신이었기 때문에, 여성 386 출신끼리 바통을 넘겨주고 받았다는 말이 나왔다.[4] 그리고 2011년에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당시 후보의 유세본부 본부장을 맡아 박 시장 당선에 일조했다.

그후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명숙 대표의 추천에 의해 서울 중랑구 갑에 민주통합당 후보로 공천을 받았다. 이때 한명숙 대표가 주도한 이른바 노이사 공천[5]의 덕을 봤다는 소문도 있었다. 관련 기사 어쨌든 이때 현역 국회의원무소속 유정현 후보를 꺾고 당선되면서 금배지를 달게 되었다.

제19대 의원 시절의 대표적인 입법 발의로는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이 있다. 미성년자들이 식당이나 술집에서 술을 마셔도 당사자는 처벌받지 않고 식당 사장님들만 처벌받게끔 되어 있었던 법을 개정해 처벌 수위를 크게 낮춰주거나 면제해 주는 내용.

미성년자들 또한 처벌 대상으로 하는 '쌍벌제'의 바로 아랫 단계로 위의 설명을 보다 더 자세히 첨부하자면 '미성년자의 강박 및 신분증 위조˙변조˙도용 등 적극적인 방법으로 인해 주류나 담배 등을 판매한 경우에는 과징금과 영업정지기간 등 행정처분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도록 해 선량한 자영업자를 보호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 개정안이다.#1#2

서영교 의원은 '쌍벌제로 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이는 법을 만들고 여러 법을 개정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일단 있는 청소년 보호법부터 개정해 식당 사장님들을 이러한 위험에서 건져올리는 것이 더 시급하다'며 보호법 개정안에 앞장선 이유를 밝힌 바 있다.

한편으로는 19대 의원 시절 ‘거친 언사, 언어폭력’ 논란에 오르내리기도 하였다. 2013년 동아일보와 검색시스템업체의 국회 회의록 전수조사에서 ‘당신’ 같은 부적절한 발언을 가장 많이 한 의원으로 조사됐던 것. 하지만 이에 대해 서영교 의원은 “‘법무부 장관님, 당신이 생각하기에는요’처럼 ‘당신’의 앞뒤 문장에 높임말을 항상 붙였다”고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기사

2016년 3월에는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에 참여하여 6시간 59분 동안 테러방지법의 독소조항을 개정할 것을 주장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공천을 받았으며, 당선되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대중들이나 지역구에서 나름대로 호감을 모은 국회의원이었으나, 아래에 소개된 가족채용, 로스쿨 편들기, 석사논문 표절 논란 등으로 인해 대중들의 질타를 받는 정치인으로 전락하였다.

결국 더불어민주당의 당무감사원이 서영교 의원에 대하여 중징계 결정을 내렸다. 당무감사원이 최종 징계수위에 대한 판단을 윤리심판원에 넘김으로써 제명 또는 당원자격 정지 판정이 예상되었다. 그러자 2016년 7월 12일 열릴 예정이었던 윤리심판원 전체회의 하루 전날인 7월 11일에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였다.[6]

그리고 1년여 넘게 무소속 의원 신분으로 의정 활동을 해오다가 상대 후보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혐의로 진행되었던 재판이 1심, 2심, 3심 모두 무죄 판결이 나면서 2017년 9월 13일 민주당에 다시 돌아왔다.

더불어민주당 기획탈당

‘가족채용’ 논란에 휩싸였던 때인 2016년 7월 11일에 자신에 대한 징계수위를 정하는 윤리심판원 전체회의를 하루 앞두고 전격 탈당했다. 이미 당무감사원이 중징계 결정을 내렸고, 최종 징계수위에 대한 결정은 윤리심판원에 넘어간 상태였으며, 징계수위는 제명 또는 당원 자격 정지 판정이 예상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버텨봤자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당원 자격 정지 처분을 받게 되면 더 이상 당에서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하루 전날까지도 버팅겨보다가 결국 포기하고 자진 탈당했다. 자진탈당 쇼 이후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물러난 뒤 비교섭단체로서 국방위원회로 상임위를 옮겼다. 원래는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위원장 경선에 출마해 서울·제주 권역 최고위원으로 지도부에 입성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으나 이때의 탈당으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렇지만 선거법 재판 종료 후 민주당 서울시당에서 복당을 결정하였으며, 이를 중앙당에서도 받아들이면서 은근슬쩍 1년 만에 민주당으로 돌아왔다.

비판 및 논란

내용이 길어져서 문서가 분리되었다. 자세한 건 서영교/비판 및 논란 문서 참조.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통합민주당 4,313,645 (25.17%) 낙선 (33번)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중랑 갑) 민주통합당 33,891 (40.91%) 당선 (1위) 초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중랑 갑) 더불어민주당 45,838 (54.15%) 당선 (1위) 재선

기타

  • 이대 총학 출신답게 목소리가 대단히 우렁차다고 한다. 국회 대정부 질문을 할 때에도 마치 판소리 명창이 웅변하는 듯한 톤으로 사자후를 토하여 눈길을 모았다. 관련 동영상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개콘유치원에 나오는 김준현 오린이어린이의 웅변을 연상케 한다는 평도 있었다. 관련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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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서울대 공대 학생회장 출신이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당시에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의 대변인을 맡았다.
  • [2] 現 경상북도 상주시
  • [3] 이러한 이력을 무기로, 중랑이 낳고 기른(...) 진정한 중랑의 딸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자신의 세일즈 포인트로 삼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 당시엔 중랑구가 아닌 동대문구인 게 함정(중랑구 분리는 1988년에 이뤄졌다). 또한 중랑의 딸이란 이름을 걸고 중랑구에 있는 초,중,고등학교 졸업식에서 "자신이 이 학교를 졸업했다" 말하고 다닌다.
  • [4] 김현은 한양대 사학과 84학번으로 한양대 총학생회 간부 출신이고, 서영교는 이화여대 정외과 83학번으로 이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참고로 청와대 춘추관은 출입기자실, 보도지원비서실, 기자회견장 겸 브리핑룸 등이 있는 곳이다. 춘추관장은 출입기자들과 동고동락하며 춘추관 운영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고 있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물론 남다른 언론 감각과 기자들과의 원만한 관계 등이 요구되는 자리이다.
  • [5] '노이사'란 한명숙이 2012년 총선 당시 당 대표로 공천권을 거머쥔 동안 민주통합당 내에서 유행했던 말이다. ‘친노, 이화여대, 486 운동권’을 일컫는 말로 거기에 속하지 못하면 공천은 물 건너간다는 의미로 통했다. 당시 총선 초반 판세는 야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했는데, 한명숙은 마치 총선에서 이미 다 이긴 듯 자신의 아바타들을 꿀지역구에 심는 데 분주하다가 결코 질 수 없다던 선거에서 패했다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사실과 다르다는 견해도 있다. 당시 한명숙은 관리형 대표로서, 각 계파의 입장을 조율하는 역할이었지 당내 주도권을 가지고 있지는 못한 상태였다는 것. 무능한 리더가 각 계파의 이권을 조율하다 보니 파열음이 나왔다는 주장이다. 관련 기사
  • [6] 서영교 의원의 탈당으로 더민주 의석은 121석으로 줄어들었다.